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도행전

방언이 성령세례의 첫 증거로 인식

은바리라이프 2008. 4. 24. 20:59
방언이 성령세례의 첫 증거로 인식



방언을 사도행전적 역사 재현으로 믿어

중세에는 신자들의 최상 경건의 증표

믿음에 의한 구원 이후 ‘그 이상의 어떤 것’을 ‘구원의 서정’ 가운데 설정하기를 원하는 오순절 사상은 방언을 ‘그 이상의 어떤 것’의 위치에 세워 놓게 되었다. 방언이 성례세례의 첫 증거임을 성경의 기사들로부터 지지를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언이 성령세례의 ‘첫 증거’라고 믿는 믿음이 오순절교회의 특정적인 교리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오순절교회가 자신들의 연합체를 이을 수 있는 끈으로 방언에 대한 체험을 강조한 결과였다.
오순절교회는 사도행전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방언을 성령세례의 첫 증거이며, 또한 사도행전적 역사의 재현으로 믿을 수 있는, 자신들이 지닌 “근본적인 진리” 중의 하나로 보았다. 이 교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60년대의 카리스마운동 이후 점점 희미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고전적 오순절시대와 초기 오순절시대에는 중심교리로 남아 있었다.
방언에 대한 역사적인 접근을 해보면, 사도행전에 나타나고 있는 방언은 몇 가지의 형태로 파악된다.
본인이 알지 못하는 외국어를 말하는 것에 해당하는 ‘제놀랄리아’(xenolalia), 상대방이 외국어로 말할 때 듣는 사람들이 자기 나라 말로 그 내용을 알아듣는 ‘헤테로글로솔랄리아’(heteroglossolalia), 혹은 듣는 소리가 없이 들리어지는 ‘아코랄리아’(akolalia) 그리고 일반적으로 알지 못하는 언어로 발성되어지는 ‘글로솔랄리아’(glossolalia)가 있다.
‘제놀랄리아’(xenoglosslalia)에 대해서는 역사적 많은 증거들이 나타나 있다. 성 파코미우스는 배운 적이 없는 라틴어와 희랍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고 한다.
유명한 수도원장이었던 도미니그는 독일어를 말했으며, 성 콜레트는 라틴어와 독일어를, 몬테 클레어는 프랑스어를, 안젤루스 크라레누스는 희랍어를, 성 스티븐은 희랍어, 터어키어 그리고 아르메니아어를 동시에 구사했으며, 십자가의 잔은 회교도와 아랍어를, 프란시스 자비에르는 타밀어와 몰루카군도어를, 성 루이스 버트란트는 성령의 영감으로 무어인들의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 힐데가아드는 전혀 알지 못했던 라틴어로 음악, 성인전, 의학 기타의 신앙적 주제들을 기록했다고 한다.
‘헤테로글로솔랄리아’(heteroglo ssolalia), 혹은 ‘아코라리아’(akolalia)의 문헌상의 증거는 중세 후기의 발렌시아(Valencia)의 성 빈센페레르가 스페인어로 설교할 때 희랍어, 독일어, 사르디니아인, 그리고 헝가리인들이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빈센트의 전기를 쓴 란자노 역시 프랑스에 살던 영국인들이 그의 설교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파두아의 성 안토니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서반구의 인디언들은 성 루이스 버트란트의 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글로솔랄리아“(Glossolalia)는 무아경에서 알지 못하는 말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 힐데가르드의 전기 작가가 미지의 언어로 노래를 잘 불렀다고 말한다. 루도비시우스추기경은 프란시스 자비에르가 천사의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방언에 대한 초기 기록은 성경에 기록된 다른 은사들과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방언의 은사에 대하여 중세의 베데는 방언을 듣는 사람들의 귀에 알아들을 수 있는 기적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한 반면, 루터와 대립했던 에크는 사도들이 오순절 날 실제로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고 주장한다.
방언은 중세를 통과하면서 신자의 최상의 경건의 증표이며, 신적승인인 동시에 성인 추대 및 시복의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상당한 가치가 있는 기적으로 받아들여진 듯하다.
성인 추대를 위한 3가지 교서 속에서 방언은 성인 물망에 오른 사람의 경건성을 보증하는 증표들 가운데 하나로 적혀 있다. 인문주의자였던 피우스(Pius) 2세는 1455년 비아센트 페레르의 성인 추대식에서 그가 방언을 포함해서 마가복음 16장 17이하에 기록된 모든 은사들을 행했기 때문에 성인에 봉한다고 선언했다.
방언의 정당성은 방언 그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성인이 방언을 한다면 그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은사였다. 그러나 미천한 자들과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방언을 한다면 그것은 곧 마귀의 말을 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중세의 이중 잣대가 엿보이는 장면이다.
현대에 와서 파함은 방언을 성령세례의 증표로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 재림(행 1:18; 마 24:14) 직전의 거룩한 성도들의 징표로 인식했던 것이다.
파함은 자신의 벧엘신학교가 마가의 다락방이 되기를 기도했다가 마침내 방언을 얻게 된 것이다.
파함의 성경적 근거는 그의 흑인 제자였던 세이모우에게 큰 확신을 주었다. 그 확신은 세이모우가 목회 했던 로스엔젤레스의 아주사거리의 부흥기간(1906-1908) 내내 방언의 은사로 나타났다. 60년대 이래로 방언은 초교파적 카리스마운동의 분위기 속에 현재 나타나고 있던 다양한 은사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언의 위치는 오순절운동이나 그 이후에 일어난 카리스마운동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의미 공간을 차지했다.
하나님의 성회 신학자인 프랭크 매치아는 방언은 종말론적 신의 현현으로, 또한 ‘하나님 앞에서’의 언어로 생각한다. 마이클 그린은 방언을 성령세례의 ‘도무지 설명해 낼 수 없는 실재’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영에 사로잡혀’하는 발성이라고 또한 생각한다. 때문에 우리는 현대 오순절주의의 방언의 경험과 관상적 전통에서의 하나님과의 연합의 경험 사이에는 놀랄만한 연결점이 있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