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도행전

[사도바울행전] 26.다메섹 회당에서의 전도/27.아라비아에 갔다가 /28. 다메섹 성벽의 광주리/29.그리스도를 아는 지식/30.그리스도와의 일치사상

은바리라이프 2012. 8. 11. 22:08


다메섹 회당에서의 전도
II. 다메섹에서 안디옥으로(26)
[2761호] 2010년 07월 06일 (화) 19:00:08 [조회수 : 316]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그를 즉시 쳐다보았다."(행 22:13) 13세기의 유리판 그림, 루앙 대성당.

청년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주후 33년의 일로 추정한다. 그는 다메섹에서 아나니아의 안수로 눈을 뜨게 된 후, 그 다음 안식일에 회당에 가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였다.

청년 바울이 다메섹 유대인의 회당에서 어떤 내용의 설교를 하였는지 구체적인 것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훗날 서신 속에 기록한 내용의 설교를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1~22).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 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 3:6).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0~21).

다메섹 도상에서 나사렛 예수를 만나고 나서 청년 바울은 회심하였다. 그 회심은 윤리면에서 회개하고 이를테면 '참 사람'이 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빌 3:6)였다.

청년 바울의 회심은 어느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옮겨간 개종도 아니었다. 회심 전에 그가 믿은 하나님은 엘 샤 다이요 엘 엘리온이며 아도나이시다. 그리고 회심 후가 그가 믿는 하나님은 같으신 분으로서, 전능자시요 창조주이며 주님이시다.

청년 바울의 회심은 한마디로 율법과 십자가의 문제였다. 지금까지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확신하던 바울이었다. 그 율법의 도를 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 그의 회심이었다.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맺어진 것이다.

청년 바울이 믿은 하나님은 예전과 같은 하나님이지만, 하나님과 더불어 걸어가는 방법이 예전과는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 때에 그는 새 생명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이 말은 율법을 행하는 일에 열심이었던 청년 바울은, 사실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전에 죽은 자로서 살려고 발버둥질한 것이다.

청년 바울은 회심한 후에 그 사실을 자각하였다. 그는 율법주의가 죽음의 짓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때문에 바울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손해로 여긴다"(빌 3:8)고까지 말하였다.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아라비아에 갔다가"
II. 다메섹에서 안디옥으로(27)
[2762호] 2010년 07월 13일 (화) 18:26:41 [조회수 : 507]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 바울이 퇴수한 아라비아 광야.

청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였고, 나사렛 예수를 핍박하던 자로부터 주 예수를 우러러보며 따르는 자가 되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사렛 예수의 도를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고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행 9:21).

청년 바울의 이와 같은 표변에 관해 누구보다도 유대인들이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행 9:22).

처음에 사울이라고 하는 청년에 대하여 놀라워하던 다메섹 사회의 유대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워하게 되었다. 그 미움이 점점 커져서 청년 바울을 암살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는 다메섹에서 피하여 아라비아로 갔다. 그에게는 명상과 기도가 필요하였다.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에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갈 1:16~17).

바울의 생애에서 "아라비아에 갔다"고 하는 기간은 수수께끼의 이력이 되고 있다. '아라비아'는 구체적으로 어디인가. 무엇 때문에 갔는가. 가서 얼마 동안 있었는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아라비아는 다메섹 동쪽의 아라비아라는 설, 먼 남쪽 시내 산이며 거기서 모세와 엘리야를 추모했다는 설, 전도하기 위하여 아라비아에 갔다고 하는 설 등이 있다.

주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성령의 강권으로 광야에서 지내셨다.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막 1:13).

무릇 인생의 스승은 명상과 기도로 자기를 성찰하며 자기 정의를 내린다. 바울은 훗날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자기를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빌 3:5)이었다고 정의를 내렸다. 거기에는 "흠이 없는 자"라고 하는 우월감과 자신감 그리고 타인을 내려다보는 오만스러움이 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아라비아에 가서 명상과 기도로 수련한 후에, 바울의 자기 정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었다. 그는 자기를 가리켜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행 21:39)이라고도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빌 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딛 1:1~2).

세례 요한이 나사렛 예수의 선구자라면 바울은 그 후계자이다. 요한이 광야의 고요함 속에 있은 반면, 바울은 번잡한 세속 사회에 있으면서 메뚜기와 석청만도 못한 것을 먹고 살았다. 요한은 헤롯 한 명에게 저항하였으나, 바울은 모든 권력자에게 맞섰다.

김희보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다메섹 성벽의 광주리
II. 다메섹에서 안디옥으로(28)
[2763호] 2010년 07월 21일 (수) 09:16:45 [조회수 : 645]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 다메섹의 성벽. 바울이 바구니를 타고 탈출한 곳으로 추정되는 곳.

바울은 회심한 후 3년 동안 다메섹을 중심으로 하여 주로 명상 생활을 하였다. 당시 다메섹은 그 남동쪽에 위치한 나바테아 왕국의 행정 구역으로서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 4세의 대리인 아라비아 인이 통치하고 있었다. 

바울은 다메섹에 머물면서 자기가 나사렛 예수에 관하여 새로 알게 된 사실들을 성경에 비추어 검증하였다.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그를 둘러 비춘 빛"(행 9:3)은 바울로 하여금 철저한 자아 비판을 하게 하였다.

청년 바울은 세 가지 큰 악덕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는 어렴성없는 대담함이다. 그것은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게"하였다. 그는 자진하여 대제사장에게 찾아간 것이다.

둘째로 그는 혈기에 따라서 행동하였다. 나사렛 예수의 도를 따르는 사람을 찾으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하였다.

청년 바울의 가장 큰 악덕은 셋째로 '율법'이라고 하는 형식으로 지니고 있는 지식이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방자하고 거만하게 하였으며, 아무 어렴성 없이 꺼떡거리게 하였었다. 

때문에 청년 바울의 "주여 누구시니이까?"하는 물음에 주님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대답하셨다. 즉, "네 율법적인 이성과 지식으로 너는 나를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네 하나님인 나는 하늘에서 네게 말하고 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춘" 것은, 청년 바울의 현세적 인식을 신의 인식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청년 바울의 회심은 세 가지 것에 의해 일으켜졌다. 곧 그를 부른 하늘의 소리와 그를 비춘 하늘의 빛과 그리고 그를 땅에 엎드러지게 한 하나님의 힘이다.

청년 바울은 다메섹에서 지내는 3년 동안에 나사렛 예수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다메섹에서 수련 중인 청년 바울은 유대교도에게서 배반자라는 말을 들었으나, 자기가 겪은 일을 말하며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였을 뿐"이었다. 아직은 적극적인 전도 활동을 펴지 않았다. 

그 증언은 유대인들의 공격에 대답한 청년 바울의 새로운 신앙의 입장을 변증하는 성격의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의 그리스도 논증은 유대인들을 성내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행 9:23~24).

청년 바울을 암살하려고 음모를 꾸민 유대인들은 아랍 족인 아레타스 왕의 대리에게 뇌물을 주었다. 그리고 바울이 다메섹을 빠져 나가지 못하게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켜가며 바울을 추적하였다.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행 9:25).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II. 다메섹에서 안디옥으로(29)
[2764호] 2010년 07월 28일 (수) 11:23:26 [조회수 : 323]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 바울 상(모자이크).

청년 바울은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헬라어를 말하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나사렛 예수가 바로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라고 선포하였다. 유대교도들은 바울을 몹시 미워하였다.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행 9:28~29).

바울은 회심 후 예루살렘에 갔다가 즉시 고향인 길리기아 다소에 돌아갔다. 그때의 자세한 상황은 알 길이 없다. 제2회 예루살렘 상경은 회심한 후 '14년'(갈 2:1)이 되던 때로서, 그에 앞서 1년 동안 안디옥에서 생활하였다.(행 11:26)

이와 같이 볼 때에 바울은 다메섹에서 3년을 지낸 후(갈 1:18)에, 약 10년 동안은 다소를 중심으로 하여 지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바울은 그 10년 동안을 어떻게 지냈는가? 랍비에게서 율법을 배우려 하는 뜻을 가지고 고향 다소를 떠났던 바울이 여러 해가 지난 후 다소에 돌아왔다. 이제 율법사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호젓이 돌아왔다.

바울의 가족은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의 가족은 다소 시의 책임 있는 시민이며, 예전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명문이다. 아울러 엄격한 바리새인 가정이다. 그 훌륭한 가문 출신으로서 장래를 촉망받던 청년이 이제 바리새인으로서 영광과 희망을 버리고, 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이단자로 굴러떨어져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바울 자신은 그때의 상황에 관하여 일생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향 다소에 돌아온 바울은 가족으로부터도 유대인 사회 전체로부터도 강한 반감을 사고 비난을 받았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때 바울은 '이단자'로서 자기의 집에 머물러 있지 못했을 것이다. 가족들은 그를 환영하지 않았을 것이고, 바울 자신도 서먹서먹하게 가족들과 얼굴을 마주 대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은 결국 부모의 집에서 나와 홀로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손으로 일하여 생활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바울은 그때의 심정을 훗날 이렇게 표현하였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빌 3:8).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며", 유대인의 비난에 대하여 침묵하였다. 그는 묵상을 통하여,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난 의라"(빌 3:9)는 진리를 깨달았다.

바울이 고향 길리기아 다소에 돌아간 것은 주후 39년의 일로 추정된다. 하나님은 그 나라와 의를 위하여 부르신 사람을 오래 기다리게 하신다. 주 예수께서도 공생활에 들어가기 전에 30년 동안 준비하며 기다리셨다.

다혈질인 바울이 가만히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말없이 오랜 기간 준비하자면 강한 자제심이 필요하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이미 명예에 관한 꿈을 버리고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러나 아직 '자아'가 죽지 않았다. '자아'를 죽여야만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수 있다.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그리스도와의 일치사상
II. 다메섹에서 안디옥으로(30)
[2765호] 2010년 08월 11일 (수) 14:17:14 [조회수 : 406]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 바울과 베드로(렘브란트 作, 1628년경,목판에 유채,72.3×59.5cm,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바울은 '자아'를 죽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철저한 복종이 완성되었을 때에라야만, 교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봉사할 때에라야만, 하나님이 쓰시기에 가장 합당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는 다소의 호젓한 뒤안길을 자주 걸으며 명상하였다. 때로는 광장을 가로질러 강가에서 쉬며 생각하였고, 길거리에서 헬라의 웅변가들이 연설하는 것을 들었다.

바울은 다소에서 헬라인의 철학에 관한 웅변을 듣기도 하고 관찰하는 동안에, 헬라적인 토론법을 대강 터득하였고, 그의 귀는 헬라어를 듣는 일에 익숙해졌다.

고향 다소에서의 이 조용한 학문과 반성의 기간은, 훗날에 바울이 전도 활동을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은 후에 많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바울은 다소에서 은거하는 기간에 우선 '자아'에 죽었다. 또한 이 퇴수(退修) 기간에 깊은 신비 사상을 터득하고, 위대한 신학 체계를 이룩하였다. 이것이 바울로 하여금 수많은 서신을 기록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바울이 반성하고 묵상한 것은 예수의 생애와 그의 인성, 수난과 부활, 그리고 그 설교와 위대한 구속의 사역이었다. 그 중에도 다메섹 도상에서 얼떨결에 뵈온 예수의 모습과 그 목소리는 바울의 기억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바울은 또한 열심히 구약성서를 연구하여, 자기의 체험과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에 비추어 보았다. 인류의 구원이 어떻게 행해지는지, 그리스도적인 사랑은 무엇인지 묵상하였다. 

바울이 사색하고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계시와 환상이 자주 나타나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는 일이 없게 이끄셨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바울 서신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시와 바울이 기도로써 성경을 묵상하고 깊이 반성하여 얻어진 결과 기록된 것이다. 

바울 서신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바울이 다소에서 고독하게 기도하는 중에 얻어진 신비 사상이다.

바울 신학과 윤리의 중심은 "그리스도와의 일치" 사상이다. 바울에게는 그리스도가 전부였고, 자기 존재의 처음이며 나중이기도 하였다. "모든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있다".

바울은 역사상의 예수님의 모습과 교리상의 그리스도를 가르거나 나누어 생각하지 않았다. 주 예수는 삼위일체 중 하나이시며, 모든 것에 앞서 존재하는 영원한 말씀이시며, 영광스러운 속죄의 주 그리스도라고 인식하였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바울의 가르침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신비한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하여 인간에게 주어진 새 생명이었다. 바울 서신에 기록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상은 한갓 인간적 종교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계시이다.

바울은 아라비아 시막에서 그리고 다소에서 십자가의 도를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