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도행전

[사도바울행전] 36-40

은바리라이프 2012. 8. 11. 22:19

바울을 찾아나선 바나바
II. 다메섹에서 안디옥으로(36)
[2771호] 2010년 09월 28일 (화) 19:51:14 [조회수 : 790]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 11:19~20).

지금까지 율법을 존중하는 유대인에게만 전해지던 그리스도의 복음이, 널리 이방인에게도 전해지게 되었다. 학술적으로 말한다면 기독교는 민족 종교에서 세계 종교로 뛰어 오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유대인 중심인 예루살렘 교회에서 볼 때에 그대로 지나칠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율법에 따라서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와 같은 사태에 불안과 걱정을 느껴 구브로 섬 출신인 레위인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에 파견하여 상황을 조사하게 하였다(행 11:22). 그는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 헬라어를 말하는 디아스포라 신도들과 대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안디옥에 온 바나바는 이방인의 교회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행 11:23).
바나바는 주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을 생각해 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서 목회하기 위해서는 율법에 능통한 협력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그 적임자는 바리새인 출신으로서, 바로 다메섹 도상에서 주 예수를 만나 회심한 바울 이상일 사람이 없었다.

주후 42년 봄, 바나바는 바울을 만나기 위해 다소로 갔다. 안디옥에서 다소까지는 2백26km의 거리이다. 만일 걸어서 갔다면 근 열흘 길이다. 바나바는 바울을 끌어안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 사울이여, 주께서 지금 그대를 불러 쓰시려고 합니다. 주께서 임하시어 그대를 부르고 계십니다. 나와 함께 안디옥에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바나바와 바울은 함께 옥상에 앉아 지금까지 겪은 경험을 말하였다. 바나바는 바울이 그 동안에 원숙해지고 신중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바울은 기독교가 이방인 사이에서 널리 퍼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였다.

바나바는 이름의 뜻 그대로 '위로의 아들'(행 4:39)이었다. 착하고 성령이 충만한 그는 바울이 회심하고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갔을 때에 베드로와 사도들을 대면하게 주선하였었다. 그리고 이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역자로 바울을 찾아온 것이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행 11:25~26).

마침내 바울이 활동할 때가 찾아왔다. 그는 자기가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찾아온 것이다. 자기의 평생의 사명을 찾게 될 때까지 사람들은 잠시 어둠 속을 헤매게 마련이다.

앗시시의 프란체스코도 한때 어둠 속을 헤매었었다. 인간은 자기 혼자 힘으로 생애의 사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안디옥의 바나바와 바울
II. 다메섹에서 안디옥으로(37)
[2772호] 2010년 10월 06일 (수) 10:26:04 [조회수 : 879]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 바울과 마가(뒤러 作).
바울과 바나바는 다소에서 배를 타고 하루 뒤에 시리아의 항구 실루기아에 닿았다. 거기에서 안디옥까지 걸어갔다. 그 길은 대상(隊商)들이 낙타에 명주를 싣고 다니는 실크로드의 일부분이다. 안디옥의 시장에서는 흑인 노예들이 매매되고 있었다.

바나바는 곧바로 장로들이 모여 있는 곳에 바울을 데리고 갔다. 그들은 바울을 정중하게 맞이하였다. 거기에는 안디옥의 다른 명사들도 모여 있었다.

이제 바울의 안디옥에서의 전도 활동이 시작되었다. 바울의 전도 활동은 이제부터 교회를 바탕으로 한 공식적인 목회였다. 바울의 안디옥에서의 전도 활동은 바나바에게 협력하는 형태로 행해졌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 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5~26).

바울은 바나바를 도와 은혜의 이슬이 마르지 않는 안디옥의 새 교회에서 만 일 년 동안 평화롭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것은 목회자로서의 이상적인 제1년이었다. 유대인에게 업신여김을 받던 이교인들이 십자가의 설교에 의하여 고귀한 자가 되었다. 바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봉사한 후 개종자의 수는 부쩍 늘었다.

안디옥 교회에서는 토요일 저녁에 애찬식을 하였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서로 간에 친목을 다지기 위하여 행해졌다. 매주 행해지는 이 의식은 일주일 간 신도들의 힘이 되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유대인의 시나고그에 가서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율법이 더할 나위 없이 무거운 짐이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되었다.

유대교 회당에서 듣게 되는 말은 "그것을 하지 말라" "그것을 만지지 말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음식을 비롯하여 모든 것은 "깨끗한 것"이거나 "부정한 것" 중 어디에 속하였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와 같이 복잡한 규정을 지키라고 권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옛 모세의 율법에 따른 제사의식은 주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끝났다고 강조하였다.

두 사람의 열성과 노력으로 안디옥 교회는 날로 부흥하였다. 교인들 중에는 로마인과 헬라인 및 유대인 그리고 자유인과 노예들도 있었다. 돌이켜볼 때 안디옥 교회에서의 바울의 일 년 간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핍박 때문에 피신해 온 사람들과 교제하며, 그 사람들을 상대로 한 전도 활동에 참가하여, 바울 자신의 신앙 태도와 신앙 이해에 더욱 깊이와 확신을 준 시기였다. 또한 10여 년 동안의 명상 시대에 터득한 '복음'의 이해를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신도들을 회심하게 하는 때이기도 하였다.

그 무렵에 팔레스틴에 대기근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클라우디오 황제(재위 41~54) 치하(행 11:28) 곧 주후 45년 무렵의 일이었다.

이 기근 때에 티그리스 강 동쪽의 아비아베네 여왕이며 유대인인 헬레나는 동포들의 굶주림을 자기 자신의 일처럼 여겼다. 헬레나 여왕은 애굽에서 많은 밀을 사고, 구브로 섬에서는 무화과를 사서, 예루살렘의 굶주린 동포들에게 보냈다. -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고대지'에 있는 기록이다.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이방인에게로, 할례자에게로
II. 다메섹에서 안디옥으로(38)
[2733호] 2010년 10월 12일 (화) 19:52:48 [조회수 : 352]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바울과 애굽의 전도자 안토니.
팔레스틴에 큰 흉년이 들었다는 소식은 안디옥에도 곧 전해졌다. 안디옥 교회 교인들은 구호 작업에 나섰다.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행 11:29~30).

바나바가 선택된 것은 그가 예루살렘 교회 출신으로서, 그 교회 장로들과도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울이 동행하게 된 것은 회심한 후의 생활을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알리고, 자기의 전도 활동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바울은 "주 예수의 복음"이 유대인 이외의 헬라인을 비롯한 이방인들에게도 받아들여져, 그들이 중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려 하였다. 그는 그 증인으로서 디도를 데리고 갔다.

이때의 예루살렘 상경은 바울이 회심한 후 두번째로서, 회심 후 14년이 지난 때였다. 주후 45년쯤의 일이다.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갈 2:1~2).

바울과 바나바가 상경하였을 때에 예루살렘 교회는 또 다시 핍박을 받고 있었다. 요한의 형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살해되었다. 유대인들이 그것을 좋아하자 헤롯 왕은 베드로를 살해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 일은 실패하였다.

그런 상황 아래 바나바와 바울은 식량과 구호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다. 예루살렘 교회에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머물렀다. 거기서 두 사람은 옥에 갇혔던 베드로가 천사의 인도로 옥에서 나온 이야기를 들었다. 헤롯은 그 감옥의 간수 16명을 모조리 다 사형에 처했다고 하였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유력자들에게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의 내용을 보고하였다(갈 2:2). 그 보고를 듣고,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격인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다"(갈 2:9).

이로써 안디옥 교회가 주축이 되어,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에게 전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공인되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의 전도 대상은 주로 유대인이며, 바울과 바나바가 속한 안디옥 교회의 전도 대상은 주로 이방인이라는 협정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갈 2:9).

이방인 지역에 확대된 기독교가 유대인 신자의 기독교와 분열되는 일이 없이 일치를 이루고, 또한 단결이 깨지는 일도 없게 된 것이다. 예루살렘에서의 "친교의 악수"는 실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중대한 악수였다.

교회 역사 2천년. 그것은 "주 안에서의 일치"의 악수를 저버린 분열의 역사였다.
예루살렘 교회의 신도 중 디도에게 할례를 강요한 사람이 있었으나,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그들에게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다"(갈 2:5).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차별을 초월하여 당당하게 활동한 것이다.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II. 다메섹에서 안디옥으로(39)
[2774호] 2010년 10월 19일 (화) 18:29:05 [조회수 : 441]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 안디옥의 베드로 동굴교회.
예루살렘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상경의 목적을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이 원조 사업은 단 한 번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하기로 약속하였다. 훗날 바울이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상경하곤 한 것은 구제 문제 때문이기도 하였다. 

무사히 구호 목적을 수행한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을 떠나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이때 바울은 디도를 데려왔고 바나바는 생질 마가를 데려왔다(행 12:25, 골 4:10).

오늘날의 안디옥에는 터키 인이 건축한 이슬람 사원만 있을 뿐, 바울을 추모할 수 있는 교회나 유적이 전혀 없다. 단지 오론테스 강 연안의 고고학 박물관에 로마 시대의 대리석상과 모자이크와 화폐 등이 진열되어 있을 따름이다.

시가지 남동쪽 시르피우스 산 북쪽 산자락에 석회암 바위벽에 동굴이 있고, 그 안에 베드로의 동굴 교회가 있다. 여기서 베드로가 신도들과 함께 예배하며 선교 활동을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도들이 교대로 지키다가 박해자가 가까이 오면 예배당 안의 신도들에게 알렸고, 신도들은 사잇길로 빠져 피신했다고 말한다.

바울과 바나바에게서 경과 보고를 들은 안디옥 교회는 큰 용기를 얻었다.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에 대한 전도 활동이 예루살렘 교회 사람들에게 이해되었을 뿐 아니라 시인되고 인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상경하면서 헬라인 디도를 데리고 갔을 때에 있었던 사건,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곧 기독교 안의 바리새파 신도들이 주장하던 율법(할례) 문제도 바울은 이번에 완전히 해결하였다.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갈 2:3~5).

바울은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곧 율법주의자들의 디도에 대한 할례의 강요를 일단 회피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을 내세우며 공격해 오는 유대인의 문제 제기는 날카로웠다.

구약의 메시아 예언에 따라 나사렛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말을 거부하는 율법주의자들을 향하여, 주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는 말이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요컨대 안디옥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율법의 멍에를 메개 하기 위하여 스며들어온 가라지였다.

안디옥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 따르는 모세는 유대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자기의 이름을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명부에서 지워 달라고 주께 간청하였다(출 32:32). 그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자기를 희생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 제물로 바치려 하였다. 자기는 멸망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자기와 함께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리라. 그 일을 위하여 자기 자신은 영원한 영광을 누리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하였다.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움
II. 다메섹에서 안디옥으로(40)
[2775호] 2010년 10월 27일 (수) 16:51:39 [조회수 : 366]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 '두 율법학자', 렘브란트, 1628, 유화, 72.3×59.7cm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자 모세는 바로에게 저항하여 일어섰다. 바울은 매일 매일 악마에 저항하여 일어섰다. 모세는 한 민족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을 비롯한 온 세계 인류를 위하여 땀이 아니라 피로써 저항하였다.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은 바울에게 물고 늘어졌다. 도대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하셨고,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내린 율법인 할례 외에 무엇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이때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하는 문제에 부닥쳤었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으로서 인치심을 받는 것이 할례라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 바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가.

바울이 얻은 결론은 '믿음'이었다.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는 신학적 결론, 그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 예수를 만나고 눈이 멀었던 기간, 아라비아 사막에서 명상하던 기간, 그리고 이번에 예루살렘에 상경하여 얻은 확실한 결론이었다.

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것 이외에 달리 구원이 있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 예수의 진실을 믿고 받아들일 때에만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게 된다.

모세의 율법에 대신하는 것은 예수의 진실하심에 응답하는 우리의 진실, 곧 우리의 믿음 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롬 1:17).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이제 바울 신학은 완성되었다. '할례' 대신 '믿음'이 하나님에 대한 중요한 자세가 되었다. 율법의 행위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진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진실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그 진실을 믿음으로써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 '믿음'이 새로운 의의를 가지고, 구원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새로운 이해요, 사도 바울의 '십자가의 도'의 신학의 완성이다.

'십자가의 도'를 전하기 위하여 나선 바울 앞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진하여 고문을 당하였고, 값진 면류관보다도 감옥의 쇠사슬을 장식품으로 삼았다. 그가 받은 선물은 채찍이요 상처였다.

이방인의 사도 바울은 폭군들도 성난 민중들도 모기 정도로 생각하였다. 호된 고통이 따르는 죽음과 고난도 그는 아이들의 장난처럼 여겼다.

돌이켜보면 아담에게 일어났던 세 가지 사건과 정반대의 사건이 바울에게 발생하였다. 아담은 하나님께 맞섰으나, 하나님은 바울을 땅에 던지셨다. 아담은 눈이 밝아졌으나 바울은 맹인이 되었고, 아담은 선악과를 먹었으나 바울은 굶었다.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