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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수업 중에 가끔 학생들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진다. 데카르트(Descartes)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

은바리라이프 2011. 8. 15. 16:05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수업 중에 가끔 학생들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진다. 데카르트(Descartes)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여러분은 과연 무슨 말을 남길 것인가? 이렇게 묻고는 칠판에 “나는 (    )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대문짝만하게 쓰고, 괄호를 채워보라고 주문한다. 
이 낯선 요구 앞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게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습관처럼 떠밀려 살다가 문득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양 잠시 멈추어 서서, 나는 누구인가, 어떤 일을 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가, 나의 존재가 반짝반짝 빛이 날 때는 언제인가 등등을 반성해 보려니, 새삼 머리에 쥐가 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웅성거림도 잠시, 학생들 입에서 재기발랄한 명언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 가운데 “나는 취업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비장한 명제에 대해서는 격려의 박수가 이어진다. “나는 연애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달콤한 명제는 야유와 질투가 동시에 버무려진 함성을 자아낸다. 힙합풍으로 차려입은 폭주족 출신의 남학생이 “나는 질주한다, 고로 존재한다. 오~예”하고 멋지게 선언하자, 강의실은 급기야 환호의 도가니로 변한다. 하지만 가장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은 명제는 단연 이것이었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하루라도 무언가를 사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소비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생활양식을 이보다 더 절묘하게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우리는 더 이상 근검절약이 미덕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다. 어딜 보나, 어딜 가나, 우리의 혼을 쏙 빼놓는 현란한 상품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 상품들은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절기마다 새 옷을 갈아입고서 불필요한 소비를 자극하고 유혹한다. 연령별 유행에 걸맞는 상품들로 몸을 치장하지 않으면, 괜한 소외감이 들고 도태되는 느낌이니, 카드빚을 내서라도 일단 사고 보자는 심리가 팽배하게 된다. TV와 인터넷, 각종 신문과 잡지들이 모두 한통속이 되어 ‘구매하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거짓 복음으로 맹공격을 퍼붓고 있어,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얼마만큼 돈을 쓸 수 있느냐가 곧 그 사람의 신분과 지위를 말해주는 척도처럼 되어 버린 오늘날,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의 전 생애는 소비에 중독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적당한 소비는 경제가 돌아가게 하는 밑거름이고, 개인에게도 어느 정도 만족감과 행복감을 안겨준다. 너무나 갖고 싶었던 물건을 드디어 사게 되었을 때, 그것을 만져보고 쓸어보며 느끼는 뿌듯함이란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 물건을 애지중지 귀하게 여기며 평생 아끼고 고쳐가면서 사용하는 일은 기특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적당함의 선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있으면서도 또 사고, 별로 필요하지 않은데도 무슨 조화인지 눈에 보이면 사고 싶어진다. 이렇게 과소비의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내가 소비의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소비가 나를 조종하고 통제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야말로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소비주의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은 그래서 만들어졌다. 지난 1992년 캐나다의 광고업자 테드 데이브(Ted Dave)는 11월 말부터 서구인들이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는 본격적인 소비를 시작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 날을 제안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하루라도 소비를 하지 말자는 의도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이제 물건을 사기 전에 그 물건이 제3세계 가난한 어린이들의 노동력 착취로 생산된 것은 아닌지, 환경 파괴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나에게 정작 필요한 물건인지 등을 고려하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한마디로 ‘지속 가능한 소비’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의미심장한 계기가 된 것이다. 
소비사회에서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건 고문이고 고통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발적 고난을 달게 받고 스스로 절제훈련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맘몬(mammon)의 우상신(神)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11월 26일만이 아니라, 한 달에 하루 또는 매주 하루를 ‘녹색 휴일’ (green-holiday)로 정해서 일체의 소비로부터 자유 해보자.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내 영혼이 잘 되고 지구가 살아나는 길이니 어찌 핑계 대며 뒤로 뺄 것인가? 소비주의의 노예살이에서 출애굽 하는 길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구미정: 대구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