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성극(대본)

빈 방 있습니까?

은바리라이프 2008. 5. 9. 17:41
 

빈 방 있습니까?



* 인 물

         ==선생, 박 덕 구, 남학생1, 남학생2, 여학생1, 여학생2. 여학생3

   -->(덕구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능한 대로 배우들의 실명으로 하세요.)

           때: 현대 - 공연되는 시점 . 곳 : 어느 교회 중고등부

           (밝은 음악에 이어, 무대가 밝아지면, 고등부실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떠들고 있다.)


여학생2 : 아, 드디어 배역결정이다.(여학생1에게) 언니, 마리아는 누가 될까? 궁금해 죽겠어.

여학생1 : 글쎄.(사이) 근데 말야. 등장인물은 전부 열 네명이나 되는데 캐스트 할 사람은 우리 다섯뿐이잖니. 선생님이 어떻게 하실 건지 잘 모르겠어.

남학생1 : 더 뽑으시겠지 뭐.

여학생2 : 스탭 빼고 나면 더 뽑을 애들이 어딨니?

남학생1 : 아니면 뭐, 중등부나 청년부 선배들 가운데서 찬조 출현을 받을 수도 있겠지.

여학생1 : 그리고 또 하나 이해가 안되는건 말야.

여학생2 : 그래. 여자 역이라곤 마리아하고 대사 두 마디 짜리 유대 여인뿐이고 나머진 전부 남자역인데 우린...

남학생1 : 구성이 안맞는다 이거지?

여학생2 : 그래.

여학생1 : 여자가 남자역 하게되는 거 아닐까?

남학생1 : 그럴수도 있겠지.

남학생2 : 야. 그거 웃기겠다.

남학생1 : 무슨 방법이 있을꺼야. 선생님 오실 때까지 기다려보는 수 밖에.

여학생1 : (아까부터 말이 없는 여학생3에게) ㅇㅇ가 마리아 맡게 되는거 아냐?

여학생3 : 그거야 ㅇㅇ 겠지 뭐.

여학생2 : 예상을 뒤엎고(여학생3의 이름을 대며)ㅇㅇ가 마리아 맡게 되는거 아냐?

남학생1 : 머, ㅇㅇ 가 마리아? 야, 이 작품이 무슨 코메딘 줄 아니?

              (아이들, 와르르 웃는다.)

여학생3 : 야! 이젠 도저히 못 참아!

여학생1 : 얘들아, 선생님 오셔.(모두 급히 의자를 정돈하고 대본을 든다.ㅇ 선생,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온다. 학생들 모두, 인사한다.)

ㅇ선생 : 음. 미안하다, 늦어서. 길이 어떻게나 막히는지 버스 안에서 꼼짝없이 붙잡혀 있었다.

여학생1 : 변명하기 없어요.

여학생2 : 약속은 약속이잖아요.

ㅇ선생 : 알았어. 알았다구.

남학생1 : 말로만요?

ㅇ선생 : 이놈들..좋아. 오늘 연습 끝나면 떡볶이 살께.(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ㅇ선생 : 자, 시간이 너무 많이 갔다. 자리에들 앉아.(그제서야 생각난 듯) 덕구가 안 뵈는데? 박덕구 안 왔니/

남학생2 : 화장실 갔어요.

여학생1 : 선생님, 스탭들은 안 모여요?

ㅇ선생 : 스탭진은 십일 이후부터 연습에 합류한다. 자, 기도 드리고 시작하자. 대표기도 누가 할까?

남학생1 : (일어서며) 오 주여! 오늘도...

ㅇ선생 : (상황을 모르고. 옆에 있는 남학생2에게) ㅇㅇ가 대표 기도해라. (무안해진 남학생1을 여학생3이 앉힌다.)

남학생2 : 제가요? 9사이. 더듬거리며 기도를 시작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번에 성탄연극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특별히...그러니까 배역을 결정하는 날입니다. 모든 사람이 알맞은 배역을...그러니까..(적당한 어휘가 생각났다는 듯) 적재적소에..되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저희들은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께 능력을 더욱 주시고... 그리고...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아멘.(아이들, 킥킥댄다.)

여학생2 : 쟤 왜 기어들어가니?

ㅇ선생 : 땍! (남학생2를 바라보며) 기도 잘했어. 의식적으로 멋 부리는 기도보다 얼마나 좋으냐. 순수  그 자체 아니니.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자. 캐스팅을...배역 결정을 하기 전에 먼저 할 얘기가 있다. 잘 들어라. 연극에 있어서 주인공을 맡느냐 혹은 단역을 맡느냐 하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런 걸 뛰어넘어서 누가 어떤 역을 맡게 되든 자신의 역에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창조해낸다는 것. 이게 핵심이다. 더구나 이번 작품 “첫번째 크리스마스”는 성극이야. 단순히 여흥을 위한 공연이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사이)

ㅇ 선생 : 그럼 이제부터 배역을 발표하겠다. (대본을 편다.0

여학생3 : 어휴, 숨넘어간다.

여학생2 : 아이 떨려. 넌 안 떨리니?

남학생2 : 떨어 봤자야. 내 주제에 단역도 황송하지.

ㅇ선생 : 왜들 웅성거려?

여학생3 : 아무것도 아녜요.

ㅇ선생 : ㅇㅇ는 목자2와 로마병정 2와 동방박사 2를 한다.

남학생2 : 세 개를 다 하라구요?

ㅇ선생 : 그래 넌 아라비아 숫자 2로 통일한다.

남학생2 : 와! 아까 연습한 거 그대로 맞았다. 그지?

여학생3 : 대사 한마디 짜리도 아슬아슬했는데 축하한다.

남학생2 : 오우 예!

ㅇ선생 : ㅇㅇㅇ

여학생3 : 네!

ㅇ선생 : ㅇㅇ이는 말이야

여학생3 : 마리아 역?

ㅇ선생 : ㅇㅇ는 목자 3과 동방박사 3, 로마병정 3.

             (아이들 와르르 웃는다.)

여학생3 : 잘못 부르신 거 아녜요?

ㅇ선생 : 아니.

여학생3 : 그건 죄다 남자 역이잖아요.

ㅇ선생 : 남학생이 모자라는걸 어떡하니. 그렇다고 아무 놈이나 억지로 시킬 수고 없고.

여학생3 : 솔직히 말해서 자존심 상해요.

ㅇ선생 : 뭐야? 그래서 어떻하겠단는 거야?

여학생3 : 그런 역 안 할래요. 차라리 유대여인 역 하나만 할래요.

ㅇ선생 : 그거 단역인데?

여학생3 : 죄우간 남자 역은 싫어요.

ㅇ선생 : 그래? 그럼 너 짜를까?

여학생3 : 짜르세요

ㅇ선생 :진심이야?

여학생3 :그래요.

ㅇ선생 : 정말 짤라도 나중에 딴소리 안할거지?

여학생3 :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짜르..세요.

ㅇ선생 : 알았어. 그럼 이번 배역에서 ㅇㅇ는..

여학생3 : (크게) 시켜주세요.

ㅇ선생 : 요 녀석! 사실은 말이다. 현실의 자기와 전혀 다른 극중 인물을 만들어내는 게 더 의의가 있는거야. 그게 바로 연기라는 거 아니겠니?

모두 : 네.

ㅇ선생 : 그런 의미에서 ㅇㅇㅇ.

여학생3 : 네.

ㅇ선생 : ㅇㅇ는 목자1.동방...

여학생3 : 동방박사 1. 로마병정 1 할 것.

ㅇ선생 : 옳지. 똑똑하다

여학생2 : 저도 세 개네요.

여학생3 : (여학생2와 악수하며) 우리 배우 한번 해보자!

여학생2 : 기대하시라. 스타탄생!

ㅇ선생 : 다음. 마리아 역

여학생2 : ㅇㅇ지 뭐.

남학생2 : ㅇㅇ 밖에 더 있니?

ㅇ선생 : 그래. 마리아 역엔 ㅇㅇㅇ.(여학생1, 일어나 인사하다.)

모두 : 축하한다. (박수를 친다.ㅇ선생. 갈등을 겪고 있다.)

ㅇ선생 : 다음...(결단을 못내리고 갈등하다가, 이윽고 결심이 선 듯) 다음, 여관주인. 여관주인은...

아이들 : (남학생1의 이름을 연호한다.) ㅇㅇㅇ!ㅇㅇㅇ!ㅇㅇㅇ!

ㅇ선생 : 박덕구로 한다. (사이)

여학생2 : 뭐, 박덕구라구?

남학생2 : 말도 안돼.

여학생3 : 여자가 남자 역도 하는데 그럴 수도 있지 뭐.

남학생1 : 선생님, 잘못들었는데요.

남학생2 : 다시 한번 불러주세요.

ㅇ선생 : 여관 주인 역엔 박덕구라니까. (밖을 향해) 덕구야! 아직 멀었냐? (아이들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왜들 그래? 뭐 잘못 됐어?

여학생1 : (당돌하게) 물론 선생님께선 심사숙고하고 결정하셨겠지만요. 최소한 여관 주인 역으로 박덕구가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ㅇ선생 : 왜 그렇게 생각해?

여학생2 : 네. 그건...

여학생1 : 말씀 드려.

여학생2 :걔를 무시해서가 아니라요.그냥..

남학생2 : 분위기가 좀 안 맞는 것 같은데요. 여관 주인은 닳고 닳은 사람이라 계산도 밝고 그럴테니까 인상도 똘똘하고 날카로운 맛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ㅇ선생 : 그건 해석상의 문제지.

남학생2 : 아무툰 덕구는 우선 얼굴에서 풍기는 느낌이 좀..그렇지 않습니까.

여학생3 : 그렇다고 그 역하지 말라는 법이어딨어?

여학생1 : 쟤, 왜 저러니?

ㅇ선생 : 내 생각엔 덕구가 그 역 잘 해낼 것 같은데.

남학생1 : 죄송합니다. 제가 한 말씀 드리죠. 사실 저희들도 누구 못지 않게 덕구를 이해하고  또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마 이번 성탄 행사에서는 연극이 가장 비중이 큽니다. 따라서 공연이라는 큰 목표을 이루기 위해서는 좀더 현실적인 고려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ㅇ선생 : 넌  선생님보다 말을 더 어렵게 하는구나.

남학생2 : 선생님, 만일, 만일의 경우, 덕구가 대사를 하다가..

여학생1 : 공연 도중에 대사를 까먹거나 틀리게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ㅇ선생 : ㅇㅇㅇ! 넌 대사 한마디도 안틀리고 무대에 설 자신 있어?

남학생1 : 대사 까먹는 것도 그렇지만 걘 말도 좀 어눌하잖습니까.

ㅇ선생 : 그건 나도 알아.

여학생2 : 다른 애 시켜요.

여학생1 : 선생님...

남학생2 : 촌극 발표회도 아니잖습니까.

남학생1 : 하필이면 말 더듬는 애를...

ㅇ선생 : (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놈들!

너희들, 이것도 일종의 교만이야, 말로는 덕구 무시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러지만 지금 이게 무시하는게 아니고 뭐냐? 너희들은 명배운 줄 아니? 너희들 보다 연기 훨씬 더 잘하는 고등학생 쌔고 쌨어! 남을 인정해줘야 자기도 인정 받는거야. 이놈들아! 못된 녀석들! (모두 할 말이 없다. 긴 침묵) 내가 좀 흥분했는데... 미안하다.(사이) 덕구를 동정하라는게 아냐. 그냥 좀 도와 주자는 거야. 교회 안에서 만이라도 그늘지지 않게 생활할 수 있도록 말이다. 생각해 봐라. 걔가 언제 어디서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겠니? (다시 침묵.)

남학생1 : 죄송합니다. 선생님.

여학생1,2  : 저희들이 잘못했어요.

남학생2 : 아직 철이 덜 나서 그래요.

ㅇ선생 : 우리 기도하자. (모두 약속 한 듯. 옆 사람의 손을 잡고 머리를 숙여 묵도를 한다. 덕구가 들어와서 영문을 몰라 멀거니 바라보다가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한다.)

남학생1 : (기도가 끝나자 덕구를 보고) 덕구야, 너 뭐 그렇게 오래 있었냐?

덕구 : 응 똥이 잘 안나와서.

남학생1 : 너 변비구나.

덕구 : 응, 벼 변비. (선생을 보고) 선생님,오셨어요?

ㅇ선생 : 음, 이리와봐. 너 대본 읽어 봤지?

덕구 : 네? (윗옷 안주머니에서 대본을 꺼내며) 이거요?

ㅇ선생 : 음.

덕구 : 두 번 읽었는데요.

ㅇ선생 : 너 여관 주인 역 할 수 있겠니?

덕구 : 여관 주인요? 누가요?

ㅇ선생 : 너 여관 주인 한번 해볼래?

덕구 : 선생님, 나두 부 붙여요?

ㅇ선생 : 물론이지. 너 할 수 있지?

덕구 : 네? 네!

ㅇ선생 : 봐라. 덕구는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혔어. 이게 중요한 거야. (사이) 아, 요셉역이 남았나?

여학생2 : 그건 뻔하잖아요.

남학생1 : 아, 난 떨이로구나.

여학생2 : 그래도 주인공이다 얘.

남학생1 : ( 일어서며) ㅇ 요셉이라고 합니다. 애용해 주세요. (모두 야유를 보낸다.)

여학생3 : 선생님, 시간 조금만 주세요.

ㅇ선생 : 뭐 하려구?

여학생3 : 잠깐이면 돼요.(ㅇ선생, 남학생1에게 뭔가 말을 하고, 덕구를 격려한다.) 야 일인 삼역짜리 쫄따구들 모여! (셋이 모인다.)

사실 연극에서 엑스트라 빠지면 무슨 재미냐.

남학생2 : 맞아 . 게다가 우리 셋이 빠지면. 삼 삼은 구, 아홉 명이나 빠지는 거네.

여학생3 :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파이팅 한번 하는거야. “짝짝짝. 우리는 엑스트라. 밀고 땡기고 부수자, 파이팅 헤이 야!” 알았지?

남2,여2.여3 : (박수를 세 번 치고) “우리는 엑스트라, 밀고 땡기고 부수자. 파이팅 헤이 야!(남학생 1과 여학생 1이 야유한다.)

ㅇ선생 : 자.자! 곧바로 연습으로 들어간다. 준비해.(경쾌한 캐롤이 울리면서 무대 어두워지고. 뒷 무대에 부분 조명이 들면, 덕구가 혼자 연습에 열중해 있다.)

덕구 : “글세 기찮게 애 자꾸 이러슈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바...반복해야 됩니까! 우리 집엔 빈 바이 없습니다.” (‘반복’과 ‘방이’ 라는 발음이 안되서 고전한다.)

요기가 되게 안된단 말야.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바..반복” 요기두. “우리 집엔 빈 바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 쪽길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낡은 마구간이 하나 있을 거외...거외다.”(덕구에게 비치던 조명이 꺼지면서 무대 전체가 밝아진다. 연습이 한창이다. 게시판에는 ‘공연12일전’ 이라는 글씨가 있다. 여학생1을 제외하고 모두 대본을 든 채 연습한다.)

여학생2 : “들어봐. 무슨 소리 들리지?”

남학생2 : “들리긴 뭐가 들린다고 그래.”

ㅇ선생 : 잠깐, 잠깐!

남학생1 : 엔. 지.

ㅇ선생 : 자다가 막 깨어난 사람들이 쌩소리를 내면 어떻하니. 대사에 하품을 섞어서,(시범을 보인다.) “들리긴 뭐가 들린다고 그래.”

남학생2 : (하품을 섞어서) “들리긴 뭐가 들린다고 그래.”

여학생3 : (하품을 섞어서) “그래. 나도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ㅇ 선생 : ㅇㅇ넌 아냐.

여학생3 : “그래. 나도 무슨 소리 들은 것 같은데.”

ㅇ선생 : “너희는 갓난아기가 강보에 싸여...” 강보? 이거 전달이 안돼.

“너희는 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인데, 그것이 바로 주님을 나타내는 표니라.”

여학생3 : (작은 소리로) 선생님두 별루다, 그지? (모두 키득거린다.)

ㅇ선생 : 땍!

남학생2 : “잘못 들은거 아냐?”

여학생2 : “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둘 다 잘못 들을 리야 있겠어?”

남학생2 : “그건 그래.”

ㅇ선생 : 아, 목자2 그 대사 짜르자.

남학생2 : 또 짤라요? 제 대사 전부해야 열 한 개 뿐인데. 그것도 남들 긴 대사 다 듣고 나서 “그렇지” 아니면 “맞아” 주로 이런 거 잖아요.

ㅇ선생 : 대사가 꼭 많아야 좋은 건 아냐. 작품 전체를 생각해야지. 심지어는 주인공이면서도 대사가 거의 없는 경우도 있으니까.

남학생2 : 알았어요. 더 짜르지나 마세요.

ㅇ선생 : 두고 봐야지. 자, 목자2 “잘못 들은거 아냐?”부터 다시.

남학생2 : (볼멘 소리로) “잘못 들은 거 아냐?”

여학생2 : “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둘 다 잘못 들을 리야 있겠어?

남학생2 : 그건 그래.

ㅇ선생 : 아, 목자2 대사 짜르자.

남학생2 : 또 짤라요?

ㅇ선생 : 그 상황에서는 고개만 끄덕이면 충분해. 대사는 간결할수록 좋은 거니까. 자, 목자2 “잘못 들은 거 아냐?”부터 다시.

남학생2 : (볼멘 소리로) 잘못 들은 거 아냐?

여학생2 : 한 사람이면 몰라도 둘 다 잘못 들을 리야 있겠어? (남학생2 고개만 끄덕거린다.)

여학생3 : “다윗의 고을이라...그럼 베들레헴이잖아. 맞았어. 성경에 그런 얘기가 있었어. 선지자의 예언이 있었다고, 다윗의 고을에 한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우리 메시아라는 얘기 아냐?

여학생2 : “아니, 우리가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단 말이지?”

ㅇ선생 : 잘한다, 잘해.

여학생3 : 괜찮았어요?

ㅇ선생 : 정말 잘 한다는 줄 알어? 야, 이 목동들은 남자다. 남자.

여학생2 : (남자 목소리 흉내내서) “아니, 우리가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단 말이지?”

ㅇ선생 : 좀 나아졌다. 계속해.

여학생3 : (역시 남자 목소리로)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우리한테 계시해 주신 거야. 난 그렇게 믿어.”

남학생1 : 우와, 원단이다.

여학생2 : 나도 그렇게 믿어.

남학생2 :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ㅇ선생 : 점점 빨리!

여학생3 :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서둘러야지.”

여학생2 : “마굿간으로 가는거야!”

ㅇ선생 : 더 몰아!

여학생3 : (대본을 보며)“베들레헴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니까 단숨에 달려가자구!”

남학생2 : “당장 가서 경배 드리세!”

ㅇ선생 : 됐어! 많이 좋아졌다. 좀 더 느낌을 가지고 해준다면 여기선 더 바랄게 업겠다. 다음 5장 여관 장면.(학생들 위치로 간다. 무대밖에 나귀가 나와서 멈춘다.)

남학생2 : 히이이이잉.

ㅇ선생 : 요셉이 마리아를 나귀에서 내렸다.

여학생3 : 쿵!

ㅇ선생 : 무대로 들어왔다. 대사!

남학생1 : “베들레헴에 있는 모든 여관이 사람들로 꼭 찼으니 가는 데마다 거절당할 수밖에 업구려.

ㅇ선생 : 잠깐, 잠깐. 그건 ㅇㅇ말이지 어디 요셉이니. 극중 인물로 들어가라구. 상상력동원!  모두 : 상황몰입!

남학생1 : 여관마다 호적하러 온 사람들로 꽉 찼으니...“

ㅇ선생 : “가는 데마다 거절당할 수밖에 없구려.”

남학생1 : (흉내내서)“가는데 마다 거절당할 수 밖에 없구려.”

ㅇ선생 : 뭘 눈치를 슬슬보니! 앵무새처럼 흉내낼 생각 말고 스스로 해결해봐.

남학생1 : “마지막으로 이 여관에 들어가 부탁해보는 수 밖에 없겠소.”

ㅇ선생 : ‘거절’ 이 아니고 ‘거어절’ , 장모음. 얘들이 모음을 몰라요.(칠판으로 가며) 계속해.

남학생1 : “이 집에서 거어절 당하면 이제 더 찾아볼 곳이 없소.”(여학생1의 대꾸가 없다.)마이라 뭐해? 야, 너 뭐하니?

여학생1 : 요셉 대사 더 있잖아.

남학생1 : 그 대사 어제 짤랐잖아.

여학생1 : 짜르긴 언제...짤랐구나.

남학생1 : 여휴 저 돌.

여학생1 : (정색을 하며) 뭐라구? 더 말이면 단 줄 아니?

남학생1 : 되게 과민반응이네. 농담도 못하냐?

여학생1 : 농담도 정도가 있는거야. 기가 막혀. 선생님, 쟤하고 같이 연극 못하겠어요!

ㅇ선생 : 이놈들 또 싸우고 있어. 버릇없이.

여학생3 : 쟤내들 맨날 싸운데요.

여학생1 : (잠시 사이를 두고) 싸운거 아녜요. 수준이 맞아야 싸우죠.

ㅇ선생 : 둘러대시는. (남학생1에게)얘가 돌이면 넌 쇠다. 이 녀석아.(아이들 웃는다.)

여학생1 : (웃다 말고) 맞아요. 쟤는 자기가 돌이니까, 날 돌이라고 불러서 자신은 돌이 아닌 것처럼 꾸미는 거라구요.

남학생1 : 와, 미치겠네. 진짜.

ㅇ선생 : 자, 돌 얘긴 그만하고 서로 화해해. 부부끼리 그러면 쓰나.

여학생3 :  빨리 악수해. 이 짱돌 부부야.(둘, 악수한다. 아이들 박수)

ㅇ선생 : (시계를 보며) 자, 계속해.

여학생1 : (임신부인 듯 연기를 하며, 힘들게 앉고 나서) “그래도 어딘가 우리와 아기를 위한 집이 있을 거에요.”     

여학생3: 감정 좋고!

선생: 조용히 못해! 너희들이 군소리를 하니까 연습이 자꾸 토막나잖아. 너, 저기 가서 꿇어 앉아 있어.(여학생 3을 벌 세운다.)진지하게 해봐. 상황몰입!

모두: 상황몰입!

선생: 말들은 잘한다.

남학생2: 진도 나갑시다!

선생: ??, 너도 손들고 있어.(남학생 2도 벌 세운다.) 제발 장난 좀 그만하고 집중해! 시작한지가 언젠데 한 페이지를 못 나갔잖니?

여학생1: 그래도 어딘가 아기를 위한 집이 있을 거예요.

남학생1: 물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이오. 여기가 바로 그 집이라면 얼마나 좋겠소. 주인 계십니까?

선생: 두 번째를 부를 때는 좀 더 크게. 잠깐,

남학생1: “주인 계십니까? 주인 계십니까!”

선생:(졸고 있는 덕구에게) 박 덕구!(여학생2 쫓아가서 깨운다.)

여학생3:너 나올 차례야.

선생: 아냐. 저쪽이야. (덕구, 아직 잠이 덜 깬 듯 비척거리며 무대 반대편으로 간다.) 다시 불러줘.

남학생1: “주인 계십니까!” (덕구, 반응이 없다.)

선생: 덕구 뭐해?

덕구: 한 번뿐이 안 불렀는데.

선생: 두 번 불러줘라.

남학생1 : (선생의 신호를 받고) “주인 계십니까? 주인 계십니까!”

덕구: 나가요?

여학생1 :나오라니까. (그러나 덕구는 선생의 신호를 보고야 무대안으로 들어선다. 남학생 1 인사를 하자 맞절을 한다.)

선생: 아냐, 네가 인사를 하면 어떡해. 넌 주인이니까 당당하게 서 있어야지. 안 그래? (덕구, 자세를 고친다.) (사이) 뭐해? 대사 해야지.

덕구: 아, “빈 바이 없습니다.”

선생: “누구시오”가 빠졌어.

덕구: 아, “누구슈?”

남학생 1: “빈 방 있습니까?”

덕구: “아, 빈 바이 없습니다.”

남학생 1: “죄송스럽습니다만 아내가 만삭이 돼서...”

선생: 봐주고. (덕구, 선생을 본다.) 나 말고 마리아를 봐주란 말야.

덕구: (여학생 1을 봐주고 나서) “글세 사정은 딱하오만...” 근데 선생님.

선생: 또 뭐야?

덕구: 만삭이 뭐에요? (아이들이 웃는다.)

선생: 아냐. 질문 잘했어. 모르는 건 물어봐야지. 그러니깐 만삭이란...

여학생 1: 애기를 해산할 달이 꽉 찼다 이거야.

덕구: 애기 해삼?

여학생 2: 해삼이 아니라 해산. 아기를 낳는거 말야.

덕구: (잘 모르면서) 응 해산.

남학생 1: “죄송스럽습니다만 아내가 만삭이 돼서...”

선생: 봐주고. (덕구, 선생을 보다가 얼른 여학생 1을 본다. 이미 옷 속에다 성가대 가운을

넣은 탓으로 여학생 1의 배가 불룩 나와 있다. 사이, 덕구의 표정에 변화가 온다. 잠시 그대로 꼼짝을 않는다) 왜 그러고 있어? (덕구, 그냥 그대고 있다.) 박 덕구. 왜?

덕구 : (눈에 눈물이 가득하고, 입술이 떨리며, 이윽고) 선생님, 요셉하구 마리아하구 너무 불쌍해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선생: 그래. 네 마음은 선생님도 아는데, 이건 연극이잖아. 그렇지? (여학생 1. 배에 넣었던 것을 꺼내 보인다. 덕구, 빙그레 웃는다) 자, 요셉 다시.

남학생 1: “죄송스럽습니다만 아내가 만삭이 돼서...”

덕구 : “글세 사정은 딱하오만, 지금 우리 집엔 손님들이 깍 찼수다. 우리 유대 사람들만 있는 줄 아슈? 노마 군인들도 있고...”

선생: ‘노마 군인들’이 아니고 ‘로마 군인들’

덕구: (발음이 잘 안된다.) “로...로마 군인들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단 말이오. 하여튼...”

선생: 봐라! 덕구 대사 다 왼 거! 아직 대본 들고 하는 놈들 창피한 줄 알아야 돼.

덕구: (화가 나서) 선생님!

선생: 왜 그래?

덕구: 나 아직 핼 거 더 있는데 애 그래요!

선생: 아, 그래 그래. 미안하다. (사이) 선생님이 미안하다고 그러잖아.(덕구, 머뭇거린다.) 또 왜 그래?

덕구: 근데...까먹었어요.

선생: “하여튼 당신네들한테 줄...”

덕구: (낚아채듯) “하여튼 당신네들한테 줄 바이 없습니다.”

남학생 1: “아내가 곧 해산을 할 것 같아서 그럽니다. 어떻게 편의를 좀 봐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덕구: “글세 기찮게 애 자꾸 이러슈?”

선생: 덕구야. ‘기찮게 애 자꾸’가 아니고 ‘귀찮게 왜 자꾸“야. ’귀‘와 ’왜‘는 중모음이니까...그래 이렇게 해봐. ’구이찮게 오애 자꾸‘ 이걸 빨리 하면 구이찮게 오애 자꾸, 귀찮게 왜 자꾸’가 되거든. 그렇게 한번 해봐.

덕구: 구이찮게 오애 자꾸.

선생: 음, 그걸 빨리 해봐.

덕구: 구이찮게 오애 자꾸.

선생: 너 그냥 원래 하던 대로 하는 게 낫겠다.

덕구: (고집스럽게) “구이찮게 오애 자꾸 이러슈. 같은 말을 몇 번이나...”

선생: 거기서 화를 내. 같은 말 자꾸 하게 만드니까 신경질 날 거 아냐.

덕구: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정말 화를 낸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바...반복해야 됩니까, 씨!”(아이들, 킥킥거리던 웃음이 왈칵 터져버린다.)

남학생 1: 선생님, 도저히 못 참겠어요.

선생: 조용히 해! 조용히 하라니까.

덕구: (남학생 1이 탁자 쪽으로 가면 쫓아가면서 큰 소리로 대사를 계속한다.) “우리 집엔 빈 바이 없습니다. 씨” (이이들 다시 폭소한다.)

선생: (무척 화가 나서) 야. 조용히 하란 말야! (사이) 덕구야. 어 거기가 잘 안 되는구나.

‘방이’하고 ‘반복’이. 넌 어떻게 ‘ㅂ’자만 골라서 못하니. 자, 선생님 따라 해봐.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됩니까.’

덕구: ‘같은 마을 몇 번이나 바...반복’

선생: (덕구의 어깨를 치며) 힘을 빼고 . ‘반복’

덕구: ‘바...반복’

선생: 그렇지. ‘우리 집엔 빈 방이 없습니다.’

덕구: ‘우리 집엔 빈 바이 없습니다.’

선생: ‘바이’ 아니고 ‘방이’

더구: ‘바이’

선생: ‘방’이라니까. ‘방’하고 ‘ㅇ’받침을 분명히 해봐.

덕구: ‘바이’

선생: (짜증스럽게) ‘방’이라니까. ‘방’! 이렇게 쉬운 말도 제대로 못하면 어떡하니! 다시해봐.

덕구: ‘우리 방엔 빈 집이...’

선생: ‘우리 집엔 빈 방이 없습니다.’

덕구: ‘우리 집엔 빈 바이...’

선생: (자제하며) 덕구야, 너 이거 할 수 있어. 해야 돼. 다시 해보자. ‘방이’

덕구: ‘바이’

선생: 어허, ‘방이’

덕구: (점점 기가 죽는다.) ‘바...바이’

선생: (화가 나서) ‘방이’

덕구: ‘바...바이...’

선생: 좋아! 됐어. 오늘 연습 끝낸다.

여학생 2: 연습 끝!

남학생 2: 야, 오늘 되게 일찍 끝났다. (여학생 3, 남학생 2의 다리를 걷어찬다.) 아!

여학생 2: 라면 먹으러 갈 사람? (여학생 3, 여학생 2의 옆구리를 꼬집는다. 사이. 남학생1과 여학생 1, 덕구에게 다가가서 격려해준다. 덕구는 히죽 웃는다.)

남학생 1: 선생님, 먼저 나가겠습니다.

여학생 1: 안녕히 계세요.

남학생 2: 내일 뵙겠습니다. (덕구를 제외하고 모두 나가기 시작한다.)

선생: 마치는 기도 안하고 가? (각기 짧게 묵도하고 퇴장한다. 그러나 여학생3과 남학생1은 나가려다가 되돌아온다.)

여학생 3: 선생님, 너무 마음쓰지 마세요.

남학생 1: 오늘도 저희가 너무 까불었습니다. (잠시 침묵.)

선생: 의자 정리 좀 하고 가거라. (남학생 1과 여학생 3, 의자를 정돈한다. 덕구가 합세한다.)

남학생 1: (정돈이 끝나자) 나가겠습니다. (인사하고 여학생 3과 같이 퇴장한다. 덕구는 갈 생각을 안하고 대사를 중얼거리고 있다. 선생, 천천히 덕구에세 다가거서 어깨를 다독거려주고 나가기 시작한다.)

덕구: 선생님, 가시는 거예요? (선생, 고개만 끄덕이고 퇴장한다.)

     안녕히 계세...가세요, 선생님. (사이) 아무도 없구나...(덕구의 이 말은 슬픈 목소리는 아니지만 공허하게 들린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바...반복해야 됩니까. 우리집엔 빈 바이 없습니다.” (덕구, 의기소침하여 그 자리에 힘 없이 주저앉는다. 침묵, 덕구는 다소 지친 듯 보인다. 덕구의 몸은 종이가 꾸겨지듯 천천히 오그란든다. 주제가의 반주가 조용하게 들린다. 조명 아주 느리게 꺼진다.)


(전환하여 무대가 밝아지면, 덕구 혼자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덕구: 글쎄, 구이찮게 오야 자꾸 이러슈.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바 반복햐야 합니까! 우리집 엔 빈 바이 없습니다. (요셉 대사를 외워서) 알겠습니다. 여보 갑시다.

하지만 저쪽 길로 돌아가믄 낡은 마구간이 하나 있을 거외...거외다. (선생, 종려나무와 베들레헴의 집들이 멀리 보이는 무대 배경 그림을 낑낑대며 들고 들어온다.)

덕구: 선생님 오셨어요?

선생: 덕구 일찍 왔구나. 나 좀 도와다오.(둘은 뒤 벽면에 배경 그림을 세운다.) 혼자, 연습하고 있었어?

덕구: 네.

선생: 저녁은 먹었니?

덕구: 네, 근데 이게 뭐예요?

선생: 음, 여관 장면에 필요한 무대 배경이야.

덕구: 나 나오는데요?

선생: 맞다.

덕구: 야, 되게 멋있다.

선생: 그래? 이래 뵈도 이게 선생님 고등학교 때 미술실기성적 ‘수’ 받은 솜씨라구.

덕구: 선생님, 그니까 이게 예수살렘이에요? (선생은 그림에 묻은 먼지를 지운다)

선생: 음, 베들레헴.

덕구: 응, 벨렘.

선생: (대사를 중얼거리며, 폼을 잡는 덕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덕구야, 연습 힘들지?

덕구: 네. (사이) 그래두 재미있어요.

선생: 그래, 계속 열심히 해보자.

덕구: 네.

선생: 너 요즘 많이 늘었어. 넌 잘 모르지? 넌 멋지게 해낼 거다. 두고 봐. 그리고 연극 끝나고 나면 그 땐 아무도 널 무시 못해. (그러나 이것은 덕구에게 하는 말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뽄때를 보여줘야 돼. 알겠니?

덕구: 네? (잘 모르면서) 네. 그런데 연극 진짜루 해는 날요. 구경 올 사람이 하나두 없는데.... 아부지가 회사에서 다른 데... 저기...

선생: 출장 가셔?

덕구: 아, 맞다. 출장.

선생: 그렇구나...(사이) 야, 걱정하지마. 우리 교회에서 박덕구 연극하는 거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한 두 명인 줄 아니? 목사님, 고등부 애들, 선생님들, 교회 어른들. 거기다가 라면가게 아주머니하고. ??슈퍼 형도 틀림없이 너 보러 올 거다. (덕구 히죽 웃는다) 참, 덕구야. 요 옆골목에 문방구 새로 생긴 데 있지? 거기 가서 테이프 좀 사오너라.

덕구: 카셋트 테프요?

선생: 아니, 그거 말고 붙이는 테이프 말야. (사이)

덕구: 아, 스캇치 테푸.

선생: 야, 너 발음 좋다. (덕구, 히죽 웃는다.) 빨리 갔다 와. (덕구, 그냥 서있다.) 응? 이런 정신 봐. 여기 있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준다.)

덕구: 다녀오겠습니다. 선생님. (덕구, 퇴장했다가 곧 다시 들어온다.) 참. 아까 성가대 선생님이 이거 주고 가셨어요. 선생님 오시면 주라구요.

선생: ‘드리라구요’

덕구: 드리라구요. (악보를 건네준다.) 다녀오겠습니다. (퇴장한다.)

선생: 됐어! 역시...(악보를 보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땡그랑 종소리가 이 세상에 울릴 때... 하늘에는 영광이. 땅 위엔 평화. 세상 사람들 모두 기쁨 넘치리. 땡그랑 종소리가 ... 기쁨.”

좋은데. 분위기가 딱 맞아. 자, 주제가는 이제 됐고, 조명은 다음 주에 빌려오기로 했고, 이제 하나 하나 돼가는데...(불현 듯 떠오르는 염려를 털어버리듯 고개를 흔들며)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 하나도 없어. 자, 자, 연출. 힘 내! (선생, 주제가를 다시 흥얼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대 어두워진다.)

덕구: (들어오면서)선생님, 누, 눈이 와요! 막 평평 와요! 야, 신난다.

선생: 그래?

덕구: 눈이 이따만해요. 근데요. 난 눈이 되게 좋아요.

선생: 나도 그래.

덕구: 선생님두요?

덕구: 선생님, 이번 크리스마스날엔 눈 많이 와 갖구요. 하이트 크리스마스가 됐음 좋겠어요. 하이트가 하얀거 맞죠? 그래 갖구요. 교회두 하얗구, 길두 하얗구,  나무두, 사람두 다 하얗게... 참, 테푸 다녀오께요. (뛰어나가며) 야, 눈 온다! (선생,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참으려고 눈을 껌벅거린다. 무대 어두워진다.)


(암전 상태에서 나팔소리. 무대 중앙에 부분 조명이 들면, 로마군인의 의상과 분장을 한 남학생 2가 서 있다.

이어지는 공연 당일의 무대 분위기는 신중하면서도 열기를 느끼게 한다. 의상, 분장, 소도구 등이 제법 규모를 갖추고 있고 대사와 동작이 연습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잘 다듬어져 있어서 그 동안의 연습량을 짐작케 한다. 무대 양옆에 마음을 조이고 있는 선생과 아이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남학생 2: (두루말이를 펴들고) “가이사 아구스도. 대로마의 위대하신 황제폐하의 칙령이다! 천하의 모든 백성은 각기 자신의 출생지로 돌아가 호적을 시행할 것이며, 모든 총독들과 분봉왕들은 통치관할지역 내의 백성들이 호적을 시행함에 있어서 한 치의 착오가 없도록 만전에 만전을 기하라. 이것은 위대하신 가이사 아구스도 황제 폐하께서 온 백성에세 베푸는 큰 은전이며, 위대한 제국 로마와 그에 속한 모든 나라들이 도약 발전하는데 있어서 또 하나의 커다란 초석이 될 것이다. 로마에 영광 있으라! 위대하신 황제폐하 만세!” (다시 나팔 소리. 조면 꺼진다.)

선생: (암전 속에서) 5장이다. 통나무 준비됐니? 덕구, 제 자리로 갔어?

덕구: 어휴, 깜깜해. 선생님, 어디에요?

선생: 거긴 객석이야! 이 쪽으로 와. 자, 됐지? 조명 스텐바이. 큐! (사이) 뭐하고 있어? 너무 지체됐단 말야. 빨리 켜. 불 키라니까.

(무대 밝아지면 여관 앞. 무대는 비어 있고 무대 옆 어둠 속에서 여학생3과 남학생2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귀 울음소리가 들리고 남학생1과 여학생1 들어온다.)

남학생 1: “여관마다 호적하러 온 사람들로 꽉 찼으니 가는 데마다 거절당할 수 밖에 없구려. 마지막으로 이 여관에 들어가 부탁해 봅시다. 이 집마저 거절당하면 이제 더 찾아볼 곳이 없소.”

여학생 1: “그래도 어딘가 우리와 아기를 위한 집이 있을 거예요.”

남학생 1: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이오. 여기가 바로 그 집이라면 얼마나 좋겠소. 주인 계십니까? 주인 계십니까!”

(여관 주인으로 분장한 덕구가 그럴듯한 표정으로 나온다. 일순 옆 무대에는 긴장이 감돈다. 그러나 덕구는 사뭇 진지하다.)

덕구: “누구시오?”

남학생 1: “빈 방 있습니까?”

덕구: “아, 빈 방이 없습니다.”

남학생 1: “죄송스럽습니다만 아내가 만삭이 돼서...” (극에 몰입된 덕구, 요셉과 마리아를 연민에 찬 눈으로 바라본다.)

덕구: “글세. 사정은 딱하오만 지금 우리 집엔 손님들이 꽉 찼수다. 우리 유대 사람들만 있는 줄 아시오? 로마군인들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단 말이오. (사이) 하여튼 당신네들한테 줄 방이... (순간 덕구, 심한 딜레마에 빠진다.) 바이...”

남학생 1: (낌새를 알아차리고 선생의 눈치를 본 다음 더욱 연극적으로) “아내가 곧 해산을 할 것 같아서 그럽니다. 어떻게 편의를 좀 봐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덕구: (그의 의식은 극과 현실의 경계를 바쁘게 오간다.) “글세 귀찮게 왜 자꾸 이러시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됩니까. 우리 집엔 빈 방이... 빈 방이... 빈 바이...

남학생 1: (위기를 벗어나려고) “그러니까 빈 방이 없단 말씀이죠? 알겠습니다. 여보, 갑시다. (힘 없이 돌아선다. 덕구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진다.)

덕구: 그치만... 여보세요. (남학생1과 여학생1,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서 버린다. 선생 불안에 휩싸인다.) 우리 집엔 바이...

선생: 덕구야! (아니라는 손짓을 한다.)

덕구: 바이 없는 거죠. 선생님?

선생: 너 잘하다가 갑자기 왜 그래? 들어와.

덕구: “방이 없습니다. 우리 집엔 빈 방이 없다구요.”

남학생 1: “알겠습니다. 여보, 갑시다.” (다시 돌아선다.)

덕구: (거의 울면서) 여보세요...

남학생1: 아이쿠! “아, 네?”

선생: 박 덕구, 들어와! 그냥 들어오란 말야!

여학생 1: (절망적으로) 쟤 왜 저러니? (즉흥적으로) “그냥 들어가세요. 저흰 다른 곳을 찾아보겠어요.”

덕구: 그게 아니구요. 우리집엔 바이...(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으로) 있긴 있는데... (선생을 돌아본다.)

선생: (거의 애원하듯) 너 왜 그래? 그게 아냐. 빨리 들어와.

덕구: (무대로 돌아서며) 바이 없대요. (여관 주인으로 겨우 돌아와서) “방이 없습니다!”

남학생1: “아, 네. 여보, 갑시다.”

(선생, 남학생 1과 여학생 1에게 빨리 퇴장하라는 손짓을 한다. 둘은 서로 서둘러 퇴장한다.)

덕구: (마침내 자제심을 잃고 울음을 터뜨리며) 요셉! 마리아! 가지 마세요! (둘을 쫓아가서) 우리 집엔 바이 있어요. 고짓말 아네요. 진짜 빈 바이 있다구요! (둘의 팔을 잡아끌며) 우리 집 가요! (이제는 아이들도 모두 자제심을 잃고 무대로 뛰어나온다.)

여학생 3: (우는 덕구를 잡고 흔들며) 덕구야.

여학생 2: 거 보세요! 덕구 시키지 말자고 했잖아요.

남학생 1: (덕구를 밀쳐버리며) 저리 비켜!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여학생 1: 몰라! 다 망쳤잖아! (울음을 터뜨린다.)

남학생 2: 이게 뭐야!

선생: (무대로 뛰어 나오며) 여러분, 죄송합니다. (무대 뒤를 향해) 조명 꺼. 조명을 끄라구! (다시 관객을 향해)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 무대를 향해) 불 끄라니까!

(스탭 한 명이 급히 가설막 줄을 잡아 당겨 막을 닫는다.)

덕구: (쓰러진 채로) 바이 있는데...

여학생 3: (덕구를 붙잡고 흔들며 운다.) 덕구야!! (무대 조명 급히 꺼지고 어둠 속에서 수라장이 된 무대의 소음과 아이들의 고함. 탄식. 울음소리가 어지럽다. 이윽고 반투명 가설막이 닫힌 무대 가운데에 조명이 들면, 엉망이 된 무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눈물 때문에 범벅이 된 분장. 저만큼 나뒹굴어 있는 여관 주인의 샌들 한 짝, 주제가가 조용하게 들려온다. 겨드랑이가 찢어진 의상)

덕구: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내가 연극을 망쳐 놨어요. 그치만 고짓말을 어떻게 해요. 우리집엔 빈 바이 있걸랑요. 아주 좋은 방은 아니지만요. 그건 하나님두 아시잖아요. 근데 어떻게 에수님을 마구간에서 나라구 그래요. 난 정말 에수님이 우리 집에서...

응, 그러니까 내 방에서 태어났으믄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정말 그런다믄 얼마나 좋겠어요. 에수님이 내 방에서 태어나실 거다! (환희에 가득차서) 얼마나 신나요. 그럼요, 난 내 방 쓸구요, 걸래 빨아 갖구 방 닦구요. 내 방 비워놨을 거에요. 난 에스님이 좋아요. 에수님을 사랑해요. 에수님이 최고에요! 에수님은 나 때메 죽으셨잖아요.

(운다. 긴 사이) 내가 연극 망쳐놔서 선생님하구 애들하구 속상해 할 거에요. 안 그랬으믄 좋겠는데... 내년에 또 하믄 안 틀리구 잘 할 수 있는데... 그치만 이젠 안 시켜 줄 거에요. (사이. 히죽 웃으며) 그래두 그게 어디에요. 한 번 해본 게. “아, 빈 바이 없습니다.!” (웃는다)

(그 사이 주제곡이 들려오면서 덕구는 계속 기도를 드린다. 그러다가 졸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쓰러져 골아 떨어진다. 창밖에 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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