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冠의 예수
(全四場)
김지하 원작
때 : 현대의 어느 겨울
곳 : 한국의 소도시 한구석
나오는 사람들 : 예수, 신부, 수녀, 문둥이, 거지, 창녀, 사장, 순경,
대학생
제 1 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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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면...
한국 1971년 겨울. 청회색의 음울한 하늘을 배경으로 삐에따의 예수상이 실루엣으로
보인다. 무대 중앙에 작은 탁자. 탁자위엔 검은 표지의 거대한 성서. 탁자 좌우에 검
은 옷의 신부와 수녀. 서로 말없이 노려보며 꼼짝 않고 앉아 있다.
기타소리와 함께 노래소리가 들린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메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고향도 없다네
지쳐 몸 눕힐 무덤도 없이
겨울 한복판
버림받았네
버림받았네
아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
거절당한 손길들
얼어붙은 저 캄캄한 곤욕의 거리
어디 있을까
천국은 어디
죽음 저편에
사철 푸른 나무숲
거기 있을까
가리라 죽어 그리로
가리라 고된 삶을 버리고
죽어 그리 가리라
끝없는 겨울
밑모를 어둠
못견디겠네
이 서러운 세월
못견디겠네 못견디겠네
이 기나긴 가난 못견디겠네
차디찬 세상 더는 못견디겠네
어디 계실까
주님은 어디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은 빛을 잃어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 계실까
어디 계실까
우리 구원하실 그분
어디 계실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
우리와 함께, 주여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
우리와 함께, 주여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 여기
우리와 함께, 주여 우리와 함께
(노래 그치면, 신부 크게 하품을 한다. 수녀, 하품하는 신부를 노려보며
입을 연다)
수 녀 : 다음에 오라고 해야겠지요, 역시?
신 부 : 뭐 말이요?
수 녀 : 홍 막달레나 말입니다. 고해를 보겠답니다.
신 부 : 뭐하는 여자요?
수 녀 : (날카롭게) 창녀올시다.
신 부 : 창녀? (다시 하품) 다음에 오라고 하시요. 헌금은?
수 녀 : 많지 않습니다.
신 부 : 왜?
수 녀 : 가난해서죠. 가난한 사람들이니까요.
신 부 : 가난? 그렇겠군. (하품)
수 녀 : 사회정의평화위원회 임원들이 아홉시에 방문하시겠답니다.
신 부 : 아홉시에? (손목시계를 본다) 뭣 때문에?
수 녀 : 사회정의문제를 의논하시겠답니다.
신 부 : 사회정의문제? 무슨 문제?
수 녀 : 사회정의문젭니다.
신 부 : 글쎄 무슨 문제 말이요?
수 녀 : (고집스럽게) 사회정의문젭니다.
신 부 : 글쏀 사회정의의 무슨 문제냔 말이요?
수 녀 : ......
신 부 : 데모문제 말이요?
수 녀 : 그런 것 같습니다.
신 부 : 데모 말이겠지. 데모, 데모라…….(하품)
수 녀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신 부 : 글쎄…….
수 녀 : 데모는 해야합니다. 신부님, 정당한 주장입니다. 당연하지 않아요?
신 부 : 당연? (하품) 어째서?
수 녀 : 이 추운 겨울에 어디로 가라는 겁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갑자기 새 집을 마련할 수 있겠어요? 게다가 집을 뜯기고 나면 당장 먹고
살 길이 막연하잖습니까? 당연한 일 아닌가요?
신 부 : 그렇지만 사창굴 아니요? 사창굴이 당연하단 말이요?
수 녀 : 사창굴이 당연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신 부 : 사창굴이 당연하지 않다면 데모도 당연하지 않지.
수 녀 : 그렇지만 그 사람들 잘못이 아니지요.
신 부 : 그럼 누구 잘못이요?
수 녀 : 그 사람들이 그 짓을 하고 싶어서 하겠습니까? 가난해서, 사회가
공평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거죠.
신 부 :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해요.
수 녀 : 그럼 누가 합니까? 그럼, 구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고, 나라가 못
구한다고 그대로 버려두고, 교회조차 아무일도 하지 않고, 그럼 어떻게
되는거죠?
신 부 : 왜 교회가 아무 것도 안해요? 여지껏 해오지 않았나?
수 녀 : 구호물자 말이시군요. 그 구호물자가 과연 그 사람들을 구했을까요?
신 부 : 그럼 도움이 안됐단 말이요?
수 녀 : 도움이야 됐겠죠. 허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신 부 : 무슨 얘기요? (하품)
수 녀 :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줘야 할 거예요. 그
사람들이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찾도록, 그런 권리가
자기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또 그 권리를 찾아 행사하도록
도와주고, 구호물자를 주는 건 마치 중환자에게 근본 치료는 안해주고
강심제나 링겔주사만 자꾸 놔주는 격이죠. 오히려 나빠요. 남에게
의지하는 마음만 길러주고. 근본적인 해결을 생각해야 될 거예요.
그래야만…….
신 부 : (하품) 수녀하고 얘길 하면 언제나 머리가 복잡해져. 어쨋든
사창굴은 나빠요. 도덕을 문란케 하고, 더우기 데모는 사회를 혼란에
빠뜨려 나빠요.
수 녀 : 나쁘다고만 할 수 없겠지요.
신 부 : 사창굴이 나쁘지 않단 말이요?
수 녀 : 데모 말입니다. (열렬히) 사실은 사창굴도 그렇죠.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되었습니까? 왜 그처럼 천하게까지 되어야 하나요?
못살아서, 가난해서, 배우지 못해서 결국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성경
말씀에도…….
신 부 : 그건 문제가 달라. 이건 데모문제야.
수 녀 : 결국 그것 때문에 데모하는 건 아닌가요?
신 부 : 그러니까 결국 사창굴이 정당하다는 말이요?
수 녀 : 정당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집을 뜯을 땐, 달리 무슨 살
방도를 강구해 달라는 거죠.
신 부 : 누구에게.
수 녀 : 정부측에 말입니다.
신 부 : 아, 그건 정치문제요. 교회는 정치문제에 개입해서는 안됩니다.
수 녀 : 왜 해서는 안됩니까?
신 부 : 국법을 무시할 수는 없오.
수 녀 : 그 국법이 천주님의 법을 거역해도요?
신 부 : (피하며) 어떻든 높은 사람들이 뜯을 필요가 있으니까 뜯게지.
그분들이 생각없는 분들이겠오? 뒷문제도 생각하고 계실거고……그분들을
믿어야지, 어쩌겠오?
수 녀 : 믿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아무 대책도 없다는 거예요. 다른
곳에서도 여러번 속은 경험이 있다는 겁니다.
신 부 : (귀찮아지며) 어떻든 사창굴 아니요? 그만둡시다.
그얘긴…….(하품)
수 녀 : 사창굴, 사창굴, 사창굴 하시지만 그 사창굴에는 사람이 삽니다.
사람이요. 짐승이 살고 있는 건 아니예요. 마리아 막달레나도
창녀였잖습니까? 그 여자를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더우기 우리 본당
교우의 상당수가 창녀들이거나 그들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외면하실 수 있으세요?
신 부 : 어디 내가 외면하는 거요? 나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거지.
날더러 어떡하라는 거요? 날더러 데모를 하라는 거요? 신부가 어떻게
데모를 한다는 거야? 좌우지간 난 데모에는 반대요. 시끄러운 건
질색이야.
수 녀 : (비웃음을 띠며) 그럼 무엇에는 반대하시지 않겠습니까?
무엇에는 찬성이세요? 무슨 일에든 한 번이나 적극적으로 나서신 적이
있으셨던가요?
신 부 : 아니, 날 비웃는거요? 날 용기없는 사람이라고, 평신도들처럼
수녀까지 날……(진정하며 회피하듯이) 우린 기구로써 이세상 모든 불행이
없어지도록……기구로써. 그밖엔 우리가 알 바 아니요. 더우기
사창굴을……더우기 데모를……더우기 그 사창굴 때문에 문둥이들,
거지들, 도둑놈들, 깡패들이 득실거리는 것 아니요? 도무지 불결해요.
수 녀 : 문둥이, 거지, 도둑, 깡패, 그리고 창녀들, 날품팔이 일꾼들, 그
사람들도 모두 천주님의 백성입니다. 더우기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특히 사랑하셨습니다.
신 부 : 아니, 날 가르칠 셈이요? 어떻든 데모는 안돼요.
수 녀 : 어머니와 교사 , 지상의 평화 , 공의회의 모든 결정들, 교황의
여러가지 말씀들, 이 모든 것이 공연한 이야기들인가요?
신 부 : 시간이 없다. (일어서며 시계를 본다)
수 녀 : 만나실 건가요? (따라 일어선다)
신 부 : 누굴 말이요?
수 녀 : 사회정의평화위원회 임원들 말입니다.
신 부 : 나, 시간이 없오. 난 선약이 있어요. 중요한 분과의 중요한
약속이요 어길 수가 없는 매우 중요한.
수 녀 :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신 부 : 아아 그렇게 전하지 말고……그렇게 하진 말고 이렇게……에에
또…….
수 녀 : 알았습니다. 그럼……. (나가려 한다)
신 부 : 고맙소. 데레사를 보내줘요. 내 그 선사받은 흰 양철 마후라,
그걸 꼭 두르고 가야겠는데, 도무지 어디다 뒀는지? 빨리 보내줘요.
시간이 없오.
수 녀 : 데레사는 갔습니다.
신 부 : 가다니? 어디로?
수 녀 : 저희 집으로요.
신 부 : 왜? 어째서?
수 녀 : 월급은 너무 적고 일은 많다고요. 아까 저녁 뒤에 갔어요.
신 부 : 아주요?
신 부 : 그럼 내 그 선사받은 흰 양털 마후라는……?
수 녀 : 모르겠습니다. 손수 찾아보시죠. (퇴장)
신 부 : 그럼 난 어떻게 외출을……그걸 꼭 둘러야 하는데……그걸 꼭
둘러야 하는데……외출을 어떻게……? (잠시 그대로 있다가 의자에 주저
앉으며 낮고 기이한 음성으로) 난 어떻게 된 걸까? 난 어떻게……이렇지
않았는데……젊을 적엔 이렇지 않았는데…….
제 2 장
어둠속에 1장의 노래 반복되다가 노래 그치며 밝아지는 무대. 역시 보이는 예수상
실루엣. 길. 한가운데 문둥이와 거지가 등을 맞대고 서로 반대방향을 지키고 앉아 있다.
거 지 : 어이 떨려.
문 둥 : 어디가?
거 지 : 턱쭈가리가.
문 둥 : 아직 초저녁이다.
거 지 : 넌?
문 둥 : 흔들린다.
거 지 : 어디가?
문 둥 : 온 삭신이.
거 지 : 안 추울 수 없나?
문 둥 : 부자되면 안춥지.
거 지 : 부자 돼 볼까?
문 둥 : 돼 보자.
거 지 : 따뜻한 구들목.
문 둥 : 따뜻한 아랫목.
거 지 : 이글이글 숯불에.
문 둥 : 갈비 척척 구워서.
거 지 : 소주 한 잔 걸쳐서.
문 둥 : 모자라면 쇠곱창.
거 지 : 배 안 차면 닭똥집.
문 둥 : 염통 천엽 간 콩팥.
거 지 : 두루두루 구워 먹고.
문 둥 : 도야지 괴기에 고초장 발라서.
거 지 : 적쇠 위에 처억처억.
문 둥 : 지글지글 지글지글 지글지글 지그르르르, 침이 꿀꺽, 소주 한 잔
캬악, 속내장이 화끈, 사지가 노곤, 주둥이가 헤벌레, 눈깔이 베벵벵,
꼽사춤이 덩더꿍, 세상이 돈짝만 해져서 니나노 닐리리야 니나노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네.
거 지 : 좋긴 개토가 좋냐? 어이 떨려.
문 둥 : 날 샜군. 어이 흔들려.
거 지 : 불 좀 때자. 꽁초 계시냐?
문 둥 : 암, 계신다.
거 지 : 모셔라.
문 둥 : 납신다. (공초를 건네준다)
거 지 : 돛대로구나.
문 둥 : 쌍돛대다.
거 지 : 장판 간다. (성냥갑을 꺼낸다)
문 둥 : 대가리 간다. (성냥개비를 꺼낸다)
거 지 : 신랑 신부.
문 둥 : 합장! (불을 붙인다)
거 지 : 피조리 하나 버렸구나.
문 둥 : 놈씨는 까딱없구나.
거 지 : 입술연지 빨갛구나. (담배를 보며)
문 둥 : 향기도 풀풀 나고요.
거 지 : 여울까?
문 둥 : 매미다.
거 지 : 여우가 좋아.
문 둥 : 매미가 좋지.
거 지 : 싸구려 갈보가 뭘 좋아.
문 둥 : 처지가 같으니 좋을 수밖에.
거 지 : 부잣년이 난 좋다. 살결두 허여머얼겋구, 오동포동 오동포동
기름지고 살찌고, 패물이 번쩍번쩍, 비단공단 울긋불긋, 시커먼 자가용에
터억 자빠져 누워 게슴츠레한 눈깔을 껌벅껌벅 하는게 오작이나 좋겠냐,
감칠맛 있고.
문 둥 : 임마, 그래 감칠맛이냐? 더걷더걷 바람든 무우맛이지. 자고로
계집이란 눈깔이 또록또록, 볼다구가 딴딴, 익은 능금같이 빤드르르르,
궁둥이는 펑퍼짐, 젖통이는 불퉁, 성이 나면 독사 같고, 정이 들면 배맛
같아야 하는 법이다. 이놈아, 그게 어디 여우냐? 매미지.
거 지 : 좌우지간 부잣년이 난 좋아.
문 둥 : 잘 해봐라. 너 같은 양아치 새끼 쌍통만 힐끗 보고서도 부잣년이
왕창 환장해서 들러붙을 모양이니까, 잘 해봐라, 잘 해봐.
거 지 : 날 샜군. 꿈 속에서야 내 맘대로지, 뭘 그랴?
문 둥 : 하긴 그랴.
거 지 : (노래)
꿈을 꾸세 꿈을 꾸세
꿈 속이라면 우리도 부자
고대나 광실 높은 집에
호의호식 부귀영화
누려나 보세 누려나 보세
배우나 같은 숱한 계집
첩삼아 꿰어차고
인삼 녹용 물개 웅담에
천 년 만 년 살아나 보세
원수나 같은 이 세상에
어쩌다가 뚝 떨어져서
거지꼴도 서러운데
문둥이가 웬 말이냐
꿈을 꾸세 꿈을 꾸세
꿈 속이라면 우리도 고관
삐까나 번쩍 차려나 입고
자가용차에 배 내밀고
비밀요정 들락날락
호화판으로 살아나 보세
꿈을 꾸세 꿈을 꾸세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다가
에헤야 얼러니야 에헤라 얼럴리야
아리랑 고개로 싹 넘어갔다.
퉤!
우라질!
문 둥 : 빌어먹을!
거 지 : 오사할!
문 둥 : 육실할!
거 지 : 제길할!
문 둥 : 벼락맞을, 엠병할, 땜병할, 뒤어지고 꼬꾸라지고 자빠라지고
메꾸라지고, 엎어지고, 코 깨지고, 호열자 삼 년만에 땅 맞아서 뻗으러질,
천하에 배라먹을 쌍놈의 세상! 퉤!
거 지, 문 둥 : (동시에) 어이 흔들려. 이젠 완전히 흔들린다.
거 지 : 왜 이리 추울까?
문 둥 : 겨울이니까.
거 지 : 안 추울 수 없을까?
문 둥 : 부자되면 안춥지.
거 지 : 쉿! 떴다.
문 둥 : 배때기냐?
거 지 : 아니.
문 둥 : 거머리냐?
거 지 : 아니.
문 둥 : 똥파리냐?
거 지 : 아니.
문 둥 : 쎄리냐?
거 지 : 아니.
문 둥 : 백로냐?
거 지 : 아니.
문 둥 : 그럼 뭐냐?
거 지 : 까마귀다.
문 둥 : (놀라서) 뭐, 까마귀라?
거 지 : 칼 없는 까마귀다.
문 둥 : 치마냐? 바지냐?
거 지 : 치마다.
문 둥 : 날 샜군.
거 지 : 잔돈 뜯자.
문 둥 : (바라다 보고) 저 치마는 보던 치마로군.
거 지 : 잔돈 뜯자.
문 둥 : 저건 쇳가루하곤 담 싼 치마다.
거 지 : 어떻게 알아?
문 둥 : 좀 안다.
거 지 : 잔돈 뜯자.
문 둥 : 놔줘라.
거 지 : 잔돈 뜯자.
문 둥 : 글쎄 놔줘.
거 지 : 뜯자.
문 둥 : 놔줘.
거 지 : 뜯자.
문 둥 : 놔줘.
거 지 : 뜯자, 뜯자, 뜯자, 뜯자, 뜯자!
문 둥 : 이 새끼. (거지의 뺨을 친다. 멈칫하는 거지. 수녀 바쁜
걸음으로 등장. 심술난 거지 발을 내밀어 수녀의 발을 건다. 수녀 앞으로
꼬꾸라지려다 겨우 몸을 가눈다. 거지 오히려 발을 밟힌 척, 소리를
지른다.)
거 지 : 아이구구구, 아이구, 아이구, 아이구, 발이야. 아이구구구 발
까졌다. 내 발이야, 아이구, 아이구, 아이구, 내 발이야, 내 발 물어내.
아이구구구구구.
수 녀 : 어머, 이걸 어쩌나! 죄송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너무
바빠서, 많이 다치셨어요?
문 둥 : 괜찮습니다. 그냥 가세요.
수 녀 : 아니예요. 어디 좀 보여주세요. 다치셨으면 치료를 해야죠.
어디…….
거 지 : 아, 남의 발을 왜 봐요? 적선이나 하구 갈 것이지.
문 둥 : 괜찮습니다. 바쁘신데 어서 가보십시요. 정말 괜찮아요.
거 지 : 쳇! 괜찮긴! 제 발인가? 내 발이지.
수 녀 : 많이 아프세요? 이걸 어떡하나? 가뜩이나 추운 날.
문 둥 : 글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수 녀 : 하지만 제 실수로, 더우기 편치도 않으실텐데.
거 지 : (문둥이에게) 넌 왜 나서서 그러냐?
(수녀에게) 아픈 걸로 하면야 가만히 안 있겠지만, 뭐 그럴
처지도 아니구, 뭐 잔돈이나 몇 푼 놓구 가쇼.
문 둥 : 야!
수 녀 : 그래요? 어떡하나? 난 돈이 하나도 없는데…….
거 지 : 아니! 잔돈 몇 닢도 안 가졌단 말유?
문 둥 : (엄하게) 야! 임마! 닥치지 못하냐? 수녀님, 어서 가보세요.
수 녀 : 참 죄송해서 어떻게 할 바를 모르겠군요. 그럼 제가 좀 있다
다시 뵈러 오겠어요. 지금은 너무 바빠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목례하고 돌아서 가다가 기도 한다. 문둥이 흐뭇해서
바라보고, 거지 입을 딱 벌리고 있다)
주여, 저분들을 보살펴 주옵소서. 주님의 크나큰 자비를
베푸시어 저분들을 추위와 굶주림과 멸시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주소서.
주여, 소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소서. 주여, 저에게 힘을
주소서. 저들과 같이 헐벗고 굶주리는 형제들을 위한 싸움터에 이 한 몸
언제든 아낌없이 바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그 어떤 유혹도, 그 어떤
권력의 탄압도 물리쳐 이길 힘을 주소서. 마음이 약한 소녀입니다.
주여, 들어 주소서. 주여, 들어 주소서. (한참 말없이 기도한다)
아멘. (성호를 긋는다. 문둥이 남몰래 혼자서 성호를 긋는다. 거지,
그것을 알아차린다. 수녀, 한 번 돌아보고 퇴장)
거 지 : 헷 별꼴이 반쪽이야! 웃겼어! 아주 무지무지하게 웃겼어!
문 둥 : (부끄러워하며) 미안하다.
거 지 : 너 예수쟁이냐? 언제부터 예수쟁이냐?
문 둥 : 미친 소리 마라. 내가 왜 예수쟁이냐?
거 지 : 그럼 왜 아까 (성호 긋는 시늉을 하며) 이걸 했냐?
문 둥 : 나도 모르겠다. 괜히 따라하고 싶더라. 그래 했다.
거 지 : 건 왜 그래?
문 둥 : 몰라, 어쩐지 좋은 것 같아서.
거 지 : 건 왜 좋아?
문 둥 : 근사한 것 같더라. 더군다나…….
거 지 : 더군다나?
문 둥 : 아까 그 치마는 근사하거든.
거 지 : 뭐가 근사해?
문 둥 : 몇 번 봤어. 똥파리 동네서.
거 지 : 똥파리 동네서?
문 둥 : 응, 똥파리 동네서, 거기서 똥파리들 모아 놓고 책도 읽어주고,
얘기도 해주고, 또 글자도 가르쳐주고 하는 걸 봤어. 또 어떤 땐 아픈
애들 치료도 해주고. 똥파리들이 다 좋아하더라.
거 지 : 허! 재차 웃겼다.
문 둥 : 임마, 뭐가 우습냐?
거 지 : 똥파리들한테 글자가 무슨 소용이야? 엉덩이만 잘 돌리면 됐지?
문 둥 : 야 임마! 똥파린 사람 아니냐? 니 새끼나 내 새끼나
똥파리들이나 한데긴 한데지만 사람은 사람이다. 글자를 알면 좋지 뭘
그래.
거 지 : 그래서 예수쟁이가 좋다, 이거야?
문 둥 : 예수쟁이는 모조리 좋다는게 아니라 그런 근사한 예수쟁이는
좋단 말이다.
거 지 : 아직 초저녁이군. 예수쟁이는 다 마찬가지야. 예수쟁이들이
얼마나 엉큼한지 아냐? 난 고아원 출신이다, 알겠냐? 구호물자 떼어먹는
예수쟁이 고아원. 일만 죽도록 시키고 밥이라곤 머얼건 강냉이죽,
중간에서 제 놈들이 다 떼어먹구. 아이구 아야야 신물이 난다. 예수쟁이의
예짜도 듣기 싫다.
문 둥 : 나도 알고 있어. 예수쟁이들이 하는 요양원에 오래 있어
봤으니까. 허지만 간간이 근사한 친구도 있긴 있단 말이야.
거 지 : 똥파리 가운데도 처녀 있다던? 게는 가재하고 한패야.
예수쟁이는 다 도둑놈이라고.
문 둥 : 넌 아직 몰라. 아까 그 치마 같은 건 진짜가 뭐가 있어.
구호물자 가지고 폼 잡는 것도 아니고, 주둥이만 까가지고 말로 천당
가자는 것도 아니고, 뭔가 진짜로 없는 놈 마음을 아는 것 같애. 뭐가
있어.
거 지 : 있긴 개 코구멍이 있어? 쉿! 또 하나 떴다.
문 둥 : 배때기냐?
거 지 : 아니.
문 둥 : 거머리냐?
거 지 : 아니.
문 둥 : 똥파리냐?
거 지 : 아니.
문 둥 : 백구냐?
거 지 : 아니.
문 둥 : 청태냐?
거 지 : 청태다.
문 둥 : 무슨 청태?
거 지 : 까마귀 청태.
문 둥 : (놀라며) 뭐, 그럼 똥태냐?
거 지 : 칼 없는 까마귀다.
문 둥 : 날 샜군. 또 치마냐?
거 지 : 이번엔 바지다. 어디 예수쟁이가 근사한지 안 근사한지 한 번 보자.
문 둥 : 저 바지는 못보던 바지로군.
거 지 : 가자.
문 둥 : 가자. (신부 등장. 거지 가로막는다)
거 지 : 에 씨구 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오
품밥바 품밥바
신부님 본께로 반갑소
내 바지는 합바지
당신 바지는 솜바지
곱창이 비어서 서럽소
주머니가 비어서 서럽소
삭신이 떨려서 괴롭소
뒈지지 못해서 괴롭소
품밥바 품밥밥 에헤 씨구 씨구 품밥바
일짜나 한자나 들고보니
일자리가 없어서 거지판
이짜나 한자나 들고보니
이판사판 사까다찌판
삼짜나 한자나 들고보니
삼일로 빌딩이 호화판
사짜나 한자나 들고보니
사짜기짜가 잘 사는 판
오짜나 한자나 들고보니
오적들의 난장판
육짜나 한자나 들고보니
육씨 문전에 장설판
칠짜나 한자나 들고보니
칠전 몽둥이 불날 판
팔짜나 한자나 들고보니
팔짜타령이 절로 날 판
구짜나 한자나 들고보니
구세주가 와야 할 판
십짜나 한자나 들고보니
십 원짜리 몇 장이 아쉬운 판
품밥밥 품밥바
어허 씨구 씨구 들어간다.
(각설이 타령 하는 동안, 신부 비켜 빠져나가려는 동작과, 거지
그것을 막아서는 동작, 마치 춤을 추듯 반복된다.)
문 둥, 거 지 : (동시에) 한 푼 줍쇼.
신 부 : 난 바빠. (피하려 한다)
거 지 : (막아서며) 한 푼 줍쇼.
신 부 : (피하며) 시간이 없어.
문 둥 : (막아서며) 춥고 주리고 병들고 외롭고.
신 부 : (피하려 하며 코를 싸쥐고) 아이구 냄새, 갈 길이 멀어.
거 지 : (막아서며) 천대, 괄시, 구박, 멸시 있는대로 다 받고.
신 부 : (피하려 하며) 빨리 가야 해.
문 둥 : (막아서며) 집도 절도 온 천지에 의지 가지 올데 갈데.
신 부 : (피하려고 하며 코를 싸쥐고) 아이구 냄새, 저리 비켜나.
거 지 : (막아서며) 하나 없는 목숨이요, 가련한 목숨이요.
신 부 : (피하려 하며) 약속이 있어.
문 둥 : (막아서며) 그리 마오, 그리 마오, 거지 대접 그리 마오.
신 부 : (피하려 하며 코를 싸쥐고) 아이구 냄새, 글쎄 왜들 이래?
거 지 : (막아서며) 천당을랑 가실려면 대접 그리 마오.
신 부 : (문득 멈춰 선다. -사이- ) 신부가 무슨 돈이 있다고들 그래?
도대체 자네같은 사람들이 한둘이래야 말이지. 날이면 날마다 찾아 오고,
거리거리마다 가로막으니 백만장자라도 그건 못 당하겠네.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한참 부스럭거린다. 거지와 문둥이 서로 눈짓을 재빨리 교환한다)
사대육신이 멀쩡한 것들이 일해서 벌 생각들은 안하고 남에게 얻어먹을
생각만 하니, 죄악이야, 죄악.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아야지. 언제까지
한 푼 줍쇼, 두 푼 줍쇼 하며 이웃을 괴롭힐 작정이야. 사대육신이 멀쩡한
것들이. 도대체 신부를 무슨 잔칫집 시루떡인 줄 알아? 그저 뜯어 먹으려
들게……. 한 번 두 번 줘 버릇을 하니까 이건 무슨 봉 잡았다 싶어
가지고 만많게 보구선 뎀벼든단 말이야. (거지, 문둥이 다시 재빨리
눈짓을 교환한다) 만만하게 보구선. (동전 꺼내 든다)
거 지 : 잔돈은 안 받습니다.
신 부 : 뭐어?
문 둥 : 그까짓 오원짜리 동전 한닢 받아 뭐해요?
신 부 : 뭐어?
문 둥 : 그까짓 오원짜리 한닢 꺼내면서 무슨 놈의 설교가 그렇게 길어요?
신 부 : 뭐어?
문 둥 : 코는 왜 싸쥐고 그러십니까? 문둥이는 사람 아닙니까?
신 부 : 뭐어? 난 바빠. (재발리 몸을 피해 뒤도 안 돌아보고 쏜살같이 퇴장)
거 지 : 어때?
문 둥 : 날 샜다.
거 지 : 날만 샜냐?
문 둥 : 해도 떴다.
거 지 : 그래도 예수쟁이가 좋으냐?
문 둥 : 사람 나름이지.
거 지 : 야, 임마! 춥더라도 냉수 좀 마셔라. 예수가 널 밥 먹여 주냐?
문 둥 : 예수하고 예수쟁이는 달라.
거 지 : 뭐가 달라.
문 둥 : 몰라. 모르지만 달라.
거 지 : 어떻게 다르다는 거냐?
문 둥 : 야, 임마! 내가 그걸 알면 네깐 놈하고 여기 이렇게 궁상떨고
앉았겠냐? 모르긴 모르지만 어떻든 다른 것 같단 말이지.
거 지 : 기분으로?
문 둥 : 그래, 기분으로. 예수는 좋은데 예수쟁이가 예수를 팔아먹은 것
같단 말이다. 어쩐지 그래.
거 지 : 원 천하에 별 새대가리 같은 녀석 다 봤네. 임마, 어쩐지 그래?
이제야 그걸 알았냐? 헹! 세상에 그거 모르는 놈이 어딨어? 예수쟁이가
예수 팔아먹고 사는 걸 모르는 천치가 요즘 세상에 어디 있냐 말야?
문 둥 : 그래 넌 똑똑하고 유식하다. 똑똑하고 유식하신 네 놈한테 하나
여쭤보자. 그럼 예수쟁이가 팔아먹은 예수란건 뭐냐?
거 지 : 허! 고걸 몰라? 몰라서 물어?
문 둥 : 그래, 몰라서 묻는다.
거 지 : 허! 니놈이 아무래두 속이 비더니 골까지 허당이 된가 보구나.
임마! 예수는 저기 저 손 벌리고 서 있는 게 예수다. (예수상 실루엣
가르킨다) 이전 알았냐? 헹! 고놈.
문 둥 : 이런 머저리 동네 반장 같으니. 임마 그건 세멘트지 무슨
예수냐? 세멘트로 예수 비슷하게 만들어 놓은 거지, 그게 예수야? 그것
말고 진짜 예수 말이야, 임마.
거 지 : 진짜 예수? 진짜 예수가 뭐냐구?
문 둥 : 그래 임마. 알아? 몰라?
거 지 : 허! 그걸 알면 니놈하구 여기 이렇게 쭈구리고 앉아 청승떨고
있겄냐? 임마, 원 이런 떼어 먹다 남은 소대가리 같으니!
문 둥 : 시끄럽다. 이 몸은 바로 고것을 연구하고 계신다 이 말이다,
이놈. 너 같은 불 쌍놈하고는 째가 다른 이 몸이시다. 일겠느냐? 이놈.
거 지 : 쉿! 떴다.
문 둥 : 배때기냐?
거 지 : 배때기다.
문 둥 : 히얏! 무슨 배냐?
거 지 : 사장 배다.
문 둥 : 히얏! 얼만하냐?
거 지 : 남산만하다.
문 둥 : 히얏! 빈 배 아니냐?
거 지 : 가득 찼다.
문 둥 : 히얏! 똥으로.
거 지 : 쇳가루로.
문 둥 : 히얏! 내 나간다.
거 지 : 나도 같이.
문 둥 : 내 춤 봐라.
거 지 : 장단 칠께.
(사장 등장. 거대한 배때기를 불룩거리며, 사면을 휘둘러 보며,
어깨를 거들먹거리며 오만무례하게. 문둥이 그 앞을 막아서며 五廣大 의
문둥이춤을 춘다. 일그러진 손, 일그러진 얼굴로 몸을 비틀며 문둥이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보여준다. 비창한 젖대 소리 들린다. 사장 흰
손수건으로 척 꺼내어 코를 싸쥔채 멈춰 서서 꼼짝 않고, 마치 진기한
벌레를 구경하듯 들여다보고 있다. 거지 춤이 계속되는 동안 코빵뱅이
소리로 음울, 처절, 비창 무쌍하게, 크고 길게, 간강이 반복해 외쳐댄다)
거 지 : 문둥이올시당-, 적선하십숑-, 일그러지공, 찌그러지공,
비틀어지공, 허물어지공, 짜부라진 문둥이용-문둥이올시당-적선하십숑-
(춤이 끝나자 거지, 문둥이 일제히 사장에게 날아갈듯 절하고 일어서며)
문 둥, 거 지 : (동시에) 적선합쇼.
사 장 : (코를 싸쥔채) 허, 허, 허, 허, 허, 잘했어, 잘했어. 매우
유쾌하구만. 음, 허, 허, 허, 허, 허.
거 지, 문 둥 : (동시에) (다시 절하며) 적선합쇼.
사 장 : 적선? 오, 좋은 일 하란 말이지오. 허허허허.
거 지, 문 둥 : (동시에) (다시 절하며) 동정합쇼.
사 장 : 동정! 은혜를 베풀란 말이지오. 허허허허.
거 지, 문 둥 : (동시에) (다시 절하며) 한 푼 줍쇼.
사 장 : (코에서 손수건을 떼치며, 매섭게) 한 푼 달라구? 내가 골이
비었어? 네 놈들을 언제 봤다고 한 푼 줘. 네 놈들이 뭘 내게 팔았다고 한
푼 줘? 어림 반푼어치 없는 소리. 골 비어서 주자 한들 네 놈들 주랴고 내
이 귀한 손을 주머니 속에 넣는 수고를 시키며, 술 기분에 주자 한들 네
놈들 주랴고 빳빳한 돈다발을 헐며, 동전이나 주자 한들 네 놈들 주랴고
막내놈 배지통에 들어갈 몫을 줄이며, 담배가루나 주자 한들 네 놈들
주랴고 늙은 식모 말이담배 굶기랴. 천하에 염통 없고 쓸개통 없는 놈들
같으니. (예수상 쪽을 향하여 크게 성호를 긋고는) 아멘. 안 그렇습니까?
예수님. 예수님 머릿님 위에 그 금관님이 너무 너무 너무 좋습니다요. 그
금관을 쓰시니 정말로 이 세상의 왕이십니다. 왕중왕이십니다.
훌륭합니다요. 훌륭합니다요. 너무 너무 너무 너무 훌륭합니다요. 녜,
예수님 부디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 금관은 작년 성탄 때 바로 다른
사람아닌 바로 제가 낸 헌금을 골자로 하여 만들어졌다는 그 엄연한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예수님, 올해도 틀림없이
모든 성교회의 모든 대소 공사는 바로 저에게,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저에게만 맡겨 주도록 해주시어 돈 많이 벌도록, 헤헤헤, 그렇게만
해주시면 이 다음엔 아주 예수님 온 몸을 금덩이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요. 거짓말이 아닙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거짓말 해서야
되겠습니까요. 안되지요, 네. 아무쪼록 돈 많이 벌도록 모든 교회 공사는,
헤헤헤, 아멘. (크게 성호를 긋고 나서 입을 쩍 벌리고. 이 거동을 보고
서 있는 거지와 문둥이에게 돌아서며 음탕한 목소리로)
이봐, 이 근처에 좋은 색시 없어? 육기 풍성하고 써비스 좋고
나이 어리고 생김새 곱상한거 없어? 허리는 가늘수록 좋고, 엉덩이는
클수록 좋다. 경험은 많을수록 좋고, 나이는 적을수록 좋다. 없어? 난
요런 데가 좋단 말야. 싸서 좋고, 조금만 더 얹어 주면 써비스 좋아 또한
좋고, 얼굴 안 팔려 그 또한 더욱 좋고. 없어? 있으면 안내해봐, 소개비
줄께. 흐흐흐흐흐, 빨리-
문 둥 : 좋아하네. 우리가 뚜쟁인 줄 알아? 그런 건 없어! 재수 없아,
퉤-
사 장 : 뭐, 재수 없어?
문 둥 : 그래, 재수 없다. 어쩔래? 내 쌍통이 보이냐? 눈깔은 폼으로
달고 댕기냐? (대든다)
사 장 : (코 싸쥐고 물러서며) 어, 이 문둥이가 누궂ㄴ테 대들어?
문 둥 : 이제야 눈깔이 뚫렸냐? 그래, 문둥이다. 문둥이고 비렁뱅이다.
아무리 문둥이고 비렁뱅이지만 아무리 춥고 배고파도 너같이 더러운 자식
뚜쟁이 노릇은 못하겠다. 왜 억울하냐?
거 지 : (말리며) 가만, 어차피 피장파장이다. 해 주자꾸나. 돈만 받으면
되잖아?
문 둥 : 뭐이 어째?
거 지 : 너 이상하다.우리쨩로 보리밥 쌀밥 가리게 생겼어? 돈 받아서
배꼽이 벌떡벌떡 일어서게 밥이나 처먹으면 됐지. 니가 무슨 예수님
가운데 토막이라고 뻐기냐 뻐기길!
사 장 : 옳지, 옳지. 니놈이 좀 덜 돌았구나. 네깐 놈들이 무슨
통뼈라구. 헤헤헤, 돈이 싫다니 돈 놈들이군.
문 둥 : 난 죽어도 못해.
거 지 : 난 한다.
문 둥 : 못해.
거 지 : 해.
문 둥 : 못 해.
거 지 : 해.
사 장 : 잘 계산들 해봐라.
문 둥 : 못 해.
거 지 : 해.
문 둥 : 못 해.
거 지 : 해.
사 장 : 허리는 가늘수록 좋고, 엉덩이는 클수록 좋다. 경험은 많을수록
좋고, 나이는 어릴수록 좋다.
(이때 날카로운 호르락 소리. 셋이 모두 멈칫한다)
사 장 : 이게 무슨 소리냐?
거 지 : 까마귀 떴다.
문 둥 : 어디냐?
거 지 : 똥파리 동네다.
사 장 : 까마귀라니?
문 둥 : 순사 말이다. 이 먹통아.
사 장 : 뭐? 순사! (깜짝 놀라 달아나려 한다)
거 지 : (가로막으며) 어딜가? 계산은 끝내야지. 허리 가늘고 엉덩이 큰
놈 있다구.
사 장 : 허리고 엉덩이고 순사 만나면 대망신이다. 비켜라.
거 지 : 경험 많고 나이 어린 놈 있다구.
사 장 : 임마, 비켜. 이 근처에서 얼굴 팔리면 장사가 안돼, 장사가!
비키라니깐.
거 지 : 허, 엿장수 맘대로? 계산은 계산이야. 그렇게 급하면 오백 원만
내놓고 가지.
사 장 : 뭐, 오백 원? 오백 원이 뉘 집 강아지 이름이냐? 오백 원을
벌려면 몇 발자욱을 걸어야 하는지 알아? 입을 몇 번 열어야 되는지 알아?
(호르락 소리) 아이구 큰일났다. 날 좀 그냥 보내다오. 오백 원은 무슨?
농담 말고 어서 그냥 꽁짜로.
거 지 : 허! 꽁짜가 니 이름이냐, 내 이름이냐? 안돼. (호르락 소리)
사 장 : 야, 빈다 빌어. (두 손 싹싹 빈다)
문 둥 : 에잇 더러운 새끼. 그래 공짜로 꺼져라. (발로 사장 궁둥이를
걷어찬다. 그 바람에 꼬꾸라질듯 꼬꾸라지진 않고 튀어 나간다)
사 장 : (엉겁결에) 아이구 고맙다. (퇴장. 호르락 소리)
거 지 : (문둥이에게 화가 나서) 야, 이 새끼, 넌 평생 빌어 먹어라.
문 둥 : 엎드려, 까마귀야.
거 지 : (엎드리며) 평생 거지 노릇이나 해라.
문 둥 : 아가리 닫아.
(순경 등장. 지나다 둘을 발견하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순 경 : 야, 임마! 왜 여기들 꺼꾸러져 있어? 일어서! 왜 안 일어서?
(꼼짝 않는다) 이것들이 얼어뒈졌나? 야! 놈들 갱생원 가고 싶으냐?
능청떨지 말고 일어섯! (발길로 찬다. 둘 반쯤 일어나 앉는다) 도로변에서
배회하며 구걸하는 자는 도시 미관상 갱생원에 잡아 넣게 돼 있다, 알아?
더구나 여기 같은 우범지대에서 야간에 배회하는 자는 살인, 강도, 절도,
강간 용의자로 간주하고 연행하거나 유치장에 집어 넣도록 돼 있다. 알아?
알아, 몰라? 네 놈들 강도질 하려고 했지? 바른대로 말했! (잠깐 사면을
둘러보고 손을 내밀며 나직이)
세금 내! 누가 보기 전에 얼른!
거 지 : 오늘은 꽝이요.
순 경 : 임마, 쪼금만 내. 나 담배 떨어졌다.
문 둥 : 진짜 오늘은 허탕이요.
순 경 : 이 새끼들이? 이 새끼들이 엄살을 피워? 맛 좀 보겠니? 자 빨리,
난 바쁘다. 엄살 피우면 잡아다 껀수 채운다. 얼른! 수입잡은 거 반만 내!
문 둥 : 오늘만 봐주.
순 경 : 뭘 봐줘. 임마, 안 내놀래?
문 둥 : 시다이도 못 걸렸단 말이요.
순 경 : 이 새끼가 날 물봉 취급이야. (태도 돌변하며) 안되겠다.
일어서! 느들 절도 용의자로 체포한다.
거 지 : (일어서며) 아 참! (순경 귀에 대고 소근댄다. 사장이 뛰어간
방향을 가리키며 손짓 발짓하며 한참 소근댄다)
순 경 : (듣고나서 눈이 동그래지며) 진짜 배때기냐?
거 지 : 진짜.
순 경 : 얼마나 크냐?
거 지 : 남산만…….
순 경 : 그래, 색씰 찾다가……?
거 지 : 호르락 소릴 듣더니.
순 경 : 순사한테 붙들리면.
거 지 : 얼굴 팔린다.
순 경 : 얼굴 팔리면.
거 지 : 장사 망한다고.
순 경 : 진짜 배띠기지?
거 지 : 아, 진짜라니까.
순 경 : (입이 쪽 쨩지며) 난 간다. (신나게 퇴장)
거 지 : 후유, (주저 앉는다) 엠병할! 우라질! 오사하고 육실하고 땅
맞아서 꺼꾸러질!
(창녀 등장. 주위 살피며 둘에게)
창 녀 : 까마귀 꺼졌니?
문 둥 : 꺼졌다.
창 녀 : 후유! 까마귀 설치는 통에 오늘 새는 꽝이다. 울켜나 말이지.
문 둥 : 우리도 꽝이다.
거 지 : (문둥이에게) 다 너 때문이야. (창녀에게) 부시기 실렸냐?
창 녀 : 하나 줘.
거 지 : 아까 좋은 배때기 하나 걸려서 너한테 돌려주려고 했는데,
까마귀 때문에 날렸다.
창 녀 : 얼마나 좋은 건데?
문 둥 : 좋긴 개코가 좋아? 순 진짜 왕노랭이더라. 쓰레기만도 못한
놈팽이야. 난 그런 것들만 보면 마빡이 후끈해서 가만 못있어. 눈깔엔 돈
밖에 안 보이는 놈이야.
창 녀 : 돈 있는 놈들이 더 지독해. 노랭이들은 질색이야. 돈값은 다
뽑아내고야 물러가거든. (담배 꺼내 저 한 대, 거지 한 대 주고,
문둥이에게도) 문상두 때슈, 피차에 꽝인데……. (담배 피운다) 참, 우리
동네 뜯기는 거 알어?
문 둥 : 알어.
창 녀 : 어떡하지?
문 둥 : 싸워야지.
창 녀 : 글쎄, 싸우기야 싸우겠지만 무슨 소용이 있을라구? 일은 났어,
뜯기면 어디로 간다지?
문 둥 : 악착같이 버텨야 돼.
창 녀 : 결국은 뜯기고 말 걸. 누가 좀 뭔가 세상을 잘 아는 사람이 좀
도와줬으면 좋을텐데, 우리가 뭘 알아야지.
문 둥 : 참, 그 수녀, 그 책도 읽어주고 얘기도 해주고 하던 그 수녀는
어때?
창 녀 : 정말! 그래, 그렇지 않아도 오늘 밤에 그 수녀가 무슨 얘길
한다고 모여 있어. 그 얘길까? 그 수녀가 벌써 알고 있나?
문 둥 : 알고 있을지도 몰라.
창 녀 : 그렇담, 알고 있담. 그 수녀만……. 우리 편을 들어 준다면…….
거 지 : 야, 느네집 식은 밥 남은 거 좀 없냐?
창 녀 : 왜? 시다이도 못 걸렸어?
거 지 : 말 마라, 앞뒷 창이 붙었다.
창 녀 : 아이구 찝찝찝, 어떻게 아직까지 안죽고 살았을까? 가요, 우리집
뭐 좀 남았을거야. 문상, 문상도 가요. (문둥이에게 가까이 와서 껴안아
일으키며, 귀에 대고 애틋하게) 문상, 내가 쏘주 사줄께, 응. 호호호 난
문상이 좋아라.
거 지 : 히얏! 쐬줄 사!
창 녀 : 누가 저 준댔나? 괜히 좋아해.
문 둥 : (싱글벙글 웃으며) 정말이야?
창 녀 : 응, 정말! 문상을 만나니 어쩐지 기분이 좀 나는 것 같애. 자, 가요.
문 둥 : 그래, 가자구. (둘이 껴안고 퇴장)
거 지 : 쳇! 죽은 나무에 꽃 피었구나, 제길헐! (따라 나간다)
(빈 무대에 바람소리, 기타 소리, 노래 들려온다)
제 3 장
무대 오른쪽에 금관을 쓴 예수상 삐에따. 무대 오른 편에서 배때기, 그 뒤를 아까
순경이 뒤를 밟는 모양, 전형적인 걸음걸이로 바쁘게 등장, 왼쪽으로 횡단퇴장. 동시
에 왼쪽에서 신부, 역시 전형적인 걸음걸이로 바쁘게 등장, 오른쪽으로 횡단 퇴장.
곧 이어 다시 왼쪽에서 배때기와 순경이, 오른쪽에서 신부가 등장, 횡단하여 퇴장.
다시 오른쪽에서 배때기, 순경, 왼쪽에서 신부, 이렇게 전후 여섯 번을 예수상 앞에서
엇갈리며, 바쁜 총총걸음으로 등·퇴장하고 나면, 문둥이 술이 취해 등장.
문 둥 : 고향도 없다네
지쳐 몸 눕힐 무덤도 없이
겨울 한 복판
버림받았네
버림받았네
끝없는 겨울
밑모를 어둠
못견디겠네 이 서러운 세월
못견디겠네
못견디겠네
이 기나긴 가난
못견디겠네 차디찬 세상
더는 못견디겠네
못견디겠네, 이젠 정말 못견디겠어. 못견디겠어, 못견디겠어.
(우는 듯 얼굴을 가리고 춤추는 듯 비틀거린다)
마음이 추워, 마음이 추워 못견디겠네. 허기지고 괴롭고 마음이
허전해서 이제 더는 못견디겠네.
천지를 돌아 봐도 아무도 없고, 구박받고 천대받고 멸시만
당하는 놈, 지지리도 못생긴 놈. 에잇. 차라리 죽어버려라, 차라리 죽어!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는다) 내 그림자뿐이야 그림자뿐, 흐흥 그림자는
곱구나. 곱구나. 그림자야 정말 곱구나. (갑자기 부르짖듯이)
어디로 가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해? 나는 어디로? (시선이
사방을 헤맨다)
문 둥 : 고향도 없다. 집도 절도, 반겨 줄 사람도, 위로해 줄 사람도, 난
어디로 가야 한담? (시선이 예수상에 가 멈춘다)
예수 예수 예수, (다가가서) 흥, 예전엔 나도 믿었지. 헌데 무슨
상관이야? 예수가 나 같은 것과 무슨 상관이 있어. 깨끗하고 잘 살고
점잖은 놈들이나 믿는 거지. 말로만 동정하는 척하면서 실은 코를 싸쥐고
달아나는 놈들이나, 저희들 먹다 남은 밥찌꺼기 한 술 주면서, 저희들
입다 버린 헌옷가지 몇 벌 주면서 무슨 큰 은혜나 베푸는 듯이
거드럭거리는 놈들, 이러면 안된다, 저러면 안된다, 배 고파도 불평하면
안된다, 두들겨 맞고 지지눌려도 그저 참아라, 참아야 천당에 간다, 집이
뜯겨도, 판자집이 뜯겨도 모두 하나님이 뜻이니 순종해라. 싸우면 안된다,
떠들면 안된다, 왼 뺨을 때리면 오른 뺨을 내 줘라, 그저 속으로 잠자쿠
기도나 드려라, 순종해라 순종해라, 어른한테도 주인한테도 나릿님한테도
순경한테도 언제나 순종, 순종, 순종, 순종. 왼갖 이러쿵 저러쿵 근사한
말로 혼백을 다 뽑아서, 못살고 불쌍한 놈들을 그저 멍청하고 말 잘 듣고
물렁물렁한 삽살강아지 모양 길들여 놓고 나서, 제 놈들은 호의호식 왼갖
부귀영화 다 누리며 교만떠는 그런 놈들이나 믿는 거지. 나 같은 비렁뱅이
천한 목숨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느냐 말이야!
여보소, 예수님, 안 그렇소? 내 말이 틀려요? 내가 무식해서
그렇습니까요? 흥, 몰라서 그렇겠지. 암,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놈이니 별
수 있나? 암, 천하고 빌어먹는 놈이 별 수 있겠어? 소가지 옹졸하고 딱지
덜 떨어진 소리 하는 게 당연하지. 쌍놈은 별 수 없지, 그렇죠. 사실은 그
놈들이 옳은 거죠? 그 귀하시고 점잖으시고 똑똑하시고 유식하고 잘
사시는 그 분들이, 그 권세 높으신 분들이 옳은 거죠? 내가 삐뚤어진
거겠죠? 그렇죠? 흥.
문 둥 : 예수님이 입이 있어야 말을 하지, 세멘 꽁꾸리가 무슨 말을
한담. 저렇게 세멘 꽁꾸리를 잔뜩 해 놓으면 예수님이 살아 있대도 말을
못 하겠지. 소용없어, 다 소용없어. 예수와 내가 무슨 상관이람. 저 세멘
꽁꾸리와 나와 무슨 상관이야. 쳇, 잘 해 먹어라. 세멘 꽁꾸리든 구리
덩어리든 금덩어리든 그저 천 년 만 년 갈 걸로, 그저 단단한 걸로만
골라서 안부서지게 튼튼하게 짱짱하게 꽝꽝하게 예수를 만들어 세워 놓고,
그 아래서 잘 해 처먹어라! 예수 팔아 천 년 만 년 길이길이 잘 해
처먹어라! 나 하군 상관없다. 쳇! 소용없어, 다 소용없어! 제길할,
빌어먹을, 제길할! 후유, 어떡한담. 어디로 가야지? 날씨는 춥고 허기지고
갈 곳은 없고, 못견디겠어, 못견디겠어, 못견디겠어, 못견디겠어, 아아,
못견디겠어. (발작하듯) 정말 못견뎌! 에잇, 쌍놈의 세상!
빌어먹을, 제길할! (운다) 예수님, 난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좀
가르쳐 주세요. 예수님, 네, 예수님. 어떻게 하면 좋아요? (예수상 밑에
토하기 시작한다. 다 토하자 토한 것 위에 자빠진다. 날카로운 바람 소리.
사이. 문둥이 다시 이마에서 뭔가를 닦아낸다. 사이-)
문 둥 : 어, 이게 뭐냐? (다시 닦으며 일어선다. 예수의 얼굴을 보며)
아니, 아니 저 눈물,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네? 세멘 꽁꾸리가 눈물을?
(하늘을 살피고 나서) 비가 안오고 별이 총총한데, 그럼 저건? 저건
정말로 눈물인가? 정말로 예수님이 우는 건가? 내가 미쳤나? 술취해서
그러나? 가만 있자. (예수의 얼굴에까지 키를 키워서 예수의 눈언저리를
만지며 놀란다)
엇! 정말로 눈에서 눈물이 흐르네! 이상하군, 이럴 수가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군. 이 세멘 꽁꾸리가 이상한 세멘 꽁꾸린가
보구나. (이리 저리 살피다가 금관을 발견)
문 둥 : 이게 뭐야? 금인가? 가시관을 금으로 만들었나? (어루만진다)
히얏! 이건 금이구낫! 어디보자. (벗겨내 들고) 히야, 이건 진짜
순금이로구나! 이것만 있음, 이떻게 이것만 내것이라면 매 병도 좀
고치고, 집 뜯기는 똥파리들 집 사라고 돈도 좀 주고, 밥도 먹고, 개털
잠바도 하나 사 입고, 방한화도 하나 사 신고…….
참 좋겠다. 이것만 있음, 어떻게 이것만……참 좋다 그거.
예 수 : 네가 그것을 가져라.
문 둥 : 엇! (기급을 해서 물러난다. 금관을 든 채로)
예 수 : 놀라지 말라. 나는 예수니 놀라지 말고 내 말을 들어라.
문 둥 : 예수? 예수? 내가 미쳤나? 귀가 이상해졌나? 분명히 예수라고
그랬는데.
예 수 : 네 귀가 병든 것이 아니니라. 네 마음이 착하고 네 살림이
가난하고 네 손이 나를 네게로 이끌어 내 말을 네가 듣는 것이다.
문 둥 : 어, 정말 정말 예수님일세. (저도 모르게 성호를 긋고 합장하며
무릎을 꿇는다)
예 수 : 이리 가까이 오라. 두려움을 버리고 내 말을 명심해 들어라.
문 둥 : (일어서서 끌리듯 가까이 가며) 네, 예수님. (가서 무릎을 꿇는다)
예 수 : 나는 너무나 오랜 세월을 이 세멘트 속에 갇히어 있었다.
답답하고 어둡고 적적한 이 세멘트의 감옥 속에. 나는 너처럼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싶었고, 또 함께 괴로움을 나누고
싶었느니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이 감옥 속에서 해방되는 날을,
해방되어 너희들 속에, 너희들의 그 불행 속에 내가 다시금 불꽃으로 살아
타오를 날을. 그런데 네가 왔다. 네가 가까이 와 내 입을 열었다. 내가
너에게 구원받았느니라.
문 둥 : 예수님, 누가 예수님을 감옥에 가두었습니까? 그들이
누구입니까?
예 수 : 너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이다. 오직 저희들만을
위하여, 저희들만의 신전에 나를 가두었다. 내가 너같은 가난한
백성들에게로 가지 못하도록 그들은 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한다. 그러나
나의 이름으로 그들은 나를 다시금 십자가에 못박는다. 그들은 나의
제자임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 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과
마찬가지로 이기적이고 의심이 많으며 의롭지 못하고 슬기롭지 못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굶주림을 외면하고, 박해받는 의로운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외침에 귀를 막는다. 그리고 그들은 세속의 안락과 부귀와
영예와 권세와 너무나 가까이 있는 탓으로 그들의 귀에는 나의 말도,
너희들 가난한 백성의 외침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들이 날
가두었다.
문 둥 : 예수님, 어찌하면 예수님이 해방될 수 있습니까? 다시 살아나실
수 있습니까? 어찌하면 다시 살아나 저희들에게 오실 수 있겠습니까?
예 수 : 내 힘만으로는 안된다. 너희들이 나를 해방하지 않으면 안된다.
안락과 부귀와 영예와 권세를 가까이 하려는 자는 안된다. 저 혼자서만
천국에 들어가려는 자, 눈 앞의 모든 백성들이 겪고 있는 비참한 불행을
외면하고 저 혼자서만 천국에 들어가려는 자는 안된다. 의롭지 못한 자도
안된다. 불의를 보고도 항거하지 않고, 오히려 불의에 몸을 굽히는 의롭지
못한 자는 안된다. 용기없는 자는 안된다. 권력을 가진 악의 무리가
죄없는 백성을 괴롭히고 착취하고 기만하고 억압하는데도 항거해 싸우지
못하는 용기없는 자는 안된다. 기도만으로도 안된다. 기도와 함께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 그리고 너와 같이 가난하고 불쌍하고 핍박받으면서도 어진
사람들 밖엔 안된다. 네가 내 입을 열었다. 네가 내 머리에서 금관을
벗겨내는 순간 내 입이 열렸다. 네가 나를 해방하리라.
문 둥 : 예수님, 저는 힘이 없습니다. 제 몸 하나도 의탁할 곳이 없는
가련한 놈입니다. 제가 어떻게?
예 수 : 아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네가 할 수 있다. 너만이 날 해방하여
내가 너희들과 함께 이 세상에 하늘나라를 이룩하게 만들어 줄
사람이어라. 너의 그 가난, 너의 그 슬기와 어진 마음, 더우기 불의에
대해 항거하려는 네 용기가 바로 그것이다. 자, 가까이 오라. 가까이 와,
네가 내 입을 열게 했듯이 내 몸을 자유롭게 하라. 이 세멘트를 벗겨내라.
내 머리 위엔 가시관으로 족하니라. 어리석고 탐욕한 자들이 외식을
즐기며 금으로 만든 관을 내 머리에 씌웠다. 금관이 속됨으로 나는
더럽혀지고 억눌리어 말조차 못하는 것을 네가 해방했다. 내겐 금이
필요없고 네겐 금이 필요하다. 금은 네가 가져가 네 벗들과 함께
나누어라.
문 둥 :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필요치 않으시다면 제게도 필요치 않습니다.
예 수 : 그렇지 않다. 금은 필요하다. 다만 한 사람이 모두 가질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골고루 가져야 할 것이니라. 가져가거라.
문 둥 : 사람들이 모두 제가 도둑질을 했다고 할 텐데……거기다
세멘트까지 벗겨내면 경찰이 잡아갈 텐데…….
예 수 : 용기를 내라. 자, 어서 어서, 이 세멘트를 벗겨내줘. 답답하고
갑갑해서 못살겠구나. 어서 빨리 훨훨 벗어나 백성들 속으로 가고 싶다.
문 둥 : (금관과 예수를 번갈아 보며 울상이 되어) 어떻게 하나? 이걸
어떻게 해.
예 수 : 어서. (수녀와 창녀 등장)
수 녀 : (창녀에게) 글쏀 내가 말한 대로 해요. 신부님도 나이를 많이
잡수셔서 그렇지, 당신들의 딱한 사정을 직접 들으시면 응락하실 거예요.
그렇게 해요. 약간의 보상이라도 받으려면 데모를 안 할 수 없다고.
데모를 하는 데는 신부님이 앞장 서 주지 않으면 별 효과가 없을 꺼라구.
그리구 만약 신부님이 앞장만 서 주신다면 정부측에서도 달리 생각할
것이라구. 신문에서도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써 줄거라구. 그렇게만 되면
뭔가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말예요.
창 녀 : 그렇지만 두려워요. 신부님 앞에 저 같은 게 어떻게 감히 나서서
뭐라고 말할 수 있어요. 부끄러워서, 아이 전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못하겠어요.
수 녀 : 또 그 소리, 당신이 뭐가 어떻다는 거예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신부님도 사람이예요. 말씀은 그렇게 안하시지만, 마음 속으로는 다
이해하고 계실 거예요. 자, 용기를 내요.
창 녀 : 아이 참, 어떡하나? 만약 거절당하면 그땐 어떡하죠?
수 녀 : 그땐, 그땐 할 수 없죠. 제가 앞장 서겠어요. 미약하지만 힘
있는 데까진 싸워 봅시다. 자, 갑시다.
창 녀 : 네. (문둥이를 발견하고) 어이, 여기서 뭘 하고 있어요?
예 수 : 오, 내 딸들아! 너희들이 참으로 슬기롭구나. 너희들이 있기에
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노라. 내 이제 너희들과 함께, 너희들의 고통의
자리로 가리로다. (수녀, 창녀, 놀라 섰다가 무릎을 꿇고 찬미와 경탄의
소리를 한다) 내가 이 세상에 다시 강림하는 날 너희와 같이 슬기로운
제자를 구하고 싶었느니라. 기뻐하여라. 이제 내가 너희와 함께 이 세사을
혁시하리라. 내 아버지의 뜻으로 모든 불의와 부패와 빈곤과 악을 물리쳐
너희에게 평화를 주리라.오늘 너희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나아가 다시금
압제자들의 칼날을 내 몸으로 받으리라. 자, (문둥이에게) 네 벗들을
보아라. 얼마나 슬기롭고 용감하냐? 그들을 위해 내가 가야 한다. 그들이
패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느냐? 어서, 시간이 많지 않다. 어서 이
세멘트를 벗겨라. 어서!
문 둥 : (감격하며) 네, 그러겠습니다. 예수님!
(가까이 가려 할 때 왼쪽에서 신부, 오른쪽에서 사장과 순경이
등장, 셋이 동시에 깜짝 놀란다)
신 부 : 엇, 예수님 관이요!
사 장 : 엇, 내 금관이!
엇, 절도로구낫!
(셋이 동시에 덤벼들어 순경이 금관을 문둥이에게서 가로채자,
사장이 순경에게서 가로채고, 그것을 다시 신부가 가로채서 눈 깜짝할
사이에 예수의 머리 위에 다시 씌워 버린다. 종전대로 굳어져 버리는
예수)
창 녀 :
문 둥 : (동시에) 안돼! 안돼! 안돼!
수 녀 :
제 4 장
배때기, 신부, 순경, 대학생 그리고 문둥이 그림자들이 어지럽게 배회하다가 북소리
와 함께 정지하면 배때기에 spot in. 배때기가 말을 시작하면 한구석에서 벌써부터 조명을 받고 있던
문둥이가 잠에서 깬 듯 두리번거린다. 그의 시선은 그러나 서로 배때기에 머무는 일 없이 빗겨
지나갈 뿐이다.
배때기 : (조명을 기다렸다는 듯이 무대 앞에서)
허허허 허허허 허허허, 그렇습니다요. 나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저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는 동안 나는 돈을 벌었을 뿐입니다.
저 사람들이 찬송가를 부르는 동안 강남 땅을 헤맨 것이 무릇 몇 날이며,
저 사람들이 성경을 보는 동안 주판알을 튕긴 것이 무릇 몇 밤이며, 저
사람들이 지옥을 무서워하는 동안 세금을 무서워한 것이 무릇 몇 해인지
아십니까? 허허허 허허허.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가난뱅이가 성당 문턱에 들어가기보다
덜 힘들다는 것을 저 예수님의 금관이 증명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요. 나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십자가는 튼튼할수록 좋고
예수님은 금관일수록 좋습니다. (장삿속이 동해져) 어떠세요. 저한테
맡기시지 않으시겠어요? 정말입니다요. 지금까지 제가 지은 성당은 숱하게
많은데 와우아파트처럼 무너진 성당은 하나도 없습니다. 철근은 특별히
굵은 것으로 사용하고, 세멘트를 모래보다 많이 섞겠습니다. 하와이에서
수입한 모레가 있고, 월남에서 들여온 나무가 있고, 일본에서 건너온
기술자가 있습니다.
예 헌금요? 허허허 허허허
공사만 제게 주신다면 어떤 일을 사양하겠습니까요. 허허허
허허허 허허허 허허허……(웃음과 함께 spot out되고, 다시 그림자들의
배회, 문둥이가 손을 치켜들고 말을 하려고 애쓴다. 눈이 툭 불거지도록
용을 쓰나 결국 소리를 내지 못하고 주저 앉는다. 잠시 후 북소리와 함께
순경에게 spot in)
순 경 : (조명을 피하듯 돌아섰다가 이내 갯석을 행하여) 뭐야? 그래서
어쨌다는거야. 날더러 어쩌란 말이야. 그런거 아냐? 세상이 다 그런데
나라고 별난 체 할 필요없잖아. 이렇게 된 게 뭐 잘못인가? 남들이 다
자는 통행금지 시간에 순찰 돌아본 적 있어? 궁전같은 저택 담 밑에서
비맞으며 보초 서본 적 있어? 대학생들이 던진 돌에 맞아 시퍼렇게 멍든
내 옆구리를 본 적 있어? 눈이 두개, 손도 두개, 발도 두개, 그리고 입도
있고 밥통도 있어. 나는 그냥 사람이야. 나는 보통 사람이야. 나는 그냥
보통 사람이야. 어쩌란 말이야. 나도 어덮게 좀 살아야 할 것 아냐. 나도
사람이잖아. 나도 먹어야 하잖아.
문 둥 : 나도 사람이다, 나도 먹어야 한다.
순 경 : 뭐야?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날더러 어쩌라는 거야.
문 둥 : 왜 나한테서 세금 뜯냐?
순 경 : 그럼 누구한테서 뜯냐?
문 둥 : 부자한테서 뜯어라.
순 경 : 너도 이 땅에 사는 놈이냐?
문 둥 : (절규에 가깝게)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다시 그림자들의 輪舞. 문둥이는 사지를 비틀어댄다. 잠시 후
북소리와 함께 spot in)
신 부 : (눈을 지그시 감고 두 손을 치켜 들며) 오! 죄악 죄악 죄악 죄악
죄악 죄악……(하다가 갑자기 앞으로 나와서 구구를 외우듯) 우리는
세계에 널리 자리잡고 있는 죄악을 근본적으로 보상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죄악은 우주적 규모를 지니고 있으며, 죄악과 투쟁은 인간의
존재를 위해서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현세에서 만나는 것은 선과
진실만은 아닙니다. 죄악과 허위도 있습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불가피하게도 뒤따라 오는 한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물리적·윤리적 악의 문제입니다. 인간이 도달해야 할 목적에 이르지
못하는 한 죄악은 그냥 남아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과 자유가 존재할수록
선과 악을 선택할 능력도 더욱 중대합니다. 사실상 죄악은 하나의
영구적인 가능성으로서 제 사물의 구조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선이 악을, 질서가 혼돈을 정복한다는 것을 나는 확신하는 바입니다.
문 둥 : 나는 그럼 어떻게 하면 됩니까? 신부님!
신 부 : 오! 누구의 목소리가 이처럼 탁하게 내 귀를 울리는가?
문 둥 : 문둥이, 거지, 하잘 것 없는 쓰레기.
신 부 : 오! 자신을 욕되게 하지 말라. 고해를 하러 왔냐?
문 둥 : 아무도 날 받아 주지 않습니다. 지나가던 개도 날 보면
짖어댑니다. 날아가던 새도 안심하고 내 머리에는 똥을 갈깁니다. 저는
사람이 아니라고 모두들 말하고 있습니다.
신 부 : 오! 이성을 버리지 말라. 나는 신부로서의 사랑을 보내노라.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다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으로 되고자
원한다면, 그처럼 비겁한 일도 없느니라.
문 둥 : 집도 없습니다.
신 부 : 오! 배부르기를 바라지 말라.
문 둥 : 춥고 떨려서 아무 소리도 안들립니다.
신 부 : (무릎을 꿇고) 오! 우주적 규모를 지닌 죄악이여!
물리적·윤리적 죄악이여!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존재여! 그러나 결국 선이
악을, 질서가 혼돈을 정복한다는 것을…….
문 둥 : 춥고 떨려서……신부님……춥고…….
신 부 : 나는 질서가 혼돈을 정복한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믿는다.
나는…….
문 둥 : 무엇을?
신 부 : 나는 믿는다. 나는 믿는다. 나는…….
문 둥 : 무엇, 무엇을, 무엇을…….
(다시 그림자들의 엇갈림, 문둥이는 신부를 찾아 헤메다가
꼬꾸라진채 온 몸을 비벼댄다. 잠시 후 북소리와 함께 대학생에게 spot in)
대학생 : (눈을 가리고 빛을 피한다. 이리 저리 조명을 피하지만 조명이
집요하게 뒤따른다. 도망가길 포기하고 얼굴에서 손을 뗀다. 썩은 미소가
입가에 문어 있다)
좋습니다. 어차피 한 번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뭐그렇게 대수로운 일도 아니잖습니까? 인간 만사가
새옹지마(塞翁之馬)이고, 이현령 비현령(耳懸鈴鼻懸鈴)에다가
조변석개(朝變夕改)라는 것쯤은 다 아실 테니까요. 여러분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짐작이 갑니다. 허지만, 허지만 여러분! 유감스럽게도
나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거지는 점점 거지답게 되어 가고, 부자는
확실히 부자답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거지와 부자가, 혹은 신부와 순경이
우리와 똑같은 대한민국 사람일지라도 그들은 거지와 부자, 아니면 신부와
순경일 뿐입니다. 그 뿐입니다. 그리고 나는 대학생입니다. 어중간한
삶이라고나 할까요. (기침) 사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생명을
영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무엇일까요? 생명은 수억의
세포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대사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포는 인간이
섭취하는 흰자질, 단백질, 함수탄소, 무기염류, 그리고 물로써 구성되며,
사실 생명은 즉 다시 환원하여, 바꾸어 말해서 인간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일찌기 한 과학자는 인간을 분해하면 375원 57전의 돈으로
환산될 수 있다고 갈파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그 당시의 미화 1달러를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했을 때의 액수와 거짓말처럼 똑 같았습니다. (기침)
그리하여 우리 시대의 영웅은 자살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입니다. 1달러를
불태우기 위해서 도대체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서도
어쨋든 성냥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문 둥 : 성냥 여기 있다.
대학생 : ?
문 둥 : 성냥 여기 있다. (하고 대학생 쪽으로 간다. 대학생은 기급해서
피한다. 문둥이와 대학생이 필사적으로 쫓고 쫓긴다. 두 개의 spot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이윽고 거의 잡히게 되자 엎어지며 외친다)
대학생 : 나한테 조명을 비추지 말아 줘, 제발.
(이윽고 배경과 함께 대학생 퇴장하면 무대는 새벽. 문둥이 혼자
예수상 밑에서 성냥 여기 있다고 소리지르고 있다. 그의 소리 점점
작아지면서 흐느낌으로 변한다. 문둥이의 몸이 조금씩 꿈틀거리더니 그
움직임이 곧 문둥이의 오광대춤으로 연장된다)
못견디겠어. 이젠 정말 못견디겠어.
- 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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