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하지 않을 만큼만 마셔라? | ||||
| 성경의 르무엘왕 어머니 이야기를 통해 본 '금주의 유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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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는 전통적으로 금주를 지켜왔는데, 요즈음 서서히 술을 용인하는 쪽으로 기울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흔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에베소서 5장 18절을 인용합니다. 하긴 술을 한두 잔 마셔서 무슨 큰 일이 나겠습니까? 더구나 금기시해오던 여성들의 음주도 옛이야기가 된 지금, 굳이 금주를 논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박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이제는 교회에서도 금주령을 파기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법도 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술을 금하게 된 데는 선교사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선교사들이 조선에 와서 본 가장 큰 폐단이 술과 도박이었다고 합니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던 서민들이 열심히 농사지어 추수한 뒤에 농한기인 긴 겨울을 나면서 술과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는 것을 보고 술과 도박을 금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선교사들이 시도한 일이기도 하고, 시대가 이미 바뀌었으니 이제는 금주령을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사회 통념이나 상식선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성경은 술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포도주에 옷을 빨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창 49:9~12). 야곱은 노년에 자식들을 축복하면서, 넷째 아들 유다의 미래를 나귀와 포도나무에 비겨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구약에서는 존귀와 영화로운 신분을 나귀에 비유하고, 풍요와 만족, 즐거움을 표현할 때 포도나무를 인용합니다. 그래서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고, 옷을 포도주와 포도즙에 빨고 눈이 포도주로 인해 취하여 붉을 것이라고 하는 것처럼 포도주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유다는 넷째 아들이지만 장남 르우벤이 잃은 장자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물론 요셉이 장자의 명분을 얻어 두 지파를 차지하여 므낫세 에브라임이 12지파에 속하지만, 실질적인 장자권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족보를 이어가는 것은 유다이며, 이 지파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왕권을 누립니다. 야곱은 유다의 복된 미래를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을 것'이라고 하여 포도주에 비유하여 축복합니다. 포도주가 이토록 좋은 것이고 풍요와 희락의 상징물인 포도주를 금할 이유가 없을 것 같으니, 지금부터 금주령을 해제하고 마음껏 마시고 취해 볼까요? 술을 보지도 말라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잠 23:19~35) 그런데 이토록 포도주를 축복의 상징으로 보는 구약에서 포도주를 보지도 말라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포도주는 붉은 빛깔이 아름다워 식욕을 돋우고 달콤하여 마시기에 좋지만, 그 좋은 포도주를 보지도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재앙과 근심, 분쟁, 원망, 원인 모를 상처와 붉은 눈이 술로 인하여 오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 달콤한 포도주를 계속 마시다 보면 뱀에게 물린 것처럼 독이 퍼질 것이며, 마침내 그 독으로 인하여 괴이한 것이 보이고 마음에 합당치 않은 것이 생겨나고, 바다 위에 누운 것 같고 돛대 위에 누운 것 같은 환각상태에 빠져 들고 이성을 잃게 되어 사람들에게 매를 맞거나 모욕을 당하여도 무감각해지고 술이 깨기가 무섭게 다시 마시고 취하는 중독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술의 유익을 말하면서도 그 해독은 애써 외면하며, 자신은 그 위험으로부터 자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서 가장 마지막이 절제인 것처럼 술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절제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제가 '생명의 전화'를 통한 상담에서도 술의 병폐를 많이 알 수 있었고, 조심스럽지만 독신으로 하나님께 헌신한 신부 중에도 알코올 중독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는 타 종교를 폄하하려는 저의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처럼 헌신된 분들도 무너뜨릴 수 있는 술의 위력을 알리려는 의도일 뿐입니다. 한국처럼 술에 대해 관대한 나라도 흔치 않은 줄 알고 있습니다만, 가정을 위협하는 술의 병폐는 상상을 초월함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의 '괴이한 것'의 번역은 '주르'로 '곁길로 들다, 세속인이 되다, 간음하다'는 뜻의 동사입니다. 술은 우리 마음을 정도에서 벗어나 곁길로 가게 하고 속된 사람이 되어 음란한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깊이 숙고하여야 하는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술이 우리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고 자유분방하게 하지만, 한 발 더 나가면 방종하게 만드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따금 목회자의 간음 이야기가 터지는데, 그들도 술 없이 그런 짓을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왕이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말라 "르무엘 왕의 말씀한 바 곧 그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이라. 내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할꼬? 내 태에서 난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할꼬? 서원대로 얻은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할꼬?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치 말지어다.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간곤한 백성에게 공의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독주는 죽게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그는 마시고 그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그 고통을 기억지 아니하리라. 너는 벙어리와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간곤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잠 31:1~9)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몰라도 장성한 사람에게, 더구나 한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인 왕에게 술을 먹지 말라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르무엘왕에게 술을 먹지 말라고 권한 사람이 그의 어머니이고, 그 어머니의 훈계를 자랑스럽게 여겨 잠언으로 기록한 사람이 르무엘왕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고, 그래서 더욱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잠언은 표현 방법이 특이하여 그것부터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왕의 어머니는 서두를 이렇게 꺼냅니다. "내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할꼬?" 그녀는 '무엇을 말할꼬'를 세 번을 반복하면서, 말하는 대상인 르무엘을 "내 아들아" "내 태에서 난 아들아" "서원대로 얻은 아들아"라고 세 번을 되풀이합니다. 히브리어에서 반복은 강조하기 위한 어법입니다. 어미가 자식에게 주는 말은 자식에게 꼭 필요한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무엇을 말할꼬?'를 세 번 되풀이하는 것은 그만큼 고르고 골라서, 심사숙고하여 하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부탁하는 두 가지는 의외의 것들입니다. 첫째, 힘을 여자에게 쓰지 말고, 다른 나라를 정복하는데 쓰지 말라고 합니다. 쉽지 않은 말이지만 이런 말을 한 어머니도 위대하고 그 어머니의 말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르무엘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왕이라 하겠습니다. 왕에게 여자를 가까이 말라는 것은 건강 때문이 아니라 쾌락에 힘을 쓰지 말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나라를 정복하는 일을 위대한 왕들이 하는 일로 여기고 그런 왕들이 여전히 칭송을 받고 있지만, 나라를 정복하는 일은 나라 안팎으로 무수한 젊은이들의 피를 흘리는 일이며, 수많은 가정을 파괴하고 피눈물 흘리게 하는 일인 것입니다. 참으로 왕에게 자연스러운 일 같으면서도 반드시 금해야 하는 두 가지를 정확하게 지적하는 지혜로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마땅치 않다'는 말을 세 번 반복하면서, 아들 이름 르무엘을 부르며 "왕에게" "왕에게" "주권자에게"라고 반복합니다. 왕이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거나 어려움을 당한 백성의 재판이 부당하게 집행될까 걱정 되니 술을 금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왕에게서 여자와 술을 빼앗으면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르무엘의 어머니는 왕인 아들에게 그런 즐거움을 포기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르무엘은 무슨 낙으로 왕 노릇을 하겠습니까? 르무엘의 어머니는, 술은 죽게 된 사람이나 마음에 근심이 있는 자들에게나 주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고통을 잊고 시름을 잊는데 술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만, 왕에게는 그럴 겨를이 없다는 것입니다. 왕은 벙어리처럼 말을 못하는 사람들의 입이 되어야 하고, 아무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들의 편이 되어 정당한 판결을 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얼핏 들으면 '참 고달픈 왕이구나' 싶습니다. 술도 여자도 멀리하고 다른 왕들을 내 앞에 무릎 꿇리는 통쾌함도 누리지 못한다면 절간의 승려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나 힘을 가진 자의 진정한 즐거움은 그 힘을 올바르게 쓰는 데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힘을 함부로 쓰는 자를 폭력배라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큰 힘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힘을 과시해도 눈감아 주는 것이 통례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힘을 바로 쓸 때 그를 성군이라 일컫고 칭송하는 것이 민심입니다. 힘을 가진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르무엘의 어머니는 아들이 힘을 가진 왕이 된 것을 기뻐하면서도 그 힘을 함부로 사용하는 왕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곳에 힘을 쓰는 성군이 되기를 바랐고, 그 아들 르무엘은 그의 어머니의 당부를 자랑스럽게 여겨 잠언으로 소개하며 왕의 규례로 삼았으니, 그가 어떠한 통치자가 되었는지는 보지 않아도 넉넉히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더 큰 즐거움을 위하여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성경은 포도주를 풍요와 희락의 상징으로 좋게 여기고 있으며, 물 대신 음료처럼 사용하는 일상 생활용품이기에 금할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도 술이 주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만인에게 사랑받고 있음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술로 인한 병폐가 심각하기 때문에 술을 축복으로 여기는 구약 시대에서조차 술을 보지도 말라고 하는 것이고, 우리는 이 말씀에 귀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의 병폐로부터 나 자신을, 우리 가정을, 또 사회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금주 전통을 지킴은 물론 금주 운동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궁극적 교훈은 이런 소극적인 이유로 술을 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르무엘의 어머니가 왕인 아들에게 한 말처럼 더 큰 즐거움을 위하여, 작은 즐거움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술이 주는 즐거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술이 주는 병폐가 두려워서 술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일을 위하여 더 큰 즐거움을 위하여 작은 즐거움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술의 즐거움은 감각적인 육체의 즐거움이지만,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보살피며 느끼는 영혼의 기쁨을 위해 기꺼이 낮은 즐거움을 포기하자는 것입니다. 르무엘 왕은 즐거움을 빼앗긴 것이 아니고, 작은 즐거움을 버리고 큰 즐거움을 누렸기 때문에 어머니의 교훈을 자랑스럽게 잠언으로 기록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묻겠습니다. 당신은 어떤 즐거움을 택하시겠습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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