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해석'의 저자이자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인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격구조를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원초아와 자아, 초자아가 그것이다. 원초아란, 주위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성격 구조이다. 원초아에 사회화가 더해져 탄생하는 것이 자아이다. 자아는 주위 상황과 여건을 판단하여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성격 구조이다. 초자아는 가장 완성된 형태의 구조인데, 적절한 교육과 훈육이 형성한다. 초자아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도덕 판단이 가능하며 사회적, 도덕적 규범의 인식으로 발전한다.
프로이트는 이 세 가지 구조가 조화를 이룰 때 올바른 인격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원초아가 강할 경우, 주위의 여건이나 도덕적 판단은 무시한 채 자신의 육구를 채우는 것만 중요시하게 되어 반 사회적, 이기적 인간이 되기 쉽다. 반대로, 초자아가 너무 강할 경우 지나치게 금욕적이고 경직된 사람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이 세 성격구조의 적절한 균형이 중요한 것이다.
역사 속에는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여 결국 죽음을 맞이했던 비운의 인물이 있다. 그는 조선 21대 왕인 영조대왕의 아들 사도세자이다. 사도세자는 기이한 행동과 말로 아버지 영조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 결국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하는 불행한 운명을 맞게 된다. 사도세자의 행동을 보면, 그는 원초아의 지배를 강하게 받았었다. 그에게 도덕 판단이란 없었다. 그는 기분이 안 좋으면 닭이든 사람이든 보이는 대로 죽였으며 기분이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다른 것은 모두 무시하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데 바쁜, 원초아가 강하게 형성된 인간의 전형이다.
사도세자가 이와 같은 성격을 가지게 된 데에는 영조의 책임이 크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모두 상궁들에게 맡기고 사도세자와 얼굴을 잘 대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상궁들은 제대로 교육을 시키기보다는 옷고름까지 매어주며 뭐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사도세자에게는 어떤 행동이 잘못된 행동인지 배울 기회가 없었고, 원초아가 강하게 발현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현대사회에, 사도세자와 같은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당 자녀수가 1~2명 정도가 되면서, 자식을 너무 애지중지한 나머지 자녀에게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는 부모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떠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 옆에는 그러한 모습을 방관하는 부모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아이들은 자라서 결국 반 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인 인격체로 성장할 것이다. 이는 분명히 범 사회적인 부정적 요인이다. 부모의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자기 자식이 귀한 것은 어느 부모나 다 똑같은 것이다. 하지만, 귀하게 여기는 것과 잘못했을 때 혼내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정말로 자녀를 귀히 여긴다면, 올바른 인격이 형성될 수 있도록 초자아가 올바로 정립될 수 있도록 부모의 훈육이 필요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 세 가지 구조가 조화를 이룰 때 올바른 인격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원초아가 강할 경우, 주위의 여건이나 도덕적 판단은 무시한 채 자신의 육구를 채우는 것만 중요시하게 되어 반 사회적, 이기적 인간이 되기 쉽다. 반대로, 초자아가 너무 강할 경우 지나치게 금욕적이고 경직된 사람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이 세 성격구조의 적절한 균형이 중요한 것이다.
역사 속에는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여 결국 죽음을 맞이했던 비운의 인물이 있다. 그는 조선 21대 왕인 영조대왕의 아들 사도세자이다. 사도세자는 기이한 행동과 말로 아버지 영조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 결국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하는 불행한 운명을 맞게 된다. 사도세자의 행동을 보면, 그는 원초아의 지배를 강하게 받았었다. 그에게 도덕 판단이란 없었다. 그는 기분이 안 좋으면 닭이든 사람이든 보이는 대로 죽였으며 기분이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다른 것은 모두 무시하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데 바쁜, 원초아가 강하게 형성된 인간의 전형이다.
사도세자가 이와 같은 성격을 가지게 된 데에는 영조의 책임이 크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모두 상궁들에게 맡기고 사도세자와 얼굴을 잘 대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상궁들은 제대로 교육을 시키기보다는 옷고름까지 매어주며 뭐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사도세자에게는 어떤 행동이 잘못된 행동인지 배울 기회가 없었고, 원초아가 강하게 발현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현대사회에, 사도세자와 같은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당 자녀수가 1~2명 정도가 되면서, 자식을 너무 애지중지한 나머지 자녀에게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는 부모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떠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 옆에는 그러한 모습을 방관하는 부모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아이들은 자라서 결국 반 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인 인격체로 성장할 것이다. 이는 분명히 범 사회적인 부정적 요인이다. 부모의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자기 자식이 귀한 것은 어느 부모나 다 똑같은 것이다. 하지만, 귀하게 여기는 것과 잘못했을 때 혼내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정말로 자녀를 귀히 여긴다면, 올바른 인격이 형성될 수 있도록 초자아가 올바로 정립될 수 있도록 부모의 훈육이 필요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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