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아이티 대통령 아리스티드--영광에서 몰락으로
카리브해의 서인도제도 중부에 있는 섬나라 아이티가 다시 요동을 치고 있다. 아리스티드 대통령 축출을 요구하는 반군이 국토를 장악하면서 아이티는 피의 내전을 물들고 있다. 결국 시민에 의해 등극한 아이티 대통령 아리스티드가 시위대에 무릎을 꿇고 자메이카로 피신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아이티는 인구 700여 만 명의 소국으로 히스파니올라섬을 도미니카공화국과 동서로 갈라 서쪽 1/3을 차지하고 있다. 아이티란 원주민의 말로 ‘산이 많은 나라’를 뜻한다. 평지는 국토의 17%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북부에서 남부에 이르기까지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느 중앙아메리카국가와 마찬가지로 아이티는 혼란을 거듭했다. 아이티의 역사는 1492년 콜럼버스가 히스파니올라 섬이 발견한 뒤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면서 시작되었다. 17세기 초 프랑스와 영국의 해적이 스페인으로 운반되는 금·은을 약탈하고 있었는데, 17세기 후반 이후 차츰 섬의 서부지역에 이들이 정주하게 되었다. 프랑스인이 영국인을 몰아낸 뒤 섬 서쪽 1/3 영유권을 차지하여 이 지역을 산도밍구라고 불렀다. 이 지역은 사탕수수플랜테이션을 통해 프랑스식민지 가운데서도 가장 발전된 것으로 꼽혔고, 프랑스·아프리카·카리브해지역의 삼각무역지대를 이루어 아프리카에서 흑인노예가 수입되었다. 18세기말에는 백인은 3만 6000명인 데 대하여 흑인노예는 50만 명으로까지 늘어났다. 프랑스혁명의 영향을 받은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물라토와 해방노예가 1791년에 반란을 일으켰고, 이것이 독립전쟁의 발단이 되었다. 1804년 독립운동 지도자 J.J. 데살린을 황제로 하는 흑인제국으로서 독립을 선언하며, 국명을 아이티로 정했다.
1806년에는 공화제로 이행했으나 내란이 계속되다가 1820년에 부아이에 대통령에 의해 통일되었다. 그러나 결국 1944년 도미니카는 독립을 달성했다. 독립 후 1세기 동안 아이티의 역사는 독재와 반란을 거듭했다. 1915년 미국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군사개입을 하여 1934년까지 점령했다. 그 후에도 독재와 저항은 끊이지 않았다. 1957년 대통령으로 뽑힌 F. 뒤발리에는 근대화정책을 추진하여 국민의 신망을 받았으나, ‘시민의 용병’이라는 친위대를 이용하여 독재를 구축했다. 언론통제·집회금지 및 반정부인사 투옥 등을 자행하며, 1964년에는 헌법을 개정하여 스스로 종신대통령이 되었다. 뒤발리에가 죽은 다음에도 아들 J.C. 뒤발리에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독재체제를 이어갔다. 당시 그는 20살이었으며, 당초 부친의 대통령시절 측근의 정치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나, 차츰 장 클로드이즘이라고 하는 흑인·백인·물라토의 협력과 경제개혁을 시책으로 하는 정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경찰국가인 기본적 성격은 변함이 없었으며, 1985년 12월 식량과 일자리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것을 계기로 누적되었던 사회불만이 폭발하여 1986년 2월 대통령일가는 미국 군용기로 탈출, 프랑스로 망명함으로써 29년에 걸친 독재정치는 무너졌다.
그 한가운데 아리스티드가 있었다. 1953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아리스티드는 영국, 캐나다,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지에서 신학과 심리학을 공부한 뒤 1982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빈민 구제에 힘쓰는 한편, 독재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해온 그는 1980년대 몇 차례 암살 위기를 넘기면서 '민중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급진적인 정치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1988년 교계의 배척을 받은 그는 1994년 사제직을 버렸다. 아리스티드는 민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1991년 2월 아이티 역사상 첫 민선 대통령이 되었으나, 7개월만에 군부 쿠데타로 축출돼 미국으로 망명했다. 1994년 다국적군이 군정을 몰아내면서 대통령직에 복귀해 임기를 마쳤다. 연임을 금지한 헌법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던 아리스티드는 2000년 재출마해 다시 대통령에 올랐다. 그러나 야권은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라발라스 가족 당이 부정선거를 했다며 총선 재실시를 주장해왔다.
한때 빈민의 영웅이었던 그는 첫 번째 재임기간에 상당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 임기에서 아리스티드는 선거 부정과 정치적 부패, 그리고 아이티를 중남미 국가 중 가장 가난한 나라로 만든 경제적 실정으로 국민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결국 그는 두 번째 망명 길에 올랐다.
아리스티드가 떠난 아이티는 극심한 혼란한 상태에 빠져 내란의 위기에 달하고 있다. 민중의 희망이 부패한 정치인으로 변모하면서 수백년만에 찾아온 평온과 기대를 상실한 아이티 민중은 깊은 허탈감에 빠져 있다. 한 달 넘게 진행되고 있는 소요로 아이티 민중들은 하나둘씩 떠나면서 아이티 사태는 이제 국제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사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미국과 프랑스 등 유엔안보리 이사국이 평화유지군이 파견을 승인했다. 카리브공동체(CARICOM) 회원국 정상들은 2일 자메이카에서 회담을 갖고 향후 아이티의 안정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제 아이티 민중의 미래는 또다시 외부의 힘에 의해 좌우되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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