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으로 100년 됩니다”… 우리말성경, 인고 끝에 탄생 교회와 함께 부흥 1세기 견인
[2011.01.02 19:17] | |
2011년은 한국교회사적으로 봤을 때 의미 있는 해다. 50∼110년 전 민족운동과 성경 출간, 신학교 개교 등 역사적 사건이 많았던 것이다. 100년 전인 1911년 기독교인이 주축이 돼 민족해방운동을 벌인 ‘105인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일본 총독부는 서북지방의 기독교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설날 신민회 회원 600여명을 검거한 뒤 모진 고문을 자행했으며, 이 중 105명을 기소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기독교가 일제와 사사건건 부딪쳤던 것은 하나님과 천황이라는 절대가치가 충돌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최초의 순수 우리말 성경인 ‘성경젼셔’가 발간됐다. 레이놀즈, 게일 언더우드 선교사 등은 전도와 심방, 신학교 운영 등 과중한 선교 업무를 맡고 있었지만 10년간의 헌신 끝에 2650쪽짜리 ‘구약젼셔’를 완성해 1900년 발간된 ‘신약젼셔’와 함께 ‘성경젼셔’로 출시했다. “성경 번역은 마치 파나마 운하를 하나 파는 것과 맞먹는 일”이라고 했던 게일 선교사의 말처럼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선교사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한국교회는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신학교인 서울신대도 100년 전 성경 교육과 전도자 육성을 목표로 서울 무교동에서 성서학원이라는 이름으로 개교했다. 복음주의 기독교대학을 표방하며 지금까지 1만5000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한 서울신대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제2의 창학을 목표로 기념관 건립, 국제학술세미나 개최, 이명직 전집 발간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110년 전인 1901년엔 한국 최초의 장로교 신학교인 평양신학교가 설립됐다. 사무엘 오스틴 마펫(한국명 마포삼열, 1864∼1939) 선교사는 김종섭 방기창을 데리고 평양 대동문 옆 자택에서 신학교를 운영했는데 이것이 훗날 예장 통합 측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예장 합동 측 총신대학교로 성장했다. 같은 해 미국 남북장로교, 호주 캐나다 선교회 소속 25명의 선교사와 한국인 장로들로 구성된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가 조직됐다. 이것은 한국에 노회와 총회가 조직되기 전 한국장로교회를 관장하는 최초이자 최고의 행정기구였다. 90년 전인 1921년에는 기독청장년면려회(CE)가 안동읍교회에서 창립됐다. CE는 교회 청년과 장년으로 구성되며, 개혁주의 신앙에 따른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한다.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합동 개혁교단에서 활동 중에 있다. 60년 전인 51년에는 국군중앙교회가 대구 육군본부 장교식당에서 창립예배를 드렸다. 교회는 91년 서울 용산으로 옮겼으며, 이등병부터 장군까지 1300여명의 성도가 여기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의료 선교 구제 사업을 펼친다’는 목적 아래 장기려 박사를 초대 원장으로 했던 부산복음의원(현 고신대 복음병원)도 이때 세워졌다. 50년 전인 61년엔 성결교가 연합기관 탈퇴 문제로 기성과 예성으로 갈라지는 아픔을 겪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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