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바울

바울신학의 전제

은바리라이프 2009. 9. 3. 10:40

바울신학의 전제


바울서신은 바울의 사고와 가르침이 뿌리 내리고 있는 전제와 전승을 인식하게 해 준다. 그것은 이미 발전된, 교회의 신앙 양식과 양식문이며, 그리고 집중적인 구약성서의 해석이다.


1. 교회의 선포 양식과 공식문

양식사 및 전승사적인 석의는 모든 신약성서에서 발견되는, 이미 형성된 본문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런 본문들은 교회의 전승에서 벌써 만들어졌다. 바울서신도 바울 이전에 이미 있었고 바울이 계속 전하는 그런 양식문들을 알게 해 준다. 그때 바울은 가끔 필요에 따라 그 공식문들을 강조하거나 해석하였으며 보충하기도 하였다. 바울 자신도 그가 전해 받은 것을 전해 준다고 말한다(고전 11:23; 15:3). "전해 받다"(paralambavnw)와 "전해 주다"(paradivdwmi)라는 용어는 랍비학파에서 사용되던 말이다(족장들의 어록 1:1, "모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으며 그것을 여호수아에게 전해 주었고, 여호수아는 장로들에게, 장로들은 선지자들에게 그리고 선지자들은 큰 회당의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다."). 여기서 전승의 원리는 이렇게 세워져 있는데, 그 전승 원리는 기독교 교회와 신학에서 큰 의미를 가졌다. 바울의 신앙 선포는 가끔, 오늘날의 설교가 교회의 신앙 교리를 해석하는 것처럼, 정말 전승의 해석이었다. 바울이 적절하게 말할 수 있었던 바 교회는 확정된 "교훈의 본을 전해 받았다"(롬 6:17).

오늘날까지 교회 안에서 고백되는 것처럼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롬 1:3f(다윗의 혈통에서 나시고 능력으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나 고전 15:1-7(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셨다)에서 들을 수 있다. 롬 4:25; 8:34; 10:9; 14:9; 살전 4:14; 5:9f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하심에 대한 공식(公式)적인 진술로 나타난다. 예배에서 고전 12:3; 16:22; 빌 2:11처럼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는 공식문이 큰 소리로 고백되었다. 한 분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롬 3:30; 갈 3:20; 살전 1:9f; 고후 13:13; 엡 1:3; 딛 3:5에 표현되어 있다. 바울은 고전 15:12-52; 고후 5:1-10; 살전 4:13-15에서 전해 받은 묵시적인 모티브와 그림들을 배열하였다. 이스라엘이 영광송(Doxologie)을 사용했던 것처럼, 이제는 기독교적으로 채택된 영광송에서 하나님이 찬양되었다(롬 1:25; 9:5; 11:36; 16:27[후기 바울적]; 고후 1:3; 11:31; 13:13; 갈 1:5; 엡 1:3; 요계 4:8. 11). 교회에 대한 축복 말씀(Segenssprüche)은 고후 13:13; 갈 6:16-18; 빌 4:23에서 발견된다. 원시교회의 예배에서 유래된 노래들은 고전 11:26; 빌 2:6-11; 엡 1:3; 5:14; 골 1:15-20; 3:16; 딤전 3:16; 벧전 1:18-21; 2:21-25; 3:18-20; 요계 5:9f. 13; 7:10-12; 11:15-18; 15:3f; 21:3f에 나타나 있다. 교회는 회당으로부터 유래된 단어나 환호성을 전해 받았는데, '아멘'은 롬 1:25(과 다른 곳)과 고전 14:16에서, '할렐루야'는 계 19:1. 3. 6에서, '마라나타'는 고전 16:22; 요계 22:20에 나타난다. 전승에 따라 교회의 성례전이 행해졌는데 세례는 롬 6:3-6; 고전 6:11에서, 성찬은 고전 10:16; 11:23-25(막 14:22-24와 평행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를 순서대로 나열하는 진술인 롬 8:35f; 고전 4:9-13; 고후 4:7-10; 6:3-10; 11:23-31에서 힘 있게 또 깊이 있게 표현한다. 사람들은 그런 문장들을 아마도 모든 고통 가운데 무욕(無慾)과 변함 없는 기분을 선서하는 스토아 철인들과 비교한다. 그러나 여기서 인간의 덕행은 바울의 경우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권고적인 본문들도 바울 이전에 형성되어 있었다. 그때 신약성서는 구약·유대적인 격언 지혜와 관련되어 있으며, 또한 - 헬라적인 회당을 거쳐 또는 직접적으로 - 헬라의 대중 철학과도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바울은 덕 및 악덕 목록도 사용한다. 덕·악덕 목록 이외 가훈표(Haustafeln)도 사용한다.


2. 구약성서

바울이 받은 전승에 구약도 포함되는데, 바울은 그것을 현재의 메시아적인 구원 행위에 근거해서 해석한다. 바울 이전에 있었던 것은 단지 이 구약성서 뿐만이 아니라 구약성서를 역사와 교훈을 위한 출처자료로 보는 강력한 유대적인 노력도 있었다. 바울의 성서신학은 종종 구약성서에 대한 논의에서 이스라엘과의 대결이거나 구약성서의 도움과 함께 한다.

예수와 사도 당시 유대적인 가르침과 경건이 얼마나 구약성서에 뿌리를 두고 있었는가를 쿰란 공동체가 분명하게 증거해 준다. 쿰란 공동체의 지체들은 율법을 읽기 위해서 밤 시간의 3분의 1을 깨어 있어야 했다(1QS 6:6f). 쿰란 문헌 중에 많은 구약성서 본문 시가선(詩歌選)과 거기서 만들어진 많은 주석들이 있는데, 여기서 구약 본문 등이 신중하고도 확실하게 현재와 미래에 관련되었다.

바울은 교회로부터 구약성서도 전해 받았다. 비평적인 석의가 교회의 성서신학이 예수로 하여금 많은 성서 인용을 말하게 하는 것을 드물지 않게 고려하지만, 복음서들은 예수 자신이 얼마나 성서에 의해 살았던가에 대한 증거이다. 그런 성서 인용은 교회를 스스로 이스라엘과 대립되게 하였고 거기서 교회는 독자적으로 세워지게 되었다. 복음서들은 간혹 구약의 본문으로 기록되었는데, 그 본문의 일부는 명시적으로 기록되었으나, 일부는 금방 알아 차릴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막15:23-26의 수난사가 그러하다). 원시교회가 올바르게 말한 것처럼 "그들은 이것이 그러한가하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행17:11).

분량이 많은 바울의 서신(롬, 고전·후, 갈)에서 구약 본문이 상세하게 인증된다. 데살로니가전서와 빌립보서에서 구약성서(와 유대전승)은 어떻든 반영되어 있다. 짤막한 빌레몬서에서는 그 흔적을 인식할 수 없다. 바울 서신은 대부분 이방기독교 공동체를 향해 설정되어있다. 바울은 그 교회들이 구약성서와 거의 무관하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이 보인다.

바울은 구약성경을 다소에 있는 부모의 집에서 알게 되었다. 그후 그는 구약성경의 읽기와 해석을 랍비학교에서 배우고 연습했다. 여기서 학생들은, 기교 있게 수집된 인용이 롬 3:10-18; 9:25-33; 11:8-10; 15:9-12에 있는 것처럼, 인용 구절을 수집하는 것을 배웠다. 사상은, 롬 10:8-21에서처럼, 한걸음 한걸음 연쇄적인 문장 순서에서 계속된다. 랍비의 성서해석 원칙이 인식될 수있다.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향해 추론함"(a minori ad maius)이 그러하다. 갈 3:15-17에서 사람의 약속을 폐기할 수 없음으로부터 바울은 예수의 약속이 변할 수 없음을 추론해 낸다. 유비(Analogie)의 법칙이 필요한데, 그에 의하면 동일한 단어들과 용어들이 한 단위로 해석되어야 하나, 이전 것이 표준적인 것으로 결정된다(갈 3:17). 무할례자로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의 약속을 받았으며(창 15:6); 그 이후에 비로소 할례가 언급된다(창 17:10f). 그러니까 바울은 할례가 의롭다함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롬 4:1-13).

바울은 알레고리적인 해석도 사용하는데, 본문에 따라 그 자구와 다른 것을 암시할 수 있었다(a!llo ajgoreuvei). 이 방법으로써 알렉산드리아의 Philo는 그리스 철학을 끌어들여 구약성서를 폭넓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알레고리적인 해석 방법(Alleorese)은 일반적으로, 오래된 신화를 그 이후의 순화된 신인식에 동화시키기 위해, 고대의 해석에 의해 행해졌다. 바울은 사라와 하갈 이야기(창 16; 17; 21장)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알레고리(ajllhgorouvmena)"로 묘사한다(갈 4:22-31). 그때 바울은 하갈을 시내산과 이스라엘의 종 노릇으로 해석하는 한편, 사라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과 교회의 자유함으로 해석한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신 25:4의 계명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그는 이 본문을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지급받는 선교사들의 권리로 해석한다(사실은 창조주 하나님은 전체 피조물을 돌보시는 것처럼 동물도 돌보신다). 알레고리의 한 종류로 어떤 것에서 다른 것에 대한 한 유형(Typos)을 인식하는 유형론(Typologie)이 있다. 그래서 옛 언약 안에 지금 성취된 구원 시대가 서술되어 있다. "이런 일들은 우리를 위한 유형(tuvpoi)으로 일어났다(고전 10:6)" 교부들의 성서 해석에서 알레고리와 유형론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이스라엘을 통한 일반적인 성서 해석을 따르기도 한다. 바울은 그때 구약을 메시아적인 구원 시대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한다. 구약성서는 "말세를 만난 우리를 위한 경계"(고전 10:11)가 되었다. 항상 바울은 이러한 종말론적이고 메시아적인 현재와 지금에 관해 말한다(롬 3:21; 5:9; 7:6; 11:30).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그래서 전체적으로 또 세부적으로 구약성서는 성취되어야 한다(롬 1:2; 갈 3:8).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리를 위한 거울(tuvpo")"(고전 10:6)이다. 그리스도는 이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계셨다(고전 10:4). 세례와 성찬의 성례전은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이미 형성되어 있어다(고전 10:1-4).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 받은 자의 본이다(롬 4:1-25; 갈 3:6-14). 성서 안에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열방을 부르심이 이미 전제되어 있다(롬 9-11장). 그리스도의 부활과 올리우심은 성경 말씀의 성취이다(고전 15:3-28). 옛 언약 안에 훨씬 더 영광스런 새 언약이 예시되어 있다(고후 3:4-18). 구약성서의 경향과 의미는 전체적으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는"(롬 1:17), 인간의 행위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로의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 오늘의 이해를 따르면 바울이 행한 구약성서의 해석이 세부적으로 의문스럽게 느껴질지 모르나 본질적으로 구약을 신약에 부속시키는 것(Hinordnung)이 유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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