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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신학을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심문관의 이야기'

은바리라이프 2012. 2. 9. 00:04

문학으로 신학을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심문관의 이야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대심문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제2부 5권 5번째 소제목이 대심문관(The Grand Inquisitor)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전집 23번(열린책들/이대우옮김,p549-590)의 내용 중에서 소감. 

1.서사시의 서론 

이반은 아우 알료샤에게 자신이 썼다는 서사시를 소개한다. 서사시속에서 주인공인 심문관은 그리스도를 심문(審問)하나 그리스도는 시종일관 묵묵부답이다. 대심문관은 광야(曠野)에서의 3가지 시험(마태4:3-11)에 대한 예수의 거부를 문제로 삼고, 그의 문제점을 분석, 지적, 그리고 비판하며 고발하고 있다. 이반의 서사시란 자조적인 뉘앙스를 띄고 있다. 

서사시의 배경은 ‘스페인의 세비야(Seville)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매일 장작더미가 불타오르던 무서운 종교재판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p554).' 추기경인 대심문관이 ’거의 백여 명이 넘는 이단자들을 화형(火刑)시킨 바로 다음날(p555)' 예수가 내려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닌다. 사람들은 그를 알아본다. 이반은 바로 여기가 내 서사시의 가장 뛰어난 대목중의 하나(p555)‘라고 말한다. 이 때에 대심문관(추기경)이 등장한다. 예수를 흘겨본다. 대심문관은 ’카톨릭 교회의 화신이며, 그리스도의 사업을 변질시켰으며 그는 사실에 있어서 마귀의 대리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반의 입을 통해서 서구 카톨릭 교회의 타락을 비판한 것이다. 

대심문관은 예수를 오히려 책망하며 그를 체포하라고 명한다. ‘이제는 모든 것이 교회의 소유이며. 이제는 제발 이곳에 찾아오지도 말며, 적어도 때가 오기 전까지는 방해하지 말아달라(p560)'고 말한다. 대심문관은 ’너희들을 자유롭게 하고 싶구나.‘라고 말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 아니었소(p560)'라고 예수를 힐난(詰難)한다. 대심문관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문제를 논하면서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자유를 우리한테 가져와서 우리 발밑에 공손히 바쳤다(p561)'고 말한다. 자유의 문제는 곧 다루게 될 것이다. 

2.돌로 떡을 만들라 

‘만일 언젠가 지상에 진정으로 청천벽력같은 기적이 일어났다면, 그날은 바로 그날은 세 가지 시험의 날 이겠지요(p562)' 광야의 시험에서 마귀는 신의 존재, 인간의 자유문제를 제기한다. 대심문관의 ’시험거부‘의 비판을 통해서 마태복음(4:3-11)을 묵상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유혹자의 편에서 광야시험의 진정한 속셈은 무엇이며, 예수님은 왜 정면으로 마귀의 제안을 거부했을까? 이것이 우리의 화두가 되어야 하겠다. 

첫 번째 시험은 ‘그 돌들을 빵으로 변화시키라(p563)'는 것이었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은 자유와 해방을 얻었지만 광야에서 굶주림에 시달려야했다. 대심문관은 예수께 ’먹여 살려라. 그리고 나서 선행을 요구하라(p564)'고 말한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친다지만 자유와 빵은 양립(兩立)이 불가하다. 두 가지를 동시에 다 가질 수 없다는 대심문관의 지적은 옳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선교의 원칙은 천상의 빵(하나님의 말씀)의 질서를 지상의 빵의 논리위에 두었다는 것이다. 빵이란 경제의 문제이다. 제1시험은 빵을 위해서 영혼의 자유(구원)을 반납할 것이냐? 자유를 위해서 굶주림(빈곤)도 감수할 것이냐? 의 문제이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영의 말씀이 경제 질서 위에 있지 못함으로 교회의 타락이 연유된 것 아닐까? 사실 오늘 날에 있어서 교회는 빵의 논리에 예속되어 있다. 빵을 확보(축복)하기위해 말씀을 이용하는 것이 아닐까? 헌금강조, 축복강조의 귀결점은 말씀의 진리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3.성전에서 뛰어 내리라 

대심문관은 예수가 ‘인간의 자유를 지배하기는커녕 그 자유를 배가시켜 인간의 정신적 왕국에 영원히 고통을 안겨주지 않았소(p568)’라고 말한다. 모리교수는 르네상스의 에라스무스, 서구 근대화의 아버지 데카르트, 그리고 인본주의자들이 진정으로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고 했다. 카톨릭 교회도 예수의 해방을 왜곡시켜 영혼들을 교회 제도의 포로로 삼았다. 이처럼 도스토예프스키는 서구교회와 무신론적 인본주의사상을 이반의 입을 통해, 이반은 심문관의 입으로 비판하고 있다. 진정한 자유는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 속에서 볼 수 있다.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와 섬김의 자유를 논하고 있다. ‘유럽인상기’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서구문명을 부정적으로 보았고, 카톨릭 교회를 비판적으로 보았다. 교권아래서, 차디찬 이성아래서 인간은 진정으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들의 양심을 영원히 지배하고 사로잡을 강력한 세 가지 힘이 지상에 존재하오. 그 힘은 다름 아닌 기적과 신비와 교권이오(p569)'라고 대심문관은 말하면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제안도 거절했다고 예수를 비난한다. 다음의 말은 제2시험의 의미를 묵상하게 해준다. ’그 때 당신은 한 걸음만 앞으로 내디뎠더라도 당신은 곧 바로 하느님을 시험한 것이 되어 그 분에 대한 모든 믿음을 잃고 당신이 구원하러온 그 대지와 충돌하여 당신을 시험하던 지혜로운 악마를 기쁘게 했으리란 것을 알고 있소?(p570)' 대심문관의 물음에 대해 그리스도는 ‘온순한 눈으로 심문관을 뚫어질 듯 쳐다본다(p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