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요셉

요셉과 그 형제들

은바리라이프 2009. 9. 12. 20:32

요셉과 그 형제들

김희보(총신대 신대원 교수)


    요셉이 감옥 중에 있을 때 술 맡은 관원자에게 다시 복직하면 꼭 자기를 기억하여 줄 것을 부탁했으나 그는 2년 동안이나 잊어버렸다가 창41:1에 보면 " 만 2년 수에 바로 왕이 꿈을 꾼 때에 비로서 요셉을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이것도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묘한 섭리였다고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2년이란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2년이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는 년령을 기다린 것이라고 본다.
    창41:46에 보면 "요셉이 바로 앞에 설 때에 그 나이 30세라"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30세가 되기를 기다리긴 줄 안다. 왜 그런가 하면 30세란 것은 한국가의 지도자가 되기 위한 공적년령이다. 민수기 4:3에 보면 "곧 30세에서 50세까지 회먁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에 참가할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한것을 본다.

    구약시대에 성전에서 봉사하려는 자도 30세부터 였음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삼하 5:4에 보면 다윗도 왕위에 나아갈 때에 그 나이 30세라 했다. 예수께서 공생애에 들어가신 것이 30세인 것도 이러한 관례를 다른 것인줄 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를 기다리시면서 요셉을 2년간이나 더 감옥에 머물러두게 하신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기묘한가? 요셉이 그것을 알았을리 없다. 그러나 후일 요셉도 이런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의지하는 신앙이 더욱 깊어졌다. 창45:5에 보면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의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들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에 보내셨나이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니이다." 하신 말씀이 있다. 억은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된 후 자기의 형들 앞에서 한 말이다.
    형들이 욧베을 만나고 옛날의 죄악을 생각하고 당황해 할 때에 요셉은 그들을 위로 하면서 하는 말이 "나를 이 애굽으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여, 하나님이시라"고 했다. "우리의 생명을 구하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이곳에 보내셨다.
    "고 하면서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음을 근심하지 말고 한탄하지 말라고 오히려 위로 했다. 이것은 모든 불행까지도 다 합동하여 유익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섭리로 요셉은 굳게 믿은 증거가 되는 줄 안다. 요셉의 형들도 요셉의 그말을 듣고는 진정으로 과거를 뉘우치며 회개했다. 요셉은 또한 그들이 회개하는 것을 오히려 그들을 측은히 여겨서 슬피 울었다.
    여기에서 특별히 요셉이 그 형들에 대한 애정과 또 진정으로 회개한 형들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자.

    창 42장 이하여 요셉이 슬피 울었다는 기록이 7번이나 나타나 있다. 네번은 자기 형들을 만나 후 울었고, 한 번은 자기 동생 베냐민을 만나고 울었고, 한번은 자기 동행 베냐민을 만나고 울었고, 한번은 자기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요, 또 한번은 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울었다.
    이것은 요셉의 애정이 얼마나 두터운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제 그것을 한 두가지로 생각해 보자.
    창 42:24 에 보면 "요셉이 형들을 떠나가서 울다가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더니 " 한 말이 있다. 그 내용은 잘 아는대로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요셉의 형들은 곡식을 구하려고 애굽의 총리 요셉에게고 갔다. 그들은 요셉을 몰랐으나 요셉은 그들을 알았다. 거기에서 요셉은 그 형들을 시험해 보았다. 창42:9에 보면 "너희 정탐이라 이 나라를 엿보러 왔느니라"고 요셉은 말했다. 그는 그들을 3일 동안 가두어 두었다가 풀어 주면서 또 하는 말이 창42:17이하에 보면 "너희 한 사람만이 인질로 남아 있고 다른 형제들은 양곡을 가지고 가서 가족들의 주림을 구하고 마지막 아우 베냐민을 데려 오라. 그리해야 너희들이 죽지 아니 하리라"했다. 그 때 그 형들이 서로 하는 말이 "우리가 아우 요셉을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 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그러므로 그의 피값을 내게 되었도다" 했다. 그들은 옛날 요셉을 팔아버린 그 일을 크게 뉘우치게 됐던 것이다. 어린 요셉이 애걸하던 그 모습이 그들에게는 생생하게 되 살아 나게 되었다. 그들이 통역을 세웠으므로 요셉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줄 알고 서로 말하며 탄식했다. 이렇게 그 형들의 슬퍼하는 말을 들은 요셉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물러가서 42:24에 있는 그대로 "골방 에 들어가서 홀로 목놓아 슬피 울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의 눈물을 그 형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자기의 정체를 알리지 않았다. 자기 형들의 철저한 회개를 시험해 보려 했던 것이다. 창44:17에 보면, 그것은 가서 베냐민을 종으로 남겨 두라고 했겠는가? 그것은 이유가 있다. 베냐민은 그 어머니 라헬의 소생으로 요셉과 같은 어머니의 아들이다. 과거에 요셉을 미워하던 그 형들 이 이제 자기의 친 동생인 베냐민에 대해서는 그 태도가 어떠한 가를 보려 했던 것이다.

    그 때에 그 형제들 중에 특별히 우리는 유다를 기억할 것이다. 창44:33에 보면 유다는 애굽의 재상 요셉에게 말하기를 "베냐민 대신에 자기가 종이 되겠다" 했다. 그 때 유다의 말이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그 노년에 얻은 아들이 있으니 그 형 요셉은 죽고 그 동생하나 뿐이므로 그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했다. 과거에 그들은 요셉을 아버지가 유달리 사랑하는 아들인 때문에 죽이려 했지마는 이번에는 아버지가 특별히 사랑하는 때문에 베냐민을 살리려 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회개가 아니겠는가. 과거의 태도 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 형 유다는 다시 말하기를 아버지를 이상 더 슬프게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이 아이를 데려 가지 못하면 아버지가 그 아들이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우리 아버지의 흔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 가게 함이니이다." 했다. 유다는 이처럼 아버지에게 더 죄는 범할 수 없으니 나를 가두어 종으로 삼아 달라고 애걸했다. 창45:1 이하에 보면 이 말을 들은 요셉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물리친 후에 그 형의 목을 안고 방성대곡하니 그 우는 소리가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했다.
    창 45:15에 보면 "그 형들과 입을 맞추며 안고 우니" 하는 말이 또 있다 여기의 요셉의 애정도 애정이려니와 회개한 형들은 얼마나 큰 복을 받았느지 모른다. 특별히 그처럼 철저한 회개한 유다가 받은 복이 무엇인지 성경은 우리에 게 분명히 가르처 주고 있다.

    본래 유다는 복을 받을만한 인물이 되지 못했다. 창38:2에 보면 그는 그 부모가 그렇게 금하는 이방의 여자를 아내로 얻어서 아버지의 마음을 슬프게 한 아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인 "엘"과 "오난"은 악한 아들들로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었다. 또 유다 자신도 부끄러운 음란한 죄를 범하고 벌을 받았다. 그러므로 역대상5:1에 보면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장자의 명분을 잃어 버리게 됐다. 갑절의 기업을 받는 그 장자의 명분은 드디어 요셉에게 돌아가고 유다는 그것을 잃어버렸다. 꼭 유다의 행동은 에서와 같이 망령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유다가 앞서 본대로 크게 회개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얼마나 크게 축복했는지 모른다. 참으로 회개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유다에게서 볼 수 있다.

    창 49:9-12 까지는 그에게 내린 하나님의 축복이 기록되어 있다."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감히 그를 범하리요,홀(권세)이 유다를 또나지 아니하여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했다. 이것이 유다의 받는 축복인데 그 축복의 내용인즉 그와 그 후손은 12지파 중에서 가장 강한 지파가 될 것을 약속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 장자의 기업 이상의 큰 축복이다. 이처럼 유다는 요셉에게 대해서 지은 죄를 회개함으로 큰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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