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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성탄3강(눅1:57-80)/ 구원의 뿔을 일으키셨으니

은바리라이프 2008. 8. 28. 19:29

03성탄3강(눅1:57-80)/ 구원의 뿔을 일으키셨으니
2003년 성탄 제 3 강                                                                 112
말씀 / 누가복음 1:57-80
요절 / 누가복음 1:69

구원의 뿔을 일으키셨으니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지난 주 성탄 연합 예배를 은혜 가운데 잘 드려서 감사합니다. 그리스도가 구유에 누이심으로 죄로 인한 우리의 슬픔과 운명과 가난과 고난을 친히 맛보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기쁨을 맛보고 영생과 풍성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유에 누이심으로 우리는 세속의 물결을 이길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물질적인 풍요와 세상의 권세와 명예로 만족할 수 없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말구유에 누이신 예수님의 삶은 우리에게 생명력이 넘치고 참된 만족이 있는 풍성한 영성의 젖줄을 공급해 줍니다. 우리가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께서 하실 일의 다른 측면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뿔이요 돋는 해로 오셔서 우리를 죄와 사단의 뿔에서 구원해 주시고 산 소망을 주십니다. 또 치료의 역사를 이루시고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을 몰아내 주십니다. 구원의 뿔이요 돋는 해 되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면서 구주 탄생의 은혜를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았을 때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여기 저기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사가랴 목자님, 축하해요! 사모님은 건강하시지요?" 이메일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추카 추카 추카...." 친척들은 미역, 분유, 기저귀, 젖병 소독기, 어떤 사람은 유모차를 사들고 엘리사벳 사모님 집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달덩이 같은 아기의 얼굴을 볼 때, 사가랴 부부나 이웃 친척들 모두 싱글 벙글 하였습니다. 그들이 함께 즐거워 한 이유는 노년에 아들을 낳음으로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엘리사벳은 아이를 낳지 못함으로 한 많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남모르게 흘린 눈물도 몇 드럼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고 수치가 변하여 자랑이 되게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또를 통해서 인생 역전을 기대하다가 인생 여전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산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인생 역전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볼 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팔 일이 되자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친척들은 그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 엄마인 엘리사벳이 대답했습니다.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기쁘고 즐거운 날에 아이의 이름을 짓는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친족들은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사가랴로 짓기를 원했습니다. 또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은 세습제였기 때문에 그런 의식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아이에게 거는 소망뿐만 아니라 소유권내지 점유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친족들은 엘리사벳의 의사 표현이 분명하므로 그 부친께 형용하여 무엇으로 이름하려 하는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가랴는 서판을 달라하여 그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습니다. 사가랴는 벙어리 훈련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많이 묵상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이 아이를 주신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가문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사명을 좇아서 살도록 아이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가문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기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랬습니다. 사가랴가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썼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64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말을 못하고 듣지도 못하던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훈련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말을 못하다가 입이 열리자 답답했던 마음을 호소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침묵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채웠습니다. 그는 입이 열리자마자 분수가 터지듯이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말이란 것은 아낄수록 값어치가 있습니다. 칭찬보다 침묵이 사람을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한 가운데 성령이 충만하여 사가랴가 예언을 했습니다.

  68절을 보십시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사가랴는 10개월 동안 훈련을 받고 나서 하나님께 불평하기보다 찬송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러면 그가 찬양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우리를 돌아보사 노예 상태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먼저 돌아보셨다는 말은 심방오셨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지난 400년 동안 하나님께 잊어버린바 된 듯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먼저 나아가 회개하고 은혜를 구해야하지만 그들은 그럴 수 있는 영적 소원이 없었습니다. 노예와 같이 죄와 어두움의 세력에 끌려 다니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사 속량하셨습니다. 속량하셨다는 것은 값을 주고 노예 상태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죄와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종된 모습은 어떠합니까? 요즈음 사람들은 로또 복권의 종노릇하는 사람, 게임에 종노릇하는 사람, 비디오에 중독된 사람, 고시의 종이 된 사람, 약물의 종이 된 사람도 많습니다. 인터넷 음란 사이트에 중독이 되어 고통하는 사람, 왕자병, 공주병 등 갖가지 병에 중독된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안일과 게으름의 종된 생활을 하기도 하고 자기 고집의 종된 사람도 있습니다. 비교의식과 열등감, 섬김을 받고자 하는 마음, 이해 받고자 하는 마음에 종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감정과 혈기의 종된 모습, 근심의 종된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죄의 종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을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으로 복음을 영접하고 순종할 때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사단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죄의 종은 결국이 사망이지만 의의 종이 될 때는 참된 생명과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여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사가랴는 메시야를 통해서 이루어질 구속 역사를 생각하고 찬양을 했습니다. 그는 아들을 주신 것을 인해서 찬양한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먼저 찾지 않았습니다. 내가 죄의 중한 짐을 지고 신음하고 있을 때, 외롭고 허무해 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 오셨습니다. 구원 역사는 찾아가는데서 부터 시작됩니다. 이번 성탄에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또 우리가 죄의 짐을 지고 고통하는 양들을 먼저 찾아가야겠습니다. 이번 주 24일 저녁에 홍대 주변에 몰려드는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말구유에 누이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사가랴는 구원의 뿔되신 메시야를 찬양했습니다. 69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구원의 뿔이란 무슨 뜻입니까? 뿔이란 동물의 머리 부분에 있는 뼈로 된 돌출물로서  적의 공격 및 방어에 쓰는 것입니다. 뿔이라는 말은 종종 힘의 뜻으로 씌어졌습니다. 성경에서는 ‘뿔을 높이 들리로다’란 강해지고, 높여짐을 의미하고,  ‘뿔이 나게 한다’란 그를 높이고, 힘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뿔’은 구원을 위한 강력한 도우심을 의미합니다. 구원이란 위험과 파괴로부터 안전하게 구출하는 것입니다.  

  사자라도 코뿔소의 뿔에 찔리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갑니다. 뿔에 찔린 상처는 겉보기보다 훨씬 더 깊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일곱 머리와 열 뿔로 사람들을 찔러 댑니다. 우리 중에는 과거에 허무의 뿔에 찔린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허무의 뿔에 찔려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였습니다. 무엇을 해도 의미를 찾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생활하였습니다. 또 많은 젊은이들이 정욕의 뿔, 교만의 뿔, 욕심의 뿔에 찔려 비실비실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머니를 구타하고 괴롭히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고통했습니다. 그는 미움의 뿔에 찔린 것입니다. 갖가지 운명주의의 뿔에 찔려 고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에 난 점으로 인해서 누구에게 맞아서 일찍 죽을 것이라는 운명주의에 시달리던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불신의 뿔, 자기 불의의 뿔에 찔려서 무기력하기도 합니다. 패배주의 뿔에 찔려서 도전하지 못하고 드러누워 있는 분도 있습니다. 한 형제는 두려움과 염려의 뿔에 찔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 들어가야 한다는 중압감과 염려로 인해서 정신이 연약해 지고 소화 불량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언어로 인한 비난의 뿔에 찔려서 고통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잠12:18에 보면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입술의 30초가 가슴의 30년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많이 쓰는 말 중 56%가 ‘병신 육갑하네’, 아내가 남편에게 쓰는 말 중에서 48%가 ‘웃기고 있네’라고 합니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이혼하는 비율이 세계 3위가 되었습니다.

  사단의 뿔에 찔려 시름시름 앓으면서 죽어가던 인생들을 예수님께서 오셔서 구원의 뿔로 사단의 세력을 파하시고 구원해 내셨습니다. 구원을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단보다 훨씬 더 강하십니다. 그는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를 사단의 권세에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70,71).” 창세기 3:15절에 보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여자의 후손이십니다. 그는 원수 마귀의 머리통을 짓이기셨습니다. 그러나 자신도 발꿈치를 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십자가에서의 고난과 죽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을 받게 되셨습니다.

  우리의 원수가 누구입니까? 누가 우리를 미워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사단과 영적인 싸움을 싸우기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인간적인 싸움을 합니다. 조건 개선을 위해 현실적인 투쟁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가난이 원수라고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돈을 벌고자 합니다. 속 썩이는 남편이나 말 안 듣는 자식에게 "아이고 이 웬수야" 말하기도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동역자들이나, 자신을 책망하는 목자를 원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원수는 마귀입니다. 우리의 원수인 마귀는 우리를 미워하고 못살게 굴고 죽이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이런 마귀는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개이기 때문에 아주 간교하고 교활합니다. 마귀는 우리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고 지혜롭습니다. 단수가 높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 연약함을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원수 마귀를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김을 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57).”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한 평신도 목자님은 열등감의 뿔에 찔렸었습니다. 지방대라는 열등감과 빚 문제로 인해서 고통하다가 죄를 짓고 고통 가운데 얼굴을 제대로 들고 다니지 못했습니다. 이런 그가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하시는 용서의 기도를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이제는 박사들 틈 사이에서 훌륭한 연구원으로 암 퇴치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마귀의 뿔에 찔려 죄의 종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치료하시고 힘찬 인생을 살게 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을 인하여 더 이상 마귀의 뿔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구원의 뿔 예수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넉넉히 이기며 승리의 힘찬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승리의 생애를 살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 곧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시고 우리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구원이란 우리가 잘나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에 기초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짐을 받은 다음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74,75절을 보십시오.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신 목적은 그들을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마귀로부터 구원하신 것은 단지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며 잘 살도록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죄사함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끊임없이 그 심령에 정죄감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성결하고 의롭게 된 사람은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을 일생동안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소극적으로는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을 섬기며 적극적으로는 성결과 의로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부담을 갖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일을 해도 부담감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목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밖에 못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목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참된 목자였기 때문에 고난을 자랑으로 여기고 날마다 양들을 위한 염려로 마음이 눌렸습니다(고후11:28). 우리가 일생 성결과 의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는 상급이 있고 열매가 있고 기쁨이 있고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삶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가랴는 자기 아들이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예언했습니다. 76,77절을 보십시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세례 요한의 사명은 주 예수님이 오시기 전 사람들의 마음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죄 문제는 도를 닦는다고 해결되거나 선한 일을 많이 한다고 되거나 잊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여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 죄사함을 받을 때 구원을 얻게 됩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백성들이 오직 예수님께 나와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셋째, 돋는 해 되신 예수님. 세례 요한이 증거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78절을 보십시오.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예수님은 돋는 해가 되십니다.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합니다. 돋는 해는 어두움을 몰아냅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사9:2).” 예수님은 모든 흑암과 죽음을 몰아내고 의와 진리와 사랑으로 충만한 세계를 가져옵니다. 또한 돋는 해는 희망을 줍니다. 돋는 해는 따뜻함을 가져오고 생명을 주고 일할 수 있도록 세상을 밝혀줍니다. 무질서와 혼돈을 몰아내고 질서와 평안을 가져다 줍니다. 또 돋는 해는 습기 차고 어두운 그늘에서 번식하는 세균을 죽이는 역할도 합니다. 말4:2절에서 돋는 해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돋는 해는 우울증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지하실이나 어두운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50분마다 밝은 태양빛을 맞음으로 우울한 기분을 몰아내야 합니다.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힐 때마다 태양을 향해 서 보십시오. 마음이 밝아집니다.

  돋는 해 되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습니다. 절망 가운데 슬피웁니다. 사람들이 붙들고자 하는 세상의 모든 희망은 겨우 자기 발 앞을 비추는 작은 성냥불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은 죄 문제, 내면 문제, 경제 문제, 인간 갈등 문제를 이기며 열심히 살고자 하지만 근본적으로 죽음의 그늘이 덮어오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모든 평강을 빼앗겨 버립니다. 사망권세 앞에서 고통하며 허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돋는 해가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죽음의 세력을 완전히 박살내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영광스럽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산 소망이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돋는 해되신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에 임하실 때 우리 마음에 역사하는 모든 어두움과 죽음의 요소가 순식간에 물러가게 됩니다. 우리를 생명과 평강으로 인도하십니다. 돋는 해되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희망이 되십니다. 우리 모두가 어두운 소식이 가득하고 희망이 없는 이 시대에 적극적으로 이 예수님을 증거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구원의 뿔이요 돋는 해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자유를 누리며 밝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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