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자신이 감옥에 매여 있음으로 해서 걱정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상황에 대한 설명과 격려를 빌립보 교인들에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 복음으로 인하여 감옥에 갇힌 것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음을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 성도의 교재(빌1:1-11)
이 서신의 서두는 전형적인 바울서신의 서두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수신자와 발신자가 분명히 밝혀져 있고 또 감사와 기도로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디모데를 발신자에게 포함한 이유는 무엇인가? '감독'이란 의미는 카톨릭과 감리교에서 말하는 감독의 의미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인가? '종'의 의미는 무엇인가? 바울의 빌립보 교인들을 위한 간구는 무엇인가? 여기에 나타난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간의 관계는 어떠한가?
1) 바울의 감사와 간구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 때부터 디모데는 바울의 사역에 함께 하였다. 그러므로 빌립보 교회와 오랜 교제를 가져온 디모데에 대한 언급은 빌립보 교회가 이 편지를 읽을 때 더 친근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 편지는 공동 발신임에도 불구하고 '내가'라는 일인칭 주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바울 홀로 쓴 것이다. 단지 디모데는 소식을 전한 사자에 불과하다. 종이란 노예를 의미한다. 즉 철저히 그리스도에 매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충성의 표현이다. 감독이란 의미는 오늘날 가톨릭과 감리교에서 말하는 감독의 의미와는 다르다. 만약 교회 직계가 발전되어 생긴 '감독'의 의미라고 본다면 이 편지는 몇몇 학자의 주장대로 바울이 쓴 편지가 아니라 후대에 바울의 이름을 빌어 쓴 위조 편지이다. 이 편지가 바울이 쓴 편지임에 틀림없을진대, 그 때는 아직 교회의 제도가 발달되지 못하였으므로 감독이라는 직분은 집사와는 구별되나 목사, 장로의 역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바울의 감사와 간구를 보면 선한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깨달을 수 있다. 바울은 감사와 간구를 보면 선한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깨달을 수 있다. 바울은 목자가 양을 품듯이 간구하여 감사하며(빌1:3,4,8) 복음으로 인하여 함께 동고동락하며(빌1:7), 빌립보교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장하기를 간구하고 있다.
2) 바울의 서신 내용
그리스도인의 서신 왕래는 서로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 특히 어렵고 힘든 �일수록 그 의미는 크다. 비록 현대 사회가 편지 외에 의사를 전할 수 있는 매개물이 많다 하더라도 편지는 아직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바울의 서신이 서두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며 감사하는 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겠다.
2. 오직 복음을 위하여(빌1:12-26)
비록 바울이 확신에 차 기쁨으로 이 편지를 썼다 하더라도 그는 옥에 갇힌 자이다. 그러므로 빌립보 교인들은 복음의 사역과 바울의 신변에 대해 걱정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바울은 어떠한가?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변증하는가?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는가? 바울은 진정 무엇으로 기뻐하는가?
1) 복음의 진보
이 모든 상황의 목적을 '복음의 진보'로 보고 있다. 사실 빌립보 교인들은 복음을 전하다 죄수의 몸이 된 바울의 형편을 부끄러워할 수도 있고 또 자신들도 같은 형편에 처할까 두려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시위대, 즉 간수들과 병정들 더 나아가서 법정의 모든 사람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은 것으로 만족해 하고 있으며, 또한 로마의 성도들은 성도대로 고난을 받으나 꿋꿋한 바울의 모습에 큰 용기를 얻어 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다(빌1:14). 또 다른 차원의 복음의 진보로 첫째, 착한 뜻으로 전파하는 이들로 순수한 동기로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다. 둘째로, 투기와 분쟁으로 전파하는 이들로 핸드릭슨(W.Hendriksen)은 명예, 존경의 높은 지위를 탐하는 그리스도인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통하여 바울은 복음의 진보만을 기쁘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성도들의 기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바울은 구원을 얻게 된다(빌1:25). 이를 통해 양무리들이 지도자를 위한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바울이 감옥에서 갇힌 바 되어도 이길 수 있었던 힘은 위 3가지에서 나오게 된다.
그러나 바울은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하였다. 자신은 죽든지 살든지 간에 다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는 것을 알았으나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염려하였다. 빨리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하고 싶은 욕망이 강했으나 한편으로 빌립보 교인들이 아직 영적으로 미약하였기 때문에 살아 있어야 할 당위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2) 양 떼를 위한 기도
바울의 믿음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바울은 복음 때문에 이런 고난을 받지만 믿음 가운데 꿋꿋하였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어려움도 이겨내지 못하고 짜증을 낸다. 더욱이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바울은 목자로서의 예정을 양 떼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자신을 위해 양 떼들이 기도해 주기를 원하고 있다.
3. 빌립보 교인들을 격려(빌1:27-30)
이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격려하고 있다.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1:27)는 무슨 의미인가?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한다'는 무엇을 뜻하는가? 빌1:28의 대적하는 자는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같은 싸움'은 무엇인가?
1) 함께하라
'생활하라'의 의미는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로마의 시민으로서 또한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또 바울은 공동의 적을 대항하여 복음을 위하여 함께 싸울 것을 독려하고 있다(빌1:27). 대적자들이란 빌립보의 경우 유대인들이 드물었으므로 유대인들의 대적자가 아닐 수도 있고 오히려 로마 정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유대인, 이방인 등 모든 이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빌3:2). '같은 싸움'이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받는 고난과 핍박으로 빌립보 교인들도 이미 같은 종류의 고난을 받고 있었으므로 바울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2) 복음으로 인한 고난
그리스도 인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하며 더 나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며, 그 복음을 인하여 고난을 받아도 참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오직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약속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바울은 빌고 감옥에 매여 있는 자였지만 그의 삶 전체는 복음의 진보를 위한 것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오직 복음의 진보만을 생각하는 바울은 자신의 대적자들조차도 복음의 진보에 도움이 된다면 오히려 그들로 인하여 기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