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2/메모

유디트

은바리라이프 2008. 8. 21. 17:14


아시리아에게 침범당한 조국 베툴리아를 구해낸 여걸 유디트, 혹은 입은 듯 안 입은 듯 하늘거리는 옷을 반쯤 걸치고 유혹적인 눈빛으로 바라보는 유디트는 어떤가. 유디트를 세속적인 여인의 모습으로만 바라보며 그녀에게 던진 굴욕적인 시선에 마주서본다.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맡에 있는 침대 기둥으로 가서 그의 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침대로 가서 그의 머리털을 잡은 후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오늘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한 다음 젖 먹던 힘까지 짜내 그의 목덜미를 두 번 내리쳐서 머리를 잘라내었다. 그리고 원수의 몸뚱이를 침대 밑으로 굴려버렸다. 잠시 후 유디트가 장막 밖으로 나가 남자의 머리를 시녀에게 넘기자 여종은 잘린 머리를 음식 자루에 집어넣었다. [구약 외경 18. 유디트 13장]

<구약성서>에서 만날 수 있는 그녀, 유디트(Judith)는 아시리아로부터 조국 베툴리아를 구해낸 유대의 영웅이다. 그녀의 조국 베툴리아는 살육과 강간을 서슴지 않을 만큼 난폭하고 잔인한 아시리아 군대에 의해 점령당했지만 베툴리아인들은 제 목숨을 구걸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유디트는 아름다움을 무기로, 가슴에 복수의 칼을 품고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찾아간다. 베툴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모로 인정받던 그녀를 홀로페르네스가 마다할 리 없었고, 조국의 미래를 구하기 위해 적장과 하룻밤을 보낸 그녀는 홀로페르네스가 곯아떨어진 틈을 타 장검으로 두 번 내리쳐 그의 목을 베어낸다. 홀로페르네스의 죽음을 전해들은 아시리아 군대는 퇴각하고 베툴리아는 유디트의 용감한 행동에 평화를 되찾게 된다.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던진 여인 유디트는 민족적 영웅으로 기억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화가들은 조국을 구한 유디트의 영웅적인 행보를 외면한 채 성적 매력을 이용해 남성을 유혹하고 살해한 팜므파탈적 면모에 초점을 맞춘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유디트(Judith), 1901년 작

이런 연유로 대부분의 그림 속 그녀는 침실에서 적장의 목을 자르는 모습이다. 남성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팜므파탈의 모습. 적장과 하룻밤을 보내고 그의 칼로 목을 베어버리는, 화가들이 그려내고자 했던 그녀와 많이 닮아 있지 않은가? 대부분의 화가들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에게서 잔 다르크처럼 순결한 처녀의 이미지를 끌어내려 한 데 반해, 클림트는 유디트의 본 모습인 민족적 영웅의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겉은 아름답지만 가슴엔 치명적인 독을 품고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끌어낸다.

 

클림트의 작품 속 유디트 역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머리를 들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껏 부풀린 머리에 게슴츠레하게 뜬 눈,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입을 반쯤 벌린, 몽환적인 표정으로 시선을 맞추는 그녀는 더 이상 조국을 지키려 적장의 목을 베어낸 여장이 아니다. 클림트의 그녀에게서는 오로지 자신의 본능적인 욕구를 채운 후 마치 전유물을 들고 만족스러워 하는 요부의 미소만이 보일 뿐이다. 이런 모습 때문에 클림트의 <유디트>는 작품에 그 이름이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로메의 그림에 제목을 잘못 적어 넣은 것이 아니냐는 오해 아닌 오해를 오래도록 받았었다. 19세기 말, 퇴폐적인 시대 속에서 강인하고 아름다운 그녀, 유디트가 팜므파탈의 전형으로 태어난 것이다.

클림트의 <유디트>에 비할 수는 없지만 티치아노의 작품 속 유디트도 여걸의 모습보다는 매혹적인 여인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그녀는 한없이 평온한 표정이다. 또한 유디트가 베어낸 홀로페르네스의 목도 연인 곁에 편안히 누워 있는 표정을 하고 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받쳐 들고 있는 유디트를 보며 마치 세례자 요한의 목을 쟁반에 받아 든 살로메를 떠올리게 되지는 않는가? 유디트 곁의 하녀 역시 어린 소녀이며 유디트 역시 사랑하는 이 앞에서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수줍은 여인의 모습이다.



클림트와 티치아노의 유디트와는 달리 르네상스 이전에는 인간의 욕망을 단죄하는 겸손함과 순결, 그리고 믿음의 승리를 대변하던 모습으로 그려졌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칼을 들고 고향인 베툴리아로 돌아가는 보티첼리의 그림 속 유디트가 대표적이다. 보티첼리의 작품 속 그녀는 이미 적장의 목을 베어 하녀에게 이게 하고 한 손엔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칼을, 다른 한 손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나뭇가지를 들고 고향 베툴리아로 돌아가는 중이다. 유디트의 발 아래로 홀로페르네스의 죽음을 목격한 아시리아 병사들이 혼비백산 퇴각하는 모습도 그대로 그려져 있다. 침략자인 아시리아의 욕망을 단죄한 순결한 여인의 승리를 유디트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클림트와 티치아노, 보티첼리의 유디트처럼 여성적인 이미지가 부각되던 유디트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살인과 폭력의 순간에 한껏 도취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런 시대상을 반영, 이 시기 유디트는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모습으로 작품 속에 주로 등장한다.

 

카라바조의 작품 속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단호한 유디트의 모습이 그대로 담긴 첫 작품이다. 여전히 여리고 아름다운 카라바조의 그녀는 서툴게 잡은 칼로 더러운 것을 피하는 양 한 걸음 물러나 적장의 목을 베고 있다. 여리고 서툴지만, 찌푸린 미간과 적장의 머리털을 다부지게 움켜잡은 그녀의 손에서 단호한 의지가 엿보인다. 그리고 또 하나, 티치아노의 그림 속 하녀가 어린 소녀였다면, 카라바조가 그린 하녀는 늙은 여인으로 그려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수많은 화가들이 그린 유디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아온 것이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다. 가장 잔혹하고 생생하게 그 당시를 그려내고 있음은 물론 이 그림을 그린 젠틸레스키가 바로 여성 화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젠틸레스키는 19세 때 아버지의 친구인 타시로부터 성적 유린을 당한 적이 있었던 여인. 당시에는 이런 일이 있을 경우 남성을 유혹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여성이 처벌을 받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젠틸레스키는 재판을 선택했고, 모진 고문과 질타 속에서도 끝내 재판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재판의 승리 직후 발표한 작품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속 유디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는다.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굵은 팔과 풍만한 몸으로 조금의 고민도 없이 적장의 목을 잘라내는 여장부의 모습이다. 그녀 곁에서 머리를 담을 자루를 들고만 서 있던 하녀도 적장의 목을 잡고 적극적으로 그녀를 돕고 있다. 젠틸레스키는 복수와 응징을 위해 직접 그 대상의 목을 베고 있는 끔찍한 장면을 표현한 이 작품에 자신의 얼굴을 담아냄으로써 자신을 유린한 타시는 물론, 억압받던 당시 모든 여성의 잠재된 분노를 상징적으로 담아내려 했던 것이다. 페미니즘 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가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대를 반영한 미술작품을 통해 나라를 구한 용감한 여인의 모습과 남성을 유혹해 파멸시키는 팜므파탈의 모습으로 그려진 유디트. 그녀를 미술작품에서처럼 그렇게 확연히 구분지어 생각할 수 있을까? 여인이었기에 적장의 침소로 들어갈 수 있었고, 또 나라를 구할 수 있었던 그녀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한 여인이었을까? 적장을 유혹할 만큼의 교태와 치명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침대를 적시는 흥건한 피에도 주저없이 적장의 목을 베어 들고 조국으로 돌아가는 당당함. 이 모든 것이 진정한 유디트의 모습이 아닐까.



출처 : [art & li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