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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구마사제 활동 "정신과 의사가 환자 의뢰" 교황청이 인정한 마귀 쫓는 퇴마사협회 30개국 250명 가입

은바리라이프 2014. 7. 12. 12:52

한국에도 구마사제 활동 "정신과 의사가 환자 의뢰"

교황청이 인정한 마귀 쫓는 퇴마사협회
30개국 250명 가입 … 비공개 운영, 협회 창립한 아모르 "7만 번 구마식"
"요한 바오로 2세 총격 등 악령 소행"
1976년 독일 여성 퇴마 도중 숨져 … 프란치스코 교황 손 얹자 남성 경련
"구마식이다" "아니다" 논란 일기도
중앙일보 | 김민상 | 입력 2014.07.12 00:12 | 수정 2014.07.12 00:18

로마교황청이 국제퇴마사협회(세계구마사제협회)를 공인하면서 퇴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로마 가톨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에 따르면 지난달 교황청 산하 성직자성(Congregation for the Clergy)은 1990년 신부들이 마귀를 쫓기 위해 만든 국제 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exorcists)를 공식 인정했다. 이 협회에는 전 세계 30개국의 가톨릭 사제 250명이 가입돼 있다고 한다.

↑ 1973년 제작된 영화 ‘엑소시스트’의 한 장면. 1949년 미국에서 12세 소년을 구마식으로 구해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중앙포토]

↑ <strong>1</strong> 1990년 국제퇴마사협회를 창설한 가브리엘 아모르 신부. <strong>2</strong> 76년 독일에서 구마식을 받다 사망한 아넬리즈 미셸. 사망 당시 몸무게가 30㎏에 불과했다. [중앙포토]

↑ <strong>3</strong> 미셸의 실화를 바탕으로 2005년 만들어진 영화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strong>4</strong> 지난해 5월 교황이 휠체어를 탄 남성에게 손을 올려 기도하는 모습. [중앙포토]

 한국에도 퇴마 사제가 있을까. 이에 대해 서울대교구 고위 관계자는 "국내에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세계구마사제협회에서 구마 교육을 받는 한국인 사제가 있지만 외부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유는 악령을 쫓아내는 데 지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세계구마사제협회는 비밀조직처럼 비공개로 운영된다. 그는 "가톨릭에선 악의 세력이 인간보다 더 영적인 능력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거기에 맞서는 사제는 특별한 교육을 받아야 하며, 될 수 있으면 신분을 노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가톨릭은 마귀를 쫓아내는 신부를 뜻하는 '엑소시스트(exorcist)'를 '퇴마사(退魔師)'로 쓰지 않고 '구마사제(驅魔司祭)'라고 표현한다. 가톨릭대사전은 구마를 '사람이나 사물에서 악마나 악의 감염을 구축(驅逐·몰아서 내쫓음)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서울의 한 사제는 "신학교에서 구마 의식을 정규 수업으로 가르치지는 않지만 세미나 형식으로 구마식을 전파한다"고 말했다. 구마식이란 악마나 악마의 세력에 사로잡힌 사람이나 물건에서 그 세력을 쫓는 의식을 뜻한다.

 24년 전 세계구마사제협회를 창설한 가브리엘 아모르(89) 신부는 2012년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약 7만 건의 구마식을 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못과 유리조각, 손톱이 담긴 주머니를 카메라 앞에 꺼내 보였다. 구마식을 하면서 마귀에 들린 사람이 토해낸 조각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는 "로마 교황청에도 숨어 있을 만큼 악마는 강력하다"고 밝혔다. 81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총에 맞고, 2009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성당의 통로를 걷던 중 한 여성이 밀쳐 넘어진 사고들은 모두 악마가 행한 것으로 봤다.

 지난해 5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탈리아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오다 휠체어를 탄 한 남성과 마주쳤다. 교황이 남성의 머리에 몇 초간 손을 얹자 몸에 경련을 일으켰다. 아모르 신부는 "교황이 악령 들린 남자에게 구마식을 행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교황청은 이를 부인했다.

 한국가톨릭성령쇄신봉사자협의회는 2013년 4월 이탈리아 구마사제 풀비오 디 풀비오 신부를 초청해 8주간 구마심포지엄을 열었다. 협의회 회장직을 맡았던 박효철 신부는 "공공연하게 악마를 숭배하는 사람이 많아져 가톨릭에서도 단체를 만들고 구마사제를 전문적으로 키워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말했다.

 충북 진천 배티성지 김웅열 담임신부는 순례자가 성지를 찾아 구마 기도를 받은 후 불치병이 치유되는 현장을 지켜봐 왔다. 김 신부는 "마귀 들린 사람은 정신과에서 해결할 수 없는 영적인 문제라 의사들이 환자를 성지로 데려오기도 한다"며 "(마귀는) 사람의 아픈 상처, 나쁜 기억을 이용해 본인과 가족을 파멸로 이끈다"고 말했다.

 구마식은 악령에 의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구마식이 열리는 곳의 교구장(교회의 일정 지역을 책임지는 수장)과 구마사제만 알 수 있다. 공개된 구마식 중엔 76년 독일에서 진행됐던 게 있다. 당시 구마식을 받은 23세 여성이 사망하면서 재판이 열려 사건이 이례적으로 공개됐던 것이다.

 14세 때 첫 간질 증세를 보인 아넬리즈 미셸은 악마가 내는 환청이 들리고 십자가 앞에서 움직이지 못하자 신부에게 구마식을 부탁했다. 10개월간 구마식을 진행했지만 결국 영양실조와 수분 부족으로 사망했다. 법정에서 공개된 녹음 음성에는 거칠게 울부짖으며 흐느끼는 미셸의 목소리가 담겼다. 자신이 악마라며 "사람들은 돼지처럼 멍청하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나는 줄 안다"고 주장했다. 신부들은 법정에서도 "여섯 악마가 미셸에게 나타났고, 죽기 직전 빠져나갔다"고 주장했다.

 일부 가톨릭 사제들은 구마에 대해 의문을 갖기도 한다. 독일 연수를 다녀온 한 사제는 "구마가 진짜냐고 물으면 아직 물음표다. 진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독일 사례처럼) 학대로도 볼 수 있는 행위라 모두 공개하기 애매하다"고 말했다. 악마의 존재에 대해 실체가 있기보다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개념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가톨릭 내 신학 논리도 있다.

[S BOX] 천사가 악마로 … 귀신과 달라

한국가톨릭성령쇄신봉사자협의회 회장을 지낸 박효철 신부는 "악의 기원은 천사"라고 설명했다. 태초에 하느님이 사람을 만들고, 하느님과 사람을 중재하는 천사가 있었는데 하느님을 반역한 천사가 악령이 됐다는 것이다. 악령은 한국의 민속신앙에 나오는 귀신과는 다르다. 영화나 드라마 속 귀신은 사람이 죽어서 빠져 나온 뒤 떠돌다 무당 등을 통해 말을 한다. 하지만 가톨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남는데 이 영혼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고 천국·연옥·지옥으로 가는 것이지 세상에 떠돌 수 없다고 본다. 악령이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것을 귀신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악령을 없앨 수 있을까. 영성(靈性) 차원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충북 진천 배티성지 김웅열 신부는 "악은 회귀 본능이 강하다. 악이 사라진 자리를 성령의 선물로 채우지 않으면 다시 달라붙는다. 영적 투쟁은 평생 지속되는 투쟁이지 한 번 회개한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민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