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과 복권, 그 올인의 사회학'
▶ 진행 : 신율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 답변 : 서해성(소설가)
- 도박/복권이란 대체 무엇인가? 또 종류는?
- 도박/복권은 기본적으로 놀이다. 놀이와 구분되는 기준은 단 한 가지다. 바로 돈이나 물건-때로 사람인 경우도 있다-을 걸고 예측할 수 없는 확률에 내기를 건다는 점이다. 이 예측이 전혀 근거 없다고만 할 수는 없다. 도박에서 예측은 늘 상대적이다. 세 사람이 모여서 도박을 한다면 성공 가능성은 당연히 최소한 1/3이다. 반대의 경우가 2/3이다. 도박 몰입이나 중독은 실패보다 기대심리가 높을 때 생기는 것이다.
돈을 따지 못할 것이라는 쪽에 생각이 기울면, 요컨대 '비극에 대한 예행연습'에 훈련된 사람은 실패에 대한 자기 암시가 강해 도박에 빠지기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다. 복권이란 이러한 기대심리를 특정한 표식, 표지 따위로 만들어서 불특정 다수 여러 사람이 돈을 걸고 참여케 하는 놀이다. 이는 도박과 하등 다르지 않다. 돈을 받는 방식이 추첨이라는 것뿐이다. 복권에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건 보통 도박보다 배당액이 크고, 실패하더라도 생활 자체가 파탄 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도박 등을 가리키는 놀이를 놀음이라 한다. 놀이와 놀음은 같은 말에서 연유하고 있다. game(놀이)과 gambling(놀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놀음이라는 말이 늘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송파산대놀음 등에서 보듯 본디 놀음이란 놀이와 별반 차이가 크지 않는 말인 듯 싶다. 상품화폐경제가 성립하면서 놀이를 팔게 된 연희패들에 의해 양식화된 놀이를 아마도 놀음이라 부르지 않았을까. 그러다 이윽고 도박을 뜻하는 말로 정착하지 않았겠는가.
미국 Gamblers Anonymous(단도박모임)는 도박을, 자신이나 남을 위해 돈을 위해서든 아니든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결과가 불확실하고, 우연이나 '손재주'에 의존하는 것에 내기를 거는 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도박 종류나 구분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어떤 단도박모임에서는 도박을 이렇게 구분하고 있었다.
기구사용(윷 주사위 장기 바둑 체스 등), 패사용(트럼프 화투 골패 마작 등), 기계사용(룰렛 슬롯머신 빙고 전자오락 경품오락 등), 추첨(복권, Lottery 등), 스포츠 승패( 경마 견륜 경견 자동차경주 모터보트경주 권투 각종시합 등), 직접운동경기(축구 당구 골프 볼링 등), 인터넷, 기타(투견 투우 투계 등. 레크레이션 게임에서 내기) 등이다. 덧붙이자면 항간에서 행하는 여러 가지 내기들도 뺄 수 없다.
짤짜리, 동전치기, 꼴따먹기, 사다리타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또뽑기는 물론이고 방식이 다양한 야바위도 여기에 해당한다. 한동안 버스나 기차에서 유행했던 번개같은 경품장수들도 어찌 뺄 수 있겠는가. 요즘은 전화'당첨'안내나 무선전화 문자로 안내하는 '당첨사은'행사들도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행운'을 팔고 있다. 여기서 '안내'란 유혹으로 보면 되겠다.
- 언제부터 있었는가> 또 어떻게 했는지 상세히 말해달라.
정말 성경에도 도박에 관한 기록이 나오나?
- 잘라 말해 교환가치를 지닌 잉여생산물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도박은 존재해왔다. 수리적으로 비유하자면 덧셈을 넘어 뺄셈을 하기 시작하면서 도박은 존재했을 듯하다. 조삼모사고사에서 원숭이나 사람의 기대심리를 알 수 있지 않은가. 도박가들, 불확실한 확률에 목숨을 거는 작업인들-실생활의 수학자들, 추측의 실물화, 짐작의 과학화와 생활화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잘 알고 있는 서양신화에서 세상을 만드는 데 이미 도박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제우스 하디스 포세이돈은 주사위 던져 천하를 천국 지옥 바다로 나누고 있다. 천지창조가 내기에서 말미암고 있는 것이다. 주사위라는 이 불후의 '기계'(도구: 화투를 일러 한국인들은 '기계'라고 한다)는 인도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BC 1,600년 경 이집트에서 'senat'라는 도박이 유행했고, 바빌로니아도 기록이 전하고 있고, 아메리카 대륙의 고대 벽화에도 도박하는 사람들 새겨놓았다. 하물며 모세가 유대 12지파에게 가나안 땅-Jordan강 서안 수여-을 배분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했다는 기록이 민수기에 나온다.
민수기 26장 51절 '아스라엘 자손의 계수(計數)함을 입은 자가 601,730명이었더라. 여호아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수가 많은 자에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의 계수함을 입은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55절)오직 그 땅을 제비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찌니라 56절)그 다소를 물론하고 그 기업을 제비뽑아 나눌찌니라'(Each inheritance must be assigned by lot among the largest and smaller trial groups.)
이렇듯 도박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광범한 지역에서 두루 이뤄졌다. 주사위라는 '물증'으로 봐 인도에는 당연히 도박이 있었을 테고, 진(秦)나라에도 오늘날 빙고게임 비슷한 게 있었다. 시황제는 흉노에서 비롯된 Keno라는 놀음을 이용해 만리장성 축조비용 일부를 조성했다.
인류기원설에 아프리카기원설(단일지역기원설 out of Africa)과 다지역기원설(multiregional continuity model)이 있는데 이런 정황으로 봐 필시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이동할 때 도박도 함께 이동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황하, 인도에서 도박에 관한 증거가 적잖이 나오니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도박은 단일기원설을 따르는 게 좋을 듯하다.
- 도박에 관한 유명한 기록 따위는 어떤 게 있나?
정말 하버드대학을 복권에서 나온 돈으로 지었는가?
-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끝이 없다. 이미 고대로마에서 복권 말고도 주사위, 수레바퀴, 검투 등에 돈을 거는 도박은 일반적이었다.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 네로 등은 복권을 이용해 로마 건설이나 복구기금을 마련했다. '행운의 수레바퀴'에 돈 걸면서 부와 운명의 여신 Fortuna(영어 fortune의 어원, '행운의 수레바퀴': 17C 회전식 복권추첨기 이름이 됨)에게 빌었다. 15세기에 벨기에에서는 복권을 팔아 예배당을 짓거나 운하, 항만 따위를 세웠다.
1530년에 등장한 것이 유명한 '로또'다. 피렌체에서 당첨시 현금을 지급하는 번호추첨식 복권을 판매한 것이다. 그 뒤 이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1539년 프랑스 Francis 1세가 바닥난 국고 충당을 위해 복권 공식적으로 팔았다. 이는 곧 유럽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영국 Elizabeth 1세도 국가기간산업시설을 만드는 데 복권제도를 도입해서 활용했다. 영국의 미국 식민지회사 Virginia company of London은 1612년 제임스1세 칙령에 따라 Jamestown 경영비용 최소한 절반을 복권을 통해 마련했다. 당시 영국 전역에 뿌려댄 그 복권 홍보전단에 씌어 있길,
왕국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라네.미개인들이 사는 땅에. 신은 기독교인들을 여전히 도우시리, 그들의 목적을 기꺼워하시리.이보다 더 용감한 사업은 그 어디에도 없으리.
* 복권은 신의 이름으로 발행되었고, 그 사업(복권판매나 식민지 개척활동)을 용감하다고 칭송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기꺼워하시리'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신이 '값싸게' 팔리는 일은 퍽 오래 된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미개인들이 사는 땅은 오늘날 미국 땅을 이름은 물론이다.
그 뒤 복권발행은 필요한 경우 수시로 이뤄졌다. 웨스트민스터다리(1739),
British Museum(1753)을 세우는 재정 상당부분도 복권에서 만들어냈다.
복권의 국가전매가 이뤄진 역사적인 해는 1759년, 프랑스다. Casanova의 주장으로 루이7세가 Loterie Royale of the Military School(Saint-Cyr의 전신)을 승인했다. 이 복권 발매와 동시에 다른 복권들은 불법이 되었고 조성된 기금들은 국가부채를 갚는 데 사용되었다. 이것이 Loterie Nationale의 시초-국가가 복권사업을 독점-다.
국가가 도박에 관한 개인의 욕망을 관리하기 시작한 출발점이자 통제를 통한 국가의 '윤리적 위엄'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민중의 주머니를 터는 도박착취의 효시이기도 하다. 유명한 미국의 Benjamin Franklin은 독립전쟁에 필요한 대포구입자금을 복권으로 마련했다. 식민지 모국에서 배운 대로였고, 복권으로 대포를 찍어낸 셈이었다.
John Hancock 또한 독립전쟁 상징인 Boston Faneill Hall 재건을 위해, George Washington은 로키산맥에 Mountain Road를 내서 이른바 '서부개척시대'를 여는데 복권을 결정적으로 사용했다. '서부개척 프론티어'의 심장은 복권에서 먼저 뛰고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Thomas Jefferson은 말년에 개인 빚 8만 달러를 복권을 찍어내서 갚았다. 물론 개인이 발행한 복권이었다.
앞서 말했듯 복권이란 추첨하는 도박이지 선량한 다른 무엇이 아니다. 18세기 중엽(1740-1755년) 식민지 미국에서는 교회, 학교, 교도소, 도로, 항구, 다리 등을 만들기 위해 광범하게 (반쯤)민간복권을 사용했다. 놀랍게도 여기에는 이른바 아이비리그 대학 상당수가 포함된다. Harvard, Yale, Princeton, Columbia, 뉴저지, 플리머스대학교 등을 복권수익에 기초해서 세운 것이다. 이쯤 되면 아이비그리대학들의 벽돌담과 고생창연한 건물에 붙어 있는 아이비, 곧 담장이넝쿨에 달린 이파리들이 복권으로 보일 법도 하다.
대략 50개 대학, 300개 학교, 200개 교회를 복권에서 나온 돈을 투여해서 지었다. 독립 뒤인 19세기 초에도 미국 33개 주 가운데 24개 주의 법정, 교도소, 병원, 고아원, 도서관 등을 위한 기금을 복권수익으로 충당했다. 복권기금으로 생긴 돈을 쓴 것 중 '참을 수 없는 것'은 복권(도박)을 사는 사람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들이고 그들이 어찌 하다 보면 들어가게 되는 곳이 교도소인데, 바로 그 건물을 짓거나 고치거나 하는데 이 돈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가난한 자에게 빼앗아-복권을 사게 해서-퍼블릭한 중산층적 문화시설 내지는 편의시설을 짓는 것까지는 좋은데, 가난한 자에게서 빼앗은 돈으로 다시 그들을 가두는 시설을 지었다는 데에서 국가권력이란 것이 지니고 있는 속성에 대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게 보험도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대략 짐작하겠지만 이처럼 도박은 중상주의시대와 더불어 크게 발달했다. 줄여 말해 자본주의와 괘를 같이 해오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350년 복권발행 역사를 가지고 있다. 빠칭코 따위도 유명하지 않은가. 화투 또한 일본을 통해 한반도에 유입되었다.
재미난 것은 아르헨티나(정부, 주정부 발행)에서 발행하는 코토배사복권 추첨방식인데 6세-15세 되는 소년소녀합창단이 당첨번호와 당첨금액을 합창으로 발표하고 노래가 끝나면 인쇄해서 배포한다. 북한에도 90년대 초 '추첨제저금', 곧 변형된 복권을 발행하고 있다. 참고로 최초의 대중 도박장이 베니스에 합법적으로 개장한 것은 1826년이었는데 이곳에서 상류 귀족층들은 도박말고도 다른 욕망을 함께 해결했다.
십자군 전쟁을 통해 배워온 목욕탕-유럽은 상당 기간 동안 신의 이름으로 목욕을 금했다-에 술과 여자를 끌어들였듯, 도박판에 매매춘 술은 삼형제로 어울렸다. 이들은 평민 출입을 막아서 도박에서도 계급 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 한국에도 도박이 있지 않았나?
도박에 빠졌던 역사적 인물들도 소개해달라. 화투나 포커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 흔히 추첨식 도박 형태로 산통계(통이나 상자에 계원의 이름을 써넣은 알을 넣은 뒤 통을 돌리다가 나오는 알로 당첨 결정)나 작백계(작태계: 일정번호를 붙인 표를 100명(작백계), 1,000명(천인계) 혹은 10,000명(만인계) 등 일정한 단위로 팔고 추첨하여 총매출액의 80%를 복채금으로 돌려줌)를 꼽는다. 이는 상부상조적 성격이 짙었다.
도박다운 도박으로는 '기계'를 쓰는 쌍륙(雙六/저포: 삼국시대에 서역에서 건너옴. 20세기 중반까지 전승. 편을 갈라 차례로 주사위를 던진 다음 말을 움직여 먼저 궁에 들어가면 이김. "대동야승"에 '어떤 자는 너무 즐겨 의지를 상실하는 자도 있고 도박을 하여 재산을 손해보는 자도 있다.'), 骨牌(고려시대 송에서 건너옴. 조선시대 투전과 쌍벽), 투전(조선중기 청에서 건너옴. 숙종 때부터 대중화, 화투/카드가 들어오기까지 가장 인기) 등을 말해야 할 것이다.
잘 알다시피 백제 개로왕(455∼475)은 고구려 細作僧(첩자) 道琳과 바둑을 두느라 나라를 들어먹고 있는 줄도 몰랐다. 조선조 성종 21년(1490년)에 있었던 쌍륙사건-문소전(태조, 태종, 왕비 위패를 모신 사당)에서 종친과 수복(제사를 돌보는 종) 석시가 쌍륙을 치던 중 다투다가 화로를 걷어차 불이 남-은 도박이 저자를 넘어 궁 깊숙한 곳에서도 일상적으로 벌어졌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기생이나 일반 백성은 물론 궁성에서도 도박은 말 그대로 밥에 반찬이 따라오듯 다반사로 이뤄졌던 것이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 연암과 다산도 도박을 깨나 즐겼다. 박지원은 편지를 쓰다가 문장이 막히면 홀로 쌍륙을 쳤다. 왼손 오른손을 양편으로 삼아 혼자서 '대국'을 즐겼다는 말이다. 이 정도면 심각한 중증이라고 봐야 한다. 정약용은 '경자년 봄에 촉석루에서 떠들썩하게 악기를 연주하다 해가 저물어서야 파하였습니다.
심 비장과 함께 저포 노름을 하여 3천 전을 가지고 여러 기생들에게 뿌려주며 즐겁게 놀았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벌써 19년이 지났는데도 어제의 일처럼 역력하다.'고 황해도 곡산부사로 재직하던 1799년 보낸 편지("다산시문집"에 전함)에 남겨 후대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그는 나중에야 도박의 중독성과 폐해를 경고하고 있다.
초상집 도박은 지금도 널리 하고들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우선 초상집은 단속이 어려웠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박이 죽음의 고통마저 잊게 하는 강한 발화작용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쉬울 듯하다.
기록에 따르면 왕 행차가 있는 전날 밤에도 종로에 밤샘 판이 벌어졌고, 하물며 관원들은 공금을 자금으로 빌려주고 고리를 떼고 있다. 정부에서 단속은 한다고 했지만 효과는 아주 낮았다. 관리가 도박판 전주이니 단속이 될 리 만무했을 터이다. 일본 에도정부는 도박을 통치술의 하나로 활용해왔다. 야쿠자들을 고용하여 노동자들에게 준 노임을 도박을 통해 다시 찾아오도록 했던 것이다. 오늘날 일본 야쿠자는 이들을 '조상'으로 하고 있다.
이와 매우 닮은꼴로 5.16 쿠데타 주역인 김종필이 일본에서 빠칭코 8백여 대를 들여와 서민 주머니를 털어 댄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정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다들 이게 공화당 창당자금 마련을 위한 일이었음을 달리 의심치 않아 왔다. 이런 소식을 접하게 되면 국가권력이란 게 과연 무엇인지 회의를 품게 된다.
그 뒤로 이른바 빠칭코 영업은 '조폭'들에게로 넘어갔다. 이는 국가치안담당자인 검경찰의 묵인 방조를 전제로 한 먹이사슬 구조 아래 가능한 것이었다. 구구하게 말할 것 없이 정덕진이나 김태촌의 경우가 이를 증거하고 있다.
다른 한 가지 재미난 이야기는 안중근 의사도 아주 잠깐이지만 젊었을 적에 추첨식 기계를 활용하여 돈을 모으고자 하다가 혼쭐이 났다는 대목이다.
화투 이야기를 빼고 갈 수는 없을 것이다. 19세기에 일본을 통해 들어온 이 놀음은 대략 1백 년이 지났을 즈음 한반도 남쪽을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70년대 등장한 새로운 노름방식 고스톱이 다른 모든 형태와 내용의 놀음을 물리치고 마침내 판을 제패하기에 이른 것이다. '고스톱 공화국'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지역마다 화투 놀음은 방식이 달랐다. 영남은 육백, 호남은 삼봉 따위가 그것이다. 슬픈 것은 고스톱은 경계를 넘어 천하를 통일해 가는데 정작 한국은 '지역감정'이라는 근거 없는 비이성적 싸움으로 치달아갔다는 사실이다.
포커는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돈 있는 사람들과 지식인이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다. 장려할 일은 결코 아니지만 한국 전통도박 형태나 방식이 일본, 미국 또는 제3자에게 전해졌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예외 없이 도박에서도 외세의 영향을 지우기 어려웠다는 것을 확인하자니 씁쓸함을 지우기가 못내 어렵다.
여기서 씁쓸함은 도박적 측면보다는 놀이의 지배를 말한다. 이는 추첨식 도박(복권)에서도 확인된다. 일제는 식민지 수탈 막바지인 1945년 '勝札(승찰)'이라는 복권(총 발행액 2억 원, 1등 10만원, 1장당 10원)을 발행해서 태평양전쟁 군수산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선백성 주머니를 털어 내 빼앗아갔다. 전형적 식민지 수탈이자 착취였다. 이것이 이 땅에서 발행된 근대복권의 '효시'다.
해방 뒤 1947년 12월 올림픽후원권이 발행되었다. 미처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기도 전에 이뤄진 일이었다. 국민이나 백성을 위한 조치들이 이처럼 빨리 이뤄졌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1949년 후생복표(재해대책자금 조성), 1956년 2월-11월 애국복표, 산업박람회복표(62), 무역박람회복표(68) 등이 발행되다 이윽고 1969년 9월 15일 정기발행복권인 주택복권이 찍혀 나왔다.
그 뒤 체육복권 기술복권 복지복권 기업복권 자치복권 관광복권 녹색복권 플러스복권 엔젤복권 등 숱한 복권을 찍어댔다. 마침내 2002년에 저 유명한 로또복권이 한반도에 상륙했다. 이는 복권시장 95%를 장악하면서 한국을 일시에 사실상 도박공화국-경마, 경륜, 경정, 정선 카지노(2000년. 민간인 출입)가 함께 이 길을 열어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시라!-으로 몰아넣었다. 이에 지난 4월 주택복권, 녹색복권, 관광복권 등 13종 인쇄복권을 폐지하고 새로 4종을 더 만들기로 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 대체 이런 도박에 왜 빠져드는가? 그 배경은 무엇인가?
-로또나 '바다이야기'를 비롯한 전자오락 도박에 빠져드는 핵심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도박 자체에 함몰되는 특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 까닭은 놀이라는 특성(호모 루덴스), 돈을 거는 일, 기대 영역에 대해 더 빠르게 반응하는 사람 뇌의 특성 등 다양한 것을 꼽을 수 있겠다. 이는 심리학 따위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몫으로 두면 되겠다.
다른 하나는 도박의 사회구조적 측면이다. 이번 바다이야기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듯 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돈이 넉넉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조사에는 월수입 2백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락실도박에 빠져 있다고 한다. 로또라고 해서 얼마나 다르겠는가. 작년에 있었던 한 증권회사 직원의 삶은 한국인이 왜 도박에 빠져드는가를 비극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딸이 정밀한 수학적 확률을 점검한 끝에 아버지를 설득해 회사를 그만 두고 로또에 운명을 걸고 도박을 했다. 부녀는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줄이고 확률놀음을 통해 팔자를 바꾸고자 했다. 물론 실패였다. 딸은 스스로 목숨을 버렸고 아버지만 혼자 남게 되었다.
성공여부를 떠나 도박이 가난한 이들의 신분상승이나 부를 늘리는 방편으로 작동할 때, 이는 사회구조적 측면을 강하게 지닐 수밖에 없다.
민주화 이후 한국인은 노동에 대한 정상적 보상과 이를 기반으로 한 상식적 삶이 가능할 것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 이후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사회전반에 강제되면서 실직과 고용불안 등은 일상화되어왔다. 그 과정에서 박탈감과 계급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사회 양극화가 그것이다. 이는 정확하게 또 사실대로 말해 계급 격차다.
이러한 조건 아래 사실상 광범한 서민계급의 강제적 충동적 '동의'가 없었다면 성인오락실 1만5천 곳이 하루아침에 등장할 수는 없는 법이다. 권력이든 언론이든 이 현상을 단지 조폭에게 돌리는 것은 파렴치한 짓이다. 1만5천이란 숫자는 목욕탕, 이발소, 미용실을 합친 것보다 많다. 시장규모만 해도 1년 17조원을 넘는다. '합법적 도박'인 경마, 강원랜드카지노, 로또복권 등 5대 사행산업 매출액 15조원까지 더하면 한 해에 자그마치 30조원이 도박으로 탕진되고 있다. 이 돈 전부가 서민 주머니에서 나왔다고 봐도 그릇된 말만은 아닐 터이다.
노동, 곧 땀 흘리는 삶에 대한 보상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리란 불안, 이 생계형 도박은 중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좀처럼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도박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세상을 먼저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이번 도박공화국 사태에 대한 사회진단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몇몇 공무원의 이권청탁과 비리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도박사회화의 본질과는 실질적으로 무관한 도박단속과 비리단속을 통해 국가권력의 엄정함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후안무치한 발상이자 조치다. 이럴 경우 집권세력과 야당이라 부르는 비집권 내지는 예비집권세력 사이에 어떤 차이도 없다. 단적으로 절도죄의 35%, 비폭력범죄의 40%가 도박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명념해 둘 필요가 있다.
- 그런데 이러한 도박판에서 나온 돈을 국가가 지배할 권한이 있는 것인가?
-국가적 사회적 책임은 지지 않고 개개인의 욕망을 통제해서 국가의 위신을 높이고 거기서 생긴 이익만을 챙기는 행위는 문명보다는 야만에 가깝다. 이것이 21세기 문명국가권력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지금까지 확인해본 바로 '국가장려' 합법도박 중 도박중독치료를 위한 장치를 하고 있는 곳은 경륜뿐인 것으로 알고 있다. 도박의 구조적 측면은 전혀 돌아보지 않을 뿐 아니라 거기서 발생하는 후유증 등은 철저히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는 뜻이다.
도박판에서 거둬 가는 돈은 사실상 세금이라고 봐야 한다. 세금을 따로 걷고 또 도박판에서 세금을 걷어온 것이다. 국가는 이 돈을 가져다가 공공 목적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돈을 챙기는 과정 자체의 비윤리성을 감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도박공화국을 중지시킬 수 없다면 현재로서는 그 돈을 가장 잘 갈무리해 둘 수 방안은 국민연금 같은, 서민이 다시 그 돈을 나누어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곳에 '저금'해 두는 게 가장 낫지 않을까 싶다.
- 도박 없는 사회는 가능한가?
-서양은 물론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로 국가는 일찍부터 도박을 통해 개인의 욕망을 장악하여 사실상 착취를 거듭해왔다. 이제 이는 중지되어야 한다.
노동에 대한, 곧 땀의 가치에 대한 사회 구조적 제도적 보장과 내면적 윤리를 갖지 못하는 한 도박은 계속될 것이다. 한국사회는 도박공화국이라기보다 '사행성공화국'이라고 하는 게 더 적당할 듯 싶다. 자본주의 속성이 그러한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에서 땀보다는 부동산을 비롯한 비노동적 영역의 활동을 통해 부와 재산을 더 효과적으로 획득해온 것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이를 흔히 투기로 불러왔다. 한국사회 자체를 도박적 투기(중독)적 가치가 지배해온 것이다. 이것이 한국자본주의 경쟁체제의-노골적-내재율 아닌가.
도박 없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대전제는 이러한 것들이 사회적 동의를 거쳐 사라지고 더 생산적인 가치가 들어설 때 비로소 가능할 터이다. 요컨대 도박공화국보다는 사행성공화국의 구조적 근거가 소멸되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복권과 도박은 체제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하면서 국가의 위엄과 착취를 병행시킨다. 복권이나 도박이 '기회'인 사회는 불행하다. 이와 같은 비정상적 기회가 신념화하는 사회는 더욱 불행하다. 이 병증은 사회 불평등과 비례하는 법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진행:신율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월~토 오후 7시~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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