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신학
I 서론
1.바울의 이름
바울서신에서 사도는 자신의 이름을 바울(paulos)로 부르고 있으며, 이 이름은 베드로후서 3:15과 그리고 사도행전 13:9이후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사울"에서 "바울"로 이름이 바귀어 지는 것에 주복하고 있다. 그러나 그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두 개의 이름을 가비고 있었는데, 하나는 셈식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헬라식 혹은 로마식 이름이었다. 다라서 "사울"이 회심할 때 바귀어졌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다.
2. 바울 생애의 자료들과 연대기
바울에대해 알려진 내용은 얼마 되지 않지만 두 개의 주요 자료들이 즉 바울의 진정서신들과 사도행전이 우리들에게 전한다. 그러나 이 두가지 자료들이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선교 활동에 대한 누가의 이야기는 그의 뚜렷한 문학적 경향들 및 신학적 관심사들에 의해 채색되어 잇기 때문이다. [바울의 활동 순서표]에 있는 바울 서신과 사도행전 사이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임을 주목해야 한다.
(1)누가는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돌아온 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2)누가는 바울의 선교 활동을 세묶음으로 분류하고 있다.
(3)누가는 바울이 다메섹에서 탈출하게 된 원인을 이야기하고 있다.
(4)누가는 바울이 스데반의 죽음에 동의했다는 것을 묘사하는 반면 바울 자신은 단지 "하나님의 교회"혹은 "교회"를 핍박했다고만 말하고 잇으며 스데반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II 바울의 생애
1. 젊은 시절과 회심
(1)바울의 젊은 시절
바울이 출생한 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빌레몬서 9절을 토대로 주후(AD)처음 10년 이내에 태어났을 거라 추정하고 있다.
바울은 그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우리들에게 결코 말하고 있지는 않으나 그의 이름 파울로스는 그를 로마의 어느 도시와 연관시키고 있다. 그는 자신의 유대적 배경을 자랑하며 "히브리인"이라고 부름으로서 이는 그가 도한 아람어도 말할 줄 알고 구약 성경을 히브리어로도 읽을 수 있는 헬라어를 말하는 유대인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의 서신에 나오는 스토아의 수사적 논쟁의 흔적들은 그가 헬라 교육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누가는 바울을"유대인"으로, 길리기아의 헬라도시인 다소에서 태어난,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자로 나타내고 있다. 만일 바울의 대생에 대한 누가의 정보가 정확하다면, 그것은 바울의 헬라적 배경과 유대적 배경 모두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2)바울의 회심
바울은 갈라디아서 1:16에서 그의 일생의 중대한 전환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회심이 다메섹 근처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동사 "돌아갔다"는 말에서 추정된다. 따라서 36년경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도한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던 것이다.
2.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바울 서신에 의하면 바울은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을 두 번 방문하였는 데, 한 번은 3년 후에 그리고 도 한 번은 14년 후 이다. 바울이 AD39년 다메섹에서 탈출한 후, 그는 처음으로 "게바를 심방하려고"예루살렘에 올라갔는 데, 바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예루살렘에 출입하고 계속해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였으나 이일로 헬라파 유대인들을 자극하여 바울을 죽이고자 힘쓰게 된다. 이 일이 헬라파 유대인들을 화나게 함으로서 위험이 발생하여 형제들이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또 다소로 보냈다. 다소에서의 체류는 바나바가 방문함으로서 긑이 나는데, 바나바는 바울을 안디옥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1년간 머무르면서 복음 전파에 전파하였다. 누가는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 즉 "기근 방문"을 이 기간과 관련 시킨다.
3. 바울의 선교
사도행전은 바울의 선교 활동을 세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나 누가는 현대인들이 선교 여행을 나누는 것처럼 제1차 선교, 2차선교, 제3차 선교등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바울의 선교 여행들은 대략 AD46-58년에 걸쳐 있었는 데 그의 생애에서 가장 활동적인 기간이기도 하였다.
(1)제1차 선교 (AD46-49)
바울은 예루살렘 회의 이전에 있었던 14년 동안의 선교 활동에 대하여 우리들에게 어떤 상세한 내용도 말해주지 않는다. 단지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마게도냐의 빌립보까지 통과했기 때문에, 그는 제1차 선교 기사에서 남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을 언급할 수 있다.
(2)예루살렘 회의 방문(AD49)
누가에 의하면 바울이 안디옥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에 유대에서 온 회심자들이 안디옥에 도착하여 구원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 이 주장으로 유대로부터 온 형제들과 바울 및 바나바 사이에 변론이 일어나게 되자,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 및 그밖의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이 방문이 이른바 예루살렘 회의로 불리워지게 된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회의는 초보 단r계에 있는 교회를 유대교적 뿌리에서 해방시켜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열어 놓았다.
(3)안디옥 사건(AD49)
예루살렘 회의 이후 바울은 안디옥으로 내려가 베드로와 함께 이방그리소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으나, 곧 유대교적 성향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안디옥에 와서 이방인 회심자들과 식사를 하는 것에 대해 베드로를 비난하였다. 베드로는 그들의 비난에 굴복하여 자신을 이방인 회심자들과 구별하였고 이방인 회심자들에 대한 유대교 음식 규정의 규율 문제가 이때 제기 되었다.
(4)음식 문제들에 대한 예루살렘 훈령
바울이 베드로가 안디옥을 떠난 이후 야고보가 사도들과 장로들을 다시 소집하였으며,협의 결과 야고보는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편지를 보내어 권면하기를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우상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짐승과 음행을 멀리하도록 하였다.
(5)제2차 선교(AD50-52)
실라가 바울을 동행하여 안디옥을 출발해서 그들은 수리아와 길리기아를 지나 남갈라디아의 도시 즉 더베와 루스드라로 나아갔다. 비르기아를 지나 북갈라디아로 가서 거기서 새로운 교회들을 세우고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 갔다. 바울은 환상에 응답하여 빌립보의 항구인 네압볼리로 갔다.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종의 귀신을 쫒은 것 때문에 투옥되어 매질을 당한 후, 바울은 암비볼라와 아볼로니아를 경유하여 데살로니가에 이르렀다. 그러나 유대인들과 논쟁으로 인하여 마침내 아덴에 이르게 되었다. 아덴 사람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데 실패한 바울은 고린도로 나아갔다. 바울의 고린도 체류가 끝날 무렵 그는 총독 갈리오앞에 글려 왔으나 갈리오는 그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유대법에 관한 것으로 간주하여 무리들을 쫒아 냈다. 고린도를 떠나 겐그리아 항구에서 출발하여 에베소와 가이사랴로 향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한 후 그는 안디옥으로 가서 거기에서 1년 이상을 머물렀다.
(6) 제3차 선교 (AD54-58)
바울은 안디옥을 떠나 북갈라디아와 부르기아를 지나 에베소에 이르었다. 그의 선교 활동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에베소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도 이 기간에 기록하였다. 에베소를 떠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드로아로 갔으나 그 곳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하였으므로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려고 작정하였다. 나게도냐에서 고린도후서 10-13장이 기록되었을 것이다. 마침내 바울은 고린도에 도착하였는 데 이는 그의 세 번째 방문이었으며, 아마도 57년 겨울에 도착하여 아가야에서 3개월간 체류하였다.
4. 바울의 마지막 투옥
바울의 남은 생애에 대해서 사도행전은 58년 이후의 몇 년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기간동안 바울은 긴 수감 생활을 견디어 내어야만 했다.
(1)마지막 예루살렘 방문과 체포(AD 58)
예루살렘에 도착하지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 앞에서 야고보에게 문안을 하였다. 그리고 7일 간의 의식 기간이 거의 끝났을 때 아시아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 있는 바울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바울이 모세 율법을 위반하고 성전을 더렵혔다는 이유로 그를 성전에서 끌어내어 죽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바울은 안토니아 요새에 주둔하고 있는 천부잔에 의해 구출 되었다. 그러나 그 천부장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유대 총독 안토니우스 벨릭스에게 보냈다. 벨릭스는 2년동안 바울을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2)가이사에게 호소:로마로 여행(AD60)
새 총독 포르시우스 베스도가 부임하자 바울은 그의 로마 시민권 덕택으로 로마에서 재판받기를 청구하였다. 베스도는 이러한 청구를 허락했다. 바울이 이 로마 투옥 기간 동안 빌레몬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립보서를 기록했다는 것이 전통적인 해석 이다.
(3)바울의 마지막 생애
바울의 생애 마지막에 관한 그 밖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 우리는 교회의 전승들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이것들은 전설적인 내용들로 심하게 채색되어 있다. 네로의 박해에 의해 바울이 죽음을 당했다는 우세비ㅣ우스의 증언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네로의 박해는 AD64년 여름부터 황제가 죽을 때가지 지속되었다. 다라서 바울이 순교를 당한 연도를 정확히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바울은 지금의 바실리카 성당의 근처에 있는 오스티엔시스 길에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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