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The historical Books), 특히 신약 성서에서 역사서로 분류하는 책은 사도행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와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려면 사도행전 외에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을 빼놓을 수 없다. 사복음서들은 그리스도의 지상 활동과 그 생애의 역사를, 사도행전은 승천하신 수 성령과 사도들을 통해 행하신 역사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자들에 따라 신약성경의 역사서를 사도 행전과 함께 공관복음서, 제4복음서(요한복음)까지 포함시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초대교회 교부들과 성도들에게 진정한 역사서의 정경으로 인정받은 것은 의원 누가가 기록한 본 서신이며, 교회는 이 서신을 '사도들의 행전'(The Acts fo the Apostles)이라고 불렀다.
1. 역사서의 중요성
우리는 사도행전의 저자가 이미 그리스도의 역사적 전기를 기록한 누가임을 알고 있다. 즉 제3복음서로 불리는 누가복음이 그것이다. 초대교회 초기에는 본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을 한 역사서로 취급했었다. 그러다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묶어 '복음서들'(The Gospel)로 분리하고 그 외의 서신서들을 '사도서'(The Aposle)로 분류했었다. 즉 신약 성경의 바울서신과 그외 공동서신을 뜻한다. 그런데 그 사도의 서신서 대부분은 사도 바울의 저작물들이다. 따라서 교회는 사도 바울의 서신서를 정경으로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이 사도 바울의 '사도권 문제'였다. 이 문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후서를 통해 변호한 것처럼 매우 중요한 문제다. 바울은 다른 사도처럼 그리스도 예수를 직접 대면한 예도, 또 가르침을 받은 경험도, 사도로 임명된 사실도 없었다. 그와 같은 바울이 기록한 기독교의 진리와 교리가 담긴 서신서들이 과연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인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즉 그리스도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와 그리스도 교회의 내용을 기록한 서신서 사이에 큰 '구멍'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복음서와 바울서신 사이에 벌어져 있던 간격을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과 가치를 지닌다.
2. 사도행전의 기원과 명칭
사도행전을 언급하면서 이 책이 안디옥의 의사였던 누가의 저작임을 증거하는 최초의 문서가 있다. 그 문서의 명칭은 '제3복음서를 위한 반마르시온적 선언' (the Anti-Marcionite Prologue to the Third Gospel)인데 주후 150∼180년 사이의 것이다. 그 문서는 사도행전을 '사도들의 행전'이라 불렀다(The Acts fo the Apostles). 그후 2세기 말의 로마 교회에서 기인된 '거룩한 책들에 대한 무라토리 목록'(the Muratorian list of scared books)에서는 사도행전을 '모든 사도들의 행덩'(The Acts of All the Apostles)으로 부르고 있다. 그 목록에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모든 사도들의 행적은 다 한 권의 책에 기록되었다. 누가는 자신의 생전에 성취되었던 모든 사실을 자세하게 데오빌로경에게 전해 주기 위해 수집했으며, 베드로의 죽음과 로마를 떠난 사실은 생략하고 있는데, 그 때는 그는 서바나를 향하여 떠났을 것이다'라고 외어 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주후60년, 즉 사도행전이 끝나는 시점과 사도 바울의 순교 직전 기간인 주후 61∼67년경 기록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3. 사도행전 내용의 진위에 관한 문제들
1) 사도행전 내용의 사실성 여부의 논란
다수의 진보적 비평학자들은 본 역사서의 역사성이 희박한 것으로 비판해 왔다. 그 이유로는 첫째, 사도행전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들이 당시 현존했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역사 기록물을 인용하거나 의존한 흔적이 엿보인다는 점이요, 두 번째 '제3복음서'인 누가복음의 기록 연대를 예루살렘 멸망 이후인 주후 70년 이후로 보는 근거를 바탕으로 나온 이론인 바,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하기에는 너무 때가 늦었다고 보는 견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사도행전의 기적, 설교, 선교 활동의 내용은 누가가 직접 보고 목격한 것이 아니라 후대 사람들이 기독교의 전도용으로, 또는 교인의 교육용으로 꾸며 낸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혹은 누가가 사도 바울의 영향을 받아 설교한 것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역사서의 내용 자체에 대한 의심 및 순정성에 대한 비판이 그치지 않고 있다.
2) 사도행전의 사실성에 대한 증거들
그렇다면 사도행전이 누가가 쓴 것이며 그 내용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무엇인가? 먼저 요세푸스의 '고대사'(Antquities)와 중복되는 내용은 누가가 요세푸스의 기록물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두 사라밍 듣고 보고 겪은 그 시대의 사건과 사실들을 각자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다음 다른 사도들(베드로)과 관련된 기적과 같은 기사, 즉 옥에서 천사의 도움으로 나온예, 또는 여전도자 다비다를 부활시킨 예 간은 경우, 누가는 유대인 마가를 통해 들은 것을 기록했을 것이다. 그 외에 사도 바울과 다른 전도자들에 관한 사건들은 사도 바울과 다른 사람들의 회상한 내용을 기록했을 것이며, 우리라고 시작한 내용은 자신이 바울 일행과 직접 경험한 사실들을 적은 것이다. 특히 사도행전의 용어는 누가복음과 같은 혹은 더 훌륭한 희랍어로 기록 되었는데, 당시 최고의 지식층인 의사였던 누가와 어울린다. 또한 풍성한 의학 용어가 도처에서 발견되며 고급스러운 관용어구, 전문적인 항해용어 등도 발견된다.
4. 사도행전 내용의 주요 배경들
1) 기독교에 대한 옹호가 적절했던 시기
본 서는 철저하게 기독교의 근원과 그 내용과 성장의 배경을 옹호하고 변증하려는 자세로 일관되어 있다. 서두 일행부터 당시 제국의 관료였던 사람으로 추정되는 '데오빌로'(행1:1)에게 그리스도 교회를 옹호하며 알리려는 목적으로 본 서를 썼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이처럼 기독교를 로마인에게 옹호하기 적절했던 시대적 배경은 어떠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본 서의 특성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얻는 일이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대로 본 서는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주후 61년경부터 순교당안 주후 66년 기간에 기록한 것으로 추정했다. 만일 그렇다면 그 기간은 기독교를 로마 제국에 옹호하기에 적절한 시기다. 제국은 기독교에 대한 경계만 했지 적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던 시기다. 또 그 시기는 팔레스틴의 유대교 지도층들이 로마제국에 대해 빈번한 반란과 선동을 일삼던 시기다. 그러므로 본 서는 기독교인들은 선동과 폭동을 일삼은 유대교 인들과는 그 신앙의 본질과 삶의 행동이 분명하게 다른 것을 강조한다. 기독교는 결코 반사회적인 이단 종교 단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좋은 시대적인 배경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2) 로마의 고위층이 개종하기 시작했던 시기
본 서의 수신자인 데오빌로는 '하나님께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본 서의 수신자가 로마 제국의 고위 관료가 아닌 모든 성도들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원래 사본에는 분명하게 '각하'로 호칭되었다. 그러므로 수신자는 분명히 특정한 로마 제국의 고위 관료임이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본 역사서가 기록될 시기에는 기독교회와 로마 제국의 고위층이 어떤 형태로든지 긍정적인 교제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과연 그 시기는 언제인가? 그 시기를 바로 사도 바울이 수인의 신분으로 로마에 도착하여 황실 근위대의 보호를 받으며 미결수로 황실 감옥에 있으면서 전도하기 시작한 이후임이 분명하다.
본 서는 세계인들에게 기독교의 산 역사를 알리려는 목적으로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본 역사서가 없었다면 기독교의 복음 전리와 교리는 그리스도가 중심이 아니라 바울이 지어낸 전혀 새로운 종교 이론이라는 오해를 받아도 반론할 증거를 지니지 못한다.
실례로 주후 140년경 마르시온(Marcion)이라는 이단자는 누가복음과 바울서신만이 예수그리스도의 참된 계시이며 그것은 구약성경과는 전혀 무관한 새로운 종교라는 풍설을 교회에 전파했었다.
그러므로 본 역사서, 즉 사도행전은 신약성경의 '목'에 해당된다. 공관복음서와 서신서와의 역사적 배경의 간격을 메꿔 준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구약성경의 예언들과 사도 바울과 다른 사도들이 전파하는 기독교 복음진리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관된 하나님의 원대하신 구속 섭리의 행진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