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대형마트 찾아 사고 먹고 즐기고… 인터넷으론 주문 클릭 클릭 도시의 현대인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국내 도시 가구의 한 달 평균 소비 지출액은 210만 원(2006년 기준)이다. 이 중 △25.7%는 식료품비 △17.5%는 교통통신비 △11.8%는 교육비 △5.3%는 피복신발비 △5.1%는 보건의료비 △4.8%는 교양오락비 △3.5%가 주거비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지갑이 가장 많이 열리는 장소는 어디일까? 국내에 있는 백화점은 2004년 기준으로 87개였다. 이들 백화점은 일년에 약 9조94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2005년에는 백화점이 80여 개로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대형마트의 성장’이라는 요인을 무시하기 어렵다. 휴일 오후나 늦은 저녁에 온 가족이 쇼핑카트를 밀고 계산대로 향하는 대형마트의 쇼핑 문화가 백화점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한 것이다. 대형마트는 1990년대에 처음 한국에 도입되어 전국 300여 개의 매장을 가지고 백화점 매출을 앞지르고 있다. 대형마트의 성장으로 다급해진 것은 백화점보다 재래시장이다. 대형마트의 성장으로 2020년경이면 재래시장이 없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까지 제정해서 경쟁력을 높이려고 하지만 재래시장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사람들이 재래시장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더 많이 찾는 것은 현대인의 바쁜 생활패턴 때문이다. 가족 모두 정해진 시간 속에서 규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현대인에게 쇼핑은 일상적인 업무와 같다. 그러니 가까우면서도 효율적인 공간에서 필요한 것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요즘 새로 만들어지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쇼핑공간이라는 의미 외에도 영화를 볼 수 있는 문화 공간, 문화센터를 통한 학습 공간, 여러 음식점이 한데 모인 외식 공간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복합공간이 되고 있다. 단순한 쇼핑(shopping) 공간이 아니라 ‘사고 먹고 즐기는’ 복합 활동이 가능한 몰링(malling·대형 몰에서 장시간 머물며 쇼핑, 식사, 영화, 엔터테인먼트 등을 즐기는 것) 공간이 되면서, 물건을 사고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간을 사고팔게 된 것이다. 거대한 자본이 쇼핑 공간을 잠식하면서 가능해진 현상이다. 앞으로 재래시장의 위상은 점점 더 약화되고, 복합쇼핑몰 안에 들어 있는 업종과 경쟁하는 지역 내 소점포들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소비 트렌드의 변화는 어쩌면 소비자의 자발적인 변화라기보다는 거대한 자본에 의한 수동적인 변화인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사람들에게 새롭게 각광받는 또 다른 쇼핑처는 바로 텔레비전 홈쇼핑이다. 2004년 3조 원 시장을 형성하면서 무풍가도를 달리던 TV 홈쇼핑은 최근 들어 인터넷 쇼핑에 밀리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아직 수그러들지 않았다. 2000년 한 설문조사에서 선호하는 TV 프로그램을 묻자 3.0%만이 TV 홈쇼핑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2004년에는 4.1%로 나타나서 TV 홈쇼핑에 대한 호감도가 한층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홈쇼핑보다 인터넷 쇼핑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 2006년 12월 말 기준으로 인터넷 쇼핑몰 사업체는 4531개였고, 거래액은 13조4596억 원에 달했다. 2005년과 비교하면 26.1%나 성장한 수치였다. 인터넷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크게 성장한 것이 택배업이다. TV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을 통해 구입한 물건의 85% 이상이 택배를 통해 배달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이 물건을 사기 위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사람에게로 이동하는 쇼핑의 세계에 살고 있다. 미국의 한 할머니는 유언으로, 자신의 시신을 화장한 후 블루밍데일 백화점에 뿌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자식들을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TV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에 빠진 자녀를 가진 한국 부모들에게는 조금 다른 유언이 필요할 듯싶다. 예컨대 리모컨이나 마우스 옆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그나마 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전혀 새로운 쇼핑 장소가 곧 나타날지도 모른다. 무엇을 예측하겠는가? 구정화 경인교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