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교회론

교회(10) 사랑의 공동체

은바리라이프 2013. 10. 13. 00:38

교회(10)

 

사랑의 공동체

 

(고전11:17-34)

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저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 첫째는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노니

19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함이라 그 남은 것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귀정하리라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 존재해야 할 유일한 목적이 뭡니까?

행복입니까? 거룩입니까? 뭡니까?

그럼 그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의 백성들을 건져내셨습니까? 왜 하나님의 백성들을 창조해서 이 땅에 던져 놓으신 것입니까? 거기에 대한 탁월한 대답이 바로 이사야 43장입니다. 그 중 두 절만 찾아 읽고 넘어가겠습니다.

(43:7,21)

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땅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고전6:19-20)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10:31)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 어떤 삶입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까? 축구 경기에서 골 차 넣고 상대방 골키퍼는 낙심해서 풀이 죽어 있는데 그라운드에 무릎 꿇고 앉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입니까? 어떤 삶입니까?

성경에 나오는 영광이라는 단어 “독사”라는 단어는 어떤 사물이나 존재의 내용이 밝게 밝혀지는 것을 “독사, 영광”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품, 속성, 거룩하심, 아름다움, 존귀함 이러한 하나님에 관한 내용들이 신자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입니다.

 

그 하나님의 속성, 성품이 가시적으로 가장 잘 나타난 것이 어디입니까?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헬라사람들이 빌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러 왔을 때 예수님께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담을 허물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만드실 날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십자가를 지시는 사건을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그 십자가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다 표현이 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십자가를 한번 생각해 보자고요. 십자가에는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죄를 가까이 하실 수 없는 거룩하심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하심과 그 저주 속에서 그들을 건져내시는 “사랑” 그러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그 분의 속성이 함축되어 표현되어 있기에 그 십자가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하나님의 성품, 속성을 한 마디로 요약을 하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그 모든 하나님의 속성은 한 마디로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3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이 있지요?

거기서 독생자 “모노게네스”라는 말은 단순히 only son의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단어는 “독특한 것, 사랑 받는 것, 유일무이한 것을 나타낼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추악하고 더러운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가장 귀한 것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성품을 한마디로 요약한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우리 신자들, 교회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우리 신자들이 이 땅에서 반드시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는 정도의 국어사전에 나오는 사랑이 아니라,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원수를 위해 내어 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해야 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어떤 율법사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왔을 때 ”주 너의 하나님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0:25-28)

25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5:16)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다시 한 번 확인하지요? 우리 교회가 이 땅에서 유일하게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서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 사람들이 체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 신자의 본무입니다. 그런 사랑을 하는 자들을 우리가 “거룩한 자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교회가 거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엉뚱한 일들을 하다가 다 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고린도 교회가 그랬습니다.

성찬식이라는 것은 포도주와 떡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복음”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실제로 먹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창조된 자들의 특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을 보세요.

(고전11:25)

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고대 사람들이 언약을 할 때는 항상 제물을 쪼개놓고 피의 언약을 한다고 했지요?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쪼개놓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영원히 깨어지지 않을 새로운 언약을 하시는 사건입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타락으로 일그러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통일되어, 재창조되어, 새롭게 창조되어 하나가 되었음을 고백하며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 성찬식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찬의 의미는 눈에 보이는 복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는 거의 매일 성찬식을 거행했다고 합니다. 성찬식도 지금 로만 카톨릭의 영향을 받아 이렇게 작은 떡과 작은 포도주 잔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성도들이 식사를 함께 하면서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러니까 potluck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부자들도 있었지만 아주 가난한 노예들이나 잡상인 같은 하층 평민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부자들은 시간이 많았고 먹을 것도 풍부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모일 때 미리 와서 좋은 자리에 앉아 다른 이들을 기다렸습니다. 노예들이나 가난한 상인들은 늦게까지 일을 하고 문 닫고 정리하고 그 교회의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니까 집 안의 식당과 거실은 이미 부자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고(50-60명 앉았다) 노예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감히 그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의 뜰에서 밥을 먹고 성찬식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부자들이 다른 교회의 지체들이 오기도 전에 자기들 배가 고프다고 미리 음식을 다 먹어 버리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얼큰하게 포도주에 취해 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나중에 늦게 온 사람들이 먹을 것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 버려서 나중에 온 사람들이 쫄쫄 굶고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입니다. 나중에 온 사람들은 자기들이 먹을 것을 준비 할 수도 없는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밥을 못 얻어먹고도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아주 심하게 고린도 교회를 책망하는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고전11:22,34)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함이라

이 책망은 단순히 부자와 가난한 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교회에 사랑이 없느냐”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베소서 공부할 때 배웠지만 교회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교회는 육적인, 물질적인, 유물론 적인 세계관과 그러한 원리에 의해 움직여지는 ‘조직’이 아닙니다. 교회는 영적인 것으로 판단되고 정의되고 영적인 원리에 의에서 움직여지는 ‘조직이 아닌 하나의 몸’인 것입니다.

(6:63)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3:9-11)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11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 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교회는 그가 처해있는 문화나 관습, 그리고 (각자의 세계관을 형성케 한) 과거의 경험이나 상처 등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인식하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주인과 노예라는 신분으로 살았던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여전히 교회 안에서도 그러한 신분 적 편당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당하고만 살았던 하층 서민 출신들이 자신들의 상처나 쓴 뿌리들을 여전히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자기 자신들을 부끄러워하였고 부자들을 시기하고 미워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자들은 은근히 그들을 업신여기고 무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먹든 말든 상전들인 자기들만 먹으면 된다는 식의 이기심과 그들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상실감과 미움으로 가득 찬 어처구니없는 성찬식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열심히 믿느냐“로 여러분의 신앙의 경중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얼마나 열심을 내느냐“보다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인다.”라는 말이 몇 번 나오는지 아십니까?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고린도 교회는 열심히 모였습니다. 열심히 성찬식도 거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엉터리였습니다. 많이 모여서, 열심을 내서 얻은 결론이 뭡니까?

(고전11:27-32)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표준새번역)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28 그러니 각 사람은 자기를 살피십시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시십시오.

29 주님의 몸을 분별함이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30 이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는, 몸이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과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31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살피면, 우리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32 그런데 우리가 주께로부터 심판을 받아서 징계를 받는 것은,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열심히 죽어라고 모여서 성찬식을 행했는데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니까 내용이 잘 못된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아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알긴 아는 것 같은데, 알면서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왜 그럴까요? 성경이 말하는 “안다” “기노스코”라는 것은 어떠한 내용이 내 안에 바로 인식이 되어서 나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것을 “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각과 행동이 자기가 알고 있는 내용을 따라주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안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른다.”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많이 안다고 자랑하지 마시고 그 앎이 여러분의 생각과 행동을 얼마나 바꾸었는지를 돌아보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정말 바로 알고 계십니까? 그 바로 알고 있는 내용을 근거로 열심을 내고 계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알지도 못하고 열심도 안내고 계십니까? 바로 알고 믿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성찬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타락으로 일그러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통일되고, 재창조되어서(새롭게 창조되어) 하나가 되었음을 고백하며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찬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육적인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등을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거기까지가 복음을 바로 아는 자들의 삶입니다.

교회 안에서 “명예가 있고 없고, 돈이 많고 적고, 얼굴이 잘 나고 못나고, 많이 배우고 못 배우고“의 모든 육적인 차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앞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교회를 잘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잘 난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은 것이고 아무리 못 난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대가로 치러진 귀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찬식을 행하면서 서로에 대해 아껴주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다시 재차 확인하시고 다짐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10:16-17)    

16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그런데 실제 삶은 여전히 교회 멤버들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입만 열면 험담하고 남 잘되면 배 아파하고 그러면서 열심히 모여서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성찬식하고 한다면 그게 어찌 바로 알고 믿는 자들이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그러한 자들은 가짜다“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아니, 가짜 정도가 아니라 그건 예수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라고 말합니다.

(고전11:27)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고전8:9-13)

9  그런즉 너희 자유 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교회의 멤버들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무시하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모독하는 것이고 그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가지고 로만 카톨릭이나 무지한 개신교 목사님들이 성찬식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최근에 지은 죄들을 다 회개하고 참여해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죄라고 협박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정말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그러한 죄 때문에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는 수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죄인이라고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성찬식에 참여해야 할 가장 크고 훌륭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교회의 멤버들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무시하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모독하는 것이고 그것은 죄이므로 바로 알고 성찬식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바로 알고 행하라는 것이지요. 사랑을 근거로 하지 않은 것은 아무리 거룩하게 보여도 다 그리스도의 몸을 욕되게 하는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을 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자들인데 하라는 사랑에는 관심이 없고 성찬식하고 예배하고 찬송하고 봉사만 하고 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는 말입니다.

우리 몸은 외부에서 세균이나 바이러스나 이물질이 들어오면 그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항체라는 것을 형성합니다. 자기 자신의 몸속에 있는 세포에 대해서는 절대 그런 항체를 형성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 몸에 있는 조직에 대해 스스로 항체를 형성하는 병이 있습니다.

그것을 자가 면역성 질환이라고 합니다. 자기 몸의 연골이나 신장, , 갑상선 같은 것을 그 항체가 공격을 합니다. 그래서 서서히 죽어 가는 것이 “자가 면역성 질환”이라고 합니다. 류마티스 관절염 같은 것이 그런 것이지요. 자기 몸의 항체가 자기 몸의 조직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자꾸 분열을 초래하고 교회 멤버들을 미워하고 하는 것은 자가 면역성 질환처럼 그리스도의 몸을 서서히 죽여 가는 중대한 범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또 찢어  발기는 것입니다. 그건 정말 큰 죄인 것입니다.

(18:35)

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구원을 취소하시겠다는 말입니다. 구원이 취소 될 수는 없지요. 그런데도 왜 이렇게 과격하게 말씀하십니까? 그런 행위가 안 나오면 지옥 간다는 말이 뭐예요? 교회로 불림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는 행위가 나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5:22)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But I tell you that anyone who is angry with his brother will be subject to judgment. Again, anyone who says to his brother, 'Raca,' is answerable to the Sanhedrin. But anyone who says, 'You fool!' will be in danger of the fire of hell.

예수님께서 창녀에게 이렇게 저주의 말을 퍼부으신 적 있으신가요? 예수 님 곁에서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살인강도에게 그런 저주의 말을 하셨습니까

유독 형제를 용서하지 않고, 형제를 미련하다 하고, 형제에게 노하고 형제에게 “이 밥통 같은 놈아”라고 모독을 하는 자들에게 “심판”을 들먹이시며 너희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를 하셨습니다. 이것은 교회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늘 말조심하시고 남 욕하지 마시고 뒤에서 험담하지 마시고 헐뜯지 마세요. 자꾸 자기에게서 그런 행위가 나오면 가슴을 쥐어뜯으면서 주님 앞에 도우심을 구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교회의 정체성을 늘 잊지 마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서로 사랑하셔야 하는 한 몸입니다. 오히려 내가 손해보고 , 나를 죽여서 상대방을 살려야 하는 교회인 것입니다.

(3:12-15)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15:1-7)

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 지니라

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들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아  들이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우리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의 기쁨을 위해 살라고 보내진 자들입니다. 그게 하늘나라의 삶의 원리이고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이 드러나는 삶,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이 땅에서 뭐 대단한 것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거 연습하다가 올라가는 것입니다.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연습하세요.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쉬워요. 오늘 본문33절을 보세요.

(고전11:33-34)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함이라 그 남은 것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귀정하리라

아주 간단하지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그러십니까? “제발 예배당 좀 크게 지어다오” 그러십니까? “헌금 좀 많이 해다오” 그러시나요? 아닙니다. “나중에 굶는 형제들이 생기지 않도록 밥 먹을 때 좀 기다려 줘라, 정 배가 고프면 집에서 먹고 와라”입니다. 나의 지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은 것부터 배려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큰일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조금 섭섭하게 대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들게 만든 지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여러분은 그들을 적으로 간주해 버리면 안 됩니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어려서부터 사랑을 못 받고 자라난 사람은 자기가 사랑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면 금방 실망하고 삐진다고 하던데 저 사람은 그런 불쌍한 환경에서 자랐나보다” “남에게 늘 학대만 받던 사람들은 굉장히 공격적인 사람이 된다던데 저 사람이 바로 그런 환경에서 살아왔겠구나.”하고 다양성을 인정해 주세요. 그리고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 여러분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 말고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얼마나 기도해 보셨습니까? 다른 이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생각하며 얼마나 기도해 보셨습니까?

저는 오늘부터 다음 주일 예배 때까지 금식하면서 그 문제만을 놓고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너무 이기적입니다. 너무 계산적이에요. 이제 우리의 기도의 내용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삽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이 뭡니까? 거품 물고 쓰러지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까? 방언하고 예언하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까?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신 성령의 조명을 따라 하나 됨을 지켜내는 것이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실 생각 마시고 곁에 있는 형제자매를 먼저 사랑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에베소서 4 1절에서 3절까지를 읽고 마치겠습니다.

(4:1-3)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