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에서 배우는 성공(4): 성경 따라 부자 되기
1991년 출간된 <미국이 진실을 말했던 날>이라는 책에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1,000만 달러(100억 원)을 준다면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 가족을 버린다. (25%)
* 교회를 버린다 (25%)
* 일주일 이상 몸을 판다. (23%)
*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다. (16%)
* 연인이나 배우자를 떠난다. (16%)
* 입을 다물어서 살인자가 풀려나게 한다. (10%)
* 낯선 사람을 죽인다. (7%)
* 성전환 수술을 한다. (4%)
* 아이들을 입양시킨다. (3%)
돈은 힘이 세다. 어떤 정치가도 어떤 언론도 어떤 종교도 평범한 사람들을 이처럼 움직일 수 없다. 돈은 가족을 버리고 사람을 죽이게 만드는 무서운 능력을 가졌다. 거짓 권위들이 우르르 무너지는 먼지 틈에서도 돈의 위력은 여전하다. 아니 점점 더 강해지는 듯 하다. 도덕보다 당당하고 원칙보다 단단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에게 돈은 인생의 목표이고, 성공의 척도이고, 자유의 다른 이름이고, 안전을 보장하는 주문이고, 존경의 이유이며, 힘의 근원이고, 행복의 열쇠다. TV가 가라사대 "행복은 소유에서 오며 소유는 돈으로 말미암는다. 이 행복한 미소를 보라. 초라한 너와 비교하라. 어서 오라. 지갑을 열라. 없으면 빌려라. 없으면 벌어라. " 손짓한다.
이런 모습에 질린 사람들 중에는 돈의 존재나 필요 자체를 극단적으로 부인하는 경우도 있다. 학처럼 고고한 말로 자신을 포장하면서, 땀 흘리며 살아가는 최소한의 노력은 소홀히 하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돈의 종이 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 돈은 필요하다. 여러 가지로 쓸모 있는 도구다. 때로는 사람을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한다. (전 10:9, 잠 13:8)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가? 거듭난 다음부터 돈 없이도 살 수 있는가? 쌀을 사려면, 차를 타려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면 여전히 돈이 필요하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 (요일 2:15)"는 명령을 듣지만 돈에 대해서는 왠지 자신이 없다.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를 노래하지만 '믿음만으로는 못 살아요. 하나님 나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르겠다. 사실 아브라함도 부자였다. 다윗도 솔로몬도 욥도 부자였다. 할 수만 있다면 부자가 되어 헌금도 많이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게 좋은 것 아닐까?'
우리는 복음을 듣거나 교리를 연구할 때와 마찬가지로 돈을 벌고 부자가 되는 일에 있어서도 성경을 따라야 한다. 성경이 이 문제에 침묵할 리 없다. 부자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일까?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은 그래서 잠언을 주셨다.
(1) 하나님의 셈 법부터 배운다.
"사람의 길이 자기 눈에는 모두 옳게 보여도 주는 마음을 살피시느니라. "(잠언 21:2; 이하 흠정역)
모든 공부에는 기초 과정이 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돈을 벌고 싶다면 우선 하나님의 눈에 따라 돈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셈법은 사람의 셈법과 다르다.
만원이 천만 원보다 많을 수 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 사람은 물질의 크기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크기를 보신다. 하나님의 눈에 액수는 의미가 없다. 돈이 많다고 복 많은 사람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더 경건한 사람도 아니다. 솔로몬의 화려함도 들의 백합꽃보다 못하다. 부자든 가난하든 지나치면 범죄할 위험에 처하기는 마찬가지다. (삼상 16:7, 눅 16:15, 잠 24:12, 시 7:9, 막 12:41-44, 마 6:28-29, 히 4:13, 잠 30:7-9)
돈은 악의 뿌리가 아니다. 돈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돈이 목적이 되고 돈에 의지하는 것이 문제다. 돈 때문에 염려하다가 종이 되는 것이 문제고 재물이 늘어나면 성공하는 것이라는 착각이 문제다. (딤전 6:6-19, 눅 12:15)
돈 다루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한다. 돈에 대한 태도를 보고 다른 것에 대한 태도를 잴 수 있다. 돈 앞에서는 모든 위선이 벗겨지기 마련이다.
"지극히 적은 것에 신실한 자는 많은 것에도 신실하고 지극히 적은 것에 불의한 자는 많은 것에도 불의하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만일 불의한 맘몬에 신실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재물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눅 16:10-11)
우리는 돈을 지극히 큰 것이라 여기지만 주님은 '지극히 적은 것'이라고 부르셨다. 우리는 돈에 신실해야 한다. 그래야 더 큰 것을 맡을 수 있다. 지갑이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것에서도 회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 관계는 정확해야 한다. 돈을 벌어 성실하게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아야 한다. 위대한 사도 바울도 천막을 만들며 일했다. (고전 4:1-2, 딤전 5:17-18, 딤전 5:8, 살후 3:10, 행 18:1-3)
돈을 지키기에 앞서 마음을 지켜야 한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온다. (잠 4:23)
(2) 부자를 꿈꾸면 부자가 될 수 없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네 자신의 지혜를 버릴지니라." (잠 23:4)
성경은 땀 흘려 일하라고 한다. 그러나 부자가 되기 위해 땀 흘리지는 말라고 한다. 돈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수단이 목적으로 둔갑하는 순간부터 불행이 시작된다.
"지혜는 루비보다 귀하니 네가 바라는 모든 것도 그것에 비교할 수 없도다. 지혜의 오른손에는 장수(長壽)가 있고 지혜의 왼손에는 부와 명예가 있나니" (잠 3:15-16)
돈은 지혜의 길에서 덤으로 얻는 것이다. 솔로몬이 부귀영화를 얻은 것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기 때문이다. (왕상 3:11-13) 재물은 따라 오는 것이지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돈을 오래 쳐다보는 순간부터 사람은 변한다. 악한 눈이 생긴다. 모든 것에서 '이익'을 계산하기 시작한다. 사람도 재력과 머릿수로 셈한다. 탐욕이 꿈틀거린다. 염려와 근심이 그의 영혼을 찌르기 시작한다. 평안이 사라지고 불면의 밤이 시작된다. 믿음과 원칙을 버리고 타협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돈이 필요하다'가 '돈을 원한다'로 바뀐다. 돈에 집착하고 돈을 사랑한다. 세상 모든 악이 자라기 시작한다. 자기 집 식구들을 괴롭게 만든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고 이용한다. 작은 유산이라도 있으면 상속 받으려고 무리한 짓을 한다. 온갖 덫에 걸려 허우적댄다. 이제 돈은 신(神)이고 그는 노예다. 하지만 그렇게 충성해도 돈은 잡히지 않는다. 잠시 성공한 듯 보여도 결국 다 잃어버린다. 기다리던 재물은 오지 않고 대신 궁핍이 온다. 결국 파멸과 멸망에 이른다. (잠 1:19, 14:12, 15:27, 20:21, 21:5-7, 22:16, 23:4-5, 28:22, 딤전 6:5-19, 롬 16:18)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도 다 이러하여 그 이익이 그 소유자의 생명을 앗아가느니라." (잠 1:19)
이런 슬픈 예가 얼마나 많은가? 어떤 사람들은 송구스런 친절을 베푼 뒤에 팔 물건을 내민다. 그들에게 모든 사람은 '잠재 고객'이고 모든 관계는 '인맥 관리'다. 반응이 없는 사람은 버린다. 투자대비효과(ROI)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모두들 아무리 돈을 벌어도 자신만큼은 다를 거라고 한다. 그러나 부자가 되려고 매달린다면 예외는 없다.
"자기 땅을 가는 자는 빵이 많을 것이나 헛된 자들을 따르는 자는 궁핍이 넘치리라. 신실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자가 되려고 하는 자는 무죄하지 아니하리라." (잠 28:19-20)
참된 지혜를 추구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서 성실한 것이 먼저다. 부는 그 다음 이야기다.
무엇보다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만족에 있다. (히 13:5, 딤전 6:6-8) 잠언은 오히려 가난한 날의 행복을 더 많이 말한다. 돈이 많고 골치 아픈 인생보다 가난해도(적게 가져도) 주를 두려워하고, 사랑이 있고, 의가 있고, 좋은 아내(남편)가 있고, 평안하고, 성실하고, 정직한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잠 15:16-17, 16:8, 19:1, 28:6, 전 4:6) 부자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법을 어기고 돈을 번 부자는 더더욱 그렇다. (시 49:16-17, 출 20:17, 잠 23:17-18, 24:1, 24:19-22)
부자였던 솔로몬이 부자의 위험을 경고한다. 부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하나님을 잊고 산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여기며 교만하다. 돈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전 5:12, 잠 28:11, 18:11-12, 30:7-9) 예수님은 부자는 구원 받기가 아주 힘들다는 경고까지 하신다. (막 10:25)
모든 것은 탐욕 때문이다. 탐욕이 우리를 망친다. 십계명의 첫째 계명은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이고 마지막 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이다. 하지만 이 두 계명은 다른 것이 아니다. 탐심이 곧 우상 숭배이기 때문이다. (골 3:5) 탐심은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두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마 6:24) 돈을 사랑하고 탐내는 순간 돈은 신이 되고 우리는 종이 되어 하나님을 거역한다. 아간이 그랬고 발람이 그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랬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수 7:1-26, 행 5:1-11, 유 1:11, 계 2:14)
어떤 그리스도인이 집이 안 팔려 고민하고 있었다. 백방으로 뛰어다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집이 팔리게 해주시면 1/10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거였다. 기도를 마치기 무섭게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문을 두드렸다. 갑자기 하나님께 돈 드리는 게 아까워졌다. 집을 사겠다는 사람에게 재빨리 말했다.
"집을 선생님에게 팔겠습니다. 대신 이렇게 합시다. 집 값은 1,000만원으로 계산하고 마당에 있는 나무를 9,000만원에 합시다. 어차피 선생님에게 1억은 마찬가지 아닙니까?"
탐욕은 끝이 없다. 마치 지옥처럼 아무리 넣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보아도 들어도 만족이 없다. (잠 27:20, 전 1:8, 5:10) 전세만 면하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이 채워지면 18평 아파트를 원하는 '소박한 꿈'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 다음엔 32평 아파트의 '목표'가 오고 그 다음엔 64평의 '비전'이 온다.
하지만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만족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모든 것이 있고 풍부하다고 말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이 차디찬 감옥에서 나왔다. (빌 4:11-18)
당대에 가장 부자였던 욥은 그 모든 것을 잃은 순간에도 "내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또한 벌거벗은 채 그리로 돌아가리라. 주신 이도 주시요, 가져가신 이도 주시니 주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어다"라고 말했다. 범죄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욥 1:3, 1:21-22)
다윗도 만족했다. 모든 것을 다 가져서가 아니다. 주님이 그의 목자라는 그 사실 하나 때문이었다. (시 23:1)
돈에 관해서라면 두 가지 길 밖에 없다. 돈을 종으로 부리든가 돈의 종으로 살든가 둘 중 하나다.
(3) 돈 버는 일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한다.
"겸손히 행하고 주를 두려워하면 재물과 명예와 생명이 오느니라. 네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네 행로(行路)들을 지도하시리라. 네 눈으로 보기에 지혜롭게 되지 말지어다..." (잠언 22:4, 3:6-7)
하나님은 주일에만 살아계시고 예배당에만 갇혀 지내시는 분이 아니다. (왕상 8:27) 믿음에 따라 돈을 벌고 싶다면 재테크의 길에서도 그분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은 마치 이 세상에 하나님의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구분되는 것처럼 착각한다. 모든 것은 다 그분의 것이다. (롬 11:36, 골 1:16-17, 고후 8:9)
아빠 엄마에게 물건을 감춘다면서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고 '없어요'를 외치는 꼬마를 본 적이 있는가? 다 큰 어른들이 꼭 그 아이와 같다. 배 바닥에 있으면 하나님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 요나 같다. (욘 1:5) 하지만 주의 눈은 어느 곳에나 계시다. (잠 15:3)
"주의 복이 사람을 부하게 하나니..." (잠언 10:22)
돈도 부자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햇빛과 물은 하나님이 주시고 (행 14:16-17) 돈은 사장님이나 거래처에서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 조지 뮬러(1805~1898)를 생각해보자. 그는 외로운 고아들을 돌보고 하나님 앞에 이끄는 일을 하면서 재정 문제를 모두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심했다. 어려움과 필요를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기로 했다. 후원회를 만들고 외부 홍보를 하라는 '상식적인' 충고도 거절했다.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면 그는 사람들을 찾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대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말씀 드렸다.
그는 평생 동안 1만명 가까운 고아들을 돌보고 수많은 선교사들을 돕고 성경과 전도지를 세계 곳곳에 보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위해 돈을 주셨는가? 물론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총 750만 불을 주셨다. 지금의 화폐가치로 따지면 무려 4,000만불 (400억 원)이 넘는 액수다. 조지 뮬러는 특별한 사람일까? 하나님이 그 사람만 유별나게 돈으로 돌봐주신 것일까?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분들은 '나는 뮬러씨가 가진 믿음의 은사를 결코 갖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건 잘못된 말입니다. 타당성이 전혀 없는 아주 큰 오해입니다. 제가 가진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은혜이지 은사가 아닙니다. 제 믿음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진 믿음과 똑같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가졌던 것이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것입니다. 제 믿음이 곧 그들의 믿음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제 믿음은 훈련을 통해서 조금씩 발전해 왔다는 것뿐입니다."
그는 마태복음 6장 25-34절을 그대로 믿고 실천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믿음은 가능성을 애처롭게 붙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확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조지 뮬러의 하나님이 지금 우리도 돌보신다. 이름 없는 새와 들풀을 돌보시며 그보다 소중한 우리도 돌보신다. 목숨까지 버리시는 사랑으로 돌보신다.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이 위에서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 (약 1:17)
(4) 부자가 되는 원칙을 지킨다.
"게으른 자의 혼(魂)은 원하여도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혼은 풍부하게 되느니라." (잠 13:4)
성경은 분명히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돈을 목표로 하지 않고도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부를 쌓을 수 있는 방법은 제시하고 있다. 인생의 다른 법칙들이 그렇듯 문제는 부자 되는 법칙 역시 이해가 어려운 게 아니라 실천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돈을 모으는 방법은 단순하다. 버는 것보다 덜 쓰면 된다."
유명한 재테크 책에 나오는 말이다. 허무하기까지 한 이 말을 듣고도 실천이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조급하고 탐욕스럽다. 먼저 사고 먼저 쓰는 사람은 궁핍해진다. 세상에 부자가 흔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이 때문이다.
진리는 단순하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더 잘 이해한다. 구원의 문제에서 놀라운 표적이나 엄청난 지혜를 기대하던 사람들에게 단순한 십자가(너는 죄인이다! 너는 할 수 없다! 내가 대신 짊어지겠다!)는 아주 당황스러운 대답이다. 어차피 사람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없다. 우리에게는 머리보다 어린 아이 같은 믿음과 순종이 먼저 필요하다. 무언가를 풍부하게 갖는 방법에서도 마찬가지다. (막 10:14-15, 눅 10:21, 고전 1:18-31)
잠언이 말하는,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는 부자 되는 원칙을 들어보자.
* 먼저 지혜를 구한다. (8:18-19)
* 겸손히 행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며 신뢰한다. (22:4, 28:25)
* 재물과 소출의 첫 열매로 주님을 공경한다. (3:9-10)
* 부지런히 행한다. (10:4, 13:4, 12:24, 21:5)
* 사람들에게 후하게 베푼다. (11:25)
* 권위자들의 충고를 새겨 듣는다. (13:18)
* 정직하게 행한다. (14:11)
* 땀 흘려서 모은다. (13:11)
* 조급하게 행하지 않는다. (21:5)
* 힘들고 번거로운 일을 할 각오를 한다. (14:4)
* 자신의 전문 분야에 집중한다. 잘 모르는 재테크 유행은 피한다. (잠 28:19, 18:9, 11:28)
잠언은 또한 돈을 버는 과정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말하고 있다.
* 자기 눈에만 옳게 보이는 재테크 방법을 따르는 것 (14:12)
* 복권 등 일확천금으로 돈을 버는 것 (13:11)
* 이자 놀이로 돈을 버는 것 (28:8)
* 불법과 거짓으로 돈을 버는 것 (10:2, 11:1, 14:11, 20:17, 21:6, 22:8, 28:8)
* 급히 상속을 물려 받는 것 (20:21)
* 뇌물을 받고 부정직한 판결을 내리는 것 (17:23, 22:16)
* 보증을 서는 것 (6:1-2, 22:26)
*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것 (22:16, 약 5:1-6)
잠언은 돈을 잘 버는 것뿐 아니라 잘 관리하고 잘 쓰는 것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11:6, 21:27, 29:3) 특히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고 그들을 돌볼 것을 강조한다. (3:27-28, 11:24-26, 14:31, 19:17, 21:3)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께 빌려 드리는 것이니 그분께서 그가 베푼 것을 갚아 주시리라." (잠 19:17)
부자가 되더라도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솔로몬은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설사 다시 가져가신다 해도 우리를 향한 뜻이 있으신 것이다. (신 6:10-12, 잠 30:7-9, 계 3:17, 욥 1:21-22, 사 55:8-9)
(5) 돈에 속지 않는다.
"자기 재물을 신뢰하는 자는 넘어지려니와 의로운 자는 나뭇가지와 같아서 번성하리라. 네가 어찌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네 눈을 두려 하느냐? 이는 재물이 반드시 스스로 날개를 내어 독수리같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기 때문이니라.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잠 11:28, 23:5, 14:12)
돈은 우리를 속인다. 잠언은 돈을 가리켜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불렀다. (통장에 찍힌 숫자 만보고 '돈이 있다' 말할 때면 이 말이 아주 실감 난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뿌려진 하나님의 말씀이 가시나무 때문에 숨 막혀서 열매를 못 맺는다고 하셨다. 그 나무의 이름은 '재물의 속임수'다. (마 23:22)
곳곳에서 흘러 나오는 광고만 봐도 돈이 얼마나 우리를 속이는 지 금방 알 수 있다. 냉장고만 사면 여자는 행복해 진다. 휴대폰만 바꾸면 인생이 자유로워진다. 새 아파트가 품격 있는 인생을 보장해준다. 돈을 주면 행복을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광고 뒤에 나오는 재벌 총수의 투신자살 뉴스는 애써 외면한다. 행복한 부자는 없고 부자는 행복할 거라는 환상만 있다.
돈은 편리할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주 편리함과 행복함을 혼동한다. 그러다 돈을 엉뚱한 것에 연관 짓기 시작한다. 성공, 자유, 존경 등이 돈에 딸려 오는 듯이 말이다. 이 것이 돈의 속임수다. 모든 것을 줄 것처럼 환상을 심어 주고, 잡힐 듯 잡힐 듯 하다가 끝내 독수리처럼 날아가 버린다. 일평생 종으로 부려먹다가 버리고 가 버린다. 누군가의 말처럼 돈은 '돌고 돌면서 사람들을 돌게 만든다.' 돈은 바람이다. (전 5:16)
결정적인 잘못은 돈이 있으면 안전하다고 믿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되신 것보다 통장의 잔고에서 더 큰 안정감을 얻는다. 부자는 자신의 재물이 견고한 도시고 높은 성벽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안전은 주님께로부터 나온다. (잠 21:31, 18:10-12)
부자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기 쉽다. 그는 말한다. "나는 부자라.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지만 주님의 평가는 정반대다. "네 가련한 것과 비참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도다." (계 3:17)
부자는 또 풍족한 재물을 보며 흡족해서 말한다.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 사람들은 그를 부자라고 부르지만 주님은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신다.
"너 어리석은 자여, 이 밤에 네 혼을 요구하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눅 12:19-20)
중요한 것은 세상의 부유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부유함이다. 주님에게서 불로 단련한 금을 사서 부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 하늘의 옷을 입어야 한다. 그전까지 우리는 벌거벗은 사람이다. (눅 12:21, 계 3:18, 마 22:11-13, 롬 13:4)
언젠가 어떤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에게서 '시간이 없다는 것은 결국 돈이 없다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돈이 없기 때문에 직장에 매달리고 거절을 못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충분한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꽤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물론 시간은 값 주고 되찾는 것(엡 5:16)이기에 돈을 주면 시간을 어느 정도 절약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시키고 나는 쉬면 된다!) 하지만 이 역시 결국 돈에 속는 것이다. 돈은 자유의 열쇠나 척도가 아니다. 정말 그렇다면 재벌 총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여유 있고 자유로운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생각은 돈을 슬그머니 목표로 만들어 버린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원래 선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는 법이다.
돈으로 좋은 집을 살 수는 있지만 행복한 가정을 살 수는 없다. 컴퓨터를 살 수는 있지만 참된 지혜를 살 수는 없다. 최고급 침대를 살 수는 있지만 꿀 같은 잠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친구를 모을 수는 있지만 우정을 모을 수는 없다. 잠깐의 위기는 피할 수 있지만 지옥의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꼭 성전 문 앞에 앉아 구걸하던 환자와 같다. 매일 돈을 구한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그 이름으로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 사람들은 돈을 '원하지만'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돈에 속지 말아야 한다. (행 3:1-11)
(6) 하늘의 부자가 된다.
"부와 존귀가 내게(지혜에게) 있나니 참으로 오래 지속되는 부와 의가 내게 있도다." (잠 8:18)
재물은 영원하지 못하다. "풀의 꽃과 같이" 사라진다. (잠 27:23-24, 약 1:10) 그러나 성경은 오래 지속되는 부가 있다고 말한다. 지혜로운 투자자는 더 든든한 곳에 투자하는 법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오늘만 보고 투자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내일을 보고 끝을 본다. (마 25:1-13, 벧전 1:17)
얼마 전 가까운 분과 함께 차를 타고 서울 외곽을 지나간 적이 있다. 수십 년 동안 그 지역에 사신 분이었다. 개천과 논밭뿐이던 자리에 이제는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찼다고 했다. 어린 시절 추억을 말하면서 한 웅큼 작은 땅이라도 있었던 사람들은 제법 큰 돈을 벌었다고 했다.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도시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을 때 미래를 내다보고 하는 것이 투자다. (잠 6:6-8) 탁월한 투자자는 벌판에서 도시를 보고, 논밭에서 도로를 본다. 그들에게는 다른 눈이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그 이상이다. 미래를 뛰어 넘어 영원을 보는 위대한 투자자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머물면서도 하나님이 세우신 더 큰 도시를 기다렸다. 그래서 기꺼이 나그네가 되었다. 위대한 투자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오늘만 본다. 탁월한 투자자는 10년 뒤를 본다. 하지만 위대한 투자자는 영원을 본다. 어리석은 사람은 광야만 보고 불평한다. 탁월한 투자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다린다. 하지만 위대한 투자자는 그 모든 것들이 녹아 없어진 이후에 올 새 예루살렘을 고대하며 기쁘게 견딘다. (히 11:10-16, 계 21:2)
이 땅에 쌓은 것은 영원할 수가 없다. 땅은 사라진다. (벧후 3:8) 이 땅에 아무리 모아도 죽는 날 가지고 갈 수가 없다. 우리는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간다. 평생을 입고 살았던 몸도 놔두고 가는 판에 무엇을 더 가지고 가겠는가? (딤전 6:7, 전 5:15-16) 오직 하늘에 미리 쌓아두는 방법뿐이다. 가장 안전한 저축은 하늘에 쌓아두는 저축이며 가장 안전한 투자는 하늘에 투자하는 것이다. 땅의 부자가 아니라 하늘의 부자가 되어야 한다.
"너희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이 먹고 녹이 슬며 도둑이 들고 훔치느니라. 오직 너희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 먹지도 녹이 슬지도 않으며 도둑이 들지도 훔치지도 못하나니 이는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기 때문이라." (마 6:19-21)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 것은 돈 많이 벌어서 교회에 헌금을 많이 낸다는 식의 의미가 아니다. 무엇을 위해 인생을 사는 가에 관한 것이다. 내일에 대한 염려 때문에 돈을 섬기며 살던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만을 섬기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걱정하며 돈을 위해 산다. 내일에 대한 염려 때문에 이 땅에 재물을 쌓아둔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돌보시고 책임지신다. 사라질 이 땅에 쌓아 둘 필요가 없다. 이제 먹고 사는 고민은 내려 놓고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위해서 살 수 있다.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그분의 왕국으로 이끌기 위해서, 위대한 하나님 사랑과 의를 선포하기 위해서 살 수 있다. 그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늘의 보상을 바라고 하루 하루 땀 흘리는 것이다.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기는 묘책 따위는 없다. 절묘한 중간 지대도 없다. 세상 누구나 쌓아두는 인생을 산다. 누구는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 누구는 땅에 보물을 쌓는 다. 더불어 머리 위에 하나님의 진노도 쌓는다. (마 6:19-34, 갈 5:17, 롬 2:5)
우리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다. 주식에 빠진 사람은 자나깨나 뉴스만 본다. 부동산을 산 사람도 다르지 않다. 이 땅의 모든 것이 불완전하기에 그는 항상 불안하다. 주가가 떨어질까, 환율이 달라질까, 부동산 시세가 폭락할까, 어떤 악재가 터질지 몰라 항상 불안하다. 하늘에 투자한 사람은 하늘을 본다. 그곳은 흔들림이 없다. 언제나 찬란히 빛난다. 그래서 안심하고 편안하게 잠든다. "위에 있는 것들에 애착(愛着)을 두는" (골 3:2)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을 생각함에 있어 철저히 전략적이고 계산적이 되라고 충고하셨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하면 자기가 가진 것이 그것을 완성하기에 충분한지 먼저 앉아서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눅 14:28)
우리 앞에는 항상 두 가지 성공이 부딪힌다. 지금의 성공과 미래의 성공, 잠깐의 성공과 영원의 성공이 있다. 모세는 이 둘을 철저하게 비교했다. 이 땅의 쾌락은 잠시 지나가는 것이다. 이 세상을 누린 사람은 다음 세상에서 얻을 것이 없다. 나중에 받을 보상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세상의 보화나 왕의 진노는 두려울 게 없다. 그는 이집트를 버리고 이스라엘을 택했다. 왕궁을 떠나 노예의 편에 섰다. 쾌락을 포기하고 고난을 택했다. 땅을 포기하고 하늘에 투자했다. (히 11:24-27)
이 세상 투자에서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더 지혜롭다. 그들의 눈에는 다가 올 세상에 투자하는 것이 어리석게 보인다. (눅 16:8, 고전 3:18) 그래서 주식을 사고 부동산을 살 때 미래 가치를 계산하던 사람들이 정작 그 회사와 건물을 지탱하는 '땅'이 영원하지 못한 것은 계산하지 못한다. 망할 회사를 잘 피했다고 대견해 하면서 망할 땅을 산다. 사람들은 하루와 1년의 차이에는 예민하면서도 1년과 영원의 차이에는 둔감하다. (마 23:24) 더 오래 버틸 곳,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곳에 투자하고 그 곳에 보물을 쌓아야 한다.
이제 곧 끝이 온다. 인생의 끝이 오고 세상의 끝이 온다. 주식 시장도, 아파트 단지도, 신도시도 사라진다. 그리고 일평생 무엇을 쌓았는지 계산하는 날이 온다. 그날 이 땅에서는 따로 살았던 사람들이 다시 만난다.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서로 만나거니와 그들 모두를 만드신 이는 주시니라. 재물은 진노의 날에 유익을 끼치지 못하나 의는 사람을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잠 22:2, 11:4)
그 날에 이 땅의 재물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의로 옷 입고 영원에, 하늘에 투자한 사람만 행복한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들의 처소를 분양 받을 것이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후회도 눈물도 소용이 없다.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뿐이다. (마 22:13)
다행히, 다행히 아직은 기회가 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잠 27:1) 하늘에 투자를 시작하자.
가장 위대한 저축, 가장 위대한 투자를 시작하자. @
잠언 성공(4) 12/12
1991년 출간된 <미국이 진실을 말했던 날>이라는 책에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1,000만 달러(100억 원)을 준다면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 가족을 버린다. (25%)
* 교회를 버린다 (25%)
* 일주일 이상 몸을 판다. (23%)
*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다. (16%)
* 연인이나 배우자를 떠난다. (16%)
* 입을 다물어서 살인자가 풀려나게 한다. (10%)
* 낯선 사람을 죽인다. (7%)
* 성전환 수술을 한다. (4%)
* 아이들을 입양시킨다. (3%)
돈은 힘이 세다. 어떤 정치가도 어떤 언론도 어떤 종교도 평범한 사람들을 이처럼 움직일 수 없다. 돈은 가족을 버리고 사람을 죽이게 만드는 무서운 능력을 가졌다. 거짓 권위들이 우르르 무너지는 먼지 틈에서도 돈의 위력은 여전하다. 아니 점점 더 강해지는 듯 하다. 도덕보다 당당하고 원칙보다 단단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에게 돈은 인생의 목표이고, 성공의 척도이고, 자유의 다른 이름이고, 안전을 보장하는 주문이고, 존경의 이유이며, 힘의 근원이고, 행복의 열쇠다. TV가 가라사대 "행복은 소유에서 오며 소유는 돈으로 말미암는다. 이 행복한 미소를 보라. 초라한 너와 비교하라. 어서 오라. 지갑을 열라. 없으면 빌려라. 없으면 벌어라. " 손짓한다.
이런 모습에 질린 사람들 중에는 돈의 존재나 필요 자체를 극단적으로 부인하는 경우도 있다. 학처럼 고고한 말로 자신을 포장하면서, 땀 흘리며 살아가는 최소한의 노력은 소홀히 하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돈의 종이 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 돈은 필요하다. 여러 가지로 쓸모 있는 도구다. 때로는 사람을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한다. (전 10:9, 잠 13:8)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가? 거듭난 다음부터 돈 없이도 살 수 있는가? 쌀을 사려면, 차를 타려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면 여전히 돈이 필요하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 (요일 2:15)"는 명령을 듣지만 돈에 대해서는 왠지 자신이 없다.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를 노래하지만 '믿음만으로는 못 살아요. 하나님 나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르겠다. 사실 아브라함도 부자였다. 다윗도 솔로몬도 욥도 부자였다. 할 수만 있다면 부자가 되어 헌금도 많이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게 좋은 것 아닐까?'
우리는 복음을 듣거나 교리를 연구할 때와 마찬가지로 돈을 벌고 부자가 되는 일에 있어서도 성경을 따라야 한다. 성경이 이 문제에 침묵할 리 없다. 부자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일까?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은 그래서 잠언을 주셨다.
(1) 하나님의 셈 법부터 배운다.
"사람의 길이 자기 눈에는 모두 옳게 보여도 주는 마음을 살피시느니라. "(잠언 21:2; 이하 흠정역)
모든 공부에는 기초 과정이 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돈을 벌고 싶다면 우선 하나님의 눈에 따라 돈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셈법은 사람의 셈법과 다르다.
만원이 천만 원보다 많을 수 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 사람은 물질의 크기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크기를 보신다. 하나님의 눈에 액수는 의미가 없다. 돈이 많다고 복 많은 사람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더 경건한 사람도 아니다. 솔로몬의 화려함도 들의 백합꽃보다 못하다. 부자든 가난하든 지나치면 범죄할 위험에 처하기는 마찬가지다. (삼상 16:7, 눅 16:15, 잠 24:12, 시 7:9, 막 12:41-44, 마 6:28-29, 히 4:13, 잠 30:7-9)
돈은 악의 뿌리가 아니다. 돈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돈이 목적이 되고 돈에 의지하는 것이 문제다. 돈 때문에 염려하다가 종이 되는 것이 문제고 재물이 늘어나면 성공하는 것이라는 착각이 문제다. (딤전 6:6-19, 눅 12:15)
돈 다루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한다. 돈에 대한 태도를 보고 다른 것에 대한 태도를 잴 수 있다. 돈 앞에서는 모든 위선이 벗겨지기 마련이다.
"지극히 적은 것에 신실한 자는 많은 것에도 신실하고 지극히 적은 것에 불의한 자는 많은 것에도 불의하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만일 불의한 맘몬에 신실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재물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눅 16:10-11)
우리는 돈을 지극히 큰 것이라 여기지만 주님은 '지극히 적은 것'이라고 부르셨다. 우리는 돈에 신실해야 한다. 그래야 더 큰 것을 맡을 수 있다. 지갑이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것에서도 회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 관계는 정확해야 한다. 돈을 벌어 성실하게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아야 한다. 위대한 사도 바울도 천막을 만들며 일했다. (고전 4:1-2, 딤전 5:17-18, 딤전 5:8, 살후 3:10, 행 18:1-3)
돈을 지키기에 앞서 마음을 지켜야 한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온다. (잠 4:23)
(2) 부자를 꿈꾸면 부자가 될 수 없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네 자신의 지혜를 버릴지니라." (잠 23:4)
성경은 땀 흘려 일하라고 한다. 그러나 부자가 되기 위해 땀 흘리지는 말라고 한다. 돈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수단이 목적으로 둔갑하는 순간부터 불행이 시작된다.
"지혜는 루비보다 귀하니 네가 바라는 모든 것도 그것에 비교할 수 없도다. 지혜의 오른손에는 장수(長壽)가 있고 지혜의 왼손에는 부와 명예가 있나니" (잠 3:15-16)
돈은 지혜의 길에서 덤으로 얻는 것이다. 솔로몬이 부귀영화를 얻은 것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기 때문이다. (왕상 3:11-13) 재물은 따라 오는 것이지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돈을 오래 쳐다보는 순간부터 사람은 변한다. 악한 눈이 생긴다. 모든 것에서 '이익'을 계산하기 시작한다. 사람도 재력과 머릿수로 셈한다. 탐욕이 꿈틀거린다. 염려와 근심이 그의 영혼을 찌르기 시작한다. 평안이 사라지고 불면의 밤이 시작된다. 믿음과 원칙을 버리고 타협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돈이 필요하다'가 '돈을 원한다'로 바뀐다. 돈에 집착하고 돈을 사랑한다. 세상 모든 악이 자라기 시작한다. 자기 집 식구들을 괴롭게 만든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고 이용한다. 작은 유산이라도 있으면 상속 받으려고 무리한 짓을 한다. 온갖 덫에 걸려 허우적댄다. 이제 돈은 신(神)이고 그는 노예다. 하지만 그렇게 충성해도 돈은 잡히지 않는다. 잠시 성공한 듯 보여도 결국 다 잃어버린다. 기다리던 재물은 오지 않고 대신 궁핍이 온다. 결국 파멸과 멸망에 이른다. (잠 1:19, 14:12, 15:27, 20:21, 21:5-7, 22:16, 23:4-5, 28:22, 딤전 6:5-19, 롬 16:18)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도 다 이러하여 그 이익이 그 소유자의 생명을 앗아가느니라." (잠 1:19)
이런 슬픈 예가 얼마나 많은가? 어떤 사람들은 송구스런 친절을 베푼 뒤에 팔 물건을 내민다. 그들에게 모든 사람은 '잠재 고객'이고 모든 관계는 '인맥 관리'다. 반응이 없는 사람은 버린다. 투자대비효과(ROI)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모두들 아무리 돈을 벌어도 자신만큼은 다를 거라고 한다. 그러나 부자가 되려고 매달린다면 예외는 없다.
"자기 땅을 가는 자는 빵이 많을 것이나 헛된 자들을 따르는 자는 궁핍이 넘치리라. 신실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자가 되려고 하는 자는 무죄하지 아니하리라." (잠 28:19-20)
참된 지혜를 추구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서 성실한 것이 먼저다. 부는 그 다음 이야기다.
무엇보다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만족에 있다. (히 13:5, 딤전 6:6-8) 잠언은 오히려 가난한 날의 행복을 더 많이 말한다. 돈이 많고 골치 아픈 인생보다 가난해도(적게 가져도) 주를 두려워하고, 사랑이 있고, 의가 있고, 좋은 아내(남편)가 있고, 평안하고, 성실하고, 정직한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잠 15:16-17, 16:8, 19:1, 28:6, 전 4:6) 부자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법을 어기고 돈을 번 부자는 더더욱 그렇다. (시 49:16-17, 출 20:17, 잠 23:17-18, 24:1, 24:19-22)
부자였던 솔로몬이 부자의 위험을 경고한다. 부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하나님을 잊고 산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여기며 교만하다. 돈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전 5:12, 잠 28:11, 18:11-12, 30:7-9) 예수님은 부자는 구원 받기가 아주 힘들다는 경고까지 하신다. (막 10:25)
모든 것은 탐욕 때문이다. 탐욕이 우리를 망친다. 십계명의 첫째 계명은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이고 마지막 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이다. 하지만 이 두 계명은 다른 것이 아니다. 탐심이 곧 우상 숭배이기 때문이다. (골 3:5) 탐심은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두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마 6:24) 돈을 사랑하고 탐내는 순간 돈은 신이 되고 우리는 종이 되어 하나님을 거역한다. 아간이 그랬고 발람이 그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랬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수 7:1-26, 행 5:1-11, 유 1:11, 계 2:14)
어떤 그리스도인이 집이 안 팔려 고민하고 있었다. 백방으로 뛰어다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집이 팔리게 해주시면 1/10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거였다. 기도를 마치기 무섭게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문을 두드렸다. 갑자기 하나님께 돈 드리는 게 아까워졌다. 집을 사겠다는 사람에게 재빨리 말했다.
"집을 선생님에게 팔겠습니다. 대신 이렇게 합시다. 집 값은 1,000만원으로 계산하고 마당에 있는 나무를 9,000만원에 합시다. 어차피 선생님에게 1억은 마찬가지 아닙니까?"
탐욕은 끝이 없다. 마치 지옥처럼 아무리 넣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보아도 들어도 만족이 없다. (잠 27:20, 전 1:8, 5:10) 전세만 면하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이 채워지면 18평 아파트를 원하는 '소박한 꿈'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 다음엔 32평 아파트의 '목표'가 오고 그 다음엔 64평의 '비전'이 온다.
하지만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만족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모든 것이 있고 풍부하다고 말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이 차디찬 감옥에서 나왔다. (빌 4:11-18)
당대에 가장 부자였던 욥은 그 모든 것을 잃은 순간에도 "내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또한 벌거벗은 채 그리로 돌아가리라. 주신 이도 주시요, 가져가신 이도 주시니 주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어다"라고 말했다. 범죄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욥 1:3, 1:21-22)
다윗도 만족했다. 모든 것을 다 가져서가 아니다. 주님이 그의 목자라는 그 사실 하나 때문이었다. (시 23:1)
돈에 관해서라면 두 가지 길 밖에 없다. 돈을 종으로 부리든가 돈의 종으로 살든가 둘 중 하나다.
(3) 돈 버는 일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한다.
"겸손히 행하고 주를 두려워하면 재물과 명예와 생명이 오느니라. 네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네 행로(行路)들을 지도하시리라. 네 눈으로 보기에 지혜롭게 되지 말지어다..." (잠언 22:4, 3:6-7)
하나님은 주일에만 살아계시고 예배당에만 갇혀 지내시는 분이 아니다. (왕상 8:27) 믿음에 따라 돈을 벌고 싶다면 재테크의 길에서도 그분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은 마치 이 세상에 하나님의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구분되는 것처럼 착각한다. 모든 것은 다 그분의 것이다. (롬 11:36, 골 1:16-17, 고후 8:9)
아빠 엄마에게 물건을 감춘다면서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고 '없어요'를 외치는 꼬마를 본 적이 있는가? 다 큰 어른들이 꼭 그 아이와 같다. 배 바닥에 있으면 하나님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 요나 같다. (욘 1:5) 하지만 주의 눈은 어느 곳에나 계시다. (잠 15:3)
"주의 복이 사람을 부하게 하나니..." (잠언 10:22)
돈도 부자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햇빛과 물은 하나님이 주시고 (행 14:16-17) 돈은 사장님이나 거래처에서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 조지 뮬러(1805~1898)를 생각해보자. 그는 외로운 고아들을 돌보고 하나님 앞에 이끄는 일을 하면서 재정 문제를 모두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심했다. 어려움과 필요를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기로 했다. 후원회를 만들고 외부 홍보를 하라는 '상식적인' 충고도 거절했다.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면 그는 사람들을 찾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대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말씀 드렸다.
그는 평생 동안 1만명 가까운 고아들을 돌보고 수많은 선교사들을 돕고 성경과 전도지를 세계 곳곳에 보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위해 돈을 주셨는가? 물론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총 750만 불을 주셨다. 지금의 화폐가치로 따지면 무려 4,000만불 (400억 원)이 넘는 액수다. 조지 뮬러는 특별한 사람일까? 하나님이 그 사람만 유별나게 돈으로 돌봐주신 것일까?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분들은 '나는 뮬러씨가 가진 믿음의 은사를 결코 갖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건 잘못된 말입니다. 타당성이 전혀 없는 아주 큰 오해입니다. 제가 가진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은혜이지 은사가 아닙니다. 제 믿음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진 믿음과 똑같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가졌던 것이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것입니다. 제 믿음이 곧 그들의 믿음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제 믿음은 훈련을 통해서 조금씩 발전해 왔다는 것뿐입니다."
그는 마태복음 6장 25-34절을 그대로 믿고 실천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믿음은 가능성을 애처롭게 붙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확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조지 뮬러의 하나님이 지금 우리도 돌보신다. 이름 없는 새와 들풀을 돌보시며 그보다 소중한 우리도 돌보신다. 목숨까지 버리시는 사랑으로 돌보신다.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이 위에서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 (약 1:17)
(4) 부자가 되는 원칙을 지킨다.
"게으른 자의 혼(魂)은 원하여도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혼은 풍부하게 되느니라." (잠 13:4)
성경은 분명히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돈을 목표로 하지 않고도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부를 쌓을 수 있는 방법은 제시하고 있다. 인생의 다른 법칙들이 그렇듯 문제는 부자 되는 법칙 역시 이해가 어려운 게 아니라 실천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돈을 모으는 방법은 단순하다. 버는 것보다 덜 쓰면 된다."
유명한 재테크 책에 나오는 말이다. 허무하기까지 한 이 말을 듣고도 실천이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조급하고 탐욕스럽다. 먼저 사고 먼저 쓰는 사람은 궁핍해진다. 세상에 부자가 흔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이 때문이다.
진리는 단순하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더 잘 이해한다. 구원의 문제에서 놀라운 표적이나 엄청난 지혜를 기대하던 사람들에게 단순한 십자가(너는 죄인이다! 너는 할 수 없다! 내가 대신 짊어지겠다!)는 아주 당황스러운 대답이다. 어차피 사람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없다. 우리에게는 머리보다 어린 아이 같은 믿음과 순종이 먼저 필요하다. 무언가를 풍부하게 갖는 방법에서도 마찬가지다. (막 10:14-15, 눅 10:21, 고전 1:18-31)
잠언이 말하는,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는 부자 되는 원칙을 들어보자.
* 먼저 지혜를 구한다. (8:18-19)
* 겸손히 행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며 신뢰한다. (22:4, 28:25)
* 재물과 소출의 첫 열매로 주님을 공경한다. (3:9-10)
* 부지런히 행한다. (10:4, 13:4, 12:24, 21:5)
* 사람들에게 후하게 베푼다. (11:25)
* 권위자들의 충고를 새겨 듣는다. (13:18)
* 정직하게 행한다. (14:11)
* 땀 흘려서 모은다. (13:11)
* 조급하게 행하지 않는다. (21:5)
* 힘들고 번거로운 일을 할 각오를 한다. (14:4)
* 자신의 전문 분야에 집중한다. 잘 모르는 재테크 유행은 피한다. (잠 28:19, 18:9, 11:28)
잠언은 또한 돈을 버는 과정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말하고 있다.
* 자기 눈에만 옳게 보이는 재테크 방법을 따르는 것 (14:12)
* 복권 등 일확천금으로 돈을 버는 것 (13:11)
* 이자 놀이로 돈을 버는 것 (28:8)
* 불법과 거짓으로 돈을 버는 것 (10:2, 11:1, 14:11, 20:17, 21:6, 22:8, 28:8)
* 급히 상속을 물려 받는 것 (20:21)
* 뇌물을 받고 부정직한 판결을 내리는 것 (17:23, 22:16)
* 보증을 서는 것 (6:1-2, 22:26)
*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것 (22:16, 약 5:1-6)
잠언은 돈을 잘 버는 것뿐 아니라 잘 관리하고 잘 쓰는 것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11:6, 21:27, 29:3) 특히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고 그들을 돌볼 것을 강조한다. (3:27-28, 11:24-26, 14:31, 19:17, 21:3)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께 빌려 드리는 것이니 그분께서 그가 베푼 것을 갚아 주시리라." (잠 19:17)
부자가 되더라도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솔로몬은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설사 다시 가져가신다 해도 우리를 향한 뜻이 있으신 것이다. (신 6:10-12, 잠 30:7-9, 계 3:17, 욥 1:21-22, 사 55:8-9)
(5) 돈에 속지 않는다.
"자기 재물을 신뢰하는 자는 넘어지려니와 의로운 자는 나뭇가지와 같아서 번성하리라. 네가 어찌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네 눈을 두려 하느냐? 이는 재물이 반드시 스스로 날개를 내어 독수리같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기 때문이니라.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잠 11:28, 23:5, 14:12)
돈은 우리를 속인다. 잠언은 돈을 가리켜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불렀다. (통장에 찍힌 숫자 만보고 '돈이 있다' 말할 때면 이 말이 아주 실감 난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뿌려진 하나님의 말씀이 가시나무 때문에 숨 막혀서 열매를 못 맺는다고 하셨다. 그 나무의 이름은 '재물의 속임수'다. (마 23:22)
곳곳에서 흘러 나오는 광고만 봐도 돈이 얼마나 우리를 속이는 지 금방 알 수 있다. 냉장고만 사면 여자는 행복해 진다. 휴대폰만 바꾸면 인생이 자유로워진다. 새 아파트가 품격 있는 인생을 보장해준다. 돈을 주면 행복을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광고 뒤에 나오는 재벌 총수의 투신자살 뉴스는 애써 외면한다. 행복한 부자는 없고 부자는 행복할 거라는 환상만 있다.
돈은 편리할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주 편리함과 행복함을 혼동한다. 그러다 돈을 엉뚱한 것에 연관 짓기 시작한다. 성공, 자유, 존경 등이 돈에 딸려 오는 듯이 말이다. 이 것이 돈의 속임수다. 모든 것을 줄 것처럼 환상을 심어 주고, 잡힐 듯 잡힐 듯 하다가 끝내 독수리처럼 날아가 버린다. 일평생 종으로 부려먹다가 버리고 가 버린다. 누군가의 말처럼 돈은 '돌고 돌면서 사람들을 돌게 만든다.' 돈은 바람이다. (전 5:16)
결정적인 잘못은 돈이 있으면 안전하다고 믿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되신 것보다 통장의 잔고에서 더 큰 안정감을 얻는다. 부자는 자신의 재물이 견고한 도시고 높은 성벽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안전은 주님께로부터 나온다. (잠 21:31, 18:10-12)
부자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기 쉽다. 그는 말한다. "나는 부자라.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지만 주님의 평가는 정반대다. "네 가련한 것과 비참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도다." (계 3:17)
부자는 또 풍족한 재물을 보며 흡족해서 말한다.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 사람들은 그를 부자라고 부르지만 주님은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신다.
"너 어리석은 자여, 이 밤에 네 혼을 요구하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눅 12:19-20)
중요한 것은 세상의 부유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부유함이다. 주님에게서 불로 단련한 금을 사서 부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 하늘의 옷을 입어야 한다. 그전까지 우리는 벌거벗은 사람이다. (눅 12:21, 계 3:18, 마 22:11-13, 롬 13:4)
언젠가 어떤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에게서 '시간이 없다는 것은 결국 돈이 없다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돈이 없기 때문에 직장에 매달리고 거절을 못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충분한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꽤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물론 시간은 값 주고 되찾는 것(엡 5:16)이기에 돈을 주면 시간을 어느 정도 절약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시키고 나는 쉬면 된다!) 하지만 이 역시 결국 돈에 속는 것이다. 돈은 자유의 열쇠나 척도가 아니다. 정말 그렇다면 재벌 총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여유 있고 자유로운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생각은 돈을 슬그머니 목표로 만들어 버린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원래 선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는 법이다.
돈으로 좋은 집을 살 수는 있지만 행복한 가정을 살 수는 없다. 컴퓨터를 살 수는 있지만 참된 지혜를 살 수는 없다. 최고급 침대를 살 수는 있지만 꿀 같은 잠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친구를 모을 수는 있지만 우정을 모을 수는 없다. 잠깐의 위기는 피할 수 있지만 지옥의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꼭 성전 문 앞에 앉아 구걸하던 환자와 같다. 매일 돈을 구한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그 이름으로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 사람들은 돈을 '원하지만'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돈에 속지 말아야 한다. (행 3:1-11)
(6) 하늘의 부자가 된다.
"부와 존귀가 내게(지혜에게) 있나니 참으로 오래 지속되는 부와 의가 내게 있도다." (잠 8:18)
재물은 영원하지 못하다. "풀의 꽃과 같이" 사라진다. (잠 27:23-24, 약 1:10) 그러나 성경은 오래 지속되는 부가 있다고 말한다. 지혜로운 투자자는 더 든든한 곳에 투자하는 법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오늘만 보고 투자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내일을 보고 끝을 본다. (마 25:1-13, 벧전 1:17)
얼마 전 가까운 분과 함께 차를 타고 서울 외곽을 지나간 적이 있다. 수십 년 동안 그 지역에 사신 분이었다. 개천과 논밭뿐이던 자리에 이제는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찼다고 했다. 어린 시절 추억을 말하면서 한 웅큼 작은 땅이라도 있었던 사람들은 제법 큰 돈을 벌었다고 했다.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도시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을 때 미래를 내다보고 하는 것이 투자다. (잠 6:6-8) 탁월한 투자자는 벌판에서 도시를 보고, 논밭에서 도로를 본다. 그들에게는 다른 눈이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그 이상이다. 미래를 뛰어 넘어 영원을 보는 위대한 투자자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머물면서도 하나님이 세우신 더 큰 도시를 기다렸다. 그래서 기꺼이 나그네가 되었다. 위대한 투자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오늘만 본다. 탁월한 투자자는 10년 뒤를 본다. 하지만 위대한 투자자는 영원을 본다. 어리석은 사람은 광야만 보고 불평한다. 탁월한 투자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다린다. 하지만 위대한 투자자는 그 모든 것들이 녹아 없어진 이후에 올 새 예루살렘을 고대하며 기쁘게 견딘다. (히 11:10-16, 계 21:2)
이 땅에 쌓은 것은 영원할 수가 없다. 땅은 사라진다. (벧후 3:8) 이 땅에 아무리 모아도 죽는 날 가지고 갈 수가 없다. 우리는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간다. 평생을 입고 살았던 몸도 놔두고 가는 판에 무엇을 더 가지고 가겠는가? (딤전 6:7, 전 5:15-16) 오직 하늘에 미리 쌓아두는 방법뿐이다. 가장 안전한 저축은 하늘에 쌓아두는 저축이며 가장 안전한 투자는 하늘에 투자하는 것이다. 땅의 부자가 아니라 하늘의 부자가 되어야 한다.
"너희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이 먹고 녹이 슬며 도둑이 들고 훔치느니라. 오직 너희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 먹지도 녹이 슬지도 않으며 도둑이 들지도 훔치지도 못하나니 이는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기 때문이라." (마 6:19-21)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 것은 돈 많이 벌어서 교회에 헌금을 많이 낸다는 식의 의미가 아니다. 무엇을 위해 인생을 사는 가에 관한 것이다. 내일에 대한 염려 때문에 돈을 섬기며 살던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만을 섬기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걱정하며 돈을 위해 산다. 내일에 대한 염려 때문에 이 땅에 재물을 쌓아둔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돌보시고 책임지신다. 사라질 이 땅에 쌓아 둘 필요가 없다. 이제 먹고 사는 고민은 내려 놓고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위해서 살 수 있다.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그분의 왕국으로 이끌기 위해서, 위대한 하나님 사랑과 의를 선포하기 위해서 살 수 있다. 그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늘의 보상을 바라고 하루 하루 땀 흘리는 것이다.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기는 묘책 따위는 없다. 절묘한 중간 지대도 없다. 세상 누구나 쌓아두는 인생을 산다. 누구는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 누구는 땅에 보물을 쌓는 다. 더불어 머리 위에 하나님의 진노도 쌓는다. (마 6:19-34, 갈 5:17, 롬 2:5)
우리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다. 주식에 빠진 사람은 자나깨나 뉴스만 본다. 부동산을 산 사람도 다르지 않다. 이 땅의 모든 것이 불완전하기에 그는 항상 불안하다. 주가가 떨어질까, 환율이 달라질까, 부동산 시세가 폭락할까, 어떤 악재가 터질지 몰라 항상 불안하다. 하늘에 투자한 사람은 하늘을 본다. 그곳은 흔들림이 없다. 언제나 찬란히 빛난다. 그래서 안심하고 편안하게 잠든다. "위에 있는 것들에 애착(愛着)을 두는" (골 3:2)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을 생각함에 있어 철저히 전략적이고 계산적이 되라고 충고하셨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하면 자기가 가진 것이 그것을 완성하기에 충분한지 먼저 앉아서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눅 14:28)
우리 앞에는 항상 두 가지 성공이 부딪힌다. 지금의 성공과 미래의 성공, 잠깐의 성공과 영원의 성공이 있다. 모세는 이 둘을 철저하게 비교했다. 이 땅의 쾌락은 잠시 지나가는 것이다. 이 세상을 누린 사람은 다음 세상에서 얻을 것이 없다. 나중에 받을 보상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세상의 보화나 왕의 진노는 두려울 게 없다. 그는 이집트를 버리고 이스라엘을 택했다. 왕궁을 떠나 노예의 편에 섰다. 쾌락을 포기하고 고난을 택했다. 땅을 포기하고 하늘에 투자했다. (히 11:24-27)
이 세상 투자에서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더 지혜롭다. 그들의 눈에는 다가 올 세상에 투자하는 것이 어리석게 보인다. (눅 16:8, 고전 3:18) 그래서 주식을 사고 부동산을 살 때 미래 가치를 계산하던 사람들이 정작 그 회사와 건물을 지탱하는 '땅'이 영원하지 못한 것은 계산하지 못한다. 망할 회사를 잘 피했다고 대견해 하면서 망할 땅을 산다. 사람들은 하루와 1년의 차이에는 예민하면서도 1년과 영원의 차이에는 둔감하다. (마 23:24) 더 오래 버틸 곳,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곳에 투자하고 그 곳에 보물을 쌓아야 한다.
이제 곧 끝이 온다. 인생의 끝이 오고 세상의 끝이 온다. 주식 시장도, 아파트 단지도, 신도시도 사라진다. 그리고 일평생 무엇을 쌓았는지 계산하는 날이 온다. 그날 이 땅에서는 따로 살았던 사람들이 다시 만난다.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서로 만나거니와 그들 모두를 만드신 이는 주시니라. 재물은 진노의 날에 유익을 끼치지 못하나 의는 사람을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잠 22:2, 11:4)
그 날에 이 땅의 재물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의로 옷 입고 영원에, 하늘에 투자한 사람만 행복한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들의 처소를 분양 받을 것이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후회도 눈물도 소용이 없다.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뿐이다. (마 22:13)
다행히, 다행히 아직은 기회가 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잠 27:1) 하늘에 투자를 시작하자.
가장 위대한 저축, 가장 위대한 투자를 시작하자. @
잠언 성공(4)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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