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 사살 작전명 ‘제로니모’… 기획서 수장까지 드러난 실체
여동생 DNA 샘플로 신원 확인… 미 당국 “빈 라덴과 99.9% 일치”
‘은신처 모형’ 모의실전 훈련… 사살 12시간 만에 일사천리 수장
경향신문 | 조홍민 기자 | 입력 2011.05.04 03:03
인포그래픽 | 성덕환·박지선 기자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의 실체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자를 통해 빈 라덴의 소재지에 대한 단서를 입수했으며, 그의 연락책이 은신처 부근에서 전화를 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꼬리가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미공군기지에 그의 집과 똑같은 모형을 만들고 수개월간 모의 실전훈련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이 빈 라덴을 10년 만에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정보 수집과 끈질긴 추적, 치밀한 작전의 결과였던 셈이다.
◇ 북부 아라비아 해역서 수장 = 빈 라덴의 시신이 수장(水葬)된 곳은 아라비아해 북부 해역이었으며, 이슬람식 종교의식으로 치러졌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그의 시신은 아라비아해 북부 해역에 취역 중이던 항공모함 칼 빈슨으로 옮겨졌으며, 장례절차는 2일 오전 10시10분(현지시간) 시작돼 50여분 만에 끝났다. 씻겨진 빈 라덴의 시신을 하얀 천에 놓은 뒤 시신수습용 자루에 담아 바다에 던졌다. 시신수습용 자루에는 사체가 물에 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거운 추를 매달았다. 미군 관계자가 이슬람교 의식에 따른 장례절차를 진행하고, 현지인에 의해 아랍어로 통역됐다.
◇ '관타나모 증언'이 결정적 단서 = 9·11 테러 직후 미 당국은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포로 2명으로부터 빈 라덴의 측근이자 연락책의 정보를 손에 넣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가명 정도만 파악했으나 2007년 본명을 입수했고, 지난해 8월에는 그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CNN은 3일 "연락책은 쿠웨이트 출신으로, 본명이 아부 아마드"라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거주지가 파악된 것은 그가 은신처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부주의한 통화를 하게 된 것이 계기다. AP는 소식통의 말을 인용, "이 연락책이 지난해 중반 미 정보당국이 정밀 감시해오던 인물과 통화를 하면서 위치추적을 당하게 됐다"고 전했다.
미 당국은 그가 거주한 곳이 산악지방이나 동굴이 아닌 이슬라마바드에서 100㎞ 떨어진 부유한 교외지역이란 점에 주목했다. 부근의 다른 집들에 비해 8배나 넓고 삼엄한 경계시설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미 정보당국은 100만달러 이상 가는 3층짜리 호화주택이 중요한 인물, 즉 빈 라덴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은신처란 결론을 내렸다.
◇ 총 쏘며 격렬히 저항 = 빈 라덴은 미군이 덮치자 마지막 순간까지 직접 AK47 자동소총을 쏘며 격렬히 저항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3일 보도했다. 그러나 빈 라덴은 결국 미 특수부대가 발사한 총에 왼쪽 눈을 맞고 쓰러졌고, 그때 두개골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특수부대는 쓰러진 빈 라덴을 향해 연달아 총을 두 차례 쏘면서 확인사살을 했다. 미 ABC 방송은 미국의 이번 작전명이 전설적인 인디언 아파치족 추장의 이름을 빗대 '제로니모(Geronimo)'였다고 밝혔다.
영국 BBC방송은 3일 파키스탄 정보국(ISI) 관리의 말을 인용, "작전 당시 빈 라덴의 은거지에는 17~18명이 있었으며, 빈 라덴의 아들로 보이는 한 어린아이를 생포해 데리고 갔다"고 보도했다. BBC는 또 "(작전 직후) 살아남은 빈 라덴의 부인 한 명과 딸, 다른 아이들 8~9명이 손이 묶인 채 있었다"면서 "12~13세쯤 돼 보이는 빈 라덴의 딸은 그의 아버지가 총에 맞는 것을 지켜봤다"고 전했다.
◇ 여동생 DNA 샘플로 확인 = 미 당국이 빈 라덴 사살 후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의 여동생 DNA 샘플이 동원된 것으로 밝혀졌다. 미 ABC방송은 "빈 라덴의 시신을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DNA 조회를 통해 그의 신원이 빈 라덴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지난해 보스턴에서 뇌종양으로 숨진 여동생의 DNA를 미 정보당국이 확보해놓았다"고 전했다. AP는 2일 이와 관련해 두 명의 미 행정부 당국자가 여동생의 DNA와 대조한 결과 빈 라덴의 것과 99.9% 일치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 조홍민 기자 >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의 실체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자를 통해 빈 라덴의 소재지에 대한 단서를 입수했으며, 그의 연락책이 은신처 부근에서 전화를 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꼬리가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미공군기지에 그의 집과 똑같은 모형을 만들고 수개월간 모의 실전훈련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이 빈 라덴을 10년 만에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정보 수집과 끈질긴 추적, 치밀한 작전의 결과였던 셈이다.
◇ '관타나모 증언'이 결정적 단서 = 9·11 테러 직후 미 당국은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포로 2명으로부터 빈 라덴의 측근이자 연락책의 정보를 손에 넣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가명 정도만 파악했으나 2007년 본명을 입수했고, 지난해 8월에는 그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CNN은 3일 "연락책은 쿠웨이트 출신으로, 본명이 아부 아마드"라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거주지가 파악된 것은 그가 은신처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부주의한 통화를 하게 된 것이 계기다. AP는 소식통의 말을 인용, "이 연락책이 지난해 중반 미 정보당국이 정밀 감시해오던 인물과 통화를 하면서 위치추적을 당하게 됐다"고 전했다.
미 당국은 그가 거주한 곳이 산악지방이나 동굴이 아닌 이슬라마바드에서 100㎞ 떨어진 부유한 교외지역이란 점에 주목했다. 부근의 다른 집들에 비해 8배나 넓고 삼엄한 경계시설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미 정보당국은 100만달러 이상 가는 3층짜리 호화주택이 중요한 인물, 즉 빈 라덴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은신처란 결론을 내렸다.
◇ 총 쏘며 격렬히 저항 = 빈 라덴은 미군이 덮치자 마지막 순간까지 직접 AK47 자동소총을 쏘며 격렬히 저항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3일 보도했다. 그러나 빈 라덴은 결국 미 특수부대가 발사한 총에 왼쪽 눈을 맞고 쓰러졌고, 그때 두개골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특수부대는 쓰러진 빈 라덴을 향해 연달아 총을 두 차례 쏘면서 확인사살을 했다. 미 ABC 방송은 미국의 이번 작전명이 전설적인 인디언 아파치족 추장의 이름을 빗대 '제로니모(Geronimo)'였다고 밝혔다.
영국 BBC방송은 3일 파키스탄 정보국(ISI) 관리의 말을 인용, "작전 당시 빈 라덴의 은거지에는 17~18명이 있었으며, 빈 라덴의 아들로 보이는 한 어린아이를 생포해 데리고 갔다"고 보도했다. BBC는 또 "(작전 직후) 살아남은 빈 라덴의 부인 한 명과 딸, 다른 아이들 8~9명이 손이 묶인 채 있었다"면서 "12~13세쯤 돼 보이는 빈 라덴의 딸은 그의 아버지가 총에 맞는 것을 지켜봤다"고 전했다.
◇ 여동생 DNA 샘플로 확인 = 미 당국이 빈 라덴 사살 후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의 여동생 DNA 샘플이 동원된 것으로 밝혀졌다. 미 ABC방송은 "빈 라덴의 시신을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DNA 조회를 통해 그의 신원이 빈 라덴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지난해 보스턴에서 뇌종양으로 숨진 여동생의 DNA를 미 정보당국이 확보해놓았다"고 전했다. AP는 2일 이와 관련해 두 명의 미 행정부 당국자가 여동생의 DNA와 대조한 결과 빈 라덴의 것과 99.9% 일치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 조홍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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