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역사서

연구 1 가나안 입성(수1-5장)

은바리라이프 2008. 4. 25. 19:43
연구 1 가나안 입성(수1-5장)
연구 1 가나안 입성(수1-5장)

출애굽 후 약 40년이 흐른 주전 1407, 1406년쯤 약 200만 명의 선민들은 여호수아를 필두로 요단을 건너 약 속의 땅 가나안에 진입하게 된다. 여호수아를 필두로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진입하게 된다. 본 서 1-5장은 가나안 땅 입성과 관련된 내용이다. 본 연구에서는 그와 같은 내용을 입성 전, 입성 과정, 입성 후의 일들로 나누어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1. 입성 전의 준비(수1,2장)

 

1장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진군할 것을 명하심과 신앙적인 위로의 내용이 그 중심이다. 선민의 가나안 땅 진격은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란 인물은 누구인가? 왜 하나님께서 그를 가나안 정복 역사의 기수로 삼으셨는가?

그리고 2장을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가 진격 준비 명령과 함께 정탐꾼을 보내게 되는데, 그 정탐꾼을 환대한 기생 라합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 여호수아에 대한 명령과 위로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였다. 말하자면 모세의 사상과 신앙으로 성화된 자이다. 그래서 수1:1에 여호수아를 가리켜 '모세의 시종' 이라고 부른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큰일을 맡기신다는 진리를 엿볼 수 있다. 그는 담대하고 용맹한 지도자의 기질을 지녔다. 물론 인간적으로도 용장의 저력을 드러내기도 했으며(신25:18), 가나안 땅 첫 정탐 때 다른 정탐꾼과는 달리 갈렙과 더불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사자후(獅子吼)를 토한 그 신앙의 담대함이 뛰어난 인물인 것이다. 이와 같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의 기수로 선택받은 것은 당연하다.

 

2) 정탐꾼과 라합의 가족

정탐꾼들은 자신들을 환대한 라합과 그 가족들에게 살려 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며, 후에 그 악속을 지켰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수아서의 윤리성을 문제삼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근거를 얻는다. 즉 가나안 사람들일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맹목적으로 '멸절'을 명하시지 않으신다.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어느 민족이든 생명의 반열에 참여하게 해주신다는 복음 진리를 여호수아서 초두에서 읽을 수 있다.

 

2. 입성의 과정(수3장)

 

3장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따에 발을 들여놓은 과정을 다뤘다. 약 200여 만 명의 선민들이 레바논 산의 눈 녹은 물과 봄비로 인해 창일하는 요단을 건너기는 불가능했다. 그와 같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이 권능이 여호수아 3장에는 어떻게 나타나 있나?

 

1) 법궤가 앞장섬

'법궤'는 하나님의 주권과 뜻과 언약이 담긴 성물이다. 그 안에는 율법을 새긴 돌판과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담겨 있다. 광야 행군 중에도 그 법궤가 가장 선두에 서 있었다.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제사장들이 멘 법궤가 가장 선두에 서 있었다. 이는 매우 상징적이다. 즉 가나안 땅이나 천국은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는 '입성 불가'라는 것을 교훈해 준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언약과 뜻 안에서만 가능하다.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권능과 언약만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세계와 우리 인간을 이어 주는 영생의 가교가 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 절대 신뢰와 순종이 요구됨

언덕까지 넘치던 요단 강물이 끊어진 것은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그 강물에 발을 들여놓은 후부터였다. 출애굽 때에는 홍해가 갈라진 후에 건넜으나 가나안 입성에서는 흐르는 강물에 발을 들여놓아야 했던 것이다. 즉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여 강물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건넜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믿음과 순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에게도 그 상황은 동일하다.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1:17)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구원 언약을 절대 확신하고 전진하는 성도만이 저 영원한 요단강을 건너 영생 천국에 입성할 수 있을 것이다.

 

3. 입성 후에 행한 일들(수4,5장)

 

4,5장은 가나안 입성 후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취한 조치에 대한 기록이다. 먼저 선민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기억하게 하려는 목적으로(수4:6,7) 돌을 모아 기념비를 세우라고 한다. 계2:17에는 그리스도께서 버가모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는 '흰 돌'을 주시겠다고 약속한다. 즉 주님의 은혜와 권능으로 늘 승리하도록 해 주신다는 뜻임을 요단 도하의 기념비에서 찾을 수 있다. 기념비를 세우고 난 후 그들이 행한 중요한 규례와 절기는 무엇인가?

 

1) 첫 할례를 행함

하나님께서는 길갈에서 지친 선민들에게 할례를 명하셨는데(수5:1,2), 할례는 더러운 육신을 벗고 새롭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 이제 가나안 땅에 진입한 선민들은 애굽과 광야에서 지녔던 옛 세계의 껍질을 벗어 던지고 명실상부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신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영혼을 할례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더 나아가 길갈에서의 할례는 궁극적으로 천국에 가서 신령한 존재로 변화될 성도들의 미래상에 대한 모형이기도 하다.

 

2) 첫 유월절을 지킴

그들을 가나안 땅에서 처음으로 거둔 곡식들로 무교병을 만들어 먹는 유월절을 지켰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동안 40여 년간 내리던 만나가 그쳤다(수5:11,12). 유월절은 그 옛날 출애굽의 시효가 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념하는 절기이다. 새로운 땅에 진입한 첫 축제로 유월절을 지켰던 것이다. 이는 천국에 가서라도 그리스도 예수의 유월절 어린양의 속죄 은혜를 잊지 못할 것임을 상징해 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기간 동안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 모세를 비방하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들을 신실하게 지키기 위해 그 백성들을 가나안에 입성시키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며,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은 경외하며 신뢰하여야 할 것이다.

연구 1 가나안 입성(수1-5장)
연구 1 가나안 입성(수1-5장)

1. 이스라엘이 가는 길(수3:1-6)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느리고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진군하던 중 첫 관문이 되는 여리고 성 가까이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먼저 해야 할 것은 요단강을 건너는 일이었다.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역경의 길이요,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지나보지 못한 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에게 이스라엘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1) 스스로를 성결케 함

우리가 길을 가면서 자신이 힘으로 모든 난관을 물리치려고 한다면 우선 우리 마음을 짓누르는 거대한 염려의 중압감에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길은 우리가 하나님의 힘을 의지할 때에만 가능한 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그런 가능한 힘을 얻게 되는 비결은 바로 우리 스스로를 성결하게 하는 일이라고 성경은 제시한다. 어떠한 난관 앞에서도 평안히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살기만 한다면 그것은 이미 확보된 승리이다. 만일 우리가 평생 처음 이 길은 가면서 거룩 되이 행하지 않고 죄를 범한다면 그 길을 다 간 후에는 열매를 거둘 수 없다. 우리가 성결하게 사는 것이 지상에서의 행복보다 더 나은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을 앞세우는 삶

이스라엘 백성은 행군시 하나님의 법궤를 항상 앞세웠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의 지도를 받을 것과 그것을 믿어 복종할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만 그치지 말고 실제로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받아들인다면 올바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신앙인이 될 수 없다. 두 번째, 하나님의 영광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기독교인들 중에는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실상은 모든 삶의 중심이 자기자신인 경향이 짙다. 시간도 물질도 조금씩 바치고 있으며, 바치는 모양만 하고 있다. 이런 행동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도 아니고 높이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지 않는 생활은 하나님의 지위를 도적질하는 악행인 줄을 아는 자가 지혜로운 자일 것이다.

 

2. 요단강 사건의 의미

우리는 수3:14-17절에 있는 이스라엘의 요단강 도하 사건에서 영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렘12:5을 보면 요단 강을 인간의 죽음으로 비유한 표현이 있다. 곧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한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라고 한 말씀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요단의 의미는 최대의 환난, 곧 죽음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에 들어가기 전에 법궤를 앞세워 행하게 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앞에 계셔서 그들의 난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진리를 보여 준다. 또한 이 진리의 영적 의미는 신자가 죽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그로 하여금 평안히 죽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것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된 사건이다. 이 기적과 관련된 제사장들의 신앙을 우리는 세심하게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곧 순종하는 신앙이다. 그들은 "요단에 들어서라" 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하여 물에 들어섰다. 이 순종은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순종은 자유를 잃은 것같이 생각되지만 사실 그것은 자유를 보호하는 방법이다.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살도록 지음받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보아서도 순종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임을 아는 사람인 만큼 그에게 순종할 때 생명과 자유 그리고 그로 인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

 

3. 할례에 대한 다양한 견해

할례가 처음 행해졌을 때의 목적은 추측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할례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이론이 개진되어 왔다. 할례는 병을 예방하고 성교가 수월하도록 하는 등의 육체적인 이유로, 또는 일반적인 위생과 건강의 목적으로 행해졌다는 이론이 있다.

이를테면 할례가 표피의 거의 치유 불가능한 중병을 예방하고, 성직자에게 합당한 전신의 절경을 촉진시키고 생식력을 높여 준다고 말한다. 이 설명은 지나치게 현학적이나 이 관습이 널리 행해졌던 점과 그것이 사춘기나 결혼의 시기와 빈번히 연관지어졌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당시 관습에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 하나의 이론은 할례가 제사의 한 의식이었다는 견해이다. 풍요와 다산의 신에게 생산력을 희생으로 드리는 제사로 일부 또는 전체를 드림으로써 사람의 희생을 대신하는 제사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견해는 생각해 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의식이 히브리인들 사이에서 제사로 간주되었던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