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누구의 손을 들어주었을까?
예수 사후에(일설엔 부활했다는 흥미로운 주장도 있음) 종단 운영을 두고 예수의 정통 제자들인 베드로와 동생 야고보가 주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로부터 직접 사사를 받지 않았고, 이들 신흥종교를 배척하고 있던 바울이란 자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당시 바리새파 유대교의 신자였습니다. 성경에서 스스로도 밝히고 있지요.
바울은 어느날 예수를 만나서 이방포교를 지시받는 환상을 겪게됩니다. 이후 바울은 이를 확신하고 고린트등 그리스 지역 및 로마로 포교를 나서게 됩니다. 이로써 예수교가 로마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는 것인데, 본래 예수로부터 어떠한 교리도 배운적이 없었던 바울은 나름대로의 종교관을 정립하고 활동하게 되는데, 후에 기독교가 조로아스터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지적을 받게되는 계기가 됩니다.
바울이 신봉하던 종교는 예수가 생전에 복음서에서 그토록 비방을 일쌈던 바리새파 유대교 였습니다. 바리새파는 BC5세기경 페르시아에 의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하면서 제국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수용하여 돌아왔기에 유대땅에서 정착된 교파입니다.
사실, 유대교(기독교 구약시대) 자체가 BC5세기 이후에 이렇게 변질된 겁니다. 그중 바리새파는 그 조로아스터교적 성향을 더욱 강하게 유지하고 있던 종파이고.
한편, 예수의 정통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한 활동에 그치게되어 후에 로마제국의 중심지에서의 포교에 성공을 거둔 바울파와 기독교의 정통성을 놓고 크게 대립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두 종파의 지도자들은 베드로전후서, 고린도 전후서, 사도행전등을 통해 비난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 한국의 단순한 신자들은 이들이 서로 자기종파의 단결과 상대에 대한 비방전을 벌이고 있는 서신형식의 성경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 그저 잘해보잔 뜻인줄만 압니다.
결국 로마제국내에서의 확고한 종단 지부를 결성하는데 성공한 바울은 자신의 주도하에 오늘날의 신약성경 교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리로 기독교의 체제를 세우게 됩니다.
그가 남긴 교리는 신약성경의 핵심으로써 다음과 같습니다.
데살로니카 전후서, 에베소서, 고린도 전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로마서등으로 신약, 아니 기독교의 교리 거의 대부분이 바울의 저서(실제론 후에 가필된 것으로 학자들은 판단)로 채워져 있어서,
예수 생전만해도 일개 지역의 소수종파에 불과했던 기독교가 국제적인 종교로 성장하게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바울 본인의 조로아스터교적 교리는 물론이고, 후에 그의 저서 편집자들의 본거지인 그리스 로마지역의 헬레니즘 철학적 영향으로 당초 예루살렘 종파와 크게 차이나는 교리로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제국의 종파(바울)와 정통 예루살렘 종파(베드로, 야고보)는 포교와 교리의 충돌로 기독교는 초기부터 수많은 분파로 나뉘게 됩니다.
그래서, 서기 4세기 후반 로마의 권력(콘스탄니누스황제)을 등에업은 유세비우스가 여타 종파를 모두 몰아내고 교리를 일원화 할때까지 기독교는 전혀다른 교리를 바탕으로한 수많은 종파로 나뉘어 있게됩니다.
한마디로 당초의 기독교(초창기)는 예수란 인물만 중심에 있었을 뿐,
완전히 다른 종교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 난립상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보고 있는 기독교는,
초창기에 있던 숱한 종파중 일부만 남겨진 모습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신의 계시에 의해 성립되었다는 것은 완전 뻥이고,
4세기 초 로마의 폭군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시대의 최대 종파였던 미트라(미스테리아)교를 억누를 양(사실은 원로원을 견제하기위해)으로 황제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낸 신흥 종교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로마시대 종교인 미트라의 영향을 크게 받은 교리및 설화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가 바로 미트라교의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마침 한 기독교 싸이트에 이에 대한 연구저술이 올라있는 것을 발견하고 옮겨봅니다.
베드로와 바울의 교권다툼
- (기독교 싸이트에서 펌)
신약의 예수는 바울(Paul)과 그 추종자들이 그들의 필요에 의해 대표적이며 상징적인 인물로 재구성과 재포장을 통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서양의 철학자 Kant, Fichte, Schelling등에 의해 신약 속의 바울 사상이 구별되어 지고 Ernest Kasemann 같은 신학자들이 나타나, 기존 기독교 교단에서 절대 금기시하는 의심을 품기에 이르른다.
'기독교는 바울에 관한 종교다. 기독교는 예수의 복음을 예수에 관한 복음으로 대치해 놓았다-빌헬름 네슬(Wilhelm Nestle)'
신약 성서가 바울의 사상이라거나 원시 기독교 교리에 바울주의 사상과 역사 끼워넣기를 통해 만들어진 사상 최대의 집필진을 가진 총체적 종합서로 평가를 받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가 있다.
이러한것은 제임스 로빈슨(James M. Robinson)이나 헬뭇 쾨스터(Helmut Koester)가 신학적으로 정립하였다.
4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12 제자는 어떻게 된것일까?
성경은 이들의 행적을 완전 무시 하고 있다.
기독교측에서도 정경으로 채택 하기를 거부한 외경들에 간간이 그 들의 행적과 말로가 기록 되어있다.
영지주의적인 내용이 너무도 강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배척된 문서들이다.
정경으로 채택된 오늘날의 정경에서는 베드로를 제외하고 예수의 12제자들은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육체적 예수를 만난적이 없는 바울이 기독교를 널리 전파했다.
당시 그리스 로마 사회나 유태 사회나 몹시 혼란스러웠고,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을 요구 하고 있었다.
여기 저기에서 자칭 그리스도들도 나타나고 독립적으로 '사도'들도 나타났다.
서로가 서로의 교리를 비판하고 교세를 키우기 위해 경쟁 하였다.
바울도 그러한 사도들 중 하나였다.
독립적으로 구약 성경을 연구 통달하고 영적인 깨달음을 가진 영지주의자들은 구원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 했던 것이며, 바울의 교리와 크게 어긋나지 않았던 자들은 사도로 불러 주고 있는 것이다.
즉, 12 제자가 아닌 자들이, 동시 다발로, 광범위한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증거 하고 있었던 것 이었고, 제9장에서 지적해 놓았듯이 수많은 동방의 구세주전설이 오랜세월에 걸쳐 차곡차곡 모자이크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바울은 쌍벽을 이루며 라이벌이었던 '아볼로'와 함께 동방의 구세주전설을 표방한 수많은 사도들과 교세다툼을 했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헬라어로 베드로)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고린도 전서 1장 11~12절]
개역한글판의 해석이 희미하므로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을 올린다.
'내 형제 여러분, 나는 클로에의 집안 사람들한테 들어서 여러분이서로 다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은 저마다 '나는 바울로파다' '나는 아폴로파다' '나는 베드로파다' '나는 그리스도파다' 하며 떠들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장 11~12절-공동번역판]
이미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아볼로파, 베드로파, 바울파로 나뉘어진 교인들에 대해서 한탄하고 있다.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고린도 전서 3장 4절]
역시 번역이 애매하므로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을 올린다.
'여러분이 세속적인 인간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나는 바울로파다' 라느니 '나는 아폴로파다' 라느니 할 수 있겠습니까?' [고린도 전서 3장 4절-공동번역판]
베드로, 아볼로등의 사도들은 모두 바울의 라이벌이었던 것일까?.
나그하마디문서를 비롯한 금 세기 발굴들로, 그 어느 때 보다도 초기 기독교에 관한 정보를 더 많이 가지게 된 오늘 날, 모든 학자들이 한 가지로 공통되게 찬성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초기 기독교의 극심한 다양성일 것이다.
오늘 날의 기독교는 이 초기의 다양성을 극복하고 훨씬 통합 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초기 기독교의 분열상은 적어도 현대의 기독교계의 분열상에 못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날의 분열상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현재는 그래도 정립된 유사한 범주의 정경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독교 초기 시절의, 다양한 분파의 난립 와중에, 바울 분파(Pauline Faction)과 베드로 분파(Petrine Faction)간의 대립, 갈등의 흔적이 보여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바울은 할례파 사람들에게 굴복한 베드로와 바나바에게 위선자라고 비난한적도 있었다.
고린도 후서 10~12장에 나오는 바울의 라이벌 사도들은 누구인가?
바울은 고린도 후서 11장 13~14절에서 그들에 대해서, 거짓 사도, 가면 쓴 자들로, 천사의 탈을쓴 사탄으로 매도한다.
특히 고린도후서 11~12장 전체는 주목해 볼만하다.
바울은 다른 사도들을 비방하면서도, 바울 자신이 저들보다 내가 조금도 못할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며(고린도 후서 11장 5절), 다른교회에서 돈을 받아 고린도 교회에 봉사했으므로 고린도교회에는 피해가 아니라 득을 주었다고(고린도 후서 11장 8절) 항변하고 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1장 21~30절에서 바울 자신도 그들과 똑같은히브리인이며, 모진핍박과 힘든일을 당한 사람이라고 동정을 호소하고 있으며, 12장에 이르러서는 자신도 그리스도로부터 환상과 계시를 받은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2장 17절에는 자기가 어느 누구를 착취한적이 있냐고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서신이 쓰일당시 고린도에서 바울의 권위가 상당히 위태로웠다는 것을 추측해 볼수가 있다.
12장 16절에는 고린도교회의 어느 사도가 바울을 해꼬지 했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바울을 위기에 빠뜨린 그 사도들은 누구인가?
여기에 하나의 단서가 있다.
아래의 베드로 후서에서 베드로는 바울서신에 대해서 언급했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베드로후서 3장 15~16절]
베드로는, 바울도 그리스도에게 지혜를 받은 한 형제지만, 그의 서신은 내용이 어려워서 무식한자들이 잘못 해석하면 멸망에 이른다고 한다.
얼핏보면, 바울서신을 함부로 해석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 같지만, 자세히 내용을 살펴보면, 베드로의 숨은 의도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종말론에 치중해서 수많은 묵시문학이 등장했으며, 구약의 예언서들에 심취하는자들이 많았다.
난해하기 그지없는 상징들로 가득찬 묵시록을 함부로 해석하는 자들에 대해 베드로가 경고를 했다면 당연히 이해가 가지만,도데체 바울서신이 어떤면에서 내용이 난해하다는 것인가?
바울서신에서 내용이 난해하다고 할 만한 내용이 있는가?
아마도 베드로는 위의 고린도서에서 지적한바와 같이 다른 사도들에 대해서 비난을 퍼붓는 바울에 대해 불쾌감을 느낀 것 같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도 할례파에게 굴복한 베드로와 바나바를 위선자라고 한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고린도서에서 바울이 비난하는 다른사도란 베드로, 혹은 베드로의 추종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로마서에서부터 히브리서 까지 바울 서신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불평은 바로 사도권에 관한 것이다.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찌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고린도 전서 9장 1~2절]
이러한 베드로분파와 바울분파의 마찰은 외경속에서도 드러난다.
초대교부(apostolic fathers- 사도들중 예수의 제자들과 직접적인 교통을 했다는 인물)인 저스틴 교부는 기독교의 사조 바울에 대해 일체 언급이 없으며, 바울의 서신들에 대해서도 침묵 한다.
사도 행전도, 바울의 행적이 주된 내용이 되어야 할 성질의 글이 었으나, 그의 순교하기 까지의 기록은 싣고 있지 않다.
바울이 나사렛 예수에 대해 침묵 했듯이 베드로 분파의 바울에 대한 침묵이라는 현상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바울에 관한 침묵 내지는 암시적 공격의 극치를 보여 주는 문서를 보자.
초기 교부인 클레멘트는 베드로의 후계자로 알려진 구교의 중요한 인물이다.
이 클레멘트의 이름을 저자로 빌린 (유사 클레멘트 문서), Homily(설교, 훈계)가 우리의 관심 거리이다.
이 문서는 클레멘트가 기록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의 이름만을 빌린 위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Homily I에서 저자는, 클레멘트 본인이 쓴 형식을 취해, 클레멘트의 어린 시절 영혼의 구원 문제에 고심한 것, 유대 지방에 신의 왕국을 선포하는 한 목소리가 전파 되기 시작한 것, 로마에 기쁜 소식 (gospel)이 전 해진 것, 본인이 이를 듣고 로마를 떠나 유대로.가던 중 풍랑으로 알렉산드리아에 도착 하는 것, 그 곳에서 바나바의 노상 전도 설교를 듣게 되는 이야기, 이후 유대로 도착 하여 먼저 떠났던 바나바에 의해 베드로에게 소개되는 경위, 베드로 가르침에 심복하여 이후 그와 동행하며 베드로의 행적을 기록하게 되는 경위를 쓰고 있다.
작자는 미상이고 2 세기 중반 내지 3 세기 중반의 문서로 추정 되고 있다.
물론 역사적 얘기가 아닌 가상의 드라마 임이 분명 하지만, 저자의 의도가 숨어 있는 문서인 것 이다. 그 의도는 무엇일까?
제목과 내용에서도 얼른 알 수 있는 것이 이것은 베드로 분파의 작품 이라는 것이다.
초기 이방 선교 상황을 묘사 하는 문서인데 바울에 대해 일체 침묵 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위에서 언급한 다른사도들과 관련된 외경에서도 나타난다.
독일 튜빙겐 학파의 바우어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문서는 베드로 분파의 바울 분파에 대한 공격을 암시 하고 있다고 해석 한다.
즉 글 중에 나오는 베드로의 적 이자 경쟁자 시몬은 사실 바울을 빗댄 인물 이라는 것이다.
글중, 줄기차게 베드로 따라 다니며 공격하고 비판하는 시몬, 그는 누구인가?
사도 행전 8장 9절 이하에도 나타나는 시몬은 마술사이며 동 구절이 성경 상에 보여지는 그에 관한 정보의 전부이다.
저스틴 교부('First Apolog.', xxvi)에 의하면, 시몬은 사마리아의 깃타 지역 출신으로, 스데반과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 왔을 때, 그들에게 세례를 받았으나, 그의 진짜 목적은 그의 마술의 힘을 키우는 것에 있었다고 한다.
후에 베드로와 사도 요한이 사마리아에 왔을 때 그들의 능력을 보고 돈으로 사고자 했음은 사도 행전에 기록 되어 있다.
잘못을 빌고 베드로의 축도 받기를 원했으나 그 후에도 그의 행실은 여전했으며, 최초의 이단자 또는 이단의 아버지라 명명 되었다고 한다.
Homily XVI에서 시몬은 줄기차게 베드로에게 언쟁을 걸어온다.
베드로가 시몬에 빗대서 바울을 공격하려고 했다면 무슨 공격이 가장 필요 했을까?
성경속에서는 사도직의 권위 다툼 와중에서도, 아무 측도 나사렛 예수의 친 제자임을 들어 기득권을 쟁취 하려 하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 있다.
즉, 베드로를 포함한 어느 사도도 예수를 옆에서 목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신화파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제 바울서신과 복음서들이 쓰여진 지 적어도 100년 뒤에 Homily의 기자가 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그 것이다.
즉 100 년 전의 침묵에 대해 보완하는 것.
즉 베드로는 예수를 옆에서 목도한 사도이니 만큼, 환상을 통해 예수를 만난 사도보다 우월한 사도임을 설파하는 것, 바로 그 것이다!
베드로는 이제야 드디어,
'환상을 통한 경험을 토대로 한 자가 선생의 지위에 오를 수 있겠는가?'
하며, 시몬 (바울?)을 공격 하기 시작 한다.
Homily XVII에서 베드로는, 육체적 감각 기관으로 체험한 것이 초 자연적 환상의 경험보다 더 확실 하다고 주장 한다.
'여호아가 진노중 아론과 미리암에게 하신 말을 보라. '선지자가 너희 중에 일어 나면, 내가 그에게 꿈과 환상들로 나타내 보이겠으나 모세에게는 그러히 아니 하리니, 모세에게는 내가 친히 내 모습을 보이리라. 꿈이 아닌 마치 친구에게 얘기하듯..... ' 진노 중 에는 환상과 꿈으로 보이시는 것을 알겠느냐? 그러나 친구에게는 얼굴 마주 대 하듯이 하시느니라. 적에게는 꿈과 환상을 통 하지만........ '
즉, 주의 진정한 종에게는 육체적으로 만나 주시지만 꿈과 환상을 통해 본자는 필경 주의 진노하심으로 말미암음 이라는 얘기이다.
이어서 (Chapter XIX.)
'만약 예수가 너에게 환상을 통해 나타나서 말씀 하셨으면, 그는 필시 너를 적대하여 분노 중에 나타내 보이셨음이라. ................몽환 중에 예수의 가르침을 받을 자격을 갖춘 자가 어디 있느뇨? ........만약에 그럴 자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왜 예수가 우리와 친히 섞이셔서 일 년을 지내시며 가르치셨는가?.....너희가 진짜로 환상을 통해, 한 순간 만 이라도, 예수의 제자가 되었더라면, 그와 현실에서 동행까지 했던 나를 적대하지 말라. 너희가 교회의 반석을 적대하게 됨이라.'
이제야 기대하던 공격이 나오는 데,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
이 문서에서 베드로는 환상적인 메시아를 접한 시몬을 적 그리스도로 묘사 되고 있는 데, 여기 등장하는 시몬은 다메섹으로 가던중 예수의 환상과 접하게 된 바울을 빗댄 것이 아닐까?
바울의 가르침은 복음서 보다 앞서 이미 유행 하고 있었고, 따라서 나사렛 예수에 대해 침묵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는 역사적 예수를 목격하지 못했고, 그가 접한 그리스도는 영지주의적인 그리스도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영지주의자로 몰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Homily에는 다음과 같은 암시가 있다.
베드로는 거짓 선지(적 그리스도)가 나와 거짓 복음을 먼저 전파 하리라 하고 예수가 설파했다고 주장하며, 진짜 복음은 이단(적 그리스도)의 방해를 피해 숨겨져 있었다고 설명 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바우어등의 학자들은, 초대 교회의 베드로 분파 (Petrine faction) 와 바울 분파(Pauline factions)의 대립의 증거로 비추어 지고 있는 것이며, 이 두 양대 산맥의 통합이 오늘 날의 구교, 더 나아가 기독교의 근간이 되었다고 주장 하게 되는 실마리가 된다고 주장했다.
즉,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바울과 다른 사도들 간에 투쟁은 '할례'라는 유대 율법적인 문제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바울서신들이란, 갈라디아교회와 고린도교회가 예루살렘교회의 유대주의자들의 측에 서서 바울을 배척하자, 위기에 직면한 바울은 서신들을 통하여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려고 한 것이다.
이런 바울의 노력이 갈라디아교회에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로 나타났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최후의 승리자가 바울이었음을 오늘날의 신약에서 당연히 알수가 있다.
오늘날의 신약의 4/1을 차지하는 바울서신들로인해 진정한 최고의 사도는 바울처럼 비춰진다.
베드로와 요한을 제외한 예수의 나머지 12사도들은 어떻게 된것인지 행적도 제대로 알수가 없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외경을 다룬책인 '숨겨진성서-THE OTHER BIBLE,윌리스 반스토운)에서 다른 사도들의 행적을 담은 외경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가 있다.
베드로 복음, 베드로계시록, 베드로행전, 요한행전, 도마행전, 안드레아행전, 에비온복음(12사도의 선택),등등이 있다.
이것들이 버림을 받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바울분파가 득세하면서 많은 것들이 정경으로 채택되지 못하고 버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예루살렘에 근거지를 둔 정통적인 베드로분파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베드로가 초대 교황으로 추인 되었고 천국의 수문장으로 숭상되는 전통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최후의 승리자는 바울분파였다.
갈라디아서2장에서 베드로는 히브리민족에게,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직을 부여받게 되었는데, 기독교가 공인되고 국교가 된곳은 이스라엘이 아닌 로마제국이었다.
무할례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한 바울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베드로 분파는 로마에서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바울분파가 정통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필자가 '초대교회'라는 단어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초대교회의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자라는 글들이 무수히 검색되었다.
이른바 신학을 배웠다는 목사들이 그런 식으로 글을 썼는지 필자는 의문이다.
성경자체만을 가지고 살펴보아도 초대교회가 얼마나 혼탁하고, 교권다툼이 극심했는지를 유추해 볼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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