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교회론

교회론(VII) 교회와 목사

은바리라이프 2013. 10. 13. 00:29

교회론(VII) 교회와 목사

 

(딤후4:1-5)

1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2:1)

1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여

장로교 헌법24조에 목사의 의의가 나옵니다.

목사는 

1.예수 그리스도의 양인 교인을 양육하는 목자이며

2.목사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교인들을 깨우치는 교사이며

3.목사는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전도 인이며

4.목사는 그리스도의 설립한 율례를 지키는 자인 고로 하나님의 도를 맡은 청지기이다

위의 모든 내용은 한마디로 요약을 하면 목사는 바른 말씀을 전하여 그리스도의 양들을 양육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목자를 주시는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5)

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성경에 따르면 교회는 장로들이 다스리게 되어있습니다. 그들은 치리를 맡습니다. 치리를 맡은 장로 중에 치리와 말씀 선포를 함께 하는 장로를 목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목사는 바른 말씀에 근거하여 교회를 치리하며 바른 교리로 교회를 양육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성숙해 집니다.

(4:19)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말씀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켜 갑니다. 그래서 사탄은 교회가 생긴 이래로 교회 안에서 말씀의 비중을 약화시키는 전략을 써 왔습니다. 말씀보다는 신비적인 체험이나 주관적인 경험 , 종교적 열심 등을 동원해서 되도록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세상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흥미 있는 볼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시간가는 줄 모르는 재미들을 만들어내고 손만 뻗으면 언제든지 쾌락의 늪에 빠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은

모두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기 위함인 것입니다.

목사의 딱딱한 교리 설교보다는 화끈한 성령체험이 훨씬 덜 따분합니다. 그래야 뭔가 믿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성경공부보다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TV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더욱더 흥미롭습니다. 예배보다는 골프가 훨씬 재미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거기는 배터리가 라디오보다 더 큰 트랜지스터라디오가 유일한 매스미디어, 문화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 어느 집 사랑방에 모여 말씀 공부하는 것이 그 동네 사람들의 자발적인 '마실'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 옛날에 데이빗 브레이너드나, 조나단 에드워드나, 마틴 로이드 존스나 존 캘빈 같은 대 신학자들이 나올 수 있었습니까? 그 때는 우리가 시간을 빼앗길 만한 것이 지금처럼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 바쁩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 때나 성경공부 때 설교를 길게 하는 사람은 인기가 없습니다. 죄악시합니다. 오죽하면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설교 학 시간에도 25분에서30분 내에 설교를 끝내라고 가르칩니다. 물론 이야기의 요점을 찾지 못하고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그러면서 시간을 끄는 사람은 욕먹어도 싸죠. 그렇지만 어떤 때는 시간을 조금만 더 쓸 수 있으면 좀 더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좀 더 깊게 설명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을 때가 많습니다. 더 설명하고 싶은데 자꾸 시간을 보고 시간에 쫓기게 됩니다.

말씀을 깊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끝내고 밥 먹고 교제하고 집에 가서 비디오보고  친구들하고 영화보고 , 식구들하고 외식이나 하고 이런 것이 오히려 우리의 생각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내가 뭐 하러 사서 미움을 받나”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목사님도 설교를 조금 길게 하시는 편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대놓고 “목사님 설교 좀 짧게 하시라”고 면박을 주셨답니다. 목사님이 그 날은 화가 나셔서 “아니 김 집사님, 집사님은 비디오는 하루에 몇 편씩 몇 시간을 보시면서 어떻게 설교 한 시간이 길다고 그러십니까?” 그랬더니 그 집사님이  “목사님 그럼 목사님도 설교를 파리의 연인처럼 재미있게 해 보세요. 그럼 몇 시간이고 들을 수 있어요” 그러시더랍니다. 본전도 못 찾았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너희는 구원을 받아야 한다.” “너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체다” “구원받은 자답게 피 흘리기까지 싸우며 살아내라” “신자에겐 고난이 필수다, 그러나 끝까지 싸워 이겨라” 뭐 별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내용이 없습니다. 소망이라는 것이 있긴 있는데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천국에 대한 소망뿐입니다.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몇 시간이고 사람들을 붙들어 놓는 재주 좋은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재즈 같은 음악에 비해 듣기 편하고 부드러운 음악을  easy listening음악이라고 하지요? 그들은 그런 듣기 좋은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의 소망보다는 이 땅에서의 부귀영화를 약속해 줍니다. 게다가 가끔 오르간 반주 울적하게 깔아놓고 속이 후련하게 울려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병도 낫게 해주고 막 쓰러트려 주기도 합니다. 그들은 예수의 이야기보다 세상의 도덕과 윤리와 꿈과 비전, 성공을 이야기해 줍니다.

이건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만을 이야기하는 인기 없는 설교자들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눈에 보입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집회를 선호합니다.

그 곳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능력 있는 종이 훨씬 인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마지막 때가 되면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희는 영분별을 잘 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24:3-5)

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요일4:1)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그러니까 지금 이 세상에 거짓 선지자들과 참 선지자가 공존하고 있다는 겁니다. 거짓 선지자도 목사 노릇을 잘 하고 있고 참 선지자들도 목사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거짓 선지자가 가르치고 이끄는 교회를 우리는 거짓 교회라고 하고 참 선지자가 이끄는 교회를 우리는 참 교회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참 목사인지 어떻게 아시죠? 불안하지 않으세요?

사도들의 시대에 이미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하물며 지금은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다녔는가하면

(23:16-17)

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7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14:14-6)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15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16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아직 복음이 뭔지도 모르고 예수가 누구인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듣고 싶은 말“평안하다, 평안하다” “아무 일 없을 거야” “ 다 잘 될 거야” 이런 이야기를 해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 자들을 보낸 적이 없다”

오늘 본문 3절과 4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딤후4:3-4)

3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끌어들일 것입니다.

4  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고, 허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은 어떤 이야기를 전했습니까? “빨리 회개해라” “도끼가 이미 악한 열매를 맺는 나무뿌리에 놓여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아, 거룩하게 살아라. 피 흘리기까지 노력해라. 너희 구원을 이루어 가라” “믿는 자들에게는 고난이 온다, 피 흘리기까지 싸워라” 듣기 좋은 말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예레미야처럼 성전에 제사지내러 가는 사람들을 막아서서 “너희는 여기가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이런 맞아 죽을 이야기만 합니다.

열왕기상22장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BC931년에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 유대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이 두 나라가 잠깐 관계가 호전되었던 시기가 바로 아합 왕 때입니다.

아합 왕이 북 이스라엘의 왕이고 여호사밧이 남 유대의 왕이었을 때입니다. 남 유대의 여호사밧이 아합 왕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아합 왕이 여호사밧에게 둘이 연합하여 아람을 치자고 제안을 합니다. 아람은 바벨론이지요. 굉장히 센 나라입니다. 그랬더니 여호사밧이 “우리 하나님의 뜻을 알아봅시다.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몇 명이나 있습니까?” “400명 있습니다.” “그럼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어떤지 물어봅시다.

시드기야를 비롯한 선지자400명이 모두 왕이 듣기 좋은 말만 합니다. “당장 올라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람을 왕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여호사밧이 묻습니다. “이게 다입니까? 다른 선지자는 없습니까?“ ”한명 있긴 있는데 그 사람은 내게 좋은 이야기를 해 줘 본 적이 없소“‘나는 그래서 그를 싫어합니다.”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충고를 하고 미가야를 데려오게 합니다.

이렇게 가짜 선지자들은 왕이 듣기 좋은 말만 합니다. 진짜 선지자는 뻔히 당할 것 알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는 사람입니다.

가짜 선지자들은 회중이 듣기 좋은 말만 해주기 때문에 모두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모두에게 인기가 좋은 사람은 가짜다.

(6:26)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그러나 참 복음이 전해질 때 예배당 안에 있는 가라지 들은 답답해합니다. 지겹습니다. 못 듣겠습니다. 자꾸 찔리니까요. 그래서 목사를 욕합니다. “지만 잘났냐?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의 공통점이 기적과 이사를 동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힘은 사탄도 줄 수 있다고 성경이 이야기합니다.

(살후2:9-12)

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은 그런 것을 좇아 다니며 광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4:24)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19:20)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13:1-5)

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2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3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4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5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취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 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마태복음 7장에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니까 이적을 행한다는 것이 진짜 목사라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술사들도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들도 강을 피로 만들어 버리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 술사들도 물을 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귀신들린 여인도 사람들의 앞  일을 귀신같이 맞췄습니다. 사탄도 그런 능력을 사람에게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천국의 소망을 확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 사람은 그런 이적이 필요 없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말씀이 정말 살아서 우리를 변화시켜가고 하늘의 비밀을 깨닫게 해주고 계신 그 기적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기적과 이사가 필요 없습니다.

(딤후3:16)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여기서 “하나님의 감동으로”라는 “떼오 프뉴스토스”는 “하나님의 입김이 쏘인”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입김이 들어가자 인간이 생령이 된 것처럼 이 말씀에는 그 하나님의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여 성화를 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나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인데 이 말씀이 나를 바꿔가는 그 경험을 한 사람은 다른 기적이 필요 없습니다. 말씀을 읽지 않고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 자기가 변할 거라고 김치 국 마시지 마십시오.

(34:16)

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직접 모으시고 해 놓으신 천지의 주재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는데 다른 기적이 왜 필요합니까?

그 말씀이 온전히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다른 것으로라도 그 공허를 채우고자 할뿐입니다. 믿어지는 사람이 왜 다른 것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하지만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대 사도의 외침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들려야 합니다.

그리고 참된 교회의 교사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도록 가르칩니다.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고후4:18)

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3:1-2)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구약 시대에는 참 풍요를 우리에게 선물해 주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이었기 때문에 당시 인간들이 가장 가치 있게 여겼던 것으로 그 풍요를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가축이 많고 자식이 많으며 재물이 많고 땅이 많고 건강한 것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오셨고 더 이상 그런 상징적인 것들로 하늘의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도 그 구약의 축복의 개념을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명기 28장의 그 복으로 오늘 날의 복을 설명합니다.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머리가 될지언정 꼴 리가 되지 않고 등등.

고린도 후서 3장의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약속하고 소망하게 만듭니다. 구약의 모든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이 땅을 소망하게 만듭니다.

예수를 믿으면 이 땅의 것을 축복으로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바른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7:13-15)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거짓 선지자들은 크고 넓은 문을 제시하지만 하나님의 참 선지자들은 좁은 문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참 선지자들은 늘 외로웠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맡겨진 양을 잘 양육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양들의 고기와 털이 필요한 자들이기 때문에 양 한 마리 한 마리가 자기의 재산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가 썩든 말든 그들이 좋아하는 초콜릿, 소다, 정크 풋 다 먹게 해줍니다. 그들의 건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양들이 자기를 좋아해 주고 토실토실 살만 쪄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만 해 주지요.

(3:5-6)

5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6  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흑암을 만나리니 점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

(3:11)

11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양들을 생각해서 초콜릿 너무 많이 먹지 마, 소다도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정크 풋도 절제해 이렇게 그 양들을 생각해서 사사건건 지적했던 목자들은 한마디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누가 자기의 죄를 지적하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누가 고난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저쪽에서는 축복을 이야기하는데 이쪽에서는 계속 고난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가나안에서도 계속해서 대적들과의 전쟁을 시키셨겠습니까? 너희들이 가야할 목적지는 가나안도 아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문제를 주시고 시험을 주시는 것은  이 땅의 것들에 소망 두지 말고 하늘에 소망을 두라고 계속 포기시키고 잃어버리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땅의 것에 눈 두고 살지 맙시다.

그러니까 점점 외면당하는 것입니다. “아이고, 도대체 불편해서 못 들어 주겠네”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에게 몰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 사도는 자기가 세운 교회에다가 계속해서 이런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고후11:4)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1:6-10)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사도가 얼마나 그 것이 가슴이 아팠으면 이렇게 두 번이나 강조해서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사도가 이야기합니다. 나도 너희를 기분 좋게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에게 좋게 하랴?

그리고 사도는 이렇게 개탄합니다.

(고후2:17)

17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사는 장사꾼이 되었습니다마는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늘 외로웠습니다.

(딤후4:16-18)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디모데서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서신서입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위대한 종 아닙니까? 엄청난 지식의 소유자이며 대단한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 양육을 받은 사람들이 다 어디 갔습니까? 노 사도의 마지막이 이렇게 외롭습니다.

지금 이 사역의 말미에 사도의 곁에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고 모두 자기를 버렸다고 합니다.

적어도 사도 바울 하면, 그의 곁에는 제자들과 후배들과 교인들이 그를 숭앙하며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 하고 떠받들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사도의 마지막이 이처럼 외로운 것을 구태여 우리에게 보여주십니까? 이 길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갈 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이를 악 물고 잘 해내면 사도 바울처럼 되는 것입니다. 비단 목사의 삶뿐이겠습니까? 여러분 , 여러분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기대한 대로 여러분의 삶이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서 당황해 하지 마세요.

 

이런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겨울에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가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처음 가는 그 곳 역을 혹시 놓칠까봐 일어서서 계속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한 신사가 물었습니다.“왜 그렇게 서성거리냐고” 아주머니가 대답을 했습니다“저는 어디어디를 가고 있는데 혹시 그 역을 놓칠까봐 그렇다고” 신사가 말했습니다. “바로 다음 정거장이 그 곳이니까 안심하고 기차가 서면 내리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이내 기차가 섰고 아주머니는 그 신사에게 확인을 했습니다. “여기가 맞느냐고” 신사는 귀찮아서 밖을 내다보지도 않고 맞다니까 왜 이렇게 귀찮게 구냐고 면박을 주었습니다. 이미 밤12시가 넘은 시각에 그 아주머니가 아기를 업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신사가 다음 정거장에서 기차가 섰을 때 창밖을 보았습니다. 그 아주머니가 찾던 역이 바로 그 역이었습니다. 차장에게 물었습니다. 좀 전에 섰던 그 역은 어디냐고? 그 차장이 말했습니다. “거기는 기차에  손 볼 곳이 있어서 잠 간 정차했던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벌판에서 한 아주머니가 아기를 꼭 품에 안고  있는 것이 동네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여러분, 안내자를 잘 못 만나면 그렇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23:13-15, 33)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고후11:13-15)

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여러분, 사탄도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위장을 하고 거짓 선지자들도 의의 선지자로 둔갑을 해서 우리를 미혹합니다. 무엇으로 참인지 거짓인지 구별하시겠습니까?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성경대로 말씀을 바로 전하는지 성경대로 교회 멤버들을 양육하고 있는지 그것을 보십시오. 교회가 얼마나 큰지, 목사가 얼마나 많이 배운 사람인지, 교인들의 생활수준이 어떤지 그런 것으로 판단하지 마시고 그 교회가 성경대로 행하고 바른 교리 위에 서있는지를 보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목사가 타협하지 않고 바른 말씀, 바른 복음만을 전할 수 있기를 늘 기도해 주십시오. 늘 기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