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분별/성령과 악령

1화, "사도의 내습"②

은바리라이프 2008. 6. 18. 15:20
1화, "사도의 내습"②
 이길용    | 2002·07·09 05:23 | HIT : 1,110 | VOTE : 151
 
사도 혹은 천사라는 이름의 존재들...

에반겔리온 1화, "사도의 내습"②


잠시 천사에 대해서 좀더 이야기를 끌고 가보자.. 그런데 여기서 주의하나! 지금부터는 상당한 긴장감과 긴 호흡으로 무장해주기를 바란다. 이 놈의 천사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수 천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하며... 유대교의 형성과정에 대한 계보학적인 이해가 무엇보다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애니에 대한 평을 쓰면서 이 정도까지 오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내 스스로 절실한 답변을 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껏 유령처럼 온라인을 떠도는 에바에 대한 평가와 그에 대한 사전류의 작업들이 사실 수준이하 내지는 부정확한 것 투성이어서 이렇게 필자는 작심하여 고단한 '싸움 길'에 뛰어들기로 하였다.

사실 필자 역시 처음 에바평을 생각했을 때는 평안히 앉아서 그저 내 느낌과 이성에 잡혀지는 부분들만을 가지고 글을 써보고자 했다. 그러나 첫 회부터 만나게 되는 가볍지 않은 상징들과 종교사에 관한 이야기가 필자의 '인문학적 전투성'을 '각성(覺醒)'시키게 되어 이리 무모한 일을 감행케 되었다. 그러니 인내를 가지고 들어주시라... 조금만 참고 기다려 본다면... 에바에 대한 소문들의 껍질을 벗기고 자신만의 시야로 에바를 주목할 수 있으리라 본다.

천사...

이거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 이 놈의 천사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려면 고대 근동에서 생멸(生滅)한 수많은 종교운동과 교단들에 대한 성실한 이해가 미리 갖추어져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유대교 하나만 보더라도 이 천사의 문제는 외래 종교와의 융합 내지는 토착화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천사의 이미지는 수 천년이라는 세월동안 많은 이들에 의해 더해지고 보태지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역사적 산물인 것이다. 바로 그러한 역사적 체취를 이 천사란 단어를 통해서 한번 느껴보자는 것이 필자의 자세이다. 자, 그럼 함 도전해 보자!


천사, 신의 사자(使者)

우선 천사(Angel, 독일어로는 Engel)란 말은 히브리어인 mal'akh에서 시작한다. 이 말이 후에 그리스어인 aggelos로 번역이 되고 후에 이것이 영어의 angel이란 말로 정착된다. 그런데 이 말의 원뜻은 'messanger'이다. 즉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 바로 천사란 것이다. 바로 이 정도의 개념에 멈추는 것이 구약의 전통이다. 초기에 형성되어진 구약 전통에서는 천사들의 구체적인 이름마저 희미하다. 더군다나 그들이 일정한 위계질서를 갖춘 하늘의 '신적 존재'라는 것은 아직까지는(구약의 초기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들이었다.

구약으로 대표되는 유대교의 신은 절대 유일한 궁극적인 존재이기에... 기타 하늘에 다른 신적 존재가 있어야 할 하등의 필요도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은 그때그때 자신의 의지와 계획을 인간에게 전해주는 사자(使者, messanger)들을 선택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초지일관 철두철미하던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에 변화의 흐름이 서서히 일어나게 된다. 그것은 이미 역사 속에서 읽혀지고 있는 히브리인들의 처절한 '삶의 현장'(Sitz im Leben)에 기인한다. 히브리인들은 그들이 터 잡은 영역의 지정학적 위치가 가지는 중대함(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으로 인해 건국 이후 내내 기나긴 역사적 쓰라림의 현장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사실 필자 역시 이리 컴퓨터 앞에 편안히 앉자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만... 근 이천년 동안 히브리인들이 각 민족들에게 당한 설움과 곤란을 생각하면 말로 다 담아낼 수 없을 지경이다.

한 가지 짧은 예만을 들어보자.... 시간은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의 대다수 나라들에 산재해 있었던 유대인들은 '게토'라 불리는 각 도시의 가장 음습한 곳에서만 살아야 했다. 만약 유대인들이 자신들만의 독특한 고유복장을 하고 유럽 도시의 거리를 활보했다간 사망 아니면 졸도였다. 각 나라에서는 철저히 유대인들이 티를 내고 다니는 꼬라지를 두 눈으로 참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을 알리는 뺏지는 곧 수치의 상징이었고... 그들의 거주지인 게토의 주위에는 높은 키의 담장이 세워져 자국민들과의 접촉을 철저히 막았으며, 만약 유대인들이 겁도 없이 밤에 돌아다니는 경우... 발각되면 곧바로 금고형 내지는 사형에 처해졌다. 이건 거의 감옥과도 같은 세상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끈질긴 민족은 끝끝내 그 쪽 사회의 문화와 전통에 융화되기는커녕 자신들의 종교와 관습을 철저히 지켜내어 1947년 팔레스타인에 원 정착민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이스라엘을 이룩하고 만다. 무진장 무서운 민족이다. 그러하니 중동사태의 해결이 그리 간단치는 않을테고....

사실 애니로서 에반겔리온은 이 유대인들이 이루어 놓은 종교적 유산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이 끌어다 쓰고 있는 대부분이 이미지와 상징들, 그리고 신화들은 바로 이 유대교의 한 자락에 속해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바가 인용하는 내용들은 대부분 정통 유대교라기 보다는 유대교의 여러 지파들에서 형성된 이야기들이다. 즉 유대교 계통의 비교(秘敎)나 신비주의 종단들에서 이루어낸 상징들에서 에바의 제작진들은 많은 힌트를 따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필자는 고민한다. 이거 여기서 유대교의 역사까지 읊어야 하나?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이 부분, 즉 에바에서 사용하는 상징의 출처들을 이해하고 넘어가기 위해서는 사실 어느 정도 개략적이긴 하나 유대교의 역사를 훑어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 그렇다면 함 집고 넘어가자! 그래서 소위 인터넷에 널려 다니는 '에바 사전'이라고 하는 것들의 '비 정밀성'과 '뻥튀기'가 어느 정도인지 함 가늠해보자!


오직 하나이신 야웨를 따르는 사람들-유대교의 역사

유대교 하면 떠오른 것은? 많은 것들이 가능하겠다. 탈무드, 구약성서, 랍비들의 검은 색 복장... 그리고 머리에 쓰는 독특한 모자.. 등 등... 그러나 종교사에서 유대교 하면 이 것 하나 만큼은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유일신'이다. 역사상 가장 분명하고 자의식적인 유일신관을 표명했던 민족이 바로 유대인이고, 그들의 종교가 바로 유대교이다.

사실 그들의 원 조상이라고 알려져 있는 아브라함이란 사나이가 우르(Ur)라고 하는 동네(지금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라고 추정)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할 때만 해도 그들의 신 야웨(현 개역성서에 나와있는 여호와라는 발음은 영어에서 따온 잘못된 발음이라는 것이 정설이다)는 거의 자연신(自然神)적인 성격이 농후하였다. 그러다 히브리 절세의 민족 영웅 모세를 만나면서 점점 유대인들의 야웨는 역사를 지배하는 유일신(唯一神)적인 성격이 강하게 부각되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정벌하여 이스라엘인의 국가를 세운다. 그러나 국가는 이내 남북으로 갈리게 된다. 토양이 척박했던 남왕국 유다와는 달리 북왕국 이스라엘은 좋은 농토를 소유하고 있었기에 훨씬 풍요로운 환경을 만들게 된다. 그러나 농사를 주로 하는 까닭에 농경민족이었던 원정착민들과의 관계가 남왕국보다는 원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원주민들이 소유하고 있었던 농사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무리 없이 받아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로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었던 남왕국 유다와는 달리 농업위주의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의 문화와 관습에 어느 정도 관용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또 왜 북왕국이 원주민들에 대해서 보다 관용적이었는가에 대한 실제적 이해를 감행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흔히들 지금의 삶의 모습으로 과거를 조망하려고 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과거 나름대로의 법도와 질서가 있는 법... 그들의 환경과 조건에 대한 선이해(先理解) 없이 지금의 이해만으로 과거를 난도질해서는 역사를 아는 이라 할 수 없는 법... 따라서 북왕국 이스라엘에 이방인의 풍습이 횡행했던 이유를 보다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법이다. 당시 농업에 대한 지식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문헌과 저장매체가 발달하여 혼자서 무엇이든지 달통할 수 있는 시절이 결코 아닌 것이다. 보통의 경우 다른 곳으로 이주해온 무리들은 새로운 경작지에 대한 농사적 정보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따라서 원주민들이나, 먼저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있는 이들에게 잘 보이지 않고는 농사에 대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길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아무리 유일신 야웨를 섬기고 따르는 유대인들이라고는 하지만 생존을 위해서 이방인들의 풍습을 어느 정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의 농업은 거의 종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거의 대부분 고대의 농사력은 종교력과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만약 그리 하지 않았으면 농사짓는 행위자체가 무척 괴로웠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종교적 축제일과 농사의 절기를 일치시키는 등 농사와 종교의 밀접한 연합을 통하여 무난한 농사법을 획책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법은 농사절기를 잊지 않고 보내기 위한 한 방편이었기도 하다), 그들의 농사법을 배운다는 것은 그들의 종교에 익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순수한 야웨신앙을 수호하려는 이들의 눈에는 좋게 보일 리 만무하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받아들인 이국신앙과 풍습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단호히 잘라버릴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풍요로운 농업의 번성으로 사회구조가 오히려 계급화되는 것에 대해서도 반감을 가진 무리들이 등장했다. 야웨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신조 하나로 이집트를 탈출하였다고 믿고 있는 이들에게 풍요로운 농산물을 더 많이 획득하여 특권층으로 부각되고 있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입을 열어 이스라엘이 원래 소유했던 순수한 야웨신앙으로 돌아올 것을 선포한다. 우리는 그들을 예언자라고 부른다(엘리야, 엘리사, 아모스, 호세아. 제 1 이사야, 미가, 예레미야 등이 바로 이들이다). 따라서 예언자는 미래의 일을 점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야웨의 언어를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사람인 것이다. 물론 그들의 언어에는 미래의 일에 대한 것도 포함되지만... 그것만을 위한 예언을 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예언자들의 단호한 야웨신앙으로의 복귀 호소는 잠자는 이스라엘 민중들의 신앙심을 깨우쳐갔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만은 아닌 것... 유다의 왕 여호아킴은 바빌론의 조공국 신세를 벗어나고자 이집트에 붙었다가 끝내는 성난 느부갓네살 왕이 이끄는 바빌론 군사에게 풍비 박산에 이르고 만다. 나라가 없어진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스라엘의 쓸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바빌론으로 유배신세를 떠나게 된다. 당시 바빌론의 통치자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종교를 고집하고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던 이 히브리 왕국을 역사 속에서 깡그리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인들 중 재목이 될 만한 사람들을 모두 바빌론으로 데려가 '바빌론화', 즉 '국제화' 내지는 '세계화'를 시키려 한 것이다. 이 시기를 어려운 말로 '바빌론 유수기'라 부른다.


바빌론 포로시대-창조주 신앙의 등장

그런데 바로 이 바빌론 포로시대가 유대교로서는 커다란 전환점을 이루는 시기가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전에는 듣도보도 못한 장대한(?) 스케일의 종교와 또 조로아스터교와도 같은 이원론적인 종교들과 직접적인 만남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신 야웨를 분명 유일신이라 고백하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야웨는 여전히 부족신의 모습을 완전히 벗지 못하고 있었다. 즉 히브리인들의 신관 속에 우주를 창조하는 신의 모습은 아직은 분명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촌동네 팔레스틴을 떠나 당시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바빌론의 중심부에 들어오니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마르둑으로 대표되는 바빌론의 창세 설화였다. 신들의 대표로 선출된 마르둑이 괴수 티아맛과 싸워 티아맛의 상체로는 하늘과 별을 그리고 그 하체와 피로 땅과 인류를 만들었다는 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당시 촌동네 사람 히브리인들을 한번 생각해 보라! 이 웅장한 스케일의 신화 앞에 작아져만 가는 그들의 모습을!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신 야웨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거 우리의 신을 너무 좁은 울타리 속에 가두어 둔 것은 아닌가?" 분명 그들은 자신들의 신이 역사를 주관하는 전능한 신이라고 고백하고 있었기에 결코 마르둑같은 신에게 뒤질 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빌론에서의 종교적 충격은 그들의 신앙을 좀더 반성적이고 고백적으로 만들어 갔다. 그리고 결국 히브리인들은 마르둑 신화에 대한 응답으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야웨를 고백하게 된다(이 당시 활동하던 예언자가 바로 에스겔과 제 2의 이사야이다. 제2 이사야는 이사야서의 40장 이후에 기록되어있는 내용의 저자이다. 그는 이사야 선지자의 이름을 빌어 유대인의 시련을 세계사 속에서 이해하고자 하였다. 즉 이스라엘의 역사를 궁극적인 세계 구원의 일부로 보는 역사관을 피력하는 것이다). 바로 이때 다시금 조망한 야웨의 창조주로서의 모습이 창세기 1장을 구성한다. 아는가? 창세기 1장과 2장 사이에는 수 백년이라는 시간적 공백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학자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창세기 1장과 2장의 차이를 길게는 500년정도 짧게는 200년 정도로 추정한다) 성서는 후에 편집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아담을 흙으로 빚었다는 2장의 이야기보다 1장의 6일간의 천지창조는 그보다 한 참 뒤의, 무려 수 백년이나 지난 후대의 것이다. 그만큼 다양한 종교적 충격과 접촉 속에 그들의 고백이 더 한층 깊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종말심판과 이원론의 도래

이렇게 야웨의 모습이 좀더 우주론적으로 확장되고 있을 때 살짝 유대인들의 종교성에 끼어든 또 다른 종교가 있었다. 바로 그것이 배화교(拜火敎)로도 불리우는 조로아스터교이다. 조로아스터교는 한마디로 이원론적인 종교이다. 세상에는 선신(善神)과 악신(惡神)이 있어 끝내는 선한 신이 악한 신을 패퇴시키고 승리한다는 것을 믿음의 주 골자로 하는 종교이다. 이들 종교는 또한 심판에 대한 이야기, 부활에 대한 신앙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러한 새로운 종교적 관념들이 유대인들에게 자극을 주었음은 당연! 서서히 그들은 이러한 사상을 자신들의 유대교에 종합시키게 된다. 따라서 구약에서는 희미했었던 사탄의 이미지가 이제 서서히 인격적인 모습으로 채색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천사의 경우도 야웨의 사자였으나 이제는 하나의 위계질서를 지닌 천상적 존재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당시 세계를 재편하고 있었던 그리스 사상까지 곁끼게 되어(바로 알렉산더 대왕이 활동하던 시기.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은 실제로 유대인들의 종교성에 많은 호감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천상의 천사계는 바야흐로 일곱명의 천사장으로 구성된 꽉 차인 계급질서 하에 놓이게 된다. 여기서 잠깐 일곱명의 천사장을 일별해 보면 다음과 같다. 라파엘(Raphael), 우리엘(Uriel), 미카엘(Michael), 라구엘(Raguel), 사라키엘(Saraqiel, 아마도 1편의 사키엘이 이 천사가 아닐까 싶다), 가브리엘(Gabriel), 레미엘(Remiel) 이다. 이중 미카엘이 대표격이고 그 다음이 가브리엘이었다. 이후 유대교 전통에서는 천사들의 세계에 대한 많은 이야기와 신화들이 양산되기 시작한다.

바로 이때가 신구약 중간기이다. 바로 이 시기에 쓰여졌을 것이라 추정되는 것이 앞서 언급한 에녹서이다. 그런데 사실 에녹서와 사해문서는 서로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에녹서는 에녹서대로 이미 오랜 세월 전승되어왔던 것이다. 다만 1947년경부터 사해(死海) 서쪽 해안에 남아있던 키르벳(Chirbet) 쿰란(Qumran) 유적지의 구덩이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사해문서에 에녹서의 일부분이 발견된 것뿐이다.


사해문서란?

그리고 사해문서라고 하는 것이 여기 저기서 뻥튀기 하듯이 마치 천기누설의 비밀을 간직한 정도의 비서(秘書)는 아니다. 좀더 정확한 눈으로 이에 대해 분석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신구약 중간기에 이미 예루살렘을 정점으로 하는 정통 유대교와는 거리가 있는 신비주의적 전통의 유대교 운동이 존재했었다. 그들을 우리는 에센파(Essenes)라고 부른다. 신약성서의 세례자 요한을 상상하면 이들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금욕주의 생활을 하며 임박한 종말을 기다리는 이들의 무리였다. 당연히 이들은 자신들만의 공동체 생활을 했고, 마치 수도승과도 같은 삶을 살았다. 이들은 유대교의 전통적인 경전과 또 자신들만의 경전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신앙은 요즘으로 따지면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모습과 많이도 흡사했을 것이다. 그들 역시 세상의 끝이 곧 이르렀다고 믿고 있었으니까! 따라서 여타 사람들과는 떨어져 생활했고 또한 그들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종교적 수련을 하기 위해서 아마도 기원전 2세기쯤 사해 부근의 쿰란지역으로 들어왔다고 보여진다.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경전도 상당히 묵시문학적이고 종말론적인 색채를 많이 띠고 있었다. 바로 이들이 사용하던 문서가 사해 부근에 남아있던 쿰란 유적지에서 발굴되기 시작한 것이다. 총 11개의 구덩이에서 당시의 종교상황과 또 성서문헌 연구에 도움이 될만한 귀중한 자료들을 발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그 속에 위경 에녹서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학자들은 이 문서들을 분류하기 좋게 각 구멍별로 번호를 메기게 된다. 일례로 '4Q201'같은 표시가 바로 사해문서의 일렬번호라 생각하면 된다. 즉 '4번째 쿰란 구덩이에서 나온 201번째 문서'라는 뜻인 셈이다.


에녹서란?

그렇담 다시 이 문제의 에녹서는 어떤 책인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에녹서의 종류는 크게 세가지이다. 물론 원본은 없다! 원본은 아마도 그리스어로 쓰여지지 않았나 추정할 뿐이다. 다만 지금은 가장 내용이 충실한 이디오피아 본(이는 에녹1서라고도 불려진다)과 슬라브언어로 기록되어 있는 에녹서(이를 에녹2서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이디오피아 역을 번역했다고 여겨지는 히브리역본 등 세 가지이다. 그중 내용과 분량면에서 이디오피아역이 가장 충실하다고 여겨지고 있다. 바로 이 문제의 에녹서에 '천사의 타락'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게 된다.

왜일까? 왜 천사는 타락하여 그 중 하나는 악의 화신(Satan)이 되는가? 왜인가? 바로 이 부분이 또 어려워진다. 신학적으로 이 부분을 '신정론(神正論)' 혹은 '변신론(辯神論)'이라 부른다. 선한 신이 통치하는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곧잘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심지어 구약의 욥기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문학적인 설명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에녹서 역시 이런 질문에 대한 묵시문학적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바로 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유대교는 철저히 유일신적인 종교이다. 따라서 극단으로 말해 악의 존재도 신의 영향력 안에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는 도대체가 이해하기 곤란한 문제이다. 왜 선한 신이 우리에게 이처럼 시련을 주고... 또 세상은 왜 이렇게 악으로 넘쳐나는가? 그들의 고민은 참으로 실존적이고 상당한 무게로 다가오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바빌론 포로기를 통해 전해 듣게된 페르시야의 종교는 그들에게는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은 중요한 힌트를 주게 된다. 바로 이원론이다. 선신과 악신의 투쟁으로 역사를 재편성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는 정통 유대교가 절대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된다. 그러니 그들은 고민한다. 나름대로 그들은 악의 문제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고 그들 식의 해결점을 찾아야만 했다. 이럴 때 등장하는 것은 묵시문학적 양식이다. 종말을 등에 업고 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보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의 부산물로 "에녹의 書"가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그 당시 아마도 기원전 2-3세기로 추정되는 그 즈음 이러한 종류의 비서(秘書)들이 부지기수로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악의 기원과 세상의 종말, 그리고 최후의 심판 등 상당히 외래 종교적인 모습을 띤 내용들로 이 책들은 채워지게 된다. 에녹의 서도 바로 그러한 책들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대부분 이들 책은 정경과 외경에도 끼지 못하고 위경(僞經), 혹은 위서(僞書)로 대접받는다.


정경, 외경, 그리고 위경이란?

여기서 잠시 정경, 외경, 위경의 차이를 살펴보자. 기원전 90년경 유대인들 중 야브네 학자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정경을 확정짓게 된다. 그들은 어느 경전이 야웨의 계시에 의해 기록되어졌고 어느 것이 인간의 노력에 의해 편찬된 것인지를 가리고자 하였다. 그래서 여러 날의 논의 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구약의 39권이 확정되어지고, 그 외 읽을만한 가치는 있으나 경전으로서의 권위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책들이 외경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카톨릭의 경우는 이 외경 중 일부를 자신들의 경전 속에 포함시키게 된다. 위경, 위서라고 하는 것은 정경과 외경 어느 경우에도 포함되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경전으로서의 권위가 많이 떨어지는 책들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위경들 대부분이 후대에 기록되어지면서 전 세대의 권위 있는 이들의 이름을 도용하는 경우가 많아 그 내용의 신빙성과 정통성에 의혹을 받는 책들이 많았다. 바로 에녹서는 이들 중 위경에 속하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에녹서가 우리에게 잘 남겨지게 된 것은 이디오피아 교회에서는 자체적으로 에녹서를 자신들의 경전 중 하나로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이것이 18세기 후반 이후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해서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들 위경 내용의 대부분은 바로 이 세계의 종말과 심판 그리고 악의 세력에 대한 묘사 등이다. 바로 인격적인 모습을 지닌, 즉 유일신 야웨에 대등하게 도전하는 세력으로서 악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천사의 타락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구성은 후대 많은 작가들의 영감을 자극하게 되어 드디어 타락한 천사장 루시퍼의 이야기 등등이 꾸며지게 된다. 에녹서는 바로 이러한 유일신 야웨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들을 이방 종교의 개념들을 끌어와 해결해보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정통 유대교의 입장에서는 유일신 신앙을 흔들 위험요소가 있는 서적인 것이다.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그러나 이들이 받아들인 종말심판, 부활에 대한 신앙 등은 신약시대에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외래신앙에 대한 수용여부로 유대인들의 집단이 나뉘어 지게 된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사두개파 사람들은 이러한 외래종교적 요소를 철저히 거부하는 보수적인 집단이었다. 그들은 토라라고 불리는 모세 오경에 대한 축자적 신앙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 외 문화적 요소에 대해서는 관대한 모양새를 취했다. 즉 유대문화의 헬레니즘화에는 그리 반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전통적인 신앙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로마인과의 타협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한 길이 조국을 수호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들과는 달리 청교도적이며 경건주의자들인 한 부류가 있었다. 그들은 유다스 마카베우스와 함께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한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들을 바리새파라고 부른다. 이들 역시 사두개파처럼 토라를 철저히 신봉했지만, 사두개인들의 축자적 신앙과는 달리 토라를 일상생활에 적용하기 위해서 이에 대한 끊임없는 재해석은 필요하다는 관용적인 자세를 견지하였다. 그리고 경전에 대해서도 축자적으로 신봉하지 않았을 뿐더러, 토라 사상의 보완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외래사상도 어느 정도 수용하려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과 타협한 사두개파와는 달리 세상엔 반드시 종말이 있을 것이란 신앙도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종말의 심판에 야웨가 서 계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죽은 사람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이라는 새로운 메시아 사상도 옹호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종말론적인 희망 아래 현세에 준비할 것을 철저히 할 것을 주장하였다. 바로 현세에서 그들이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은 바로 '율법의 준수'이다. 이것이 그들이 율법의 준수를 강조하게 되는 사상적인 배경이 된다. 바로 이런 환경 속에서 세례자 요한과 예수가 등장하여 새로운 종교운동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아, 대충 숨차게 유대교의 역사를 간략히 달려왔다. 부디 필자의 호흡을 따라잡아 유익한 시간이 되었음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제 대충 종교사 강의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다시 에바로 돌아오자!

여하튼 천사의 문제는 이처럼 기나긴 역사적 배경을 깔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겨 주길 바란다.


에바에서의 천사

과연 에바의 제작진들이 앞서 필자가 열거한 유대교의 역사나 사해문서, 혹은 에녹의 서에 대한 철저한 반성적 이해를 겸비하고 스토리를 빌려왔는가 에 대해서는 필자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그 정도의 철저한 준비가 제작진에게 있었다면 아마도 에바의 상상력은 더 빈곤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보다는 아마도 후대 이러한 내용들을 가지고 꾸민 대중적인 소설이나 혹 그러한 비의적 이야기책 정도에 힌트를 얻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여하튼 천사의 뜻이 본래 "신의 사자(messenger)"였다는 점에서 제작진이 에바의 천사를 사도(使徒, 사명이 위임된 파견된 자라는 의미에서)라고 지칭한 것도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고 여겨진다. 바로 천사들의 원래의 기능을 충실히 이식시키고 있다고 보여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여기서 딱하나 제작진이 보여준 낯선 '게임' 하나가 있다. 그것은 영화판에 등장하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이 천사라고 하는 존재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다. 즉 에바에서 천사들은 인간과는 달리 '생명의 열매'를 선택한 인간의 또 다른 형제들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가능성의 길을 선택한 인류의 형제로서의 천사! 참으로 그럴듯한 상상력이지 않은가? 이 정도만으로도 에바 제작진의 '꽁수'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이런 제작진의 꽁수를 고스란히 따르자면 에바시리즈의 천사는의 가공할 병기가 절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또 다른 형제의 모습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왜 유독 제 3 도쿄시를 노리고 오는지 그 까닭 역시 조금은 분명해 진다. 그것은 "살기 위해서"이다. 아직까지 1편에서는 정확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인류보완계획의 종국은 'A.T. Field'의 해체로 인한 세계의 재구성이다. 즉 기존 인류와 세계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곧 또 다른 가능성의 길 위에 있는 존재들, 즉 천사들에게도 종말의 선고나 마찬가지이다. 시리즈 내내 출연진들은 이 동성으로 천사라 불리는 신의 사자들은 인류에게 세 번째 임팩트를 선사하기 위해 온다고 했는데... 필자 생각엔 오히려 그 역이다. 그들은 써어드 임팩트(3rd Impact)를 일으키려는 인간의 오만을 제어하기 위해 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자라지 못한 지혜의 수준을 가지고서도(왜냐하면 그들은 지혜의 열매가 아닌 생명의 열매를 택하지 않았는가?) 목숨을 걸고 그들은 또 다른 자신들(1, 2 사도들과 에바 시리즈)을 소유하고 있는 네르프 본부를 파괴하기 위해 오고 있는 중인 것이다. 이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요 전쟁이다. 이는 또한 신은 이 세계를 파괴하지 원치 않는다는 커다란 암시이기도 하다. 사실 바로 이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메시지이기도 하다.


"신은 세계의 파멸을 원치 않는다!"

파멸을 부르는 것은 단지 인간의 오만, 바로 그것이닷!


바로 제작진은 의식했든 안 했든 3번째 천사의 아가미 같은 이미지 하나로 이 모든 이야기를 웅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정확히 이 아가미 형상에 대한 클로즈업은 1편에 두 번에 걸쳐 반복된다. 그 처음은 샤키엘의 등장시이고 두 번째는 N2지뢰를 맡고 재생을 꾀하는 장면에서이다). 아, 참으로 무서운 꽁수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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