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의 작품 속 유디트 역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머리를 들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껏 부풀린 머리에 게슴츠레하게 뜬 눈,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입을 반쯤 벌린, 몽환적인 표정으로 시선을 맞추는 그녀는 더 이상 조국을 지키려 적장의 목을 베어낸 여장이 아니다. 클림트의 그녀에게서는 오로지 자신의 본능적인 욕구를 채운 후 마치 전유물을 들고 만족스러워 하는 요부의 미소만이 보일 뿐이다. 이런 모습 때문에 클림트의 <유디트>는 작품에 그 이름이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로메의 그림에 제목을 잘못 적어 넣은 것이 아니냐는 오해 아닌 오해를 오래도록 받았었다. 19세기 말, 퇴폐적인 시대 속에서 강인하고 아름다운 그녀, 유디트가 팜므파탈의 전형으로 태어난 것이다.
클림트의 <유디트>에 비할 수는 없지만 티치아노의 작품 속 유디트도 여걸의 모습보다는 매혹적인 여인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그녀는 한없이 평온한 표정이다. 또한 유디트가 베어낸 홀로페르네스의 목도 연인 곁에 편안히 누워 있는 표정을 하고 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받쳐 들고 있는 유디트를 보며 마치 세례자 요한의 목을 쟁반에 받아 든 살로메를 떠올리게 되지는 않는가? 유디트 곁의 하녀 역시 어린 소녀이며 유디트 역시 사랑하는 이 앞에서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수줍은 여인의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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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와 티치아노의 유디트와는 달리 르네상스 이전에는 인간의 욕망을 단죄하는 겸손함과 순결, 그리고 믿음의 승리를 대변하던 모습으로 그려졌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칼을 들고 고향인 베툴리아로 돌아가는 보티첼리의 그림 속 유디트가 대표적이다. 보티첼리의 작품 속 그녀는 이미 적장의 목을 베어 하녀에게 이게 하고 한 손엔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칼을, 다른 한 손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나뭇가지를 들고 고향 베툴리아로 돌아가는 중이다. 유디트의 발 아래로 홀로페르네스의 죽음을 목격한 아시리아 병사들이 혼비백산 퇴각하는 모습도 그대로 그려져 있다. 침략자인 아시리아의 욕망을 단죄한 순결한 여인의 승리를 유디트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클림트와 티치아노, 보티첼리의 유디트처럼 여성적인 이미지가 부각되던 유디트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살인과 폭력의 순간에 한껏 도취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런 시대상을 반영, 이 시기 유디트는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모습으로 작품 속에 주로 등장한다.
카라바조의 작품 속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단호한 유디트의 모습이 그대로 담긴 첫 작품이다. 여전히 여리고 아름다운 카라바조의 그녀는 서툴게 잡은 칼로 더러운 것을 피하는 양 한 걸음 물러나 적장의 목을 베고 있다. 여리고 서툴지만, 찌푸린 미간과 적장의 머리털을 다부지게 움켜잡은 그녀의 손에서 단호한 의지가 엿보인다. 그리고 또 하나, 티치아노의 그림 속 하녀가 어린 소녀였다면, 카라바조가 그린 하녀는 늙은 여인으로 그려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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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화가들이 그린 유디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아온 것이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다. 가장 잔혹하고 생생하게 그 당시를 그려내고 있음은 물론 이 그림을 그린 젠틸레스키가 바로 여성 화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젠틸레스키는 19세 때 아버지의 친구인 타시로부터 성적 유린을 당한 적이 있었던 여인. 당시에는 이런 일이 있을 경우 남성을 유혹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여성이 처벌을 받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젠틸레스키는 재판을 선택했고, 모진 고문과 질타 속에서도 끝내 재판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재판의 승리 직후 발표한 작품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속 유디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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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굵은 팔과 풍만한 몸으로 조금의 고민도 없이 적장의 목을 잘라내는 여장부의 모습이다. 그녀 곁에서 머리를 담을 자루를 들고만 서 있던 하녀도 적장의 목을 잡고 적극적으로 그녀를 돕고 있다. 젠틸레스키는 복수와 응징을 위해 직접 그 대상의 목을 베고 있는 끔찍한 장면을 표현한 이 작품에 자신의 얼굴을 담아냄으로써 자신을 유린한 타시는 물론, 억압받던 당시 모든 여성의 잠재된 분노를 상징적으로 담아내려 했던 것이다. 페미니즘 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가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시대를 반영한 미술작품을 통해 나라를 구한 용감한 여인의 모습과 남성을 유혹해 파멸시키는 팜므파탈의 모습으로 그려진 유디트. 그녀를 미술작품에서처럼 그렇게 확연히 구분지어 생각할 수 있을까? 여인이었기에 적장의 침소로 들어갈 수 있었고, 또 나라를 구할 수 있었던 그녀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한 여인이었을까? 적장을 유혹할 만큼의 교태와 치명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침대를 적시는 흥건한 피에도 주저없이 적장의 목을 베어 들고 조국으로 돌아가는 당당함. 이 모든 것이 진정한 유디트의 모습이 아닐까.
출처 : [art & li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