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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노트> 아버지의 영전에 바치는 딸의 작별인사 [영화리뷰]

은바리라이프 2012. 12. 5. 08:32


<엔딩노트> 아버지의 영전에 바치는 딸의 작별인사
[영화리뷰] 덤덤해서 감동적인, 한 남자의 특별한 버킷리스트
12.12.03 14:53ㅣ최종 업데이트 12.12.03 14:53ㅣ권진경(jikyo85)
태그엔딩노트스나다 마미 버킷리스트 
* 이 기사에는 영화 <엔딩노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영화 <엔딩노트> 포스터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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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넘게 일본의 전형적인 샐러리맨으로 살아온 스나다 도모야키. 이제 아내 준코와 오붓하게 여생을 살아보려고 했건만. 덜컥 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이승에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단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은데, 혼자 남을 아내가 걱정이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세 손녀딸도 눈에 아른거린다. 영화판에서 일하는 막내딸이 결혼하는 것을 보지 못해 큰일이다. 이 실제 상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엔딩노트>의 감독 스나다 마미 말이다. 

세상을 떠난 도모야키 씨의 1남 3녀 중 막내딸이자, 감독인 스나마 마미는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의 인생을 무덤덤하게 카메라를 통해 조명한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카메라에 담아왔던 막내딸은, 그간 아버지가 찍었던 영상까지 규합해 오롯이 하늘나라로 떠난 아버지를 위한 사부곡을 만들어 바쳤다. 

생전 건강했을 때, 아버지는 딸의 카메라에 대고 "우리 같은 아저씨가 일본 경제를 살렸다!"며 자신만만해 하던 중년 남자였다. 택시기사에게까지 자신의 원칙을 강요하던 도모야키 씨는 시한부 선고를 받자마자, 제일 먼저 남은 생을 정리하기 위한 '엔딩노트'를 작성한다. 일종의 버킷리스트라고 볼 수 있다. 

그 엔딩노트에는 도모야키 씨가 죽기 전 하고 싶은 열 가지 희망사항이 적혀있다. 불교 집안이긴 하지만, 평생 신을 믿지 않았던 아버지는 죽음을 한 달 앞두고 천주교로 개종한다. 비교적 합리적인 성당 장례식을 통해 가족의 부담을 덜고 싶었다는 아버지의 용의주도한 면모도 담겨 있다. 또한 평생 자민당을 뽑아준 전형적인 일본 남자 도모야키 씨는 난생 처음 한 번도 찍지 않았던 야당에 투표한다. 이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보자는 당시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이기도 했지만. 

▲  영화 <엔딩노트>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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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도모야키의 엔딩노트에는, 일본으로 놀려온 손녀들과 있는 힘껏 놀아주기, 94세 노모를 모시고 가족여행 다녀오기, 자신이 메인 게스트가 될 장례식장 꼼꼼히 확인하기, 자신을 닮아 꼼꼼한 아들에게 인수인계하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도모야키 씨는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을 모두 이룬다. 평소 계획적이고 마음먹은 일은 모든지 해낸다는 의지의 사나이 도모야키 씨 아니었다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후 도모야키 씨는 어떻게든 더 살아보려고 발버둥치지 않았다. 손녀들이 놀려오는 5월까지만 살아있길 바랐지만, 그는 충실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슬픈 운명을 받아들였다.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유머와 웃음을 잃지 않았던 도모야키 씨는 가족과 함께 임종을 맞는 것에 감사하며 세상과 작별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순간까지,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로 담아내던 딸은 객관적인 관찰자 입장에서 도모야키 씨를 바라본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을 제외하고 평생 입가에 웃음을 떠나보내지 않았던 낙천적인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유쾌하고 정중하게 아버지를 떠나보낸 딸의 예의가 만들어낸 특별한 작별 인사. 대놓고 눈물샘을 자극하진 않지만 그래서 더 감동적인 버킷 리스트를 완성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