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인 단서는 부주의한 전화 한 통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심복이 수화기를 드는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보스의 현관으로 미 정보당국을 끌어들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수년간 빈 라덴 최측근의 동향을 감시해 왔다. 미국 입장에서는 그가 빈 라덴의 정보를 끄집어낼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해 8월, 마침내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지를 따라가니 파키스탄 북동쪽에 있는 담장 높은 한 가옥이었다. 빈 라덴은 이곳에서 최후를 맞았다.
CIA가 빈 라덴을 추적한 것은 9·11 테러가 나기도 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 완벽하게 숨어 있었다. 전화도 인터넷도 사용하지 않았다. 도청이 불가능했다.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연결해주는 사람을 찾아라.’ 작전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CIA는 9·11 테러 용의자로 수감 중이던 알카에다 3인자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 등을 타깃으로 삼았다. 이들에게 혹독한 물고문을 한 결과 겨우 빈 라덴 심복의 별명을 알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별명일 뿐 실명을 알아내는 데도 수년이 걸렸다. 2007년이었다. 본명은 알았지만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지난해 8월, 빈 라덴의 심복은 CIA가 모니터링해 오던 인물과 부주의하게 전화 통화를 했고 이것이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고 AP통신이 2일 보도했다.
추적을 하던 미국은 깜짝 놀랐다. 은신처가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가 아닌 부유한 교외지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빈 라덴 주변에 늘 무장된 군인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집 주변에는 순찰을 도는 이조차 없었다. 허를 찔린 것이다.
빈 라덴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만약 미국이 공격했는데 빈 라덴이 없다면 중요한 외교적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상황이었다.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담당 보좌관은 “대통령은 은신처 정보를 신뢰했고 결정을 내렸다. 나는 이것이 최근 미국 역사상 가장 대담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AP통신에 말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