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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연애담

은바리라이프 2008. 8. 30. 11:21

성서의 연애담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서로 사랑한다, 참 멋진 일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자주 그리고 끊임없이 발생해온 이 멋진 일들은 그야말로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로마서 8: 28)’ 지난한 과정을 포함한다. 그래서일까,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여자와 모든 남자가 자동으로 이 멋진 일을 일구는 주인공 대열에 서지는 못하는 것 같다.  

 성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남녀관계를 들려준다. 이른바 건강하고 바람직한 연애관계에서부터 잔혹하고 그릇된 강간사건에 이르기까지…. 이제부터 우리의 성스러운 문서가 들려주는 수많은 남녀관계 중에서 두 쌍, 네 남녀의 이야기를 뽑아 살펴보기로 한다.

 다말, 암논(사무엘하 13: 1~39)

 사무엘하 13장 1절에서 다말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누이로, 암논은 다윗의 다른 아들로 소개되면서, 암논이 다말을 사랑하였다는 정보가 알려진다. 암논은 다말이 처녀이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줄 알고 고민하다 그만 병이 난다. 다말이 그의 누이동생이기 때문은 아니다(당시에는 친족 간 결혼이 가능했다).

 하루는, 병이 난 암논에게 요나답이라는 교활한 친구가 찾아와 왜 이렇게 수척해졌느냐고 묻는다. 암논은 “나의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내가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오”라고 대답한다. 성서기자는 앞서, 다말이 처녀인 탓에 어떻게 해볼 수 없어서 암논이 병났다고 서술하였다. 그러나 암논은 그 점에 관해서는 일언반구 없다. 마치 제 사랑의 방해꾼인 양 압살롬을 거론할 뿐.  

 암논의 고백을 들은 요나답은 음모를 꾸미고 암논은 그 음모 시나리오대로 연기(演技)를 한다. 일단 꾀병을 부려 부왕 다윗의 병문안을 받고, 부왕에게 다말을 자기 집으로 보내주십사고 요청하는 것이다(다말이 맛있는 빵을 직접 만들어 ‘먹여주면’ 좋겠다면서). 다윗은 그 요청을 즉시 받아들인다.

 다말은 다윗의 지시에 순종하여 암논의 집에 간다. 가서, 그를 위해 그가 보는 앞에서 밀가루를 반죽하여 빵을 만든다. 빵이 다 되자 암논은 하인들을 모두 내보내고는 “직접 먹여다오”라는 말로 그녀를 침실로 불러들인다. 다말이 빵을 먹여주려고 다가가자 암논은 그녀를 끌어안고, 동침하자고 말한다. 다말은 이스라엘에서 정신빠진 자 중의 하나가 되고 싶으냐며 거부한다. 그리고는 왕에게 말씀을 드려보라고 권유한다. 여기서 그녀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직설로 표현하지 않고 있음은 흥미롭다. 그녀는 암논을 싫어한다고도 사랑한다고도 말하지 않지만, 그와의 결혼가능성은 예견한다(상대남자의 환심을 사서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암논은 다말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바로 다음 순간, 다말은 암논에게 강간당한다.

 강간 이후 암논의 마음이 돌변한다. 그는 다말을 미워한다. “이제 미워하는 마음이 기왕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하였다 / In fact, he hated her more than he had loved her(NIV).” 암논은 다말에게 “Get up and get out!(NIV)”라고 소리지른다. 그러자 다말은 자기를 내보내는 것은 방금 전에 그가 저지른 일보다 더 큰 죄임을 지적한다. 암논은 다말의 이 말도 들으려 하지 않고, 하인들을 시켜 그녀를 집 밖으로 끌어낸다.

 사무엘하 성서기자는 교섭(interaction)을 거부하는 사랑의 폭력성을 폭로한다. 그리고 이어서, 그 폭력(강간)이 불러오는 불행한 미래에 대해서도 기술한다. 암논은 압살롬의 지시를 받은 부하들에 의해 살해되고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피해 외국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다말은 압살롬의 집에서 슬프고 외롭고 처량하게 여생을 살아간다.     

 룻, 보아스(룻기 2: 1~ 4: 13) 

 룻은 모압 사람(이방인)으로, 남편을 잃은 뒤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온 여성이다. 룻은 우연히 보아스(나오미의 친족)의 밭에 나가 곡식 거두는 일꾼들을 따라다니며 이삭을 줍는다. 보아스가 룻을 발견하고 말을 건넨다. 그는 우선 “이삭을 주우려고 다른 밭으로 가지 마시오. 우리 밭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바싹 따라다니도록 하시오”라고 하더니만 “젊은 남자일꾼들에게는 댁을 건드리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겠소”라고 약속한다. 이 말을 들은 룻은 “저는 한낱 이방여자일 뿐인데 어찌하여 저 같은 것을 이렇게까지 잘 보살피시고 생각하여주십니까?”하고 물어본다. 그녀는 자신의 궁금증을 솔직히 발설한다. 

 그러자 보아스는, 나는 당신의 사정을 들어서 다 알고 있다, 당신이 낯선 땅 이스라엘로 들어왔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당신을 보호해주시리라고 말해준다. 이에 룻은 “어른께서 거느리고 계신 여종들 축에도 끼지 못할 이 종을 이처럼 위로하여주시니 보잘것없는 이 몸이 큰 용기를 얻습니다”로 응답한다. 남자는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고 여자는 즉시로 남자의 마음씀에 감사를 표시한다. 

 그 다음 장면, 식사 때가 되자 보아스는 음식을 같이 먹자며 룻을 부른다. 그는 일꾼들 옆에 앉은 룻에게 볶은 곡식을 내주면서 “빵조각을 초에 찍어” 먹으라고 자상하게 일러준다. 그리고 그녀가 음식을 다 먹고 일어서자 젊은 일꾼들에게 그녀가 이삭을 잘 줍도록 배려해줄 것을 특별히 지시한다.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말뿐인 친절이나 기교로서의 자상함이 아닌 것이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룻은 계속해서 보아스 집안의 젊은 여자들을 따라다니면서 이삭을 주워, 생계를 잇는다. 그러던 어느 날 나오미의 권고대로 룻은, 먹고 마시기를 다한 후 타작마당에서 잠든 보아스의 발치에 눕는다. 보아스가 한밤중에 깨어 누구냐고 묻자 룻은 “어른의 종 룻입니다. 어른의 품에 이 종을 안아주십시오”하고 말한다. 그러자 보아스는 “가난하든 부유하든 젊은 남자를 따라감직한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라고 감동하며, 그녀를 책임지겠다고 약조한다. 룻은 보아스의 발치에 계속 누워있다가, 다른 사람들 눈에 뜨이면 좋지 않다는 보아스의 다정한 배려로 날이 밝아지기 전에 자리를 뜬다. 보아스는 귀가하는 룻에게 보리를 여섯 번 되어서 이워준다. 그리고 그는 룻과 나오미를 돌볼 책임이 자신보다 더 우선하는 사람과 담판을 지어 마침내 룻과 나오미의 법적 보호자가 된다. 즉 룻과 결혼한다.

 룻기 성서기자는 룻과 보아스의 대화를 주의깊게, 상세하게 전해준다. 보아스는 젊은 여인인 룻을 일방으로 욕망한 게 아니며, 룻 또한 보아스에게 생계를 맡길 의도를 갖고 목적의식적으로 접근한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은 상대방과 함께 지내면서 서로를 관찰하고 서로 대화하는 중에 서로를 알게 되고 서로에게 익숙해져간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시점에서 상대방에게 적절히 잘 전달하며 상대방을 대함에 있어 일관되다.  



 사랑은 상대하는 것

 한 쪽은 아직 사랑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인데 다른 한 쪽이 자기열정에 취해 상대방을 억지로 끌어당겨 연애를 하거나, 결혼하려 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그런데 그럴 경우 연애과정이나 결혼생활 속에서라도 여유를 갖고 두 사람이 함께 사랑을 키워가야 할 텐데 암논처럼 의사소통하지 않으려 하면 불행이 찾아오게 되는 것 같다.

 (룻, 보아스와 달리) 암논은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병에 걸릴 만큼 사랑해 마지 않던 여인을, 그는 자기 눈 앞에서 쫓아냈다. 안 들으려 하고 안 보려 하는 것은 상대(相對)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상대하지 않으려는 마음, 즉 ‘대하기를 끊은(→絶對)’ 상태에서는 사랑이 오고갈 수 없다.

 성서를 읽으며 우리는 ‘요나답 시나리오’의 아류작(잔꾀 부리기, 유혹의 전술 개발하기 등)들을 피해갈 근거를 얻는다. 또,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섭으로 한 걸음 전진하고픈 소망을 품는다. 그래, 얻고 또 품음으로써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성스러운 문서와 알맞게 교섭한 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