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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과 공산주의의 관계

은바리라이프 2009. 3. 22. 20:30

유대인과 공산주의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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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産主義 흑서 - LE LIVRE NOIR DU COMMUNISME
"An 800-page compendium of the crimes of Communist regimes worldwide, recorded and analyzed in ghastly detail by a team of scholars. The facts and figures, some of them well known, other newly confirmed in hitherto inaccessible archives, are irrefutable. The myth of the well intentioned founders - the good czar Lenin betrayed by his evil heirs - has been laid to rest for good. No one will any longer be able to claim ignorance or uncertainty about the criminal nature of Communism, and those who had begun to forget will be forced to remember anew." (from the dust jacket of English edition,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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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巨惡 공산주의가 과연 누구에 의한, 무엇을 위한, 누구의 운동이었는지 그 뿌리부터 추적해봅시다.

 

유태인 공산주의자 명단 http://www.russians.org/communist.html

 

 

 

Christian Rakovsky  유태인 駐佛 소련대사
“아니오, 무슨 비교(秘敎)라 할 것도 없습니다. 실은 정반대요. 내가 아주 명료하게 설명하죠. 마르크스주의는 하나의 철학적, 경제적, 정치적 시스템이기 이전에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하나의 음모요. 그리고 오직 혁명만이 유일한 절대적 진리인 우리에게는 오직 혁명에 이르게 하는 철학과 경제, 그리고 정치만이 참된 것이오. 경제나 정치, 혹은 도덕윤리에서 절대 진리 - 내말이 주관적인 것이라고 합시다 - 는 존재하지 않소. 과학적 추론에 의하면 그것은 진리가 될 수도 있고 오류가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혁명적 변증론을 신봉하는 우리에게 마르크스주의는 유일무이한 절대 진리요. 이것은 마르크스를 비롯하여 그 이후의 모든 혁명가들에게 공통된 것이었소.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신념에 따라 행동합니다.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치밀한 논증에 의해 그의 의도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 어떤 이에게 레닌은 “내 생각엔 진리요”라고 대답했소. 당신은 레닌의 대꾸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고 생각하오? 말하건데, 레닌에게 그것은 현실의 모든 것이었소. 혁명이라는 절대적 진리 앞에서 그 외의 모든 진리는 상대적인 것들이었소. 마르크스는 천재였습니다. 그가 단지 자신의 일을 자본주의에 대한 심층적인 비판으로 국한시켰더라도 그의 학문적 업적은 대단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달인의 경지에 도달하는 대목은 그가 그의 글에 불러들인 아이러니요. “공산주의는 승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그 승리를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마르크스는 고압적인 태도로 선언하지 않았소?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있겠소? 기발한 곡예사의 솜씨로 인간을 의식적인 생각을 하는 개인으로 변모시킨 그는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게끔 하기 위해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부터 주관성을 떼어놓았소. 그와 같은 교묘한 술수가 그가 말한 자본주의가 현실이며 거기에 내재한 모순 때문에 결국 공산주의가 승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그가 사용한 방법이었소. 이는 homo economico에 내재하는 태생적인 어리석음이 아니라면 그로부터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과 같은 지속적인 모순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오. Homo sapiens를 homo stultum으로 변모시키기 위해서는 인류를 동물학적 사다리의 맨 끝으로, 말하자면 짐승의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을 만한 마력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오. 오직 자본주의가 정점에 이른 시대에 짐승의 수준으로 끌어내려진 인류가 존재해야만 ‘모순+시간=공산주의’라는 예언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오. 그거 참, 당신한테만 하는 얘긴데 이런 비의(秘意)에 입회한 우리는 루비앙카의 정문 위에 적힌 선전 문구를 보면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소. 아마도 우리처럼 마르크스 역시 저승에서 그에게 농락당한 인류를 향해 그의 턱수염 너머로 마음껏 비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것이오. 전술적인 이유 때문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모순의 기원에 대해서는 사람들을 기만하지만 그 폐해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오. 마르크스는 애초부터 그 모순이 어떻게 생겨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심화되며 결국은 모든 생산 활동이 공산주의 승리의 바로 전단계인 무정부적 혼란상태에 이르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소... 그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오.”

 

Pope Pius XI (1922-1939)
"그 사악함과 간교함에 있어 인류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공산주의 이념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데는 공산주의자들의 거짓된 선전선동 외에도 또 다른 원인이 있다. 공산주의는 하나로 통일된 어떤 중앙권력의 조종 하에 여러 국가와 민족의 문화와 특성에 따라 교묘하게 변형된 형태로 전파된다. 공산주의를 퍼뜨리는 핵심세력의 손끝에는 막대한 금융자원과 셀 수 없는 단체들, 조직들, 국제기구들, 철저하게 훈련된 공작원들, 언론사, 출판사, 영화사, 연극무대, 라디오, 각급학원들, 그리고 대학교들이 놓여 있다. 오랜 시간에 걸친 이 거대한 네트워크의 일관된 노력으로 공산주의 사상은 조금씩 모든 계층 사람들의 머릿속에 파고든다. 공산주의의 확산을 설명해주는 또 다른 주된 원인은 공산주의 이념이 불러온 재앙에 대한 세계 주요언론의 의도적인 침묵이다. 우리가 의도적인 침묵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까지 기사화하여 독자들의 시선을 끌려 애쓰는 이들 언론이 러시아와 멕시코에서 일어났던 엄청난 비극과 현재 스페인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공산주의자들의 반인륜적인 만행에 대해서, 또는 러시아의 공산정권과 같은 거대한 국제공산주의 조직에 대해서는 신기하게 일언반구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이들 언론사들을 지배하는 오컬트세력(프리메이슨) 때문으로 이들의 변함없는 목표는 과거와 다름없이 기독교의 말살과 기독교적인 사회질서의 전복이다... 이들이 퍼뜨리는 공산주의 프로파간다의 해악은 바로 지금 우리의 눈앞에 있다. 유명한 공산주의 이론가들이 이미 공개적으로 천명했듯이 그들의 목표는 기독교 서구문명과 기독교 종교의 말살이며 인간, 특히 젊은이들의 마음속으로부터 신에 대한 기억을 추방하는 것이다... 스페인에서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손이 미치는 곳에 있는 모든 성당과 수도원들을 파괴하고 불살랐으며, 그 누구보다 먼저 노동계층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수천 명에 이르는 남녀 성직자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만행의 희생자들 대다수는 일반 양민들로 이들은 요즘 시대에 가능하리라고는 도저히 상상조차 못했던 야만적인 방법들로 살해되었다. 꼭 국민의 안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도 양식이 있다면 지금 스페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내일은 또 다른 문명국가에서 되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 개인으로서, 또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모든 인간에게 어느 정도의 속박과 자기절제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신을 인간의 마음에서 지워보라, 그러면 그들은 그들의 정욕이 이르는 대로 그 어떤 끔찍한 만행까지 마다하지 않는 짐승들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Divini Redemptoris, March,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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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 'Spartacus' Weishaupt  유태인 카발리스트, 바이에른 Illuminati 창설

“‘평등과 자유는 태고의 원형적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선물받은 근본적인 권리다. 이 평등을 최초로 침해한 것은 사유재산제도였고, 자유를 속박한 것은 권력집단, 혹은 정부라고 하는 것이었다. 서구문명에서 사유재산제도와 정부의 존립기반은 기독교적인 시민사회의 규범과 제도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의 태고적 원시상태의 평등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독교와 시민사회를 타도해야하며 마지막으로는 사유재산을 폐지해야 한다.’ 바이스하웁트의 이러한 논리는 프리메이슨을 비롯한 모든 비밀결사(secret society)들의 가장 근원적인 사상이다. 이러한 독소는 하급단계에서 배양되고 고급단계에서는 과학적으로 체계화되며 인터내셔널 공산주의와 사민주의를 통해 이 땅에 실현된다.” (Christina Stoddard, Inquire Within: Trail of the Serpent)

 

'빛을 받은 자'를 의미하는 일루미나티는 프랑크푸르트의 로스차일드, 암스테르담의 멘델손과 베르타이머, 함부르크의 오펜하이머, 런던의 골드슈미트 등 18세기 후반 유태인 大은행가들이 비밀리에 후원했던 많은 급진적 비밀결사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들의 목표는 기독교에 기초한 유럽의 앙시엥레짐 타도였다. 계몽주의로 대변되는 세속인본주의와, 자유-평등을 내건 자유주의적 혁명사조의 확산으로 사양길에 접어든 전통적 토지귀족을 밀어내고 국제적인 연결망을 구축한 유태인 금융재벌들은 유럽의 신흥 지배계급으로 부상했다. 프랑스대혁명은 그 신호탄이었다.  

 

 

Benjamin Disraeli  유태인 최초 영국수상
"당신은 고리타분하고 틀에 박힌 영국 대학의 샛님들이 고대의 파라오들과 느부갓네살, 로마, 그리고 중세시대를 잇달아 농락했던 사람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수백년 동안의 멸시와 천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유대인의 두뇌는 유럽의 만사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소... 나는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유대인의 지성을 말하는 것이오... 이제것 유럽에서 일었던 신흥 사조 운동들 중에 유대인들이 주도하지 않은 것은 없었소. 최초의 제주이트는 유대인이었고 지금 서유럽을 경각에 빠뜨린 저 러시아의 기묘한 외교정책도 유대인들이 꾸미고 시행하는 것이라오. 또한 영국에는 거의 알려진바 없지만 지금 독일에서 잉태되고 있는 저 막강한 혁명, 아니 두 번째의 종교개혁운동이라할 만한 이 혁명도 독일의 학계를 점령한 유대인들에 의해 계획되고 있는 것이오." (Coningsby, 1844)

 

“지난번 유럽에서 불길처럼 퍼져나갔던 그 파괴적인 사상(맑시즘, 1848혁명)에서도 유대인들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는 모든 전통과 관습, 귀족계층, 그리고 종교와 사유재산에 대한 반란이다. 기독교의 절멸과 만인의 평등, 그리고 사유재산의 폐지를 부르짖는 비밀결사들은 혁명정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들 모든 조직의 최상부에는 유대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신의 선민은 무신론자들과 힘을 모으고, 부를 축적하는데 비상한 재주를 지닌 자들은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는다. 신에게 선택받은 이 기묘한 민족은 또한 유럽의 가장 저급한 부류와 기층민 계급을 쓰다듬는다. 왜인가? 그들은 신의 선민을 멸시천대하는 저 배은망덕한 기독교 문명을 말살하기 위함이다.” (Lord George Bentinck, a Political Biography, 1852)

 

(Zionism과 국제사회주의 이론의 선구자 유태인 Moses Hess, 그랜드 오리엔트 프리메이슨)

 

클레멘스 폰 메르테르니히  오스트리아 재상
“독일에서 유태인은 혼란과 무질서를 선동하는 주된 불순분자들이며 가장 급진적인 혁명가들이다. 고대의 원한을 머리와 가슴에 품은채 그들은 언론인, 문인, 철학자, 지식인, 선동가, 출판가, 그리고 은행가로 활동하고 있다. 언젠가 이들은 독일에 재앙을 불러 올 것이다... 아마도 그들 스스로에 대한 더한 재앙과 함께.” (Pierre F. Rougeyron, Avenir de l'Eglise catholique selon le Plan Divin)

 

(헤스의 제자 칼 맑스, 유대교 랍비의 손자)

 

Count von Beust  오스트리아 정치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한 유태인이 있었는데 그는 허영심에서인지 1848년 혁명을 즈음하여 그가 몸담고 있었던 비밀결사의 비밀을 자랑삼아 내게 귀뜸해 주었다. 내용인즉 이제 곳 유럽에서 대대적인 혁명이 일어나 유럽 전역으로 번져나갈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그런 얘기를 한 지 한 열흘 뒤 독일 각지에서 대규모 소요사태가 터지기 시작했다. 요즘 ”억압받는 민중”의 “해방” 등등을 운운하는 거의 모든 운동들의 배후에는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의 유태인들이 버티고 있다.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이들은 유럽의 수많은 비밀결사들에게 지령을 내린다. 지금 우리의 발 밑에는 수천개의 지뢰가 깔려있다. 그리고 이 지뢰를 설치하는 자들의 대부분은 유태인이다.” (Memoirs of Friedrich Ferdinand Count von Beust, 1887)

 

(페르디난드 라쌀 로센, 유태인 - 독일 사민당 창설) 

 

Henri Gougenot des Mousseaux  프랑스 쉬발리에
“모든 이단종파, 영지학, 밀교들, 비밀결사들은 태양과 별들, 그리고 그 별들을 지배하는 정령들과 고대 페르시아의 신관들이 아리만(Ahriman)교로 불렀던 그 악마적인 교리들을 숭배한다. 이들은 가장 추잡한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모든 욕망을 신성시한다... 칼데아적 카발리즘의 최고 현자들이 행했던 절대적인 독재는 중세 산상의 노인과 그의 암살단에 의해 재현되었으며 그후 이들의 카발라적 세계관과 윤리체계는 프리메이슨의 실질적 군주들인 유대교의 현자들을 지배해 왔다... 신앙을 상실한 기독교도들은 유대군주들의 하수인이 된다. 이들은 세상에 ‘진보’를 가져온다는 미명하에 유대인의 이 음험하고 사악한 음모의 주구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불신자들의 아지트가 된 비밀결사에 가담해 그들의 수뇌부에 있는 현자들의 가르침대로 세속인본주의(‘Annuiti Conceptis - Novus Ordo Seclorum')가 세상을 지배하는 날을 만들기 위해 일한다... 그들은 우리의 얼굴에다 대고 그들의 이런 계획을 말하지만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날 느긋한 저녁의 평화를 박살내는 위기가 찾아들 것이다. 카발라의 사탄적 교리를 숭배하는 오컬트결사들의 계획, 즉 폭력으로 기독교 문명을 뒤업겠다는 마각이 엄청난 재난의 모습으로 코 앞에 다가왔을 때, 오로지 그때가서야 사람들은 그들이 그 오랜시간 동안 무관심으로 외면해 왔던 이 거대한 음모와 대면하게 될 것이다.

 

“이 시대를 규정하는 모든 反기독교적인 운동들에는 유대인의 이름이 봉인되어있다. 세상에서 가장 코스모폴리탄적인 민족이기에 인류의 통합을 부르짓는 유대인은 그들의 전매특허인 ‘libre-pensaee(자유로운 사유)'를 무기로 그들의 전세계적인 승리로 실현될 거라는 ’메시아적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 시대의 도래를 눈 앞에 둔 그들은 이의 성공요인을 18세기 철학자들이 확산시켰던 계몽주의 사조에 부여한다. 그들은 대게 무신론자였거나 카발리스트들이었고 그들의 작업은 이 땅을 세속화하기 위한 토대를 다졌다... 인류 통합이라는 유대인의 메시아주의적 명제는 만국이스라엘협회, 세계프리메이슨연대와 이들의 연계조직으로 보다 근래에 설립된 세계종교연합, 그리고 유대인이라는 이름에 거부감을 느끼는 인사들을 위한 조직인 Ligue-universelle de l'enseignement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거대한 프리메이슨 연대의 베일에 가려진 진정한 군주들은 모두 유대인으로 이들이 겉에 내세우는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들과 이들을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유대인들은 카발리스트 써클의 가장 급진적이며 과격한 유대교도들이다. 초급 프리메이슨들은 이 엘리트들의 존재조차 모르며 고급단원이라해도 이들의 가명(noms de guerre)외에는 그들의 실체에 대해 알지 못한다. 끔찍한 위협과 가차없는 보복으로 비밀을 유지하는 프리메이슨의 이 유대인 엘리트들은 카발라적 비의의 힘을 빌어 그들이 목표한 바를 성취한다... 이 유대인들이야말로 혁명의 도안자요 건축가요 기술자들인 것이다.” (Le Juif, la Judaisme, et la Judaisation des Peuples Chretiens, 1869)

 

프란츠 리스트  헝가리 작곡가
“유럽국가들에 유대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많은 사회악을 수반한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계속 돈을 독점하고 있는 유대인은 자신의 지갑속의 돈을 풀거나 거둬들임으로서 국가의 목줄을 죄었다놨다한다. 이는 실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과 다름이 없다. 과거의 소규모 수공업과 상업은 날로 확장하는 산업과 은행들간의 거대한 액수가 오가는 괴물적인 몸집의 금융업으로 대체되었으며 이 와중에서 유대인은 현기증이 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세상의 절대군주가 되었다. 그들이 획득한 모든 근대적 자유와 시민적 권리를 무기로 유대인은 모든 기독교적 진리와 가치관을 공격하며 그들이 소유한 언론을 무기로 사회의 기반을 파괴한다... 그들은 확립된 기존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종류의 비밀결사에 가담한다. 그들은 왕정과 교회, 종교적 규범, 그리고 法治를 차례로 붕괴시키려는 모든 지하조직과 이들이 일으키는 소요의 뿌리에 있다. 모든 기독교 문명의 善함과 아름다움이 혁명의 무저갱을 통해 부정되고 의구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은 그들에겐 무척이나 재미있는 일이다. 설사 혁명의 혼란 속에서 수백만을 도둑맞고 그들의 저택이 불타버린다해도 저들 유대인들은 잃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들은 라피트街(Rue Lafitte)의 파괴는 파리가 무너지는 것과 똑같다는 관념에 코웃음을 친다. 석유는 그들의 매부리코엔 향내음이며 다이너마이트의 폭음은 그들의 귀엔 감미로운 음악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 누가 그들로부터 토라와 탈무드를 앗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모든 사회혼란의 배후에 있으며 역병처럼 번지고 있는 부도덕의 근원에 있다... 그들은 신앙과 윤리를 파괴하는 흉기와 탄환을 은밀하게 유통시킨다. 그들은 적절한 양으로 가미된 방종과 부도덕한 풍조에는 그 어떤 사회도 저항할 수 없으며 이로인해 인간의 知性은 총체적으로 타락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을 용납하고 있는 국가들에서는 결국 이 유대인들을 모조리 추방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날이 올 것이다. 이들을 용납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삶과 죽음, 건강한 삶과 만성적인 질환, 그리고 평화속의 안정과 끊임없는 사회혼란 중 그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와 직결된 문제인 것이다.” (Die Israeliten)

 

Bernard Lazare  유태인 언론인 (佛)
“유대인에 대한 시공을 초월하는 이 반감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왜 유대인은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에서부터, 페르시아와 아랍, 그리고 투르크와 기독교국가들에서까지 번번히 증오와 천대의 대상이 되어왔을까? 그것은 유대인은 융화가 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변함이 없다... 왜 유대인은 융화되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이방인은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양립할 수도 없는, 그들만의 교조적 진리를 가르치는 종교와 율법을 유대인이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만이 택함을 받았으며 그들이 결국에는 세상을 지배하게 될거라는 믿음은 유대인에게 엄청난 자부심을 심어주었고 그로인해 유대인은 비유대인을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게되었으며 종교적인 신앙에 민족주의적인 요소까지 가미되었을때 비유대인에 대한 시각에는 증오심까지 보태지게 되었다... 1830년을 시발점으로 한 제2차 유럽혁명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첫번째 혁명기 때보다 더욱 열정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의 대다수 국가들에서 유대인은 평등한 민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볼때 유대인은 혁명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개인적인 이유나 기질적인 차이로 일선의 혁명가로 활약하지 못했던 유대인도 마음속으로는 혁명이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들의 승리는 자유주의(liberalism)의 승리와 직결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돈과 시간, 열정과 능력을 유럽의 근대혁명에 쏟아부었다... 그 기간동안 유대민족의 금융가, 산업재벌, 언론인, 시인, 작가, 급진적 선동가들은 한 목표를 향해 발을 맞추었다... 그들은 ‘젊은독일(Young Germnay)'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폭력혁명을 주도했던 프리메이슨 롯지들을 비롯하여 카르보나리아(Carbonaria), 로마의 Haute-Vente 등의 비밀결사들의 대다수 멤버들 역시 유대인이었다. 그들은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그리고 이탈리아 모든 곳에서 혁명을 이끌었다... 오늘날 유대인은 이 시대의 양극에 위치해 있다. 유대인은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는 동시에 또한 거대자본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세력의 근원에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로스차일드가 맑스와 라쌀의 안티테제임과 동시에 자본가는 공산주의자들에게서 조력자의 손을 발견하며 전 세계를 훑는 주식투기꾼들의 냉혹한 눈초리는 국제적 프롤레타리아들의 혁명운동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칼 맑스는 분명, 내세의 구원을 거부하고 오로지 현세의 지상낙원을 꿈꾸는, 태고의 유물론적 세계관에 젖어있는 탈무드주의자였으며 그도 이런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다... 제1차 인터내셔널의 창설을 주도한 맑스는 또한 1864년 런던에서 노동자의회를 조직했다. 이 단체의 대다수 멤버들은 유대인이었으며 중앙위원회에는 독일과 러시아 대표 비서 칼 맑스, 덴마크 비서 제임스 코헨(James Cohen)이 포진하고 있었다. 인터내셔널의 유대인 멤버들은 파리꼬뮨사태에 대거 가담했으며 이곳에서 많은 수의 그들의 동족과 상면했다. 유대인들은 사회주의 성향의 정당 창당과 운영에 있어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독일에서는 맑스와 라쌀을, 오스트리아에서는 아론 리버만(Aaron Libermann)과 애들러(Adler), 그리고 루마니아에서는 도브로얀 게리아(Dobrojan Gherea)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러시아의 유대인들은 괄목할만 한다. 게토의 티를 아직 벗지도 못한 나이어린 유대인 학생들은 러시아에서 허무주의적 프로파간다를 확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학생들을 포함한 이들은 해방이란 대의를 위해 그들의 생업을 포기했으며 이들 가운데서도 의사와 변호사 등의 유대계 청년 지식인들은 반체제운동으로 망명중인 노동운동가들과 함께 런던과 뉴욕에서 노동자단체들을 조직하여 사회주의 및 무정부주의적 선전선동을 전개했다... 유대인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비난은 과히 틀리지 않다. 실로 유대인에겐 혁명적인 기질이 있으며 그가 의식을 하든 말든 그들은 모든 혁명의 근원에 있다... 유럽이 유대인에게 평등한 권리를 선사했을때 그들 국가, 아니 그 기독교 국가들은 전복과 파괴의 표적이 되었음을 알아야한다... 유대인은 단지 기독교의 절멸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의 목적은 유대교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공격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신앙을 조장한다. 그들이 조성한 영적인 황무지 위에 그들은 자신들만의 세계관과 인생관, 그리고 가치관을 강요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역사적인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 과업이란 그리스도의 종교를 말살하는 것이다.” (L'Antisemitisme, 1887)

 

 

(러시아 정교인들의 성찬예식을 조롱하는 볼셰비키 선전지)

 

Wilhelm Marr  독일 저술가
“러시아는 유대인에 대한 기독교 문명 최후의 방어선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들에게 굴복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불굴의 의지가 담긴 유대인의 책략은 결국 인류가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대혁명으로 러시아를 무너뜨릴 것이다. 러시아를 전복하는데 성공한다면 유대인은 그 어느 나라를 겁낼 필요도 없게 된다. 우리의 독일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러시아의 고위직을 독식할 것이며 러시아를 무기로 서구문명의 말살이란 과업에 나설 것이다.” (Der Sieg des Judentums uber das Germanentum, 1879)

 

 

Alexander III  러시아 황제 (1881-1894)
“그동안 우리 정부는 유대인들과 제국백성들 간의 관계를 큼 관심을 갖고 지켜봐온 바, 부당한 상행위를 통해 유대인들이 이 땅의 기독교인 백성들을 비참한 상황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개별적인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고, 유대인들은 한 집단으로서 이 나라의 번영과 발전에 기여하는 대신 그들의 간악함을 무기로 특히 빈곤한 민중들의 재산을 약탈해왔고 그들에 대한 백성들의 원성은 끊이질 않았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 하에 정부는 민중에 대한 유대인들의 억압적이고 부도덕한 행태를 근절하고자 엄격한 조치들을 발동했던 것인데 이에 대해 유대인들은 체제를 전복하고자 하는 불순한 모의를 주동함으로서 정부에 맞서고 있다.” (Imperial Edict of September 3, 1882; Elizabeth Latimer, Russia and Turkey in the 19th Century)

 

1881년 3월 1일, 알렉산드르3세의 아버지 알렉산드르2세는 맑스주의자들에 의해 암살되었다. 주동자 5인방 Grinevetski, Rysakov, Mikhailov, Emelianov, Helfmann은 공산주의혁명 지하조직이었던 Narodnaya Volya(민중의 의지)의 멤버들로서 다섯 사람 모두 유대인이었다. 사상 최초의 정치 테러단체라 할 수 있는 나로드냐 볼야는 역시 유대인인 Mark Natanson이 구축한 맑스주의적 지하조직 ‘랜드앤프리덤(Land and Freedom, 토지와 자유)의 하위 무장조직이었다. 나탄손은 미국의 유명한 유대인 무정부주의자 알렉산더 버크만의 숙부이기도 하다. 특기하자면, 레닌의 형은 황제 암살사건과 관련되어 처형되었다.

 

유대인 공산주의자 및 혁명분자들이 주도한 요인암살 사례들을 간략히 나열하면:

 

1879년 - 우크라이나 하르코프 지사 쿠로파트킨(Kropotkin) 암살 (유명한 무정부의자 쿠로파트킨의 사촌)
1881년 - 알렉산드르 2세 암살
1892년 - 미국의 유대인 여류 무정부주의자 에마 골드만의 주도하에 유대인 추종자들이 자선사업가

            Henry Clay Frick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침. 암살을 실제로 결행한 인물은 알렉산더 버크만
1901년 - 미국 맥킨리(William McKinley) 대통령 암살. 범인은 에마 골드만의 추종자로 폴란드 출신

            유대인인 레온 코글로즈
1901년 - 러시아 교육부 장관 보골레포프(Bogolepov) 암살
1902년 - 러시아 내무부 장관 스피야긴(Sipyagin) 암살
1903년 - 우파(Ufa) 지사 보그다노비치(Bogdanovich) 암살
1903년 - 러시아 내무부 장관 플레프(Plehve) 암살
1905년 - 니콜라이2세의 숙부 세르게이 대공(Grand Duke Sergei) 암살
1906년 - 러시아군 장성 두브라소프(Dubrassov) 암살
1911년 - 러시아 수상 스톨리핀(Stolypin) 암살

1918년 - 모스크바주재 독일대사 미르바하 백작(Count Mirbach) 암살
1918년 - 볼셰비키 지도자 유대인 스베들로프(Sverdlov)의 지시하에 니콜라이 2세와 전 가족이 살해됨

 

 

Robert Michels  독일 정치학자
"사회주의 정당과 급진혁명 정당들의 지도부에 유대인이 많다는 사실은 주목을 요한다. 유대인은 그들 민족의 특성상 타고난 대중의 지도자이고 조직자이며 선동가이다. 그 특성들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의 세속적인 광신주의이다. 유대인의 이러한 성향은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며 마치 전염병처럼 민중에게 확산된다. 그 다음은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신의 선민이라는 그들만의 자부심이다. 유대인은 언어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매우 민첩하다. 또한 모든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거의 무제한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입신양명(立身揚名)에 대한 뿌리칠 수 없는 욕구이다. 지난 75년간 유럽을 뒤흔든 새로운 좌파적 정치조류(潮流)들 가운데 유대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적응력과 지적인 활력만으로는 노동자들의 정당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질적, 양적인 비중을 설명할 수 없다. 그 어느 나라보다 독일의 노동운동계에서 유대인은 괄목할만한 영향을 끼쳤다. 먼저 유대인 페르디난드 라쌀(Ferdinand Lassalle)과 칼 맑스(Karl Marx)를 들 수 있고 이들과 동시대 인물이었던 모세스 헤스(Moses Hess)도 빼놓을 수 없다. 기존체제의 유명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요한 자코비(Johann Jacoby)역시 유대인이었다. 비슷한 경우로,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거상(巨商)의 아들인 칼 호슈베르크(Karl Hochberg)는 독일에선 처음으로 사회주의 저널을 발행했다. 독일 사회주의자 의회의 의장 폴 싱어(Paul Singer)도 유대인이었다... 또한 많은 유대인들이 다양한 직책에서 사회주의 정당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에두아르드 번스타인(Eduard Bernstein), 하인리히 브라운(Heinrich Braun), 야콥 스턴(Jakob Stern), 시몬 카첸스타인(Simon Katzenstein), 그리고 브루노 숀랑크(Bruno Schonlank)는 사회주의 이론가로서 당의 노선을 뒷받침했으며 그라드나워(Gradnauer), 아이스너(Eisner), 그리고 조셉 블로흐(Josef Bloch)는 언론인으로서 사회주의 일간지 Socialistische Monatsheft 를 제작했다. 또한 휴고 하인만(Hugo Heinmann)은 지방정부 정치인으로서, 레오 아론스(Leo Arons)는 선거와 관련된 영역에서 사회주의자로서 큰 역할을 했으며 루드비히 프랑크(Ludwig Frank)는 사회주의 청소년 조직을 창설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사회주의 운동에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핵심적이다. 빅터 애들러(Victor Adler), 엘렌보겐(Ellenbogen), 프리츠 아우스테를리츠(Fritz Austerlitz), 맥스 애들러(Max Adler), F. 헤르츠(F. Hertz), 테레사 슐레진저 에크스타인(Therese Schlesinger-Eckstein), 다이아몬드 박사(Dr. Diamond), 아돌프 브라운(Adolf Braun) 등의 이름이 곧 떠오른다... 미국으로 건너가 보면 유대인 모리스 힐퀴트(Morris Hillquitt), A. M. 사이몬스(A.M. Simons), M. 운터만(M. Untermann)이 있고 네덜란드에는 다이아몬드 노조를 이끌고 있는 헨리 폴락(Henri Polak)과 독립적인 맑스주의자 D. J. 윈쿠프(D. J. Wijnkoop), 그리고 M. 멘델스(M. Mendels)가 눈에 띈다. 이탈리아에는 엘리아 무사티(Elia Musatti), 클라우디오 트레베스(Claudio Treves), G. E. 모딜리아니(G. E. Modigliani), 리카르도(Riccardo), 그리고 아돌포 모밀리아노(Adolfo Momigliano), R. L. 포아(R. L. Foa), 과학자인 체사레 롬브로소(Cesare Lombroso) 등을 유명한 사회주의자들로 꼽을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유대인이 덜 드러나보이는 프랑스에서도 폴 루이(Paul Louis), 에드가 밀하우드(Edgar Milhaud), 그리고 1904년 l'Humanite 의 주주들이 눈길을 끈다. 1879년에 있었던 프랑스의 사회주의 정당 Parti Ouvrier 의 창당도 강베타 정부에서 알제리 총독을 지냈던 아돌프 크레미유의 자금지원으로 가능했다. 또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단의 면면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러시아와 루마니아, 헝가리와 폴란드의 노동자 정당들 역시 유대인들의 수중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러시아로부터는 많은 수의 유대계 공산주의 혁명가들이 외국의 사회주의 정당들로 수출된다.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와 파르부스(Parvus)로 알려진 이스라엘 헬판트 박사(Dr. Israel Helphant)는 독일로, 찰스 라파포트(Charles Rappoport)는 프랑스로, 아나 쿨리쇼프(Anna Kulishoff)와 안젤리카 발라바노프(Angelica Balabanoff)는 이탈리아로, 라익스베르크 형제는 스위스로, M. 비어(M. Beer)와 테어도어 롯슈타인(Theodor Rothstein)은 영국으로 활동의 무대를 옮겼다. 마지막으로 독일의 유명한 무정부주의자 구스타프 랜다우어(Gustav Landauer), 지그프리드 나흐트(Siegfried Nacht), 피에르 라무스(Pierre Ramus), 그리고 세나 호즈(Senna Hoj)를 언급함으로서 이 긴 명단의 마침표를 찍고자 한다.

 

“유대인이 사회주의 운동에서 이러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독일을 포함한 동부유럽 유대인들이 처해 있었던 그들만의 독특한 딜레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들 지역에서 제도적인 유대인 해방은 그들의 사회적, 그리고 도덕적인 고립을 해소하지 못했다. 독일인들 사이에서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과 반감은 지배적이며 유대인에 대한 거부감은 과거에 비해 별로 달라진게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대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유대인의 반란적인 기질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불의에 항거해야 한다는 감정과 맞물리게 되었다. 이러한 감정은 체계화된 이론을 통해 이들이 인식하는 일반적인 사회악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발전하게 되고 혁명가들의 의지는 점차 세상을 개량하겠다는 더 한층 거창한 목표를 향해 움직이게 된다. 많은 재산을 가졌다하더라도 최소한 동부유럽에서 유대인은 기존의 정치, 경제, 문화적 시스템이 비유대인들에게 부여하는 혜택과 특권들로부터 소외되어 있으며 사회의 주류로부터 거부당하는 한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비유대인의 사회는 유대인을 신뢰하지 않고 이들 사회의 지배적인 정서 또한 유대인에게 우호적이 않다... “반유대적 사회주의”는 1870년 공식적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베를린 대학의 박사출신이었던 오이겐 되링(Eugen Duhring)은 맑스와 그의 추종자들의 “유대” 사회주의에 대항하는 “게르만(German)" 사회주의를 선포했다. 애국적인 동기에서 이 운동을 시작한 되링은 맑스주의적 사회주의는 유대계 자본과 그들을 위해 일하는 하수인들의 이익을 위해 이들이 지배할 국가에 전 국민이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875년에 이르러 되링은 일단의 베를린 사회주의자 서클의 중심적인 인물이 되었다. 요한 모스트(Johann Most)는 이 모임의 멤버였다. 그러나 이 그룹의 영향력은 되링과 “유대인 맑스”의 영적인 형제라는 엥겔스 사이에서 일어났던 그 유명한 논쟁을 극복하지 못했다. 사회주의 성향의 대중에 대한 되링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감소하여 1878년에 이르러 그는 무대에서 사라졌다. 1894년에는 사회주의에 반유대적인 성격을 부여하려는 또 한 차례의 시도가 있었다.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의 사회주의자로 Braunschweiger Volksfreund의 언론인이었던 리하르트 칼베르(Richard Calwer)는 유대인 사회주의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힐난했다, “괜찮은 유대인 사회주의 이론가가 한 명 당 최소한 쓰레기 같은 유대인 사회주의자들이 여섯 명은 된다. 이들이 가진 장점이라고는 특출난 자기주장 능력과 마르지 않는 언어의 샘이다. 사회주의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이.” (Political Parties: a Sociological Study of the Oligarchical Tendencies of Modern Democracy, 1903)

 

 

Henry Wickham Steed  영국 더 타임스 편집장
“자신들의 지적인 우월함에 대한 자신감으로 유대인은 항상 “자유”의 기수였으며 여러 차원의 속박을 견디지 못해하는 그들의 성향은 그들의 정치적 급진주의를 낳게 했다. 오늘날 “자유주의(Liberalism)"라고 불리는 정치, 경제적 교리들은 대부분 유대인, 비밀 유대인(crypto-Jews), 또는 親유대적 지식인들에 의해 집적된 사상체계이다. 오스트리아 제국과 독일의 “진보” 정당들을 보면 대부분 유대계 정치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또한 이들을 뒷받침하는 언론과 학계에서도 유대인들의 주도적인 역할을 발견할 수 있다. 독일에서 자유무역을 주장한 맨체스터학파를 옹호한 사람들 역시 유대인들이었다. 이들의 지향점은 쿤베르거(Kurnberger)가 규정한 “닭장에 들어간,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여우”였다. 급진파(急進派)와 마찬가지로 사민주의적 일면이 있다는 이유로 비스마르크가 반대했던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는 강한 반유대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뤼거(Lueger)의 기독교 사회주의(Christian Socialism) 역시 반유대주의적이었고 자본주의의 무제한적 이윤추구가 야기할 사회적 병폐들로부터 경제적 약자들을 보호하고자 했다. 최소한 독일과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와 사민주의는 유대인들이 이끌어 왔고 유대적인 교조들로부터 영감을 받아왔다. 사회주의자들의 성서인 'Das Kapital'을 쓴 칼 맑스는 유대인이었고 그의 라이벌로 독일 사민당을 창설한 라쌀 역시 유대인이었다. 좀더 근래에 들어서는 싱어(Singer), 번스타인(Bernstein), 아론스(Arons), 피셔(Fischer), 그리고 슈타트하겐(Stadthagen)과 같은 유대인 사회주의자들이 떠오른다. 오늘날 독일 제국의회에 의석을 보유하고 있는 사회주의 정당들의 과반수 이상은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이념의 확산은 대부분 유대인들이 수행한 프로파간다의 결과였다. 오스트리아 사회당을 창설한 인물은 유대인 빅터 애들러 박사(Dr. Victor Adler)였고 그의 추종자들 역시 대부분 유대인들이었다. 헝가리에서도 유대인들이 사회주의 정당을 만들었으며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와같은 현상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유대인의 민첩한 知性과 그들의 민족성에 뿌리박혀 있는, 상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미래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맑스가 예언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있는 그들은 민족주의세력 對 금융/산업 복합체 간의 우위는 조직화 된 민중의 캐스팅 보트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국가와 사회를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각종 사회주의 단체들과 조직을 통해 일반대중을 그들의 뜻대로 통제할 필요성을 절감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사회주의는 또한 경제적 차원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해독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각종 경제비리등 유대인의 반사회적인 이윤추구 행위들과 그 파괴적인 본질에 대한 반유대주의자들과 그들 자신의 비유대계 추종자들의 비판과 관련하여 독일의 유대인 사회주의 지도자들의 대표적인 변명은 이런 것이다, ‘물론 유대인이 자본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대표자들이긴 하지만 자본주의의 병폐는 근원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기인하는 것일뿐 유대인과는 관계가 없다. 자본주의적인 사회악을 제거하는 유일한 길은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프롤레타리아의 조직화와 계급투쟁이며 인터내셔널 혁명적 사민주의에 입각한 사회의 재구축 뿐이다.’... 그들과 별 교류가 없어 유대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것이 비유대인들의 세상과는 얼마나 본질적으로 상반된 것인지를, 또한 얼마나 예리하게 유대인 문제가 현대문명에 작용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The Hapsburg Monarchy, 1919)

 

(멘셰비키 지도자 마르토프, 유태인)

 

 

(유태인 골드만 가족에서 태어나 1/4 유대계인 울리아노프 가족에 입적된 레닌)

 

Vlacheslav Plehve  러시아 내무상
“서부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분자들을 보면 90퍼센트가 유대인들이오. 그리고 러시아 전체적으로는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소. 정부는 지금 러시아에서 진행중인 유대인들의 이러한 움직임을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경고하건데, 만약 여러분의 자제들이 혁명운동에 가담하는 것을 여러분이 막지 않는다면 정부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유대인이 이 나라를 떠날 수 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오!” (In a speech to a Jewish delegation in Odessa in 1903: Michael Lynch,Reactions & Revolutions: Russia 1881-1924)

 

1903년 7월 28일, Plehve는 공산혁명가 Egor Sazonov가 던진 폭탄에 살해되었다. 명령을 내린 유대인 에브노 아제프(Evno Azef)는 사회주의혁명당 휘하 테러조직의 수괴였다.

 

(아제프)

 

Vladimir Lamsdorf  러시아 외무상
“1905년 露日전쟁 직후의 사태와 지난 10월 더 한층 극렬하게 전개된 대규모 파업과 모스크바를 비롯한 각 지역에서 잇달았던 무장반란 사태를 볼 때 러시아의 혁명운동은 이 나라의 내부적인 사회, 경제, 정치적 요인과 더불어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론을 뒷받침하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혁명세력이 국외에서 반입된 무기들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과 이들이 상당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장반란은 말할 것도 없이 반정부 운동과 파업을 주동하는 단체들을 운영하는데는 많은 돈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적한 바 어느 외국정부가 이들에게 무기와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국외에 존재하는 모종의 자본가들의 모임이 우리나라의 혁명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공산화를 기도하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같은 배경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반정부 세력의 다민족적인 성격으로, 혁명운동은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핀란드, 폴란드 등의 여러 소수민족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국정부의 전복을 모의하는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집단은 유대인입니다. 개인적으로 유대인들은 수괴나 간부의 위치에서 비유대계 반정부단체들을 이끌고 있으며 서부지역의 유대인분드와 같이 그들만의 독자적인 조직을 통해 체제전복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그 어느 소수민족보다 과격하고 급진적인 요소입니다. 혁명운동에 있어 유대인들의 이러한 주도적인 위치을 감안할 때 외국의 유대인 자본가 서클이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단정해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와관련하여 본다면 러시아의 혁명운동은 외국으로부터의 지원을 받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외국으로부터 조종되고 있다는 추론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 폭력성에 있어 유례가 없었던 지난 10월의 총파업사태 당시 러시아 정부는 마침 로스차일드 계열의 금융사들을 배제한채 차관도입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중이었다는 사실을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보를 입수한 유대인 자본가와 은행가들은 의도적으로 루블을 대량매도하여 외환시장에서 공황사태를 야기함으로서 러시아 정부의 차관도입을 무산시키는 한편 급락하는 러시아 환율에 대한 투기행위로 막대한 이윤을 남겼습니다... 이와 더불어 이미 러시아 언론에 보도된 일련의 사례들은 이 나라의 혁명운동이 국외의 유대인 단체들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줍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정보국 요원들이 확인했듯이 무기반입의 근원지는 미국이며 영국을 거쳐 이 나라에 들어오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언론은 이미 1905년 6월, 러시아의 유대계 맑스주의적 테러단체들을 무장시키는 것이 목표임을 공공연하게 표방한 유대인 자본가들의 자금모금 위원회가 결성되었다는 사실을 보도한바 있습니다. 러시아 정부에 대한 비방과 모략으로 잘 알려진 유대인 출판사업가 루시엥 울프는 이 위원회의 주요 인물입니다. 또한 이 위원회와는 별도로 영국에서는 로스차일드卿의 주도하에 또 다른 유대계 자본가들의 위원회가 조직되었습니다. 그들은 포그롬으로 인한 유대인 피해자들을 돕는다는 명분아래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기금모금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역시 그 의도가 불분명한 러시아 유대인 원조단체들이 현지 유대계 유력인사들에 의해 조직되어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Secret Report to Emperor Nicholas II, January 3, 1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