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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매체 속의 기독교

은바리라이프 2009. 1. 23. 16:15

대중매체 속의 기독교

- 영화매체를 중심으로-

최성수

(Dr. theol. 한남대 기독교문화연구원전임연구원)


1. 사회의 변화: 엘리트 중심주의에서 대중 중심주의


현대문화의 키워드는 대중이다. 대중의 소비를 유발하고 대중의 욕구와 정서적인 만족을 지향한다. 대중문화가 곧 문화로 인식될 정도여서 문화의 계급적인 차별화(고급과 저급문화로 구분하는 경향)가 발붙일 곳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그래서 현대를 대중문화시대라 일컫는 것이 결코 과언은 아니다. 1980년도부터 시작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개발은 플랫폼(platform)으로서 웹이라 정의되는 웹 2.0 시대1)를 가능하게 했다. 이것은 개방, 참여, 공유를 특징으로 한다. 특히 웹 2.0 시대에 접어들면서 나타난 개인 블로그2), 미니홈피, 그리고 흔히 ‘손수제작물’로 번역되는 UCC(User Created Contents) 혹은 UGC(User Generated Contents)의 활성화는 ‘대중’의 이미지를 혁신했는데, 대중이 문화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생산자도 될 수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프로슈머: producer+consumer3)). 한국의 “판도라 TV”4)에 해당되는 미국의 YouTube와 웹사이트의 출현에 즈음해서 타임지가 2006년 시대의 인물로서 "YOU"를 선정한 것도 바로 이런 경향을 입증한다. 여기서 말하는 YOU의 출현은 웹 2.0 기술의 개발로 가능하게 된 것인데, 이들은 인터넷 상에서 능동적으로 활동하면서 정보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또 RSS(Really Simple Syndication)5)와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6)의 한 구성원을 이루는 네티즌들로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대중이다. YOU로서 상징되는 대중의 등장이 비록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디지털 민주주의 시대를 상징하는 새로운 경향을 반영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서 2008년 5월부터 시작되어 국가적인 이슈가 된 촛불집회는 대중의 의미가 한층 부각되었음을 입증해주고 있으며, 특히 생방송을 제작해서 올리는 나우콤의 afreeca는 디지털 미디어(모바일, 와이브로 인터넷, 노트북, DMB)를 바탕으로 스트리트 저널리즘(street journlism)을 탄생시키는 등 현대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고 있다.

이렇듯 과거 엘리트 중심으로 이뤄진 문화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대중 중심으로 바뀌고 디지털 기술이 개발되면서 문화는 필연적으로 대량 복제되며 또 대량으로 공급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를 위해 문화 콘텐츠 개발은 점점 산업화되고, 산업적으로 생산된 문화 콘텐츠는 각종 대중매체들을 통해 대중들의 원활한 소비를 가능케 하기 위해 대중의 구미에 맞는 내용과 형식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대중문화시대는 문화산업의 개발과 대중매체의 등장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대중문화시대를 가능하게 하고 또 이끄는 두 개의 축 가운데 하나인 문화산업에 대한 고찰은 이 글의 범위에서 벗어남으로 다른 기회로 미루고, 이 글에서는 대중매체, 특히 영화매체에 제한해서 '대중매체 속의 기독교'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대중매체'란 무엇인지를 개괄해보고, 대중매체 속에서 기독교가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래야 기독교인으로서 ‘대중매체 속의 기독교’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지 그 기준과 방향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대중매체란?


산업혁명과 더불어 등장한 도시화와 산업화는 집단적이고 익명적이며, 이질적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대중'이 출현하게 된 이유였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들로 인해 대중사회가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이뤄진 사회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형성된 대중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공감적인 상호 소통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정한 정보나 메시지를 다수에게 전달해 사회적인 통합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대중매체다.7) 다시 말해서 대중문화란 근대성을 기반으로 형성되어 주로 대중에 의해 수용되고 소비되는 문화를 일컫지만, 대중매체에 의해 생산되고 공급되는 문화를 가리키기도 한다. 왜냐하면 대중문화시대에서는 과거에 고급문화로 여겨지던 것도 대중들의 소비를 위해 대량으로 복제되어 상품으로 혹은 대중매체를 통해 공급되면서 대중의 문화적인 소비성향에 맞게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중문화를 대중매체문화라 할 수 있다. 대중매체는 대중문화시대를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시대를 이끄는 힘이다. 즉 대중매체는 단순히 정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만이 아니며, 또한 뉴스, 오락, 정보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산업과 기술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후자의 의미에서 대중매체는 정보나 메시지의 내용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매체는 상업자본주의적인 조건에 메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정보 소비자로 하여금 매체에 의존적인 인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매체없이 전달되는 메시지란 없다”8)고 말할 정도로 대중매체는 인간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미디어환경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중매체에 노출되어 있다. 미디어환경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서 교회가 미디어 특히 대중매체에 대해 올바르게 대처하도록 방안을 강구하는 것(medialiteracy)은 교회교육의 필수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대중매체문화를 이해함에 있어서 먼저 주지해야 할 사항이 있다. 대중매체는 문화의 공급과 수요를 효율적으로 매개해주고 또 의사소통을 돕는 수단으로서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메시지 자체이며9), 또한 생산과정에 개입해 문화콘텐츠 자체를 변형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매체 속의 기독교'의 의미를 보다 심도 있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중매체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대중매체'란 커뮤니케이션, 즉 대중과의 소통이나 대중과 대중의 소통에 없어서는 안 되는 매개체로서 현대의 필수적인 제도다. 특히 웹 2.0시대에 들어서는 구내정보통신망(LAN), 케이블, 위성방송, 인터넷 기반의 영상서비스인 IPTV 등과 같은 뉴미디어의 개발과 더불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되어 더 이상 정보의 일방적 흐름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웹 기술에 기반을 둔 미디어 변화는 소통방식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어서 미래에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되겠지만, 현재까지 상황으로 말하면, 웹2.0은 단지 경향으로서 나타나는 가운데 그 영향력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는 추세일 뿐, 대중매체를 접하는 다수의 대중은 여전히 정보수용자와 소비자로서 머물러 있다.10)


1) 대중매체의 종류

대중매체에는 크게 인쇄물을 이용한 미디어와 음성미디어, 영상미디어, 그리고 멀티미디어가 있다. 인쇄미디어에는 잡지와 신문, 그리고 책이 있고, 음성미디어에는 라디오와 음반이 있으며, 영상을 이용한 미디어에는 영화, 비디오, 텔레비전 등이 있다.11) 특히 뉴미디어의 개발은 대중매체의 또 다른 차원을 부각시켰고, 특히 디지털 기술에 근거해서 컴퓨터가 보급되고 또 인터넷이 생활화 되면서 다(多)감각을 충족시키고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멀티미디어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제 현대사회는 어느 하나의 미디어에 제한되지 않고 멀티미디어를 통해 소통함으로써 다감각적이고 다중적인 경험을 추구한다.


2) 대중매체의 특성12)

첫째, 직업적인 전문가들이 정보제공자가 된다.

매체의 특성을 잘 알고 활용할 수 있도록 훈련된 전문가(PD, 영화감독, 방송기술자 등)들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매체의 특성에 맞게 정보를 생산 혹은 가공하거나, 정보를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매체를 선별한다. 이 사실은 대중매체를 통해 소통되는 모든 정보들은 매체적인 특성과 더불어서 해독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예컨대, 인쇄미디어를 통한 정보는 주로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논리적인 사고를 사용해야 하며, 영상미디어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려는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직관적인 사고를 요한다. 이에 비해 멀티미디어는 통합적인 사고를 강하게 요구한다.

한편, 지난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는 비전문가에 의한 정보제공이 이뤄진 것이다. 소위 1인 방송시대가 열린 것인데, 특히 무선 인터넷 기술(와이브로)의 발전으로 비록 방송전문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방송 통신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고 또 개인 블로그를 통해 정보생산자와 제공자가 될 수 있게 되었다.13) 특정전문가에 의해 제작된 정보를 전달하는 대중매체의 영향력은 점점 감소하고 있는 반면에 1인 미디어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14)


둘째,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해준다.

대중매체는 정보제공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단축시켰고, 매우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대중매체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더욱 확장시켜 과거 사회구성원들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며 수렴했던 광장(廣場)을 대신한다. 뿐만 아니라 일회적인 사건에 대한 정보를 반복적으로 접할 수 있게 해준다. 현장감은 다소 떨어지지만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어 지구촌을 실감케 하며, 공동체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 활동에 개인의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공중파 방송사보다 더욱 생동감이 넘치고 또한 심층분석을 통한 보도가 가능하게 되었다. 대중매체가 갖는 힘은 각종 시청각 효과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정보를 전할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셋째, 정보수용자는 불특정 다수다.

대중매체를 접하는 사람은 대중이다. 이들은 대체로 서로에 대해 익명 혹은 닉네임으로만 존재하며 상호작용의 가능성이 희박하다. 정보제공자가 비록 소수라 하더라도 수용자가 다수이기 때문에 대중매체는 다수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뿐만 아니라 대중은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정보를 듣거나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자신이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것은 “미디어의 마취효과”15) 때문인데, 이로 인해 대중매체는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으며 정보를 조작하거나 왜곡할 수도 있다. 대중매체에 대한 비판은 바로 이 점에 집중되고 있다. 대중매체들은 공공성을 갖지만 상업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높은 시청률, 구독률, 흥행울을 겨냥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결코 객관적일 수 없으며 또한 대중의 성향 역시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대중매체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3) 대중매체의 기능

대중매체는 인간과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순기능과 역기능을 갖는다. 대중매체의 영향력은 다양한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데, 대중매체의 특성으로 인해, 혹은 대중매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대중매체가 미치는 영향은 다르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또한 다양하게 인식된다.16) 특히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의 내용 자체가 가장 결정적이지만, 누가 또 어떤 동기에서 정보를 생산하고 또 어떤 방법으로 전달되었는지에 따라서도 영향력은 확연하게 달라진다.

이것을 기능적인 측면에서 분석해보면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라이트(C. Wright)가 제시한 매체의 기능들로 환경감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구성 요소들 간의 상관조정, 사회유산을 전수하는 기능17), 오락제공, 기존의 규범을 강화하고 특정한 이슈나 인물 혹은 조직에게 합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기능 등과 같이 대중과 사회의 이익에 기여하는 순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미디어 마취효과를 십분 활용하여 특권층의 견해에 동조하도록 여론을 왜곡하거나 조작해 결과적으로 사회 안정을 위협하거나, 개인의 정상적인 생활에 해를 끼치는 부정적인 결과(도피의식 조장)를 초래하는 역기능이다.


4) 영화매체18)

‘영상’이란 영어 image의 번역으로, 시각적인 특성을 가지며 시각행위를 기반으로 소통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영상이란 주로 시각을 통해 소통하려는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대중매체는 다른 어떤 영역보다도 영상문화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정도로 영상문화는 대중의 삶 속에서 점점 더 넓고 또 깊게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영상은 원래 실재의 존재를 전제하지만, 반드시 실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상 속의 세계역시 이미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실재로부터 비롯된 이미지가 실재보다 더 큰 실재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2007)는 이를 “시뮬라크르”라 했고, 워쇼스키 감독은 그 가능성을 세편의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1999-2003) 안에서 디지털 영상미학으로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영상은 크게 정영상(만화, 그림, 사진)과 동영상(텔레비전, 영화 등)으로 구분되는데, 문자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새로운 기호로서 이해되며 의미를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된다. 문자의 추상성이나 개념성과는 달리 영상은 구체적이며 직관적이다. 따라서 영상이해는 직관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으로 시각만이 아니라 다감각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멀티미디어가 출현하게 되면서 개념과 직관 모두를 통합하는 사고가 요구된다.

영상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를 영상시대라 한다면, 영상을 통해 소통하는 사람들의 삶의 형식인 영상문화는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다시 말해서 영상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관계 속에서 일정한 형태의 문화가 형성된다.


영상문화를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것은 영상매체다. 영상매체란 영상의 생산과 소비관계를 가능케 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영상매체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단연코 영화다. “영화는 현대사회 영상문화를 이끄는 핵심적인 대중문화 장르”19)로서 자리매김되고 있다. 가족매체라 불릴 정도로 비록 대중들이 가장 많이 접하고 일상 속 깊이 침투해 메시지 전달능력에 있어서 잠재적으로는 가장 큰 것이 텔레비전 매체이지만 산만한 시청환경과 재핑(zapping: 광고를 피하기 위해 채널을 바꾸거나 TV를 잠시 끄는 시청 행위, 그리고 여러 채널을 빠르게 돌려가면서 선택적으로 시청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원격조정장치가 등장함으로써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으로 인해 집중력에 있어서 떨어지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영화매체만 못하다. 그래서 함석헌 선생은 “현대의 종교는 극장에 있다.”20)고 말한 것이다.


영화 매체에는 다른 어떤 매체에 비해 더욱 강력한 힘이 있다. 힘의 양적인 측면에서나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정도에 있어서는 TV가 우세하지만, 힘의 세기에 관한한 효과를 연출하는 뛰어난 기술력과 가정에 비해 높은 집중력을 얻을 수 있는 영화관의 상황으로 인해 영화가 가장 강력하다.

존스톤은 『영화와 영성』에서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가며 영화매체의 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21) 예컨대, 영화 ‘밤비’가 상영되었을 때, 사슴 사냥 시장이 한 해 57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로 급감했고, 1934년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에 출연한 남자 배우가 내의를 입지 않았는데, 남자 배우에 대한 여성들의 인기가 폭발해 남성미를 상징할 정도가 되자, 이를 의식한 남성들이 내의를 입지 않게 되었다. 이로 인해 내의 판매가 급감해 내의 산업이 위기를 겪을 정도였고, 2차 세계대전에 군인들에게 내의를 입게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판매가 회복되기도 했다. 영화를 통해 삶의 전환점을 찾은 사람들의 사례도 소개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컴퓨터 기술이 발전되면서 더욱 풍성하고 강력한 표현능력을 갖게 된 영화는 다른 매체보다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영화의 힘은 기본적으로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에서 기원하지만, 영화 생산 과정에서 각종 특수 효과를 통해 의도적으로 부가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영화에 매료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관음증(자신의 위치가 노출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어떤 대상이나 행동을 엿봄으로써 성적인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행위)적인 본능을 자극하며, 시청각 이미지를 매개로 현실을 재구성해 관객들로 하여금 보거나 들을 수 있게 하고, 익숙한 현실을 다시 혹은 새롭게 볼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편집과 연출을 통해서 의미를 생산하고, 여러 촬영기술을 통해 영상의 확대나 부분에 대한 집중을 가능하게 하며, 각종 시청각 효과를 사용하기 때문에 영화는 일상적인 시각행위로는 보지 못하는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며 경험하게 한다.

영화는 예술 활동의 결과로 생산되지만 연예산업의 하나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즉 교훈과 오락을 주지만, 이데올로기적인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며, 다른 매체들보다 상업자본주의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기 때문에 영화매체에 대한 비평적인 태도는 필수적이다.

영화는 기독교인에게 크게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22) 교회와 세상 사이에 소통의 매개체가 된다는 것이며, 둘째, 영화는 현실을 재구성하여 보도록 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과 자기 자신을 재인식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기독교적인 정체성을 묻고 대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셋째, 인간의 공포, 불안, 충격, 회심, 치유, 희망 등의 경험은 초월자에 대한 경험을 반영하는데, 영화는 기독교 주제의식 속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켜 간접적으로 하나님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일반계시적인 의미를 갖는다.


. '대중매체(영화매체) 속의 기독교'


이상과 같이 개괄적으로 설명된 대중매체 속에 기호로 등장하는 기독교는 크게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이 의미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대중매체에 대한 기독교 비평의 출발점이며 ‘대중매체 속의 기독교’를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첩경이다.


1)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의 내용으로서 '기독교'

기독교는 형성단계부터 선교에 적극적이었다. 복음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라면 무엇이든지- 세속적인 의미가 강해 처음에는 주저하면서도 결국에는 - 사용하였다. 대중에게 복음을 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매체 개발에 비록 직접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이미 개발된 것에 대해서 교회는 적극적인 수용을 주저하지 않았다. 민속음악의 형식이나 세속악기의 수용은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되고, 회화와 조각, 문자와 영상 등도 복음을 전하는 데에 적극 활용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서는 종교적인 의미를 갖지 않았지만, 복음 전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매체로 많이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교의 도구로써 사용된 것이다. 직접적으로 매체로서 의미를 갖지 않는다 해도 복음 전달을 위해 매체로 사용될 수 있었다면,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직접적으로 매체의 의미를 갖는 것에 대한 기독교의 평가는 두말할 나위가 없을 정도다. 대중매체는 복음 전달을 위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는 문자매체(서적, 신문, 잡지 등)와 영상매체(텔레비전, 케이블 TV, 위성방송, 영화 등), 그리고 멀티미디어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을 내었다. 


1445년 구텐베르크에 의한 금속활자의 발명과 그 후에 이어지는 인쇄기술의 발달은 1455년 "구텐베르크 42행 성경"의 출판을 가능하게 했으며 광범위한 지역의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했다.

한국 기독교는 선교초기부터 활발한 문서선교에 열정을 보였다. 서상륜의 누가복음 번역으로 시작된 성경번역과 한국 교인들이 "천로역정"이나 "천주실의"와 같은 신앙서적을 탐독한 것은 교회가 선교를 위해 활자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1927년 12월 6일 일본의 식민정책을 확고히 하기 위해 설립된 경성방송국이 국영방송으로 처음 설립된 이후, 기독교는 전파매체 활용에 매우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주었는데, 우리나라 방송 역사에서 최초의 민영 방송은 1954년에 출현한 기독교 방송이었다. 극동방송은 1956년 12월 15일에 개국하였다. 지역을 초월한 선교는 전파매체의 발달에 크게 힘입고 있다. 뿐만 아니라 CBS와 CTS와 같은 기독교 케이블 방송이 시작되면서 영상시대에 맞게 거듭나고 있는데, 간증영화나 순교자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교회사적인 사건이나 인물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등과 같은 콘텐츠를 갖고 더욱 효율적인 선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밖에 주로 기독교인들을 주 독자로 삼는 많은 기독 잡지들과 교단신문과 초교파 신문 등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대중매체 속의 기독교'는 활자와 전파, 그리고 영상과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전달되는 기독교 복음과 문화, 그리고 기독교적인 가치들을 가리킨다.

한편, 기독교가 정보의 내용으로 나타나지만 때로는 기독교비판적인 의미가 전달되기도 한다. 특히 기독교가 사회윤리적인 측면에서 사회문제로 부각되었을 때 일종의 고발성 프로그램이 제작되었는데, ‘그것이 알고 싶다’, ‘추적 60분’, ‘뉴스후’와 같은 방송 프로그램은 기독교 이단문제와 목회자들의 세금 문제 등을 심도있게 다루었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하나의 정보로서 전달되는 기독교는 대중들이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2) 대중매체 생산자에 의해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소비되는 '기독교'

기독교 주제나 상징들이 사회 안에서 인지도가 높아짐에 따라 기독교를 직접적인 주제로 삼지 않으면서도 기독교 복음의 내용이나 본질을 지시하는 각종 상징들(십자가 등), 그리고 기독교 주제들(희생 등)은 대중매체 안에서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로 소비되고 있다. 대체로 기호의 형태로 기독교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인식이 모두 반영된다. 이것은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일 수도 있고 비판적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상이한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양적인 측면에서 볼 경우 부정적인 이미지가 긍정적인 이미지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예컨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2007)은 용서와 기도라는 기독교 주제를 매개로 고통의 문제를 다룬다. 누가 진정으로 인간의 고통을 위로할 수 있는가를 물으면서 감독은 숨은 햇빛(밀양)으로서 '종찬'(송강호 분)이라는 캐릭터를 부각시켰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와 소통함으로 일시적으로는 고통의 문제가 해결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욱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뿐임을 폭로한다. 이를 위해서 이창동 감독은 기독교 주제와 여러 이미지들을 소비하였는데, 이는 기독교의 주제를 부각시키거나 기독교 정신을 북돋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친절한 금자씨’(박찬욱 감독, 2006) 안에서 나타나는 기독교(금자의 회심과 간증, 전도사의 전도활동)는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복수’라는 주제를 대비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하나의 미장센(배경)일 뿐이다. 이는 다른 종교에 비해 기독교가 복수와 용서의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기 때문이다.

‘투캅스’(강우석 감독, 1993)는 기독교인의 위선적인 모습을, ‘할렐루야’(신승수 감독, 1997)는 한 사기꾼에 놀아나는 순진하면서도 어리석은 교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통해 영화는 기독교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려는 의도보다는, 다만 인간의 위선이라는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을 더 강하게 갖고 있다. 기독교인에게 기대되는 ‘거룩’과 ‘진실’의 이미지는 이중적인 삶을 사는 인간을 더욱 혐오스럽게 만드는데 적격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반영하는 영화들이 ‘반기독교적’이라고 비판하기에 앞서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기독교가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을 드러내거나 삶을 희극화시키는 데에 사용되고 있는 현실자체다. 한편으로 이것은 기독교가 그만큼 대중사회에 많이 인지되어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가 대중들에게 그만큼 가볍게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 기독교적이라고 보기보다는 기독교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평가를 반영한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은 대체로 그동안 기독교가 대중들에게 비쳐진 이미지인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기독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는 영화는 소수에 불과하다.


예컨대 ‘상록수’(신상옥 감독, 1961)에서 기독교는 한국의 개화기에 신문명의 상징으로서 계몽을 위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낮은 데로 임하소서’(이장호 감독, 1981)와 ‘꼬방동네 사람들’(배창호 감독, 1982)에서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삶의 진실을 밝히는 종교라는 이미지로 나타난다.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감독, 1975)에서 기독교 정신은 저항운동의 배경을 형성하는 것으로, ‘가족’(이정철 감독)에서 아들이 다니는 교회는 아버지와 딸의 갈등으로 가득한 긴장된 공간이 아닌 새로운 희망이 있는 공간의 의미를 갖는다. ‘주먹이 운다’(류승완 감독, 2005)에서 교회는 길거리에서 쓰러진 할머니를 도와준 고마운 존재로 소개된다.


이런 의미에서 '대중매체 속의 기독교'는 대중들에 의해 다양하게 인지된 기독교 이미지를 매개로 해서 대중에게 의미를 전달하려는 소통의 매개체다.


. ‘대중매체 속의 기독교’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미디어 학자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와 관련해서 그것이 진정으로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왔다. 즉, 대중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보제공자나 전달자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대중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삶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한 것인지 등의 고민이다. 이러한 고민이 발생하는 것은 방송에 관한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Say's law)23)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관객이미지’를 중시해 관객인 대중의 수요에 따라 제작되는 측면이 크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큰 문제가 없는 한, 기본적으로는 영화제작자의 관심과 경제적인 이익이 먼저 고려된다. 관객의 관심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은 기본적으로 영화의 흥행을 겨냥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매체, 특히 영화매체 속에 나타나는 기독교는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대중들이 기독교에 대해 경계심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정보제공자가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함인가, 아니면 단지 사회내 한 세력을 대표하고 있는 기독교를 희극화시킴으로써 카타르시스를 얻고자 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과 관련해서 볼 경우 첫째, ‘영화 속의 기독교’는 처음부터 대중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영화감독의 관심과 경제적인 이익이 우선적으로 고려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기독교에 대한 영화감독의 인식과 비평으로 읽혀질 수 있다는 말이다.

둘째, 관객이미지를 지향하며 상업적인 흥행을 고려해 제작되었을 때 ‘영화 속의 기독교’는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반영한다. 사회적인 인식에 반하는 내용이 영화 속에 담겨질 경우 사회로부터 제재를 받아 상영금지를 당한다거나 혹은 흥행에 실패하게 된다. 따라서 감독은 대체로 대중인 관객들에게 주지되어 있고, 또 그들의 정서에 부합된 내용들을 나름대로 독해한 후에 영화로 표현한다. ‘영화 속의 기독교’는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인 비평으로 읽혀질 수 있다.

셋째,  ‘영화 속의 기독교’는 교회를 위한 메시지다. 문화는 하나님과 인간의 다양한 소통 방식들 가운데 하나다. 문화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재인식시켜주기도 하며, 그동안 간과되었던 것에 대해서는 새로운 인식을 돕기도 한다. 문화나 문화형식을 배제하고 하나님을 인식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영화는 이 시대에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매개해주는 영상문화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일찍이 선지자들의 상징행위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듯이, ‘영화 속의 기독교’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로 읽혀질 수 있다.

끝으로 넷째, ‘영화 속의 기독교’는 교회의 자기 인식을 겨냥한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영화 속의 기독교는 교회가 자기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또 사회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각인되기를 원하는지를 드러낸다. 이는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 ‘대중매체 속의 기독교’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


바람직한 대응을 말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사실은 대중매체 속의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는 다수의 수용자를 전제한다 해도 그것이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매체적인 속성으로 인해 대중매체 속의 ‘기독교’는 현실의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혹은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누가 어떤 동기에서 또 어떤 과정을 통해 생산되고 소비되는지를 면밀히 살펴보면서 대중매체의 역기능에 대처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한편, 다양한 대상과 목적을 가진 ‘대중매체 속의 기독교’에 대한 지금까지 보인 교회의 대응은 복합적이었다. 아무리 부정적인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해도 보는 자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나 ‘다빈치 코드’와 같은 영화에 대해서 일부는 성찰의 기회를 삼았는가 하면, 교계는 상영금지를 요구하였고, 교회와 기독교인의 이중성과 어리석음을 꼬집은 ‘할렐루야’나 ‘투캅스’에 대해서도 상반된 입장을 보였는데, 교회의 다수는 성도들의 영화 관람을 비난했다. 기독교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면서도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4인용 식탁’(이수연 감독, 2003) ‘밀양’이나 ‘오아시스’, 그리고 ‘박하사탕’과 같은 영화를 대하면서 반 기독교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일각에서는 성경의 주제와 기독교인의 삶의 진실함과 이중성에 대해 깊이 성찰하며 또한 자성의 기회를 갖기도 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영화 속의 기독교’는 그 영향력을 생각할 때 단순하게 대처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교회가 집단행동을 하거나 성경과 교리에 근거해서 반 기독교적인 내용이라고 해서 상영금지를 요청하거나 관람을 저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사회적인 반감을 사게 되고 결과적으로 기독교 이미지만이 심하게 손상될 뿐이다. 

가장 바람직한 대응방식은 ‘대중매체 속의 기독교’에 대해 영화적인 소통방식으로 대하는 것이다. 아무리 기독교 혹은 교회를 비판하거나 희극화해도 영화는 먼저 감상되어야 하며, 그 후에 각종 비평방식을 통해 분석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특히 영화 속에서 기독교 이미지가 어떻게 또 어떤 맥락에서 소비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대중매체 속의 기독교’는 기독교를 내용으로 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자체가 또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매체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영화 속의 기독교’는 이런 맥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영화 속의 기독교가 항상 긍정적일 수만은 없지만 불필요하게 부정적인 것에 치우쳐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록 직접적인 상징을 사용하지 않는다 해도 기독교 주제가 융해되어 있고 또 기독교적인 정신에 근거해서 영화를 제작하거나 투자하는 것은 대중매체 속의 기독교 이미지를 개선하고 또 대중매체를 통해 선교하려는 취지에 잘 맞는다.

웹 2.0 시대의 교회와 기독교는 단지 소비자로서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적극적인 생산자로서 활동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 이미지를 교회가 독점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듣든 말든 전파하기만 되면 된다는 생각은 구시대적이다. 현대사회는 복음에 대한 반응을 유도해야 하며 또한 여러 반응들을 면밀하게 고려해서 전파해야 한다. 개방, 참여, 공유를 특징으로 하는 웹 2.0시대에 대중매체(특히 영화) 속의 기독교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미디어 교육(medialiteracy)24)을 통해 미디어변별력을 향상시킨다. 영화와 관련해서는 영화교육(cineliteracy)25)을 통해 기독교적 영화보기 능력을 계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대중매체의 반응을 비평적으로 평가하는 블로그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기독교 상징이 전면에 부각되지 않는다 해도 기독교 정신에 기반을 둔 영화제작에 관심을 둔다. 시대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대중매체의 순기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또 투자한다.

셋째, 종교의식보다 기독교적인 정체성을 잃지 않는 삶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영성은 의식보다는 오히려 삶 속에서 더 구체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의 행위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수용하며, 표현하는 능력이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이다.

넷째, 세상과 소통하는데 있어서 지금까지는 일방향적으로, 즉 주로 변증적이고 선교적인 관점에 근거했다면, 앞으로는 웹 2.0 시대에 맞게 발전된 멀티미디어 기술을 고려해 복음의 다면적이고 다중적인 소통 능력을 향상시킨다. 이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웹 2.0시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요구되며26), 복음 전달에 있어서 일 방향적인 소통방식이 아니라 양방향 소통의 가능성을 탐구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과 섣부른 소통을 시도할 경우에는 오히려 교회가 세속화되거나 혹은 기독교의 전통가치마저 훼손될 위험이 있다. 복음전파에 있어서 대중매체에 의한 참여와 개방은 기독교 가치에 대한 공유를 전제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2008년 6월에 SBS가 기획적으로 방영한 “신의 길 인간의 길”에서 볼 수 있었듯이 기독교의 근본 가치마저 흔들릴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