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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의 성전설교와 미가전승  차준희(한세대학교 교수)

은바리라이프 2012. 9. 4. 11:47

예레미야의 성전설교와 미가전승 

 차준희(한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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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하나냐와의 대결에서 예레미야는 "너와 나 이전에 오래 전부터 있었던 재앙을 예언했던 예언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구절(렘 28,8f)의 진정성은 예레미야 연구에서 논란이 매우 심하다. 어쨌든 이것은 "예레미야가 자신을 '그 이전의 예언자들'과의 연계성 속에서 보고 있다"는 예언의 연속성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통찰에 상응하여 예레미야에게 미친 아모스와 호세아의 영향력들이 연구되었으며, 그럼으로써 문서 예언 내부에 있는 영향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물음이 시작되었다:

 "아모스에게 있어서는 민족 신앙(Volksglaube)과의 대결이라는 그 기원 장소에서만 파악될 수 있었던 야웨의 날에 대한 예언 선포는 후에 특수한 예언자 신학으로써 계승되었다. 호세아에게 있어서는 그에게 직접적으로 요구된 상징 행동에서 기원했던 야웨와 이스라엘 사이의 깨어진 부부관계라는 이미지는 예레미야와 에스겔에 있어서도 예언 선포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리고 예언서에서 그 기원이 어렵지 않게 이사야 6장으로 소급되는 '거룩한 이스라엘'에 대한 연설은 제2이사야에서 또 다시 나타난다." 이러한 예언의 계승현상이 미가에게도 적용되는가?


렘 26,17f에 따르면 그 땅의 장로들이 예레미야에 대한 소송에서 미 3,12의 위협의 말을 모레셋의 예언자 미가의 말로써 인용한다. 이것은 한 예언자의 말이 다른 예언자의 책에 기록된 유일한 인용이다. 미가의 말은 거의 1세기 후에도 잊혀지지 않았다. 이 말에 근거하여 예레미야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렘 26,17-19가 이 이야기의 기본층에 속하는지 아닌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어떤 경우에든 이 단락은 미가 전승이 장로 무리 가운데에서 보존되었으며, 예루살렘 거주자들에게도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관찰은 예언자 예레미야 역시 그의 예언의 선행자인 미가의 선포를 알고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을 일으킨다. 만약 그렇다면 예레미야는 미가로부터 어떤 전승을 취하였는가? 


이 질문은 최근까지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스탄젤(G. Stansell)은 그의 학위논문의 결론부분에서 앞으로의 연구과제를 전망하는 부분에 이르러 "예레미야는 많은 점에서 미가 전승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라고 한마디 언급했다. 그러나 그는 그 가능한 평행 구절들을 언급하는데 그치고 있다.


할러데이(W. L. Holladay)는 그의 예레미야서 주석의 개론부분에서 예레미야와 미가의 접촉점들을 모았다. 이러한 점들을 통해서 그는 예레미야가 미가의 선포에 의지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특히 미 3,5-8. 9-12). 동시에 예레미야서의 몇몇 구절들이 미 4-7장 본문과 공통점을 가진 것에 입각하여 그는 미가서의 편집자가 예레미야의 말에 의존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그는 메이스(J. L. Mays)와 볼프(H. W. Wolff)가 주장했던 것처럼 미가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기초로 하고 있다.


최근에 하르트마이어(C. Hardmeier)가 예레미야의 미가 수용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그는 다음의 테제(These)를 주장하였다: "이미 문서체계를 갖춘 미 1-3장은 바벨론의 위협과 요시야 이후 시대 예루살렘의 국내 정치의 혼란에 직면하여 예레미야와 사반 가족들에 의해서 새롭게 읽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르트마이어의 연구는 미 1-3; 6,9-15*에 국한되었다. 그의 연구는 초안 단계에 머물러 있다. 예레미야가 문서로 된 미 1-3을 읽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미가 전승의 영향력이 예레미야서에서 단지 요시야시대 이후로만 국한되는가?


마지막으로 필자의 지도교수인 슈미트(W. H. Schmidt)는 다음과 같은 테제를 발표하였다: "기원전 7세기 말경에 출현한 예레미야는 이미 기원전 8세기 소위 문서 예언을 전제로 한다. 아모스, 호세아는 물론 미가뿐만 아니라 때로는 이사야로부터의 영향력이 드러난다. 예레미야는 그의 선행자들의 통찰력 혹은 경험을 - 적어도 의식적으로 - 수용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며 그의 상황 안에서 그것을 첨예화시킨다." 그는 렘 23,21절. 30절. 31절에 나타난 미 3,5-8의 영향을 그 증거로 지적해주고 있다. 


여기에서 이 연구는 특히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심판 설교라는 주제에 국한하여 미가와 예레미야 사이의 관계를 추적하려는 것이다. 


II. 성전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선고와 고발 

1. 미 3,11f 

미 3,9-12는 대략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a) 9a절: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부름, 

b) 9b-11절: 고발(9b절: 정의를 그릇되게 함; 10절: 불의로 세운 건물; 11a절: 지도 계층의 이권욕; 11b절: 그릇된 안전 의식), 

c) 12절: 재난 선고. 이 단락은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통일체를 이루고 있어서, 대개의 주석가들은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미가는 지도층의 뇌물욕과 자기 안전 의식을 공격하며, 결국은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를 선고한다: 

"너희의 지도자들은 뇌물을 바라고 재판하고,

너희의 제사장들은 보수를 바라고 가르치며,

너희의 예언자들은 돈을 위해서 점친다.

그리고 야웨를 의지하여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가운데에 야웨가 계시지 않느냐?

우리에게 재앙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너희들 때문에

시온은 갈림을 당하여 빈들이 되고,

예루살렘은 폐허 더미가 될 것이고

성전 산은 숲의 높은 곳이 될 것이다." 


미가는 정치 지도자들 외에도 정신적인 지도자들 역시 그들의 뇌물 받음을 인해서 공격한다(11a절). 동사 ???(Ni.) "의지하다"는 동사 ??? "신뢰하다"의 동의어로서 사용된다(사 30,12; 31,1; 50,10; 잠 3,5 그 밖에 욥 24,23). ??? "신뢰하다"는 또한 ???(Hi.) "믿다"와 동의어이기도 하다(미 7,5; 시 78,22).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를 의지하다"라는 표현은 "돈에 매수된 고위 관직자들"(지도자들, 제사장들과 예언자들; 11a절)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신앙을 가리킨다. 시온 및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도성으로 묘사한 것("야웨가 우리의 가운데에 계시다")과 그 불가침성("우리에게 재앙은 오지 않는다")은 사 28,15ff 등에서도 아마 전제되었을 시온 전승(시 46,8.12 등)의 기본 모티브에 속한다. 미가는 도래할 무조건적인 심판에 대한 그의 통찰(미 1,9)에 근거하여 지도그룹의 안전 의식의 버팀목이 되는 시온 신학에 반대한다. 11절에서 그는 동시대 사람들이 그들의 불의한 삶에도 불구하고 안전 의식에 안주하고 있음을 고발한다. 이 점에 있어서 미가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비판과 정의를 굽게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연결시킨다.


전치사 ???? "때문에"는 예언 전승에서는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단어이다(다른 예언서에서는 오로지 렘 11,17; 15,4에서만 사용된다). 이 전치사는 심판 선고와 그것의 직접적인 원인을 결합한다. 그래서 지도층의 죄는 지금 직면하게 되는 심판의 원인이 된다. ???의 개념은 여기에서 "밭"이 아니라, 미 1,6과 미 4,10에서와 같이 "빈 들판"을 의미한다. 시온은 파괴 후에 "사람이 살 수 없는 들판"이 된다. 미가는 현재의 지도층이 자행한 "야웨의 이름의 오용"을 의식적으로 경계하면서(11b, 또한 2,7) 12a절에서 소위 신(神) 개입의 수동표현(passivum divinum: ???? Ni.)을 통해서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심판"을 말한다. 예루살렘은 10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시온과 동의 평행구로서 나타난다. 10절에 따르면 시온 및 예루살렘은 종교적인 도성이 아니라, 불의로 건축된 순수한 인간적인 건축물에 지나지 않는다. 단어 ?? "폐허 더미"는 미가서에서 야웨 자신에 의한 사마리아의 파괴가 선고된 1,6 에서만 나타난다. 이런 방식으로 미가는 암시적으로 예루살렘의 운명을 당시 이미 멸망되어 버린 것으로 판단되는 사마리아의 운명과 동일시한다. ???? ?? "성전 산"이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는 "집의 산"을 뜻하며, 이러한 표현은 구약성서에서 여기에서만 나타난다. ???????? ?? "야웨의 집의 산"이라고 표현한 미 4,1과 비교할 때 여기에서 야웨의 이름이 빠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마도 "미가는 이런 절제하는 불충분한 표현("집의 산")으로써 성전을 탈신성화 시켰으며", 이를 통하여 1,12b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현존과 성전을 분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서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성전은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이었다(11b절). 명사 ??? "숲, 덤불"은 여기에서 - 특히 심판 선고에서 -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의 이미지"를 가진다(호 2,14과 그 밖에 삼하 18,8.17에서와 같이). 성전 산은 세속적인 수풀의 높은 곳이 된다. 그곳은 그곳에 잠복하고 있는 - 예를 들면 야생동물들과 같은 짐승들의 - 위험 때문에 사람이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12b?절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결론적이고 요약적이며 철저한 심판 선고를 내리고 있다.


미가는 아모스 혹은 호세아의 북 왕국 성소들에 대한 비판을 남왕국의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것으로 전용하였으며, 그래서 처음으로 예루살렘 성전과 그 도성의 멸망을 선포하였다. 그에 반해서 이사야는 그 도성에 대한 그의 위협의 말에서 성전의 멸망을 - 적어도 명확하게는 - 선고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는 이사야의 심판 선고에서 성전이 예외가 될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 28,16f의 말씀은 - 물론 그 진정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되고 있지만 - 시온 안에 및 시온 위에 세워질 야웨의 새로운 건설을 예고하며, 그럼으로써 이전 성전의 파괴는 전제된 것으로 보인다. 


2. 렘 7,4. 9a*. 10a*. 11a*b. 12. 14a?*b; 26,6. 12; 9,10 

1) 렘 7,4. 9a*. 10a*. 11a*b. 12. 14a?*b.

틸(W. Thiel)을 따라서 우리는 신명기사가의 성전 설교인 현재의 7,1-15에서 다음의 예레미야의 원래 말(Grundbestand)을 가려낸다: 

"너희는 '이것이 야웨의 성전이다, 야웨의 성전이다, 야웨의 성전이다'라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는 도적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 맹세하고, [바알에게 제사드리지]않았느냐? 그리고 너희들은 내 면전에 들어와 말한다: 우리는 구원받았다! 이 집이 너희의 눈에는 강도의 소굴로 보이느냐? 나 또한, 보라, 나는 그것을 볼 수 있다 - 야웨의 말이다. 내가 이전에 내 이름을 두었던 실로에 있는 나의 성소에 가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에 그에게 무엇을 행하였는지를 보라. 그리고 나는 너희가 신뢰하는 그 집에 내가 실로에 행했던 것과 같이 행할 것이다."(7,4. 9a*. 10a*. 11a*b. 12. 14a?*b) 


이 기본층(Grundbestand)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a) 4a절: 호출, b) 4b절. 9a절. 10a절. 11절: 고발(4b절: 안전 의식의 비판 - 9a절: 비윤리적 삶의 비판 - 10a절. 11절: 안전 의식의 비판), c) 12절. 14절: 심판 선고.

예루살렘 성전은 특별히 요시야의 개혁(기원전 약 622년 특히 성소의 단일화정책)을 통해서 유일한 성소가 되어 그 가치가 격상되었다. 므깃도에서의 요시야의 죽음(기원전 609년) 이후 "백성들은 불안감에" 사로잡혔으며, 그들은 성전을 "야웨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보루"로써 생각하였다(4b절. 10a절, 참조: 8,19a). 이런 맥락에서 4b절의 인용내용은 "야웨의 계시 현존의 결정적인 장소로서 시온을 선택하였다는 신앙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이 명백해진다. 이에 반해서 예레미야는 성전이 야웨의 현존의 상징이라는 사상(4b절: "야웨의 성전" ???? ????)을 "거짓말"로 간주한다(4a절). 10a절의 마지막에 인용된 "우리는 구원받았다"는 언급은 "성소를 피난처로 보는 통속적인 사상"에 상응하는데, 이것은 이 본문에서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한편으로 이 인용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악을 행하는 자들의 안전 의식을 표현한다. 다른 한편으로 예레미야서에서 Ni.형으로는 단 한번 사용되는 동사 ???(그 밖에 Hi.형으로는 9번 사용된다)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이 인용은 "바로 야웨의 성전에서 죄를 저지른 그들의 뻔뻔스러움"을 폭로하기도 한다. 미가와 같이(3,11b) 예레미야는 시온 신학에 근거를 둔 동시대인들의 안전 의식을 분명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그는 4a절에서 미 3,11b에서 쓰인(??? Ni."의지하다") 것과 비슷한 동사 ??? "신뢰하다"를 부정형으로 사용한다. 이 점에서 예레미야는 미가의 말을 발전시킨다.


나란히 나오는 세 가지 부정사(9a절의 "도적질하다", "살인하다"와 "간음하다")들은 호 4,2과 같이 십계명을 상기시킨다. 십계명이 미래에 발생할 범법 행위를 금지한다면, 예레미야는 이미 행해진 범죄를 비판한다. 이미 미가에게서 보았듯이(3,9-11, 특히 11절), 예레미야도 그의 동시대인들이 윤리적인 부패에도 불구하고 안전 의식에 안주하고 있는 것을 비난한다(9a절. 10a절. 11절). 미가가(미 11a절) 오직 지도층의 행실을 폭로했다면, 여기에서는(9a*절) 일반화되고 포괄적인 범죄가 문제가 된다. 아무튼 예루살렘 성전 비판과 윤리 비판을 하나로 묶는다는 점에서 두 예언자는 일치하고 있다.


??? ???? "이 집"이라는 표현(10a절과 11a절)은 우연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예레미야 자신이 아니라 그의 동시대인들의 입에서 나온 ???? ???? "야웨의 성전"(4b절)이라는 표현과는 달리, 여기에는 야웨의 이름이 생략되었고, 그 대신 "간격을 두고-격하시키는" 지시대명사 ???가 첨부되었다. 이를 통하여 예레미야는 "집의 산"이라는 표현에서 야웨의 이름을 생략해 버린 미가와 같이(3,12b) 성전을 탈신성화시키고 있다. 또한 미 3,11b.12에서와 같이 예레미야도(4절. 10a절. 11a절.) 야웨가 오래 전에 이미 이 성전을 떠났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다. 미가와 일치하여(미 3,12b) 예레미야는 성전을 더 이상 하나님의 현존의 장소로 보지 않는다.


11a절에서 예레미야는 구약성서에서 단 한번만 나오는 단어 결합인 ????? ???? "강도의 소굴"이라는 표기로 이 성전으로부터 하나님이 멀어진 이유를 제시한다. 성전을 찾는 자들은 성전을 그들의 수치스러운 행위(9a*절: 즉 도적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 맹세함)로부터 숨을 수 있는 "강도들의 은신처"로 만든다. 11b절은 "연이어서 심판의 말씀을 동반하는 비난의 말씀의 종결과 절정"을 가져온다.


12절은 요시야의 북이스라엘로의 영토확장정책(왕하 23,15ff)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 "이 장소"(3절. 6절. 7절, 참조, 14절)라는 표현이 "나라 전체의 한 부분(pars pro toto)으로서의 예루살렘 도성"을 의미하는 것과는 다르게, ????? "나의 장소"는 여기에서 명백하게 실로에 있는 성소인 성전을 가리킨다. 오로지 실로에 있는 성전만이(삼상 1,9; 3,3) 예루살렘의 성전과 더불어 "야웨의 전(???? ????)"이라고 표시된다. 실로의 성소는 법궤가 안치되어 있는 순례지였다. 아마도 예레미야는 - 아모스와 같이(4,4f; 5,5) - "오직 <풍자적인 순례 노래(ein ironisches Wallfahrtslied)>에서, 즉 그의 심판 메시지를 명문화시키기 위해서 권고의 말씀(Mahnwort: 7,12)"을 사용했을 것이다. 12b절에 의하면 실로 성소의 파괴는 "단순히 엘리와 그의 아들들의 범실이 아니라, 모든 백성 이스라엘, 즉 북이스라엘의 '죄악'"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참조, 시 78,56ff. 특히 60절). 북왕국에 있는 이 실로 성소의 비중 때문에, 이 사건이 예레미야의 시대에까지도 기억되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14절에서 예레미야가 예루살렘 성전의 운명을 과거에 야웨 자신에 의해서 파괴되어 버린 실로의 성소의 운명과 동일시한 것은 그의 시대 상황에서는 일종의 폭탄선언과도 같았다. 예레미야의 심판 선고에 나오는 실로의 북왕국 성소와 예루살렘 성전의 이러한 비교는 약 1세기 전에 자신의 재난 선포에서 예루살렘의 운명을 사마리아의 운명과 암시적으로 비교하였던 미가의 선포를 상기시킨다. 미 3,12에서는 심판이 수동태 및 비인칭으로 표현된 것에 비하여, 여기에서는 미래의 위협이 야웨의 말씀으로 나온다. 그럼으로써 예레미야는 미가에 비하여 자신의 선포를 더욱더 첨예화시킨다.


예루살렘 성전이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통해서 유일무이한 성소가 되었고, 요시야의 죽음 이후에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야웨의 도움을 구할 유일한 보루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미가시대보다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미가(미 3,12b)와 호흡을 같이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야웨의 심판을 퍼부었다. 


2) 렘 26,6. 12.

7장과 26장은 그 내용과 언어로 볼 때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두 본문은 서로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7장이 예레미야의 선포의 내용만을 전하는 반면에, 26장의 주안점은 예레미야의 선포로 얻어진 결과에 있다. 이런 배경에서 제 3인칭 기록문(26장)의 원(原) 기본층에서 죄의 지적이 빠지고, 심판 선고가 엄격한 의미에서 아주 간단하게만(6절; 참조, 12절) 보고되어 요약되어 있으며, 인용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이해된다. 그렇기 때문에 26장은 7장의 중복이 아니며, 물론 7장에 종속되어 있지도 않다. 


"[그리고] 나는 이 집을 실로 같이 만들겠다. 그리고 이 도성을 나는 땅의 모든 민족들에게 저주 거리로 만들겠다.

.....

그때에 예레미야가 [모든] 고관들과 전 백성에게 말하였다: 야웨가 이 집과 이 도성에 대하여 너 희가 들은 모든 말씀을 예언하라고 나를 보내셨다." 


7,14에서는 예루살렘 성전만이 문제로 다루어진다면, 26,6에서는 도성까지도 문제가 된다. 미 3,12처럼 예레미야는 성전에 대해서 뿐 아니라, 도성인 예루살렘에 대해서도(6절. 9절. 12절) 예언한다. 명사 ???? "저주거리"는 "심판에 대한 은유"로 사용된다. 6b절은 도성에 대한 심판 선고의 지평을 "땅의 모든 민족들"로 확대시킨다.


이야기체에서 성전을 "야웨의 집"(???????? 2절. 7절. 10절)으로 표현하는데 반하여, 예레미야가 그의 심판 선고(6절) 뿐만 아니라 변호의 말(12절)에서도 비판적인 어조로 "이 집(??? ????: 야웨는 성전에서 떠난다)"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로써 예레미야는 미가와 같이 야웨의 현존과 성전을 구분한다. 성전과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선고가 야웨의 명령이라는(12절) 그의 언명은 이런 이해를 확증해주고 있다. "하나님의 도성(?????????)" 대신에 예레미야는 12절(6절. 9절)에서 간격을 두는 지시대명사 ???를 도시에 연결시킴으로, 경멸적으로 "이 도시(???? ????)"라고 말한다. 


3) 렘 9,10

렘 9,10은 수도 예루살렘과 유다의 지방도시들의 황폐화를 묘사한다: 

"그리고 나는 예루살렘을 돌무더기로 만들고,

시랑의 집으로 만들겠다.

그리고 유다의 도시들을 나는 황야로 만들어서,

아무도 살지 못하도록 하겠다." 

야웨의 말씀으로 나오는 이 절은 심판의 말씀을 보여준다. 명사 ?? "돌무더기"는 "파괴된 도시에 남은 돌무더기를 말하며, 이것은 완전한 멸망의 표현"이다. 이 단어는 ?? "폐허 더미"의 동의어로 보이는데, 이것은 이미 미가가 심판 선고에서 사용한 것이다(미 3,12): "예루살렘은 폐허 더미(??)가 될 것이다." "돌무더기 혹은 폐허 더미인 예루살렘"이라는 표현은 포로기 이전 시대에는 여기 이외에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 대한 자신의 심판 선고에서 미가의 선포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레미야는 - 비인칭을 쓴 미가(3,12b)와 달리 - 미래 위협을 1인칭 단수인 야웨 자신의 말씀으로 표현함으로써, 미가에 비해서 그의 선언을 다시 한번 첨예화한다.


예레미야는 예레미야서에서만 발견되는 ???? ???? "시랑의 집"이라는 그 자신의 표현을 첨가하여 자신의 진술을 확장시킨다. 시랑은 황야 같은 사람이 없는 곳에 서식한다. 수도 예루살렘의 파괴를 묘사하기 위해서 26,6에서와 같이 여기에서도 이러한 표현이 심판에 대한 은유로서 필요하게 된 것이다. 유다의 지방도시들도 이 위협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III. 결론 : 공통점과 차이점 

이제까지의 분석은 미 3,9-12(특히 11f)과 렘 7,4.9a*.10a*.11a*b.12.14a?*b; 26,6.12; 9,10의 공통점을 보여준다:

1) 내용: 두 예언자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a) 예루살렘에 대한 파괴적 심판을 선포함(미 3,12; 렘 7,14; 26,6.9.12),

b) 그들의 동시대인들의 안전 의식의 근거가 된 시온 신학을 거부하고 비판함(미 3,11b; 렘 7,4.10),

c)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비판과 윤리적 비판을 연결시킨 점(미 3,9-11a; 렘 7.9a).

2) 구조: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의 골격은 미가의 심판의 말씀과 흡사하며, 그것을 발전시킨다. 미가의 선포는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부름(9a절), 고발(9b절-11절), 심판 선고(12절)로 구 성되어 있으며, 예레미야의 선포도 호출(4a절), 고발(4b절. 9a절. 10a절. 11절) 그리고 심판 선고(12절. 14절)의 구조로 되어 있다.

3) 사상:

a) 두 예언자는 하나님의 현존과 성전을 구분하면서 성전의 탈신성화를 기도한 듯 하다(미 3,12b의 ???? ?? "집의 산"; 렘 7,10.11; 26,6.9.12의 ??? ???? "이 집").

b) 심판 선고에서 미가(3,12; 참조, 1,6)는 예루살렘(남왕국의 수도)의 운명을 암시적으로 사 마리아(북왕국의 이전 수도)의 운명과 일직선상에 놓으며, 예레미야(7,14; 26,6)는 예루살 렘 성전의 운명을 명백하게 이전 북왕국의 성소였던 실로와 비교한다.

4) 어휘 선택: 어휘 선택이 부분적으로 동일하다.

a) ???(Ni.) "의지하다"(미 3,11b)와 ??? "신뢰하다"(렘 7,4a);

b) ?? "폐허 더미"(미 3,12b)와 ?? "돌무더기"(렘 9,10).

5) 의도: 두 예언자는 예루살렘(미 3,12; 렘 26,6b.9a?.12b; 9,10)과 성전(미 3,12b; 렘 7,14; 26,6a.9a?.12b)에 대하여 심판을 선고한다. 

공통점 외에 차이점도 발견된다:

1) 범죄자로 낙인찍힌 자의 확대: 미 3,11f가 지도층의 범죄와 관련되어 있다면("너희 때문에", 즉 지도자들, 제사장들, 예언자들), 렘 7,9a*에서는 특정인을 선정하지 않고 일반적이고 포 괄적인 죄를 문제삼는다.

2) 지평의 확대: 도성 예루살렘 혹은 시온의 멸망을 선고한 미가(3,12)와 비교할 때, 예레미야 는 도성에 대한 심판 선고의 지평을 "땅의 모든 민족들"(???? ???? ???)로 확대한다 (26,6b).

3) 심판 선고의 첨예화: 미 3,12에서 예루살렘 혹은 성전에 대한 심판이 수동태나 비인칭으로 표기된 반면에, 렘 7,14; 26,6; 9,10에서는 야웨 자신이 선고한다. 이 점에 있어서 예레미야 는 미가에 비해서 그의 심판 선고를 첨예화한다.

4) 확대: 미 3,12b?에서와 비슷하게 예루살렘의 황폐화의 묘사를 위해서 예레미야는 렘 9,10a 에서 미가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 ???? "시랑의 집"이라는 표현을 덧붙여서 사용한다. 

예레미야는 호세아의 성취되지 않은 구원의 약속을 전수한 것처럼, 예루살렘과 성전에 대한 미가의 심판 선고 역시 계승하고, 그것을 계속 발전시킨다. 미가의 심판 선포가 미가의 시대에 아직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렘 26,17-19).

호세아의 영향이 주로 예레미야의 초기 활동시기(기원전 약 626-622년)에 주어진 반면에, 미가의 영향은 예레미야 활동의 초기는 물론 그 이후(기원전 약 608년 이후)에도 발견된다. 또한 하르트마이어가 주장하는 것 같이 예레미야가 이미 문서로 집필된 미가의 메시지 즉, 미가서를 읽었겠는가? 물론 이 점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두 예언자의 선포에서 나타난 일치점과 변화, 공통점과 차이점들로 보아 미가전승에 대한 예레미야의 수용은 문서적 의존보다는 오히려 구전전승(mündliche Überlieferung)에 의존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Jeremiah's Temple Sermon and Micah's Tradition 

Cha, Jun-Hee 

The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7th century prophet Jeremiah and his senior prophets of 8th century has emerged as one of major trends in the study of prophets since the study of G. von Rad on the same subject. Much have been discussed on the relationship between Jeremiah and Amos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Jeremiah and Hosea. Yet, little attention has been paid until recently to the relationship between Jeremiah and Micah. This study, confining itself to "Temple-Sermon" aims to demonstrate that Jeremiah's "Temple Sermon" bears the influence of Micah's tradition. For this purpose exegesis of the following verses will be made: Mi 3,11f and Jer 7:4. 9a*. 10a*. 11a*b. 12. 14a?*b; 26,6. 12; 9,10.

The two prophets show a unity in contents, structure, thinking, choice of words and in intention. However, some differences are also found in the words of Jeremiah: expansion of those who were stigmatized as sinners; expansion of horizon; being radical of the pronouncement of judgment; expansion of expression. Such unity and difference as this shows that Jeremiah has succeeded what Micah had spoken. Therefore, the thesis of this study can be summed up as the following: As Jeremiah inherited unfulfilled promise of salvation by Hosea, he has also succeeded Micah's pronouncement of judgment against Jerusalem Temple and he further develops it, for Micha's pronouncement of judgment was not fulfilled in his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