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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사또전’이 던지는 무거운 질문, 완성도가 아쉽다

은바리라이프 2012. 10. 4. 10:37


‘아랑사또전’이 던지는 무거운 질문, 완성도가 아쉽다
미디어오늘|
입력 2012.10.04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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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연의 컬처노트] 내가 누군줄 알아야 내가 해야 할 일을 아는 법

[미디어오늘최지연·문화평론가] 경남 밀양의 아랑 설화를 모티브로 한 MBC 드라마 < 아랑사또전 > 은 초반만 하더라도 신선한 설정과 빠른 전개로 관심을 모았다. 판타지 로맨스 활극인 줄 알았는데 공포물에 미스터리 추리의 요소까지 더해지며 기대감을 자아냈다. 그러나 회차가 거듭될수록 지지부진한 전개와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의 허술함으로 인해 점점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아랑사또전 > 을 주목하는 것은 이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김은오는 역적의 딸이자 노비로 양반의 첩이 된 어머니 때문에 얼자, 서출, 종놈의 자식이라는 놀림과 수모를 받으면서 세상에 문을 닫고 사는, 그래서 '불의를 보면 참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행방불명된 어머니를 찾아다니던 중 오지랖넓은 처녀귀신 아랑을 만나 의도치않게 고을 사또가 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변화를 겪는다. 귀신을 볼 줄 아는 그에게 찾아와 사정을 호소하며 원을 풀어달라는 원귀들에게 "꺼져. 내 알바 아니야"라고 했던 그가 아버지를 구해달라는 아이의 호소에 최대감집에 들어가 구해주고 관아 곳간을 열어 고을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눠주는 등 최대감에 맞서 밀양 백성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인다.

"돌쇠야, 너도 알지? 난 나밖에 모르던 놈이라던거. 근데 그런 내가 네 말처럼 변했어... 난 처음으로 나 말고 다른 사람이 걱정이 되더라. 내가 요즘 느낀 게 있어. 돌쇠 네가 나보단 100배 낫다는 거... 실은 사또는 너같은 놈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야. 누구를 아비로 둬서, 양반으로 태어나서, 그래서 실은 그것밖에 가진 것이 없는 자들 말고, 사람을 측은하게 여길 줄 아는 자, 그런 자들이 사또가 되어야할 것 같단 말이지."

밀양 지역의 실세인 최대감의 아들 주왈은 본래 출신이 '골비단지'로 소여물을 훔쳐먹을 정도로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주왈은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어머니라 부를 수 있게 해주는 댓가로 홍련에게 처녀를 죽여 혼을 바치는 '혼 사냥꾼'이 되었다. 그에게 사람다운 삶이란 따뜻한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으며 남들에게 무시받지 않고 사는 삶이었다. 주왈은 고을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그에게 여자는 제물로 찾아야할 대상에 불과하기에 차갑고 냉정했으나 아랑에게 이전에는 한번도 가져보지 않았던 감정인 사랑을 느끼면서 그간 그가 사람답게 사는 삶이라고 여겨왔던 것에 대한 의문을 품고 '달리 살아'보려고 한다.

이들이 변화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아랑은 죽었으나 천상에 가지 않고 지상을 떠도는 '기억실조증' 원귀였다. 죽으면서 생전의 모든 기억을 잃은 아랑은 지상을 떠도는 동안 자신의 정체와 죽음의 이유에 대해 찾아내려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그녀의 의지는 옥황상제를 찾아가 담판을 짓고 제한된 시간동안이나마 인간으로 환생하였다. 은오와 함께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간 밀양 고을에서 벌어진 기이한 일들을 파헤치게 된다.

이들은 모두 불안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은오와 주왈은 양반이기도 천민이기도 하며, 아랑은 인간이기도 귀신이기도 하다. 은오와 주왈은 아랑과 엮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의 의지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내가 누구이지 모를 때 인간은 내 의지가 아닌 타인에게 휘둘리는 삶을 살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때 비로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노력은 인간을 주체적으로 만들며 주체적인 인간만이 주위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자기를 찾는 과정은 쉽지 않다. 확신에 이르기 위해서는 '고뇌와 고통, 번뇌와 갈등의 시간을 거쳐야 하며, 바닥을 치고나야' 한다. 어쩌면 자기를 찾는 것은 '혈육의 연을 끊을 정도의 강한 의지가 동반'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주왈이 처녀의 혼을 제공하는 무연(홍련)은 천상의 선녀였으나 인간이 되고자 지상에 내려와 부, 명예, 복수 같은 인간의 욕망을 해결해주는 대신 그들로부터 처녀의 혼을 제공받으며 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사의 존재 선녀였던 그녀가 필멸의 존재인 인간의 삶을 탐하고 인간이 되어서는 다시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해 인간의 육신을 갈아타며 살아가고 있다. 현재는 은오 어머니의 영을 억압하고 그녀의 몸을 빌려쓰고 있으나 아랑이 불사의 몸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른 인간 따위의 도움없이도 영생할 수 있게 그녀의 육체를 탐내기 시작했다. 무연의 존재를 없앨 수 있는 것은 혈육만이 가능하기에 무연의 오라버니였던 저승사자 무영과 무연이 몸을 빌어 쓰고 있는 홍련의 아들인 은오만이 무연을 멸할 수 있다.

어머니 밖에 모르던 '모모동자' 은오는 아랑을 만나고 점차 주위를 돌아보게 되었다. 은오가 완전히 홀로 서는 순간은 무연을 멸하기 위해 어머니의 심장을 찌를 때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은오는 어머니에서 벗어나 독립된 주체로 설 것이며, 그것이 무연에게 지배받고 있는 홍련을 해방시키는 길이고, 아랑을 천상으로 보내는 길일 것이다. 주왈 또한 어머니 홍련(무연)을 배신해야 할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 역시 무연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아랑을 구하고 스스로 '사람다운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 아랑사또전 > 은 불안한 존재들이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인간답게 사는 것은 어떤 것인가?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고 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러한 문제제기들이 떨어지는 드라마적 완성도로 인해 묻히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