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돈에 또 일본풍 그림
오만원권 화폐 인물인 신사임당 초상화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필자는 한국화가의 한 사람으로서 문제를 제기해 보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해방 60년이 지난 한국 사회가 일본식 초상화의 영향에서 벗어난 우리 전통의 초상화가 실린 화폐를 가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일제 강점기 전통 미술이 큰 타격을 입는데 그 영향이 현재 화폐 속 인물들에게도 미쳤다. 미술사가인 고 오주석 선생이 <한국의 미 특강>에서 ‘지금 우리 화폐 속의 세종대왕과 이황·이이 선생 등의 초상은 모두 일본풍의 그림’이라고 비판한 것이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 초상화들은 모두 이당 김은호 계보의 화가들이 그렸는데, 이당은 1937년 조선 여성들이 금비녀를 모아 조선총독에게 헌납하는 모습 등을 그렸던 화가이다. 일본풍 그림을 이 땅에 크게 확산시킨 화가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당이 그린 신사임당 표준 영정을 배제했다면서 어떤 이유인지 그 제자에게 초상화 제작을 맡긴 것이다. 이종상 화백은 ‘이당의 초상화에서 얼굴 부분만 따온 것이고 머리와 복식은 고증을 받아 다시 작업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바탕은 이당의 그림이니 결과적으로 이당이 그린 영정이 되살아나는 모순이 발생했다.
일본 인물화는 장식성이 강하며 감각적 미감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인물의 내면세계를 읽어내기 힘들다. 얼굴은 경직되어 표정이 없고 감정은 베일 속에 가려진 듯 알 수 없다. 짙은 화장으로 가리는 게 일본의 미감이기 때문이다. 조선식 초상화는 있는 그대로의 외모를 세밀하게 보여주면서 그 내면세계까지 묘사하는 특징이 있다. 이채 초상이 보여주듯 검버섯까지 그려 현대 의사들이 병명까지 알 수 있으며, 채제공 초상이 약간 사시인 눈까지 그대로 표현하듯 극사실주의 전통이 흐른다. 거기에 인물의 내면세계까지 표현해 인물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면 맑고 담담한 색채가 감상자를 깊이 빠져들게 하다가도 어느 순간 뒤로 물러서게 하는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세밀한 외형과 정신세계를 함께 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많은 화가들이 이십대부터 초상화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초상화가 시력과 직결된 문제라는 것을 말해준다. 조선은 초상화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도화서 화원은 중인 출신이지만 국왕 어진의 작품성이 인정되면 현감 직위까지 오를 수 있는 특혜를 주었다. 어진화사는 명성이 높아 초상화 주문도 잇따랐음은 물론이다. 조선의 어진화사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젊은 화가들이 많이 선정되었다. 국민 모두가 사용하는 화폐 인물을 그리는 화가 선정은 조선시대 어진화사 선정보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절차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뒷말이 많은 것이다. 한국은행은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우승우/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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