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의 배경(1:1)
우리는 (왕하 14;25)을 통해서 요나가 활동하던 때가 여로보암 2세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을 때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왕하 14:25)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왕하 14:25)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로서 나사렛에서 북쪽으로 약 5km 정도 떨어져 있는 가드헤벨에서 출생했습니다.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그는 엘리야가 살린 과부의 아들이라고 합니다(왕상 17:8-24). 요나는 여로보암 2세 때에 활동하였으며 그는 여로보암 2세가 북쪽 원정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 다른 선지자들은 민족의 앞날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인 예언을 했지만, 요나는 조국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과 같은 낙관적인 예언을 한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요나는 어린 시절을 여로보암의 부친인 요아스 시대에 보내었고, 성인 시절은 여로보암 2세가 전 솔로몬의 영토를 회복한 부흥기에 살았습니다. 그가 활동했던 이러한 시기는 솔로몬 이후 다시 한 번 그 영광을 재현했던 여로보암 2세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때에 자신들이 번영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끝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다가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했던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2. 시대적 배경
요나가 활동하던 당시의 북이스라엘은 통일 왕국 솔로몬과 다윗 시대의 번영에 비견되는 만큼 번영을 누리던 그 地界가 하맛에까지 이르렀다. 한편 당시 앗수르는 살만에셀 3세(B.C.783-773년) 앗술단 3세(B.C.773-755년), 앗술니나리 2세(B.C.755-745년) 등에 왕들에 의해 통치되던 시대로서 이전의 왕들의 통치 시대에 비해 국력이 다소 약화된 때였다. 이는 북방의 신흥 국가인 아라랏과의 전쟁이 장기화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나 설상가상으로 B.C.765-759년경에 큰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었고, B.C.763년 6월 15일경에는 완전한 일식으로 앗수르 땅이 칠흙같은 어둠에 휩싸이는 불길한 징조로 인하여 민심이 상당히 동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으로 요나 선지자가 단 하루 동안만 메시지를 전파하기 전에 이미 니느웨는 소위 추수하기 적합한 '희어진 밭'(요 4:35)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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