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소선지서

연구 1 이스라엘에 내린 재앙(미 1,2장)

은바리라이프 2009. 3. 16. 18:24

연구 1 이스라엘에 내린 재앙(미 1,2장)

미가의 메시지는 이사야의 것을 보완하고 있다. 그들은 같은 시대에 살았으나, 이사야가 귀족 출신이라면 미가는 외딴 마을에서 온 시골 출신이다. 이사야가 정치가라면 미가는 복음 전파자요, 사회학자였다. 이사야는 정치적인 문제에 깊이 관여하였지만, 미가는 개인 신앙과 사회 윤리만을 강조하였다. 이사야는 시온이 신성불가침하다고 가르쳤으나 미가는 그것이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미3:12). 미가는 처음부터 유다와 사마리아에 임할 심판을 적나라하게 외친다.

1.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경고(미1장)

 

본문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적절히 표현되고 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위엄있게 강림하신다. 하나님의 강림하심은 재앙의 시작일 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하나님의 강림하심에 대한 선지자 미가의 태도는 무엇인가?

 

1)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하나님의 강림하심의 의미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심판하시겠다는 돌이킬 수 없는 확고 부동한 하나님의 의지 표명이다. 하나님이 이 땅으로 친히 강림하신다고 할 때는 불가항력적인 권능을 이 땅에 쏟으시겠다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서 친히 강림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하여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미1:5). 이들의 죄는 하나님께 불성실한 것이었다. 언약 관계에 있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성실해야 했으나 그들은 항상 불성실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강림하심의 목적은 그들의 죄를 징벌하고 멸망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미가는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듣고 그것이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알고서 매우 애통해 하며 슬퍼한다(미1:8-26). 그의 슬픔과 애통이 얼마나 큰지는 그가 취한 행동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미1:8, 9).

2) 반복된 죄악과 태도

언약 관계에 있는 자기의 백성이 죄를 반복해서 지을 때에 회개할 줄 모르는 그의 행동과 불성실 때문에 하나님은 무서운 재앙을 내리신다. 이스라엘이 사랑하는 백성들이었으나 하나님은 죄 때문에 심판하시고 마신다.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그들을 바로잡아 언약 백성으로써 합당한 생활을 하게 함이다. 비록 그들이 언약에 불성실했음에도 선지자들의 끝없는 외침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2. 권력자들을 향한 심판 경고(미2:1-11)

 

하나님의 심판이 1장에서는 민족적, 국가적이라면 2장에서의 심판 경고는 국가 내부의 일부분인 사회적인 악에 대한 것이다. 미가는 2장에서 특히 권력자들의 횡포를 고발하며 저주를 선포한다. 미가는 그들의 죄를 경책하면서 슬픈 애가를 지어 부른다. 슬픈 애가의 직접적인 원인과 배경은 무엇인가? 또한 이 애가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교훈하고자 했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가르치고자 하는 구체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1) 심판의 현실성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 경고는 국가뿐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적용된다. 권력자들의 죄악이 얼마나 크며 심각한가를 슬픈 애가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하나님의 권력자들에 대한 저주는 현실적으로는 실현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이 이것이다.

그리고 슬픈 애가는 권력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향하여 범했던 탐욕들 때문에 생겨났다(미2:1, 2). 그러니까 권력자들의 횡포는 사회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죄악이다. 그뿐 아니라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금지시키려고 하면서 하나님은 절대로 심판하는 분이 아니심을 반문하여 죄악을 행해왔다(미2:7). 이웃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은 사랑과 보살핌이다(민25:35-46). 이와 같은 권력자들의 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길이 없다.

 

2) 그리스도인과 이웃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은 그것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했다. 하나님은 권력자들의 횡포를 미리 아시고 말씀으로 방지하셨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이 주의깊게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할 내용들이다. 사회의 가난하고 압제당하는 자들, 고아와 과부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적극적이어야만 한다. 이제는 말만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길 때이다.

 

3. 남은 자를 모으시는 하나님(미2:12, 13)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하는 가운데서도 늘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메시지는 회복과 남은 자들에 대한 축복이다. 본문에서도 심각한 멸망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고서 남은 자들에 대한 약속을 주신다. 이 남은 자들에 대한 예언은 선지서 전체에 흐르고 있는 사상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모으실 것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모으시는가? 남은 자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남은 자들을 모으시는 하나님의 행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메시지 중에서 회복이나 남은 자들을 모으시는 행위는 축복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 구별해 놓으신 남은 자들을 새롭게 모으시는 근거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있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태도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항상 언약 때문에 모든 일에 신실하셨다. 하나님은 앞으로도 신실하실 분이다. 따라서 흩어진 백성들을 모으시는 하나님의 행위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지한 관심을 확인해 줌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상태로 회복될 것임을 나타내고자 하는 목적이 숨겨져 있다. 이 남은 자들이 앞으로는 이스라엘을 대표할 것이다. 선지서의 '남은 자' 사상은 하나님 나라의 참된 일원을 가리킨다. 이들이 장치 하나님과 함께 영광스러운 나라를 이룰 것이다. 이들은 신약적인 의미로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받은 무리들, 곧 교회 성도들을 가리킨다.

 

2) 보장된 성도의 생활

멸망당하여 모든 민족이 흩어져 있을지라도 주의 남은 자들을 모으시는 하나님의 오늘날 성도들을 동일하게 모으시며 도우시고 계신다.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성도들의 삶을 책임지시며 보장해 주신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사신 언약 백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내린 재앙은 매우 위엄있고 심각했으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도 소망을 주셨다. 멸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서 앞서서 행하시므로 깨끗하게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의 재앙의 내용이 광범위했을지라도 남은 자를 모으시는 하나님의 행위로 재앙의 어두운 그늘은 깨끗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경각심을 가져야 되고, 회복을 통해서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모든 생활을 보장해 주심을 믿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1. 미가의 첫번째 설교

 

1)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

당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서 행해지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여러 가지 죄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우상 숭배가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미1:5).

2) 미가의 예언

사마리아가 완전히 파괴될 것을 예언하였는데 이것은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침략했을 때 성취되었다.

그리고 원수들이 예루살렘 성문까지 육박하여 오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파괴하기 전 115년 동안 보존하실 것이다.

 

2. 미가의 두번째 설교

 

1) 이스라엘의 죄

하나님께서는 한밤중에 궤휼을 꾸미느라 잠 못 이루다가 날이 밝으면 그것을 행하는 자를 정죄하시고 악을 악으로 갚으실 것을 약속하셨다. 남의 것을 탐내고 집주인을 속여 집을 빼앗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죄를 지은 것이다.

2) 이스라엘의 반응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선지자들의 예언을 듣고자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을 하시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스라엘은 거짓 선지자들의 달콤한 예언에만 귀를 기울인 것이다.

3) 결과

길을 여는 자, 그들의 왕(메시야)이 이스라엘의 포로로 갇혀 있는 도성의 문을 여시고 그들을 이끌어 내사 고국으로 되돌려 보내실 때 그들에게 임한 징벌이 끝난 것이다.

 

3. 불가항력적 은혜

 

1) 정의

불가항력적 은혜는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구원으로 부르시는 외적인 부르심과 택한 자에게 베푸셔서 피할 수 없는 특별한 내적인 부르심이 있어 구원으로 이끌어 주신다.

외적인 부름에 대해서는 저항할 수 있지만 내적인 부르심에는 저항할 수 없다. 즉 피할 수 없는 은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죄인들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데 절대로 실패하시지 않으며, 그 의도는 구원하고자 하시는 모든 각 죄인에게 적용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2) 내용

불가항력적 은혜는 칼빈(Calvin)에 의해 신학적인 용어로 정의된 바 있다. 칼빈은 알미니우스(Arminius)가 성령은 거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대 의견으로 불가항력 적 은혜를 주장하였다.

외적인 부르심은 모든 사람에게 구별없이 주어지는 것으로 거부할 수 있으며 때때로 저항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내적인 부르심은 택한자에게만 주시는 것으로 저항받지 않으며 항상 택자를 거듭남으로 이끌게 된다. 따라서 이 결과 택자는 반드시 그리스도께로 이끌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인간의 의지에 의한 것도 아니고 인간의 도움도 받지 않으시며 택하신 죄인을 믿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며 자발적으로 그리스도께 나오도록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으로 이끄시는데 있어서 절대로 실패하시지 않으시는 것이다.

 

3) 불가항력적 은혜의 교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불가항력적 은혜의 교리적 내용을 잘 정의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으로 예정하신 사람들 모두를-오직 그만을-그가 약속하시고 허락하신 시간에 그의 말씀과 성령에 의하여 그들이 본질적으로 처해 있는 죄와 죽음의 상태에서부터 예수그리스도에 의한 은혜와 구원으로 유효하게 부르시기를 기뻐하신다. 그 때 그는 그들의 정신을 영적으로 밝히셔서 특별히 하나님의 것을 이해하게 하시고 그들을 선한 것으로 결정하시며 효과적으로 예수그리스도께로 이끄신다. 그들이 가장 자유롭게 나아오는 것임에도 그것은 그의 은혜에 의한 의지로 되어진 것이다." 라고 정의하고 있다.

 

4) 불가항력적 은혜에 대한 성경적 증거

하나님께서 그의 사역을 이루시는 데는 인간의 도움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 성경의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 13),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등에서는 인간의 뜻이나 노력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 외에도 성령의 구원 사역이 여러 곳에 걸쳐 등장하고 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