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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 사이로’ 뮤지컬이 달린다

은바리라이프 2007. 11. 28. 18:38

‘흰 눈 사이로’ 뮤지컬이 달린다

시사저널|기사입력 2007-11-20 09:36 기사원문보기


뮤지컬 시장이 해마다 빠르게 성장해 현재 2천억원 규모를 보이고 있다.왼쪽부터 <헤어스프레이> <김종욱 찾기> <뷰티풀 게임>.

바야흐로 뮤지컬의 전성기이다.아니, 전성기를 넘어 ‘독식 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미 2005년 전체 공연 시장 매출의 절반을 뮤지컬이 차지한 이래, 해가 거듭할수록 이른바 뮤지컬과 비(非)뮤지컬의 시장 점유율 격차는 늘어나고 있다.2001년 8백억원대 시장을 형성하던 뮤지컬은 현재 약 2천억원 규모로 성장했다.이 돌풍의 중심은 단연 해외 뮤지컬들이다.

한국뮤지컬협회의 2006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해외 스태프와 배우들이 직접 방한해서 벌이는 ‘투어 뮤지컬’ 중 67%가 1천 석 이상의 대극장에 집중되어 있다.해외 작품의 공연권을 가지고 우리 배우들로 공연하는 ‘라이선스 뮤지컬’의 경우도 62%가 5백 석 이상의 중형 이상의 무대에서 공연되었다.하지만 50~2백 석 규모의 소극장이 백여 개가 몰려 있는 대학로에서도 이미 대세는 뮤지컬이다.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연극의 메카 기능을 담당했으나 이제는 ‘연극’이라는 단어를 꺼내기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수의 뮤지컬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특히 ‘소극장 뮤지컬’과 거의 동의어를 형성하고 있는 이른바 ‘대학로 뮤지컬’은 대극장의 수입(투어 혹은 라이선스) 뮤지컬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미래 한국 뮤지컬의 한 축을 구성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중요한 존재로 각광받고 있다.

2007년 겨울, 공연계의 최대 성수기인 12월에만 서울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의 숫자는 50편에 이른다.이는 뉴욕 브로드웨이나, 런던 웨스트엔드에 비교해 보아도 더 많다.게다가 레퍼토리의 면면을 살펴보아도 뮤지컬의 본고장 출신 작품들이 많다.11월 하순에 개막하는 작품만 보아도 뮤지컬 팬들의 관심을 끌만한 작품들이 즐비하다.먼저 토니상 수상작으로 국내 초연인 <헤어 스프레이>와 <스펠링 비>가 있고,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 초연을 가진 앤드루 로이드 웨버 작곡의 <뷰티풀 게임>, 그리고 유럽 본토의 프랑스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가 있다.

12월에는 얼마 전 <라이언 킹>이 1년 만에 막을 내리고 떠난 우리나라 1호 뮤지컬 전용극장인 잠실 샤롯데극장에는 <맘마미아!>가 새 안방 주인으로 등극하여 재공연되며, 창작 뮤지컬로서 꾸준히 인기몰이를 해오고 있는 <명성황후>, 그리고 지난해 짧은 연말 공연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얻어 1년 만에 다시 재공연되는 <애니>도 관 객을 맞는다.

2001년 우리나라에 뮤지컬 부흥기를 이끈 <오페라의 유령> 이후로 업계의 파이를 주도하는 것은 웅장한 구성에 놀라운 무대 메커니즘을 가진 해외 뮤지컬들이다.<오페라의 유령>은 해외 스태프가 내한하고 세트와 의상, 디자인을 그대로 공수해왔으며 한국 배우들은 해외 연출팀에 의해 선발되고 트레이닝을 받았다.원작의 작품성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철저한 라이선스 제작 방식은 점차 오리지널 작품에 한국적인 성향을 가미한 재창작 가공물의 형태로 진화하면서 현재까지 대형 뮤지컬의 기본 형식으로 자리하고 있다.사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전세계적으로 볼 때 투어 공연보다 한국어로 번역된 라이선스 공연을 선호하는 편이다.이는 관객의 요구라기보다는 장기 공연을 지향하는 제작사들이 프로덕션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라이선스 뮤지컬 붐 당분간 계속될 듯라이선스는 오리저널 작품의 대본, 악보만 가져다가 우리 실정에 맞게 번역·각색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좀더 친숙하게 다가가는 면도 있지만 반면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원작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오리지널리티가 일부 변형될 수 있는 소지도 있다.가령 가사를 번안하는 과정에서 의미 전달에 일차적인 주안점을 두다 보면 어순이 다른 우리말에서 원작이 가진 운율을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특정 시대나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유머의 경우 비슷한 한국어 유머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은데 나라별로 해학과 트렌드가 다르다보니 국내 제작진은 의도와 달리 관객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선스 과정에서 한국 제작사들이 자체적으로 세트, 의상 등의 피지컬 프로덕션을 새로 제작해서 보유하고 있으면 언제든지 원하는 시기에 재공연을 발빠르게 올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앞으로도 라이선스의 붐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 <아이러브유 비코즈>(왼쪽)와 <노트르담 드 파리>(오른쪽).

<뷰티풀 게임>은 3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복귀한 박건형씨와 현재 가장 촉망받는 뮤지컬 배우로 꼽히는 김도현씨가 주인공을 맡은 작품으로, 아일랜드 벨파스트 유소년 축구팀의 실화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얻었다.1970년대 북아일랜드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리는 뮤지컬로서는 보기 드물게 정치적인 색채와 비극성을 강조한 작품이다.축구 경기 장면과 선수들의 역동적인 몸놀림을 시각화한 춤도 볼거리이다.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개막한 <헤어 스프레이>는 케네디 시기인 1960년 초 볼티모어가 배경인 뮤지컬 코미디이다.뚱뚱하지만 유행에 민감한 10대 소녀 트레이시가 인종차별로 가득 찬 사회 속에서 특유의 낙천성을 발휘해 댄스 경연 대회에 도전해 꿈을 이루어가는 성장 스토리로 방진의, 왕브리타, 정준하씨 등이 출연한다.

비슷한 시기,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을 채울 <스펠링 비>는 ‘크리퍼스큘’이라는 제명의 연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로 2005년 토니상 극본상 수상작이다.미국에서는 일상화된 영어 철자 맞히기 경연대회를 다룬 독특한 뮤지컬로 이를 다시 한국식으로 바꾸었다.대회에 참가한 6명의 아이들이 우승을 위해 애쓰며 저마다 마음속의 이야기를 펼치는 과정에서 승패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내용이다.12월 초에 두산아트센터(구 연강홀)에서 개막할 <아이러브유 비코즈>는 자신의 타입이 아닌 청춘남녀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다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로 최근 뉴욕의 젊은 작가, 작곡가들의 창작 트렌드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뮤지컬 마니아들, 투어 공연에 관심 많아창작 뮤지컬들도 꾸준히 소극장을 중심으로 무대와 객석의 친밀감을 무기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김종욱 찾기> <컨페션> <뮤직 인 마이 하트> <달고나> 같은 말랑말랑한 로맨틱 코미디들도 이 시즌에 어울린다.대학로 사다리아트센터 (3개관)에서는 올해 초연작인 <샤인>을 비롯해 <인당수 사랑가> <미스터 마우스> 등 창작 뮤지컬 3편이 12월 말까지 동시 공연 중이다.

투어 뮤지컬의 면면 역시 화려하다.평소 접하기 힘든 해외 작품을 직접 안방에서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뮤지컬 마니아들은 투어 공연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11월30일부터 고양시에서 선보이는 <노트르담 드 파리> 한국어 버전 공연과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햄릿> 등 라이선스 뮤지컬이 눈에 띈다.해외 배우들이 직접 내한해서 그들의 오리지널 언어로 벌일 공연으로는 프랑스 뮤지컬 <레딕스·십계>와 영국 작품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위윌록유>, 브로드웨이 대표작 중 하나인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이 있다.지난해 이미 국내에서 초연했고 올 연말에 두 번째 내한 공연을 벌이는 <레딕스·십계>(코엑스 대서양홀)는 12월24일부터 내년 1월20일까지 프랑스 오리지널팀으로 초대형 무대를 꾸민다.<레딕스·십계>는 모세, 람세스 등 주요 배역을 프랑스 초연 멤버로 구성해 거대한 공연장의 크기에 맞는 스펙터클한 무대를 다시 한 번 선보일 예정이다.유다의 눈으로 바라본 예수의 마지막 7일간의 드라마를 록음악으로 다룬 뮤지컬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2월12일~18일, 잠실 슈퍼스타돔)는 그동안 수차례 라이선스로 공연되었지만 이번에는 최초로 남아프리카공화국 투어팀이 내한해 서울과 부산에서 공연을 갖는다.연말에 광주 문화예술회관 대극장(12월24일~31일)에서 먼저 공연을 갖고 내년 1월5일부터 2월2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역시 해외 배우들의 경쾌한 탭댄스 실력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뮤지컬의 식탁은 풍성하지만 항상 반가운 소리만 들려오는 것은 아니다.올 연말을 겨냥해 현재 많은 뮤지컬들이 시장에 나와 있음에도 지난해 대비 매출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여기에는 올 연말 대통령 선거라는 특수성 때문에 대중들의 관심이 정치로 쏠리고 있는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만약 선거 양상이 박빙으로 흘러 ‘쇼’보다 더 재미있는 정치판이 현실화되면 관객이 더 이상 늘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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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신 (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