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밖에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구절들 |
잠 11:30
복음을 전해서 죄인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일을 "soul winning"(우리말로는 "구령"이라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이라고 하는데, 이는 잠언 11:30에서 나온 말이다. 거듭난다는 것은 마귀에게 속해 있던 혼이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혼을 이겨온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또 성경은 구원을 받는 것이 우리의 혼이라고 말씀한다. {이는 너희 믿음의 결과, 곧 너희 혼들의 구원을 받음이니라}(벧전 1:9). 단순히 "사람을 얻는다"는 말로는 이렇듯 정확한 말씀의 보화를 얻을 수가 없다.
개역성경이 이 구절을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변개시켰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표구하여 자신이 "경영"하는 가게나 사무실에 걸어 두고 있다. 번영과 성공을 약속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진다는 데 싫다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한 것이 아니라 "너의 생각들이 바로 서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잘못된 길에서 경영할 때에도 그것이 다 이루어진다면 그 결과를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경영이 무조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님을 신뢰한 뒤 우리의 생각들이 바로 서는 것이다.
"심지가 견고한" 것과 주를 의뢰하는 것은 동일하지 않다. 마음이 완고하거나 의지가 비교적 강하기 때문에 심지가 견고할 수도 있다. 그런 자들이 모두 평강을 얻는단 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완전한 화평은 마음을 굳게 먹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께 마음을 의탁할 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틀린 구절을 제시하는 개역성경을 읽으면서 어떻게 완전한 화평을 맛볼 수 있겠는가?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억압당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개역성경은 뜻을 정반대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은 이사야 1:13,14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헛된 예물을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게 가증함이요, 새 달들과 안식일들과 집회들을 모으는 것도 내가 견딜 수 없으니 심지어 엄숙한 모임까지도 악한 것이니라. 너희의 새 달들과 정한 명절들을 내 혼이 싫어하노라. 그것들은 내게 짐이요, 내가 지기에 피곤하노라.}
율법 아래서 십일조는 삼일마다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삼년마다 드리는 것이다(신 14:28, 26:12).
기독교의 탈을 썼으나 그 본질은 고대 바빌론 신비 종교인(계 17:5) 로마 카톨릭 교회를 선두로 하여, 그 카톨릭 교회에서 종교 개혁을 통해 분리해 나왔다고 하는 많은 개신 교회들까지도 교회 안에 온갖 비 성경적 형태로 가득 차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인간이 만든 전통들을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만든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다음과 같이 책망하셨다. {주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또 어찌하여 너희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그렇게 해서 너희는 너희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폐기시키고 있는 것이라. 너희 위선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말하기를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또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들의 계명들을 교리들로 가르치니, 그들이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하였느니라."고 하시더라}(마 15:3-9). 개역성경의 변개된 구절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비성경적 전통을 오히려 만들어내거나 지지하고 있다.
"첫"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이유는 그 단어가 마리아가 첫째 아들인 예수님을 낳은 이후에 둘째, 셋째 아들 딸을 낳았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로마 카톨릭 전통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뒤에도 영원히 처녀로 남아 있었다고 가르치는데, 개역성경은 이 구절에서 카톨릭의 전통을 오히려 지지하고 있다. 성경은 마리아가 예수님 외에 여러 자녀들을 낳았다고 기록한다. {이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모친은 마리아라 하지 않느냐? 또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와 요세와 시몬과 유다가 아니냐?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들과 함께 있지 않느냐? 그렇다면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난 것이냐?"고 하면서}(마 13:56, 막 6:3 참조).
개역성경에서 "까닭없이"가 삭제됨으로써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노하신 적이 있기 때문이다(마 21:12-13). 개인적인 감정으로 분을 발하는 것은 분명한 죄이지만, 까닭 있는 분노는 죄가 아니다. 성경은 {화를 내되 죄는 짓지 말고}(엡 4:26)라고 말씀한다. 죄악과 불의를 보고서도 분노할 줄 모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죄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의를 사랑하지도 않는 것이다.
위 구절에서 개역성경은 정반대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바른 성경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첫째가 포도원에 일하러 갔고 둘째는 가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고전 10:28
딤전 3:11
위 구절은 집사의 자격을 설명하는 구절들 뒤에 따라나오는 것으로, "집사의 아내들"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그들의 아내들도"를 "여자들도"로 바꿈으로써 그런 조건을 갖춘 "여자들도" 집사가 될 수 있다는 말씀처럼 만들고 있다. 실제로 개역성경을 사용하는 한국 교회들에는 여자 집사들이 허다하다. 그러나 성경은 같은 장 12절에서 집사는 "한 아내의 남편" 즉 남자여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사람들은 과학을 맹신한다. "과학적" 또는 "비과학적"이라는 두 단어로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하려 든다. 그러나 성경은 과학을 "거짓되이 일컬어지는 과학"이라 부르고 있다. 과학을 들어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부정하려 들 때 사람들은 오히려 속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이 과학을 수백 년 내지 수천 년 앞선 책이라는 사실은 성경 곳곳에서 발견된다. 한 예로 B.C.740년에 기록된 이사야 40:22에는 지구가 원형 즉 둥글다고 적혀 있으며 - {원형의 지구 위에 앉으신 분께서...} - B.C.1600년에 기록된 욥기 26:7은 지구가 우주 공간 위에 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 {그는 북쪽을 빈 자리에 펼치시고 땅을 허공에 매다시는도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재림하시는 그 날 그 시간에 지구의 한편은 밤이고 한편은 낮임을 말씀하심으로써(눅 17:34,36) 역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증명하셨다. 디모데전서 6:20은 과학을 맹신하는 인간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으나 개역성경은 "과학"을 "지식"으로 바꿈으로써 성경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것이 우리의 복된 소망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개역성경은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영광이 나타나심"으로 바꿈으로써 그리스도의 재림을 없애 버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지 않아도 그분의 영광은 나타날 수 있다. 위 구절은 그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약 5:16
잘못을 자백하는 것과 죄를 자백하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상대방에게 잘못 한 것은 그 사람에게 자백해야 하지만 죄는 인간에게 자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백해야 한다. 죄의 용서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이 변개된 구절은 인간에 불과한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는 로마 카톨릭의 고해성사가 마치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계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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