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소선지서

연구 1 호세아와 고멜(고1-3장)

은바리라이프 2009. 3. 9. 08:12

결혼이란 상대방이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고멜과 결혼을 하게 된다.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것을 보면서 그와 같은 모습으로 고멜을 깊이 사랑하였다.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고멜을 사랑하게 된 동기는 결국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결국 그들의 결혼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게 나누어지고 있다. 즉 두 사람의 연합은 예언자적인 의미를 담은 연합인 것이다.

 

1.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호1장)

 

호세아서에 나타난 고멜은 실제적 인물인가? 아니면 단지 이스라엘을 비유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존재하는가? 만약 상징적인 인물이라면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1) 실제적인 상황

일부 신학자들은 음란한 아내에 대하여 직업적 창기가 아니고 그 잠재성을 가진 처녀라고 말한다. 즉 신실치 못한 이스라엘 백성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음란한 아내가 그 잠재성을 가진 처녀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스라엘 역시 아직 죄악으로 빠지기 전의 모습일 것이다. 이는 호세아서 전체의 흐름을 가로막는다. 호세아는 한 명의 고멜을 사랑한 것이지 여러 명의 창기를 다루었던 것은 아니다. 신약에서 메시야는 세리와 창기들, 즉 죄인들을 찾아 다니셨다. 이 점을 볼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강력한 호소의 수단으로서 호세아의 실제적인 상황을 사용하신 것이다.

 

2)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일은 치명적인 죄이다. 고멜을 더럽다고 말하는 이스라엘은 바로 자신들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택받은 백성을 향하여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스라엘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호세아가 고멜을 살아하는 모습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했다. 호세아가 고멜을 사랑하듯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며, 또한 우리를 거룩한 모습으로 사랑하신다(롬5:8).

 

2. 음란한 아내로서의 이스라엘(호2장)

칼빈(Calvin)는 호1:2의 "여호와를 떠나"를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떠나'로 해석했다. 이는 여호와를 알고 따르다가 그분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는 말이다. 이렇게 여호와를 떠난 이스라엘에게 호2:19은 "내가 네게 장가들어"라고 말한다. 성경에 '장가든다'는 표현이 세 번 나오는데, 매번 부가적 축복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부가적 축복들은 어떤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는가?

 

1) 하나님의 긍휼이 근거가 됨

"장가든다"는 표현에 대해, 박윤선 박사는 "새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종교적 관계가 완전하여지며 영원하게 됨을 약속하는 것"이라고 언급한다. 렘31:34에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시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장가드신다. 호2:19,20은 그들에게 장가들겠다고 하시면서 세가지의 부가적 요소를 첨가시키신다. 첫째는 영원한 삶, 둘째는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 그리고 셋째는 진실함이 포함되어 있다.

 

2) 예수그리스도의 오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찾아가서 장가들겠다고 하신 근거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다. 이스라엘의 어떤 모습도 하나님을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즉 이스라엘의 모습이 하나님을 찾아오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긍휼과 자비하심 때문에 그들에게 찾아오신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은 인간의 모습이 좋아서 오신 것이 결코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을 이 땅에 오게 한 것이다(요3:16)

 

3. 몸값을 치루어야 했던 호세아(호3장)

 

종이 황소에게 상처를 입었을 때에 그는 은 30세겔을 받았다(출21:32). 그런데 여기 고멜을 위하여는 은 15개밖에 되질 않는다. 제롬(Je-rome)은 이 은 15개에 대해서 "그 달 15일에 애굽에서 나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즉 이스라엘이 출애굽히는 날이 15일이기 때문이며, 한 호멜 반은 45말인데, 이는 율법이 출애굽한 후 45일 뒤에 선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은 15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은 15개와 보리 한 호멜 반

은 30에 팔리운 예수(마27:3)는 아무 죄가 없으셨다. 은 20에 팔리운 요셉(창37:28)도 그 형들에게 잘못한 것은 없었다. 오늘 여기 호세아 역시, 은 15개와 보리를 가지고 고멜을 찾아가야 할 만큼의 잘못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값을 치루는 부분 속에는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사랑이 담겨져 있다. 요셉이 팔리움으로 그의 가족을 구원하였고, 호세아가 고멜을 위해 값을 치룸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듯이, 예수가 은 30에 팔리움으로 인하여 죄악의 노예가 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2) 노예 상태의 이스라엘을 위함

선지자에 의해서 일부는 돈으로, 일부는 물품으로 지불된 것은 보통 여종의 몸값에 해당한다. 보리 한 호멜 반은 간음의 의심을 받은 여인을 위해 드려진 예물이었다(민 5장). 그리고 은 15개는 액수가 적은 것으로 보아 신분의 미천함을 확실하게 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노예 상태를 부각시키는 한 단면이다. 이스라엘은 영적인 노예 상태였으므로 그들은 이방의 음란함과 물질주의에 허덕이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그리고 그런 우리들을 위하여 값을 치루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다(마5:44).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대로 신천하시고 계신 말씀임을 깨닫는다. 인간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께 특별한 축복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 원수가 된 이스라엘을 찾아 오셔서 자신의 사랑을 그대로 쏟아 놓으신다. 우리 역시 그 사랑을 받았으므로 호세아가 고멜을 위해 사랑을 쏟듯이 우리의 이웃에게 사랑을 쏟아야 할 것이다.

 

 


1. 호세아서의 문체와 구성방법

호세아서는 아모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구성에 있어서 논리적이지 못하고 단편적인 기사들을 나열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논리의 결핍은 고대의 유명한 저서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호세아서의 서론 부분은 이 예언서 전체에 대한 서론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 서론에 이어지는 산문체의 예언의 말씀과도 논리적 연관성이 없다. 그러므로 완벽한 예언서로 구성되었다기보다는 단편적인 예언의 말씀들을 종합해 한데 모아 놓은 것일 뿐이다. 이 예언서는 마치 파도가 칠 때 물결이 반복되는 것과 같은 반복적인 히브리 문학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대담한 선포 랍소디(Rhapsody) 시가 계속해서 반복되어지는 문학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개개의 메시지에서 선포되는 예언 역시 변화 무쌍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속을 꿰뚫고 있는 주제나 말씀은 놀라우리 만큼 분명하다. 호세아는 타락한 백성들을 향한 여호와의 열정적인 사랑으로 이 예언서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가 메시지를 선포했던 방식은 아모스와는 다르다. 아모스는 죄를 범한 자가 백성이든 왕이든 누구에게나 대담하고 강렬한 어투로 비난한다. 그러나 호세아는 하나님의 인애를 가지고 탄원으로 백성들을 설득하려 한다.

 

2. 호세아 시대에 일어난 일들

호세아가 활동한 시대는 슬프고 비극적인 시대였다. 하늘의 진노가 이 배도한 백성들 위에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 나라는 분단의 고통을 겪었으며, 그것은'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한 여로보암'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긴 그의 수법으로 인한 것이다. 법적인 의무는 이완되었으며, 종교적 주장은 무시되었다. 바알신은 여호와의 상대가 되었으며, 어두운 숲 깊숙한 곳에서는 이교도적이고 퇴폐적이며 살인적인 의식이 자행되었다. 외국의 침략과 내분으로 시달리게 되자 나라 안은 평화와 번영이 사라지게 되었고, 무력과 살인으로 왕좌를 노리는 다른 나라와의 동맹으로 그들은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의 백성들에게 사로잡히고 온갖 수모를 겪었으며, 온 나라가 완전히 위신을 잃게 되었으나 일부는 영적인 충절을 잃지 않았다.

 

3.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에 대한 여러 관점

1) 상징적 관점

이 결혼은 실제로는 결코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에서의 설명은 단순히 환상이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예언자에게 부정한 여인과 혼인하라는 명령은 결코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별히 제사장에게는 금지된 것이다.(레21:7,14). 이러한 관점의 대표자인 영(Edward J.YOUNG)은 만일 호세아가 부정한 여인과 진정으로 결혼했다면 그의 사역은 흔들렸을 것이며, 그의 세 자녀들이 태어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각각의 이름의 뜻에 관하여 주신 메시지의 내용(호1:4-7-9)은 호세아의 사역중의 메시지와 관련되어 그 의미를 갖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2) 실제적 관점

이 결혼은 실제 발생했으며, 고멜은 단지 결혼 전에 일시적으로 매춘부 역할을 한 부정한 여인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며, 만일 우리가 다른 방법으로 취급한다면 결코 논리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이다.

3) 이교도적 관점

비교적 좁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서 이 이야기 속에는 이교도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곧 고멜은 호세아 당시에 우상 숭배가 이스라엘에 널리 퍼졌던 것처럼 거짓 신을 숭배했다는 의미에서 부정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이유는 이 설명이 앞에서 드러난 윤리적 관점을 제거시킬 뿐 아니라 성경 자체가 간음 행위를 영적으로 불결한 행위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예언적 관점

이 결혼은 실제로 일어났는데 고멜은 결혼할 당시에는 순결했으나 그 후에 부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위 예언적인 관점(Proleptic view)이라고 불리우는 이 관점은 보다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만일 고멜이 호세아와 결혼할 당시에 매춘부가 아니었다면 두번째 관점에 대한 반대 논리는 제거된다. 호세아는 그의 아내가 장차 부정한 여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결혼에 대하여 숙고하고 그것을 실행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에는 윤리적인 문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호세아가 고멜을 지극히 사랑했다는 관점과도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