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바울

바울복음의 기원

은바리라이프 2009. 9. 4. 13:21

바울복음의 기원



제2판의 부록-서평자들의 비평에 대한 저자의 답변



1.C.J.A.Hickling의 비평-바울의 복음이 다메섹의 그리스도의 현현에서 도출된 것이라 입증하기 위해 사도행전 9장에 의존해 있다.

→저자의 답변-서론부분을 제외하고는 사도행전을 거의 사용하지 않음. 사도행전의 기사는 바울 자신의 증거를 뒷받침해 준다는 한에 있어서 아주 가끔씩, 2차적으로 사용함. eicon이라는 단어는 사도행전의 기사중에는 나타나지 않는 반면 바울서신 중에는 그와 연관된 단어가 많이 나옴. 바로 그것들이 다메섹의 그리스도의 현현을 언급한 것이나 예시한 것이라는 점. 그러므로 그것을 설명하는데 사도행전은 필요치 않음.



2.또 다른 일반적인 비평- 너무 일방적으로 바울신학의 주류를 다메섹의 그리스도 현현에서만 도출하려고 함으로 바울이 기독교 내에서의 그의 선진들, 선교의 상황에서 맞닥뜨린 체험, 적대자와의 논쟁, 다메섹 이후의 체험들에 대해서는 주목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려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162-168에서 위에 언급된 요인들과 다메섹 체험과의 관련성을 설명하였고 그것을 결론부분에서 되풀이함. 이 요소들을 다메섹의 그리스도의 현현에서 비추어 보았고 다메섹의 체험에 부합하는한 그것을 사용. 그것들을 취하여 다메섹 사건을 해석함. 바울복음의 기원은 오직 다메섹사건임을 주장함.



3.바울서신안에 있는 구절들중 일정한 형식을 갖춘 문형이나 찬양시적인 본문들 대부분(빌2장, 골1:15-20)은 바울이전의 것이라는 견해에 도전하고 있다는 비평.



→εικων이나 μορφη, 또는 그 파생어 들이 들어간 본문이 바울의 것이라고 주장함. 그것들이 바울이전의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바울의 전 신학을 다메섹의 계시로부터 추적하려는 저자의 시도를 거부하기 전에 서평자들은 먼저 바울신학의 어떤 요소가 다메섹의 계시로부터 완전하게 독립적인가, 더 엄밀히 말해 어떤 요소가 다메섹의 계시로부터 완전하게 분리될 수 있는가를 밝혀야 할 것임. 바울복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라면 여러가지 다양한 요소를 상정할 수 있지만 그것이 기원의 문제라면 다메섹체험이 될 수 밖에 없다. 다메섹 체험으로 끊임없이 관련성을 찾지 않는다면 바울신학의 뚜렷한 강조점을 정확히 파악할 수없다.



4.εικων기독론의 독창성문제-일부 비평가는 독창성이 없다고 평가.



→다메섹의 그리스도의 현현으로부터 εικων기독론에서 아담기독론과 지혜기독론을 도출해 내려는 체계적인 시도(6장과 7장)는 바울연구에 있어서 하나의 독창적인 공헌이라는 것을 인정받기 원한다.



5.Christian Wolff의 비평-바울의 아담기독론이 다메섹체험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견해에 근본적으로 동의를 하나, eicon-기독론이 다메섹의 그리스도의 현현에 근거한다는 논지를 부정함. 아담기독론 안에서 imago dei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



→고후3:1 -4:6절이 다메섹의 체험을 반영하고 있다는 견해에는 동조하면서, 3:18절은 그것과 상관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바울서신의 본문에 접근하면서 지나치게 적대자의 가설에 사로잡혀 있는듯 하다. 구약 유대교의 전승에서와 같이 바울도 영광과 형상을 동의어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롬3;23의 바울의 진술은 적어도 유대의 전승 안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것을 암시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며 믿는 자들의 영광받음에 대한 바울의 진술(롬8:30, 빌3:21, 고전15:43)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의미를 함축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고후4:4-6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예 대한 언급은 바울이 첫 창조와 새 창조 사이의 병행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6.D.M.Stanley의 비평-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 구원의 독특하고 유일한 원천임을 깨닫기만 한다면 십자가에 달린 자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다고 하는 개념은 바울 안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형식을 취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그의 진노를 받게 함으로 우리로 하여금 의롭다 함을 받고 그와 화목케 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7.H.Raisanen의 비평-바울에 있어서 율법과 죄의 관련은 바울이 율법에 대한 열심으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였으나 그것이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행위로 판명이 났었던 바울의 체험에 기반을 둔다는 저자의 견해를 부인함.



→그의 견해가 정당화하려면 바울서신의 본문에 대한 저자의 해석에서 틀린 점을 밝히고 이 모든 본문들에 대한 설득력있고 대안이 될 수 있는 해석을 내놓아야 할 것임. 바울의 핍박행위의 이유에 대한 그의 해석-바울이 의식하고 있는 유일한 과거의 죄는 그가 교회를 핍박햇던 일이다.-을 볼때 그가 부인해버린 견해를 담고있다.



†Raisanen의 문제점-그의 선입견과 연구방법에 기인



1.그는 바울이 자신의 회심/부르심을 언급하거나 예시하고 있는 본문들을 무시하는데 그렇게 하여 그는 율법에 대한 바울의 신학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자기 생각에는 가장 비평적이지만 실상은 가장 비평적이지 못하고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바울에 대한 소설쓰기를 행하고 있다.



2.Raisanen은 바울의 확고한 논리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몇몇 결정적인 본문에 대한 일관성있는 해석은 내어놓지 않고 그 본문들 중에 이 구절 저 구절을 집어내어 그것을 다양한 문맥안에서 단편적으로 검토한다.



3.바울시대에 유대교는 이미 그안에 율법에의 순종을 통해 의롭다함을 받기를 추구하는 그러한 종교의 형태가 아니었다는 Raisanen의 추론은 완전히 자만에서 나온 산물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유대교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것은 유대교에 대한 곡해라고 비평함으로써 그는 실상 자신이 이전에 바리새인이었으며, 율법의 생도였던 바울보다 바울 당시의 유대교에 관하여 더 잘 알고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며 또는 Raisanen이 유대교에 관한 지식을 많이 의존하고 있는 샌더스와 그 외의 비슷한 소수의 학자들이 바울 자신보다 1세기 유대교를 더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샌더스의 근원적인 약점은 1세기의 유대교를 그려내는데 있어서 신약의 증언을 전혀 참고하지 않고 대신에 그것보다 훨씬 후기의 자료에 광범위하게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바울 자신의 증언에 대해 의심하기로 그렇게 단단하게 준비된 Raisanen이 훨씬 후기 자료들에서 발견되는 랍비 문헌들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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