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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의 자녀 교육훈 (子女敎育訓)

은바리라이프 2009. 6. 27. 12:46

자녀 교육훈 (子女敎育訓)

는 자녀들에게 집안에서는 효(孝)와 형우제공(兄友弟恭). 교육과 학문에서는 입지청백(立志淸白). 국가에서는
충성을 다 하도록 가르치고 여형제들에게는 여유사행
(女有四行), 부덕(婦德). 부언(婦言), 부용(婦容), 부공(婦功)]과 더불어 학예(學藝)를 닦도록 훈계(訓戒)였다.

오늘날에도 자녀의 교육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정성된 힘이 매우 크다.그러므로  누구나 공부잘 하고 또 남에게 뒤지지 않은 자녀되기를 원한다. 이 보다도 사임당의 자녀들에 대한 교육처럼 인간적인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인 것이다.  

             

                                         ▽ 몽룡실

                                      

1,    부모효도와 자녀사랑
 
              

 자녀들을 항상 효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했다.그의 교육은 가까운 것부터 먼 것에 이르는 것을 이상(理想)으로 한다.

 

◎  부모의 은혜를 중하게 여기고 처신을 올바르게 하여 걱정을 끼치지 않게 하고
◎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데서 가정의 화목과 평화가 있다고 했다.

    
효녀로서 사임당은 사모곡
(思母曲)에서도 지극한 효녀였다. 한 구절을 살펴보면,

 

어머님 그리워
         
        산이 겹친 내 고향은 천리련 마는
자나깨나 꿈속에도 돌아 가고 파
        한송정(寒松亭) 가에는 외로이 뜬 달
경포대
(鏡浦臺) 앞에는 한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위로 흩어졌다 모이고
고기 배들은 바다위로 오고 가리니
        언제나 강능길 다시 밟아가
색동옷 입고 앉아 바느질할 고
        늙으신 어머님을 강능에 홀로 두고
외로이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
(北村)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이시는 62세 된 홀로 남은 어머니를 떠나게 되어 쓴 시다. 얼마나 애절한 노래인가?
7남매를 가르침에 있어서도 효경
(孝經)의 공부를 학문에 들어가는 길로 삼고 어버이를 섬기는 참된 마음으로 더 나아가 하늘을 섬길 것을 가르쳤다. 어느 가정이건 어버이는 자식을 위해 노고를 타산하는 법은 없으며 또 요구도 없이 자식을 위해 내색 않고 봉사하는 두 사람이다.

그 두 사람과 자식사이의 공간은 영예와 치욕도, 공과
(功過)도, 선덕(善德)도, 잘나지도, 못나지도, 귀하지도, 천하지도, 귀인도, 악인도 어떤 형태로  되어도 모든 것을 포옹(抱擁) 하는 용광로(鎔鑛爐) 이다. 어버이와 자식관계는 분명히 일종의 천륜(天倫) 이라 할 기본적인 인륜관계로 얄팍한 이익추구(利益追求) 때문에 흔들리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자식은 어버이를 어떠한 이득 때문에 섬기는 것이 아니며 오직 어버이기 때문에 섬기는 것이다.

어버이의 자녀사랑은 본질적으로 무조건 적이고 헌신적인 자기투신일 뿐이다.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던 어버이 사랑과 노고는 분명히 이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고 넓은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까닭은 자신의 신체를 부모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며 이것은 부모의 부모인 먼 조상까지 이어져 만물을 낳은 천지(天地)를 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古 人 一 日 養,(고인일일양)  不 以 三 公 換(불이삼공환).」 이란 글귀는

옛사람은 부모의 하루 섬기는 기쁨을 삼정승 부귀
(三政丞 富貴)와 바꾸지 않을 만치 기쁨으로 생각했으니 오래 부모님을 섬기고 싶은 마음 영원히 변 치 않는다는 뜻이다.

2, 형제간 우애하는 길

자녀들을 가르침에는 형제들 간에 항상 우애있게 지내도록 당부했다. 그는 그 자녀들에게 앞서 말한 효(孝)와 더불어 제(悌)도 올바르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쳤다.효제(孝悌)란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라는 뜻이다.

어버이를 효도로써 섬기는 일과 형을 공손히 섬기는 일은 인도를 실천하는 근본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효제(孝悌)는 인륜(人倫)의 대본(大本)이오, 백행(百行)의 근본이라 한 것이다. 효와 제 는 인위적(人爲的)이 아니라 자연적 애심(哀沈)에서 우러나오는 착한 마음으로 형께 공손을 바치는 것이요, 형께 공손을 바치는 일은 부모의 마음을 평안케 하여

효도를 바치는 일이 되는 것이다. 형제의 차례에 대하여 오륜(五倫)에서는 형은 우애로서 아우를 대하고 아우는 공손과 공경으로써 형을 대하며 서로 사랑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임당은 이 형우제공(兄友弟恭)을 자녀교육의 신조로 삼고

「동기간에 우애를 가지고 의를 상하게 하지 마라.」

「형은 아우를 사랑하고 아우는 형을 공경하라.」고 가르쳤다. 또 기회 있을 때마다 「詩經」에 나오는
형제 화목의 노래를 그 자녀들에게 옮겨주기로 했다.

  산 매자 꽃이 환히 밝지 않은가
                                                       
지금 세상사람 중에서

형제만한 이가 또 있는가.

죽음의 마당에서                        

형제는 간절히 생각하며

송장이 쌓인 들판에서도

형제는 서로 찾는 도다.                                                  
들에 있는 할미새가 바삐 날 듯

형제는 위난을 급히 구하는 도다

매양 좋은 벗이 있으되

이럴 땐 길게 탄식할 뿐이로다.

형제는 울안에서 싸우다가도

밖에선 업신 여김을 함께 막는 도다

비록 좋은 친구가 있다 하여도

누가 우리를 도와 주리오.

맛있는 음식을 늘어 놓고

취하도록 술을 마신다 하여도

형제가 갖추어 있어야

화락하고

또 아내와 아들이 뜻이 맞아

거문고와 비파가

어울림 같다 하여도

형제가 한자리에 모여 있어야

즐겁고 또 기쁨이 길지니라.
       
 또 때로는 7남매에게 형제간의 우애를 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해 주기도 하였다.

「옛날에 농사를 짓는 두 형제가 살았다. 그런데 추수 때가 되니까 형이 생각하기를 "동생은 새살림을 났으니 나보다 어렵겠지"라고 생각하고, 아우는 "나야 식구가 적어서 괜찮지만 형은 아이들도 많으니 나보다 살기가 힘들거야"하고 서로 걱정을 하였다. 형제는 밤중에 서로 몰래 각자가 추수한 볏 짐을 날랐다.

형은 아우의 집으로 날랐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볏 짐이 줄지 않아 서로 이상히 생각했다. 어느날 밤에

열심히 볏 짐을 나르다가 드디어 마주치게 되었다. 형제는 서로 얼싸안고 기뻐서 울었다.」

라고 가르치면서 이러한 마음씨를 7남매끼리 갖도록 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은 율곡은 형제끼리 항상 우애있게 지내면서 뒷날 「격몽요결」거가장 에서

「형제는 부모의 유체(遺體)를 한 가지로 받아 나온 일신(一身)과 같으니 너와 나의 구별 없이 희비애락(喜悲哀樂)을 항상 같이 하여야 된다.」

고하였고, 실제 율곡 형제들은 형우제공(兄友弟恭)을 통하여 인간적 사랑과 또 올바른 인간 생활을 우리들에게 시범하였던 것이다.
사임당은 이같이 7남매가 그의 교훈대로 생전에 우애있게 지내는 모습을 지하에서 보고서 대단히 기뻐했을 것이다.

오늘의 우리도 모든 사회발전의 核이 건전한 가정에서 비롯 된다고 볼 때  사임당이 자녀들에게 가르친
부자자효(父慈子孝)하고 형우제공(兄友弟恭)하는 견실한 가정에서 인재도 배출되어 빛나는 집안을 이룩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3, 향학의 길

    ▽  몽룡실 내부
 
 ◁ 천정의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으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랜 된 주택 건물의 고풍이 돋보인다.
 


      

성현(聖賢)의 말씀에 마음을 지니고 조용히 마음을 가라 안쳐야 될 때가 많지만 사임당은 그 중에서도 「지재사방(志在四方)」이란 말을 좋아했다.
그는 뜻을 세우면 학문은 물론이요, 입덕(立德), 입공(立功), 입언(立言)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뜻을 세움의 모범된 사람이 되어 자제들을 가르침에 늘 이를 돈독하게 갖도록 힘썻다.

우리가 장차 걸어갈 일생의 목표를 뚜렷이 정하고 한결같이 이를 힘써 나가려면
뜻을 세움보다 더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르나 이는 스스로 판단 하는 능력에서 출발하는 마음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디서 뜻을 두는가 공자는 논어에서 「도(道)에 뜻을 둔다(志於道)」라고 하였다. 그래서 공자는 「吾十有五而志學(오십유오이지학)」이라 하여 뜻을 세움의 중요성을 아래와 같이 말 한적이 있다.

「나는 열 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는 생각이 바로 섰고, 마흔 에는 모든 사리에 미혹(迷惑)하지 아니하였고, 쉰에는 하늘에 도리를 깨쳤고, 예순에는 모든 일을 들으며 저절로 알게 되었고 일흔에는
하고 싶은 대로 다해도 법도를 넘은 적이 없었노라.」하였다.

그러니 뜻의 세움은 마음이 어떤 방향을 결정 짓고, 이를 마땅히 행할 것을 뜻한다. 즉 자기지향적인 마음의 자세이다.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하여는 의욕이 움직이지 않는 한 그 일에 열중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일을 훌륭하게 이루어 보겠다는 강한 의욕은 실제로 어떤 일을 성취하려는 행동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누구나 어려운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는 요건이 확고한 마음의 자세인 것이며, 그것이 곧
뜻의 세움이다,

그래서 사임당은 부군의 가르침에서 그러했듯이 그 자제들에게도 항상 배움을 익힐 때마다 「공부하는데는 먼저 뜻의 세움을 성실하게 하여야 한다.」고하고   때로는 「뜻을 받는다는 것은 그 의지를 숭상하는 바를 받는 것이다.」라고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뜻이 서지 않으면 만사가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였고, 배우는 이가 종신토록 글을 읽어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뜻이 서지 않는 까닭이다.라고 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학문은 뜻의 세움을 먼저 하는 것이 필요하다. 뜻의 세움이 극히 높고 크지 못하면 나아가는 바가 반드시 낮을 것이다.」라고 충고하면서,

또 논어 양화편(陽貨篇)의 말 가운데 「본래 사람의 천성은 대개 같은 것이나 습성은 서로 먼 것이라(性相近也, 習性遠也성상근야, 습성원야.)」는 것을 풀이하여 설명해 주기도 했다.

이러한 뜻의 세움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율곡도 그 어머니 사임당의 가르침에 따라 뜻의 세움을 돈독히 하여 자기를 깨우치면서 대성했고, 그 자신도 제자들을 가르침에 있어서 항상 「배움은 뜻의 세움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라고 하여

학문의 첫 출발로 삼았다. 그래서 율곡의 입지에 대한 생각은 자경문(自警文) 에서부터 학교모범(學校模範)에 이르기 까지 그의 생애를 통하여 변함없이 추구되어 온 교육사상이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임당이 그 자제들에게 가르친 뜻의 세움은 교육이념의 목표인 동시에 성취동기가 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4, 참된 인간의 길

             성학집요   ▽

                  율곡이 40세때(1575년) 선조임금에 지어 올렸다

 

자녀들을 가르침에 있어서 항상 성실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했다. 성실이라는 말은 한마디로 참 이요, 거짓이 없는 것을 말한다. 나를 속이지 않는 동시에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 맹자는 일찍이 「지성이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없다.」고하였다. 사임당의 생활 역시도 그 신조를 성실에 두었고, 자제들의 교육에 있어서도

「학문을 닦는데 정성으로 하지 않으면 그 학문이 그릇된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은 마음을 진실히 하고, 성실히 하여 성심으로 학문에 향하라.」고하면서

애써 공부하는 것도 성실에 있다고 했다. 또 사임당은 그 자제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 생각과 느낌을 바르게 말로 나타내고, 그 행동을 참되고 정성스럽게 갖는 일이 가장 높은 덕이라.」하였고,


「마음이 성실하지 못하면 모든 일이 거짓이므로 일을 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마음이 진실로 성실해야
만사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라고

자제들에게 가르쳤고, 사임당 자신도 일상생활에 있어서 언행이 언제나 한결 같았고 큰일 작은 일을 막론하고 지성으로 일관하여 자녀들이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임당은 그 자제들에게 성실을 힘 주어 가르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반성하지 않으면 성실의 길로 인도되기 힘들며, 자기를 반성한다는 것은 곧 성실의 길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실천한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은 그 자제들도 어머니 사임당의 뜻에 감사하며 부모와 사회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자기 나름대로의 성실의 길을 걸었다.

특히 율곡의 「성학집요」를 중심으로 하여 볼 때 그의 사상의 밑바닥을 꿰뚫고 있는 것이 바로 사임당이 가르친 성실이다.

그는 동성실장(同誠實章)에서 말하기를,

「하늘에는 진실한 이치가 있기 때문에 공기의 변화가 쉬지 아니하고, 유행하며, 사람에게는 진실

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공부가 밝고 넓어 간단이 없으니 사람에게 실심(實心)이 없으면 하늘의 이치에 어긋나게 된다..한 마음이 참되지 못하다면 만사가 모두 거짓이므로 어디 간들 행할 수 없으며, 한마음이 진실로 성실하면 만사가 다 참된 것이니 무엇을 이루지 못하랴.」고하여

이른바 實理(天道) 實心(人道)이라는 것도 다른 것이 아니고, 성실이라고 보았다.

이로써 보면 사임당이 그 자제들에게 가르친 성실의 내용은  「사람됨의 길」과 인간교육의 방법론을 우리에게 제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감사합니다.>
 

              
5,     사리판단(事理判斷)과 신의(信義)의 길

자녀들 가르침에 신,의(信,義)가 있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쳤으며, 그 자신도 남에게 믿을 수 있는 생활을 했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으며,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살아 왔으며, 이를 가족들에게도 늘 일깨워 주었다. 특히 이러한 신의의 덕을 그 자녀교육에 힘 주어 가르쳤고 또 이를 실천하도록 당부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가르치기를,

「너희들은 어디를 가든지 상대방이 믿을 수 있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고하였고

또 「우리 집안은 올바르게 살자. 의롭게 살자.」고했다.

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에게 매사에 덕으로 임하고 또 할말이 있을 때에는 어떠한 위험이 따르더라도 할말을 다할 줄 아는 용기있는 사람이 되어 어떠한 권세나 돈에 굴복하지 말고 떳떳하게 의리로써 살아가라고 가르쳤다.

信(신)과 義(의)를 힘 주어 가르친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사람이 신의를 떠나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는 길을 생각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의가 있는 사람이라면 비록 그가 남이라 해도 그를 자기의 친구보다도 더 낫다고 생각하고 사귀였다. 「信」의 자원적(字源的)인 뜻은 「사람인 人」에 「말씀 언 言」을 합한 자다.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을 피차 지키는 것도 믿음(信)이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그 자녀들에게

「말을 했으면 반드시 행하여야 하며, 언어(言語)란 반드시 행실을 돌아 보아야 되고 행실은 언어를 돌아 보아야 된다.」라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또「벗과 언약하였으면 이를 시행하여 남을 신용을 잃게 하지 말고, 그릇된 사람과 사귀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하였고,

또「그릇 된 벗과 가깝게 사귀면 뒤에 반드시 그 괴로움을 받을 것이고, 노련하고 성숙한 사람들에게 뜻을 굽혀 사귀면 급한 일이 있을 때에 가히 서로 의지하게 되느니라.」고했다.

그래서 율곡도 사임당의 교훈이 반영되어, 그의 「격몽요결」접인장(接人章)에서

「벗을 택하되 반듯이 학문을 좋아하고 착한 것을 좋아하며, 바르고 엄숙하며,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을 취하여, 이와 함께 거쳐 하면서 바르게 경계함을 허심 탄 회 하게 받아 들여 나의 결함을 다스릴 것이요, 만일에 그가 게으르고 희롱을 좋아하며 아첨을 하여 곧지 못한 자 라면 사귀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일찍이 증자는 「논어에서 益者三友(익자삼우)는 "三直(삼직)" "友諒(우량)" "友多聞益(우다문익)"이라 하여, "곧은 사람" "남을 이해하는 사람" "多聞(다문)한 사람이요,損者三友(손자삼우)는  "友便僻(우편벽) "友善柔(우선유) 友便녕損(우편녕손)"이라 하여, "편벽된 사람" "善柔한 사람" "便녕한 사람은 損友라 하였다. 그러므로 벗을 택함에 있어서는 학문과 선행이 돈독하고 方嚴直諒(방엄직량)하며 뜻이 선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사임당도 그 자제들에게

 「글을 읽음은 옳고 그름을 가려서 하는 일에 의를 실행 코 저 함이다.」고하여 옳은 길을 걷도록 가르쳤다. 실로 오늘날에도 인간관계나, 사회관계에서 신의의 회복이 아쉽다. 한번 실신(失信)이나 실의(失義)하게 되면 좀처럼 이를 만회하기 힘든다는 것은 누구나 가 경험으로 얻는 상식이다. 그러므로 가족관계나 인간관계나 사회관계에서 신의를 높인다는 것은 인간 행위의 극치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