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영화 '워낭소리' 주인공 최원균 할아버지
눈이 많이 내린 지난 18일, 최 노인은 마루에 앉아 있었다.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오후 내내 마루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은 워낭(소의 턱 밑에 다는 작은 종)이었다. 처마에 달린 워낭은 가끔 바람에 몸을 실어 소리를 냈다. 달랑, 달랑. 바람 소리처럼 들렸다.
최원균(81)씨에게 워낭은 오랜 친구의 유품이다. 경북 봉화군 상운면 하눌리. 언덕을 따라 한참 가야 하는 그의 집에 30여년 전 소 한 마리가 들어왔다. 소 시장에서 유달리 잘생기고 실팍한 놈을 만났고, 그는 오랫동안 모은 돈을 치렀다. "부자 같았어요. 소가 생겼으니까. 열심히 살면 땅도 더 사고, 돈도 많이 벌 것 같았어요." 그날, 부부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쇠꼬챙이 같은 최 노인의 다리. 어릴 적 침을 잘못 맞은 그의 왼쪽 다리는 겨울 나무처럼 야위어 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할 그는 소와 함께 들로, 산으로, 시장터로 마음껏 돌아다녔다. 하루는 읍내 장에서 술을 마시고 달구지에 올라타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집이었다. 봄, 햇볕에 취할 때도 여름, 농사일에 지칠 때도 그는 사계절 달구지 위에서 존다. 자동차도 알아서 피해 다니는 소를 믿기 때문이다.
"소 팔아!" "안 팔아!" 최 노인과 부인 이삼순(78)씨는 몇 년 전부터 소 때문에 언쟁하기 시작했다. 할매는 나이가 들면서, 소를 볼 때마다 가는 눈을 뜨고 역정을 냈다. 이제 소를 키우는 게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최 노인은 농약을 치면 꼴을 먹는 소에게 해롭다고 농약을 쓰지 않았다. 사료 대신 쇠죽을 먹였다. 할매가 매일 새벽 4시, 가마솥 가득 쇠죽을 끓이고 나면 오전 7시가 돼서야 노부부는 아침을 먹었다. "요즘 시상(세상)이 어떤 시상인데, 내가 영감 잘못 만나 고생이다." 할매가 중절거리면 노인은 가끔 소를 찰싹 때리며 애꿎게 화풀이했다.
2005년 봄, 집에 오는 길. 소가 미끄러졌다. 수의사가 말했다. "소가 40년이나 살아서 이제 1년밖에 못 살 것 같습니다." 최 노인은 "소가? 소가?"라고 질문하다 딴 곳을 보며 괜히 웃었다. "아닐 거다." 혼잣말을 했다.
동그랗게 말린 노인의 등을 닮아 소 등도 구부정하다.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소 등은 구불구불 낙타 같았다. 그러나 노인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소를 끌고 나갔다. 가다, 서다, 반복하던 소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노인이 고삐를 당기자 소는 겨우 다음 걸음을 시작한다. 40세 소는 바닥을 내려다보고, 달구지에 올라탄 81세 노인은 소의 등을 쳐다본다. 동행은 그들을 많이도 닮게 했다. "나한테는 쇠(소)가 사람보다 나아요. 참 불쌍해요. 말도 못하고, 힘들 겁니더. 나 같으면 그렇게 못 할 겁니더."
수의사가 다녀간 뒤 최 노인도 앓아누운 날이 잦아졌다. 병원에 갔더니 혈압이 높아 일을 줄이지 않으면 풍이 올 수 있단다. 자식들도 아우성이다. 소가 없어져야 아버지가 들에 나가지 않고 쉬신다고. 자식 9명을 먹이고 입힌 소를, 이제 모두 팔자고 난리다. 상운면 주민들이 "큰아들보다 낫네요"라고 소를 칭찬하면 노인은 "이 소랑 같이 죽을 거다. 죽으면 내가 상주도 할 건데"라며 웃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은 마음을 굳혔다. 소를 팔아야지. 할매는 소 팔러 가는 날, 다른 날보다 쇠죽을 더 많이 준비했다. 소가 웬일인지 먹지 않는다. "왜 안 묵노? 다 묵어야 장에 가지." 소를 구박했던 할매는 미안한지 소 등을 다독였다. 외양간에서 나가던 소의 눈에는 물기가 맺혔다. 물기가 둥그렇게 모여 눈물이 됐다. 희지 않고 누런, 곧지도 않고 쳐진 눈에 눈물이 떨어졌다. 외양간이 젖었다.
장에 나갔지만 사람들은 오래된 소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늠름하게 뻗은 소들 사이로 늙은 소의 굽은 등이 유독 초라했다. "나이 든 소는 질겨 못 먹는대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단 돈 몇 십만원에 흥정을 붙이는 상인들이 있었지만 노인은 500만원을 줘야 팔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노인도 알고 있었다. 500만원은 받을 수 없다는 걸.
결국 소는 외양간으로 돌아왔다. 2006년 겨울, 소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해 겨울 유달리 노인과 산에 자주 가 나무를 싣고 왔다. 겨울에 쓸 장작이었다. 12월 어느 날, 노부부가 아무리 깨워도 소는 일어나지 않았다. 철퍼덕 주저앉아 숨을 거뒀다. "같이 죽어야지. 와 먼저 가노, 와 먼저 가노. 일만 시켜 미안하다." 노인은 거북 껍질 같은 손으로 뻑뻑한 소 털을 쓰다듬었다. 그러고선 소를 밭 옆에 묻었다.
난 18일 오후. 최 노인의 외양간에는 배부른 젊은 암소가 있었다. 다음달에 새끼를 낳을 거란다. 노인은 몇 년 새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됐다. 한밤이 되자 할매가 집에 돌아왔다. 방에는 할매와 할배의 고왔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방 한쪽에는 시든 사과 몇 개와, 자식들에게 주려고 깎아 놓은 도라지가 널려 있었다. 방구석에서 노인은 얇은 이불을 덮고, 거친 숨소리를 내며 앓고 있었다.
"나이 먹으니까 죽으려고 저러는 거지. 영감 죽으면 내 혼자 어째 사노." 할매는 노인을 보며 걱정을 늘어 놓았다. 언덕에는 노부부만 살 뿐, 사람이 살지 않았다. 아랫집은 폐가가 된 지 오래다. "늙은 소는 눈에 훤한데, 젊은 소는 옛날 것만 못해요. 늙은 소는 딱 사람 같아. 말도 다 알아듣고. 옛날 소는 괴로웠어요. 사람이 가자, 가자 하고 안 가면 맞으니까. 말을 못 해서 그렇지. 많이 미안해요."
할매는 벌써 설이 기다려진다고 한다. 9남매 자식들이 오기 때문이다. "소가 자식들 공부시켰는데, 학교 보내놓고 모은 돈이 별로 없어요. 자식들한테 손 벌리기 싫고, 일 안 하면 몸도 더 아파서 들에 나가요. 농사지어서 봉다리(봉지) 9개 만들고, 나눠주는 거, 그 재미로 살아요."
할매는 신발을 끌고, 기자를 배웅했다. 캄캄한 밤, 언덕 밑까지 따라 내려왔다. 알고 있는데도, 계속 마을 길을 설명했다. 마을 어귀를 벗어났다. 처마에 걸린, 워낭 소리가 계속 들렸다. 사람은 가끔 마음을 주지만, 소는 언제나 전부를 준다.
◇영화 '워낭소리'는
이충렬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는 2005년 2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찍었다.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 최원균씨와 부인 이삼순씨, 그리고 그들 곁을 30년간 지켜온 늙은 소와의 동행을 담은 작품. 지난해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피프 메세나상(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또한 오는 25일까지 열리는 2009 선댄스영화제 상영작 118편 가운데 다큐멘터리 국제경쟁부문에 포함됐다. 이 부문에는 영국 일본 멕시코 등 세계 각국 다큐멘터리 16편이 상영된다. 지난 15일 전국 7개관에서 개봉한 '워낭소리'는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내용에 힘입어 20여개 관으로 확대 상영되고 있다. 전체 관람가.
봉화=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