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사도행전 자료

백과사전에서의 바리새인

은바리라이프 2010. 7. 22. 18:20

백과사전에서의 바리새인

 

 

제2성전시대(BC 515~AD 70) 후반기에 팔레스타인에서 융성했던 유대교의 한 종교 분파. 구전전승(기록되지 않은 토라)의 구속력에 대해 Sadducee 파와 입장을 달리함. 200년경 미슈나(탈무드의 첫 부분)를 편집할 때 유대법에 관한 바리사이파의 가르침을 포함시켰다. 바리사이파(히브리어로 'Perushim')는 마카베오 반란 직후인 BC 165~160년경 뚜렷한 한 집단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대체로 하시드파의 영적인 후손들로 여겨지며, 전통적으로 유대 민족지도자들을 독점 배출해온 대제사장 집단인 사두가이파와 달리 평신도와 서기관들의 집단으로 등장했다.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사이에 분열을 가져온 근본적인 원인은 토라(〈구약성서〉의 첫 5권)에 대한 태도가 각기 달랐고, 모세 시대와는 전혀 다른 당시 상황에서 일어나는 법적·종교적 문제에 대한 답변과 결정의 기초를 토라 안에서 찾는 방식 또한 각기 달랐다는 데 있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사두가이파는 토라, 즉 성문율법에 직접 기초를 두지 않은 가르침은 구속력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반면, 바리사이파는 하느님이 모세에게 준 율법은 성문법과 구전법, 즉 선지자들의 가르침(성문)과 유대 민족의 구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제사장 출신의 사두가이파는 글로 씌어진 토라만이 계시의 유일한 근원이라고 가르친 반면,

바리사이파는 율법의 발전을 인정하면서 토라를 해석하고 현실 문제에 적용할 때 인간의 이성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과 양심에 모순되면서까지 율법의 문자를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바리사이파는 토라의 가르침을 그들 자신의 사상과 조화시키거나 또는 그들의 사상이 그 토라 속에 암시 내지는 함축되어 있다고 보았다. 또한 바리사이파는 율법을 그 안에 담긴 정신에 따라 해석했다. 환경이 변해 법이 맞지 않게 되거나 소용이 없어지면 그 법에 알맞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성서해석학의 세분된 체계를 통해 그것을 정당화해줄 성서적 근거를 찾았다. 바리사이파의 토라 해석이 계속 발전하고 유대교 내에서 생명력을 유지해온 것은 그들의 이같은 진보적 성향 때문이었다.

 

바리사이파는 원래 정치적 집단이 아니라 주로 학자와 경건한 신자가 모인 집단이었다. 이들은 대중적 지지를 크게 받았고, 〈신약성서〉에서 많은 대중의 대변자로 등장한다. BC 100년경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유대교를 민주화하고 이를 성전 제사장들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오랜 투쟁을 시작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과 예루살렘을 떠나서도 하느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예배란 피의 제사(성전 제사장들이 하는 제사)가 아니라 기도와 하느님의 율법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예배장소로 성전 이외의, 성전과 분리된 회당을 많이 발달시켰다. 이렇게 회당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발달시켰고, 중요하게 만들었으며, 유대인의 종교적 삶의 중심이 되게 했기 때문에 바리사이파적 기관으로 간주할 수 있다.

 

정통 유대교의 발전상 가장 영향력 있는 운동이었던 바리사이파의 활동시기는 AD 2, 3세기까지 이어졌다. 바리사이파는 변화하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유대인의 성서해석에 융통성을 부여함으로써 유대교를 보존하고 전수했다. 교육에 기울인 노력도 그후 유대인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AD 70년 제2성전이 파괴되고 예루살렘이 멸망한 뒤 디아스포라의 오랜 세월 동안 유대교를 존속시키고 발전시켜온 것은 바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회당과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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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된 자'라는 뜻. 마카베오 전쟁 이후로 가장 강력한 종교적인 당파인데, 이들은 이스라엘이 물려받은 율법 및 선조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일상 생활의 사소한 데에 이르기까지 이 율법을 정확하게 지키려는 열정을 품고서 메시야에 대한 약속들의 성취를 인간 편에서 확보하려고 분투했다("규정되어 있는 대로 이스라엘이 두 번만 안식일을 지키면, 구원이 동터 오리라"). 바리새인들은 시험 기간을 거친 뒤에 십일조* 및 결례 규정*을 아주 엄격히 지키기로 약속하는 사람을 자기들의 공동체에 받아들였다. 이들은 모세의 율법에 적힌 것뿐만 아니라 입으로 전해 내려온 정확하고도 엄격한 적용 규칙들, 곧 '장로(=이전의 율법 스승)들의 유전'(마15:2)도 일상 생활에서 지켜야 할 것으로 여겼다.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여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었다. 바리새인들의 움직임이 처음에는 평신도 운동이었지만, 오래지 않아 이들은 서기관*계층과 긴밀히 연결되었다. 이들의 위험성은 율법적인 데에 있었는데, 이 때문에 이들은 자기들이 옳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냉혹한 엄격성을 띠었으므로 예수께서는 이러한 경건성을 사정없이 공격하실 수밖에 없었다. 바리새인들이 처음에는 백성의 지도권을 두고 사두개인들과 다투었지만, 주전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한 뒤로는 유대교 사상을 주도하고 결정하게 되었다. 관련용어 : 장로들의 유전, 율법,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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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는 분리된 자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페루쉼(perushim)'에서 나온 말.

율법에서 깨끗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분리하려는 태도에서 유래.

이 말은 마카비 시대(주전135년경)에 등장.

따라서 일반적인 바리새주의는 마카비시대(주전167-63)에 시작된 것으로 본다.

이는 바벨론 포로기 동안에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의 결과로 제사장보다 일반 유대인들, 성전보다는 회당 중심으로 펼쳐졌던 움직임이었다.

에세네, 사두개파와 3대분파로 신약시대에 가장 큰 세력, 영향력 발휘했다.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고, 산헤드린공회 일원으로 존경받았다.

율법학자, 경건한 지도자들 많았다. 바리새주의는 정통유대주의 근간이 됐다.

바리새인 되는 법.

바리새인 되려면 세명의 바리새인 앞에서 바리새 회의 규칙 준수 맹세, 1년간 예비기간,

본인은 물론 가족도 회원 취급.

규칙: 회원 아닌 자와 식사 안 함, 회원 아닌 제사장에겐 십일조 안 냄, 일주일에 두 번, 월, 목요일에 금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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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란 '분리된 자'라는 의미로 사두개파, 에세네파와 함께 유대인의 3대 분파 중 하나였습니

다.

바리새파의 특징은 신약 시대에 가장 크고, 영향력이 강했던 분파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형식이

나 관습을 중요시 하였고(마 23:23, 눅 18:11), 철저하게 금식을 지켰으며(눅 18:11), 특히 레위

기의 정결 의식(레 11)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노력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책망 하셨던 이유는 위에서 나타난 그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너무 외

적인 면을 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허례허식을 지적하시고, 책망하신 겁니다.

그 일례로 안식일에 죄를 치료하는 것을 죄로 여길 정도였습니다(요 9:1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