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선교사/성지 자료

[이원희 목사의 성서 속 도시 이야기]

은바리라이프 2008. 4. 23. 23:33
[이원희 목사의 성서 속 도시 이야기]

페니키아 지역의 시돈과 사르밧

시돈(Sidon)은 두로 북쪽 약 40㎞ 지점. 오늘날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 남방 약48㎞ 지점의 지중해안에 있는 항구도시다. 지금은 사이다(Saida)라고 부르는 이곳을 찾아가기 위해 베이루트를 떠난 차는 지중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지중해안은 그 옛날 조선술과 무역으로 유명했던 페니키아(베니게)인들을 상기시켰다. 이들은 땅끝이라 불리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까지 무역을 확장시켰다. 차는 출발한지 1시간도 채 못돼 성경에는 수로보니게 지역으로 알려진,십자군 시대의 성채가 있는 시돈에 도착했다.

시돈은 북쪽의 곶과 내륙으로 이어지는 낮은 암석지대로 둘러싸였으며 성읍 남쪽에는 큰 만(灣)이 있다. 이 도시 뒤쪽에는 비옥한 평야가 있고 오늘날에는 오렌지 밀감 재배가 성행하고 있으며 해안으로 연결된 곳에는 절벽이 있어 도시를 보호하고 있다. 또한 남북으로 거의 연결된 항구가 있는 셈인데 앞바다에 여러 개 작은 섬이 있어 큰 파도를 자연히 막아준다. 현재 시돈 항구 북쪽에는 바다 한가운데 십자군 시대의 성채가 남아 있다. 육지에서 제방을 따라 70m 정도 걸어가 성채 위에 올라가자 오늘날 항구가 한 눈에 들어왔다.

시돈 항구는 성경에 언제나 두로와 같이 소개되기 때문에 페니키아의 쌍둥이 항구라고 부른다. 그러나 훨씬 오래 전부터 소위 두로의 어미 시돈이라고 해왔으며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시돈은 노아의 증손 시돈에 의해 건설되었다며 이 도시의 태고성을 주장한다(창 10:15∼19). 그러나 저스틴에 따르면 트로이가 멸망하기 1년 전 시돈은 바다 사람들로 불렸던 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블레셋 지역의 아스겔론에 패한 후 이들이 다시 두로를 건설했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에 꼭 한 번 두로와 시돈을 방문했는데(마 15:21,막 7:31∼37) 이때 귀신이 들려 고생하는 딸을 고쳐 달라고 애원하는 가나안 여자를 만나 그 여자의 신앙을 시험한 후 그의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었다. 또 고라신과 벳새다를 두로와 시돈에 비교하시며 두로와 시돈이 더욱 빨리 회개했을 것이라고 단정하여 말씀하셨다(마 11:21∼22,눅 10:13∼14). 그리고 바울은 가이사랴를 출발하여 로마로 호송돼가던 중 잠시 이곳에서 머무르는 동안 백부장 율리오의 선대로 친구들에게 대접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행 27:1∼3). 이를 기념하는 바울기념교회가 골목에 세워져 있다.

옛날 이곳 주민들은 주로 농업 목축업 어업 무역업에 종사했다. 지금도 어업 선단들이 이 항구를 이용하고 있다. 특히 절벽 근처에서 발견된 수많은 뿔고둥 껍질의 거대한 패총(貝塚)은 자색 염료 공업이 고대 시돈의 중요 산업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고대에 자색 염료는 이 지역 바닷가에 사는 뿔고둥을 통해 채취되었는데 약 1만개의 뿔고둥을 벗겨야 1g 정도의 염료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자색 염료는 금값보다 비싸 이집트로 수출되었다. 또 이곳에는 규석성분이 많은 모래가 있어 세계 최초로 유리를 만드는 기술이 발명돼 유리제품 수출로 번영을 누렸다. 이는 모세가 ‘바다의 풍부한 것,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신 33:19)라는 스불론 지파에 대한 축복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을 할당받은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되지 못하고 이 지역에 살던 가나안 족속과 함께 살았다고 사사기 1장 31절에 기록되었다.

시돈에서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왼쪽으로 사르밧이 산 중턱으로 자리잡고 있다(왕상 17:9). 시간이 허락지 않아 현장까지 가지는 못했으나 다행스럽게 사르밧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게 돼 사르밧 전경을 여유있게 볼 수 있었다.

사르밧은 지중해 북쪽,오늘날 레바논 해안 항구인 시돈 남쪽에 있는 소도시다. 옛 이름이 사르밧이었던 것을 헬라인들은 사라판드라고 불렀다. 이곳은 선지자 엘리야가 아합왕 때 이방신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아 비가 오지 않는 3년반 동안 한 과부의 집에서 신세를 진 곳이다. 당시 이곳의 과부는 가난하여 굶주린 상태였으나 엘리야를 공궤한 인연이 있었다. 엘리야가 표적을 행하여 가루통과 기름병에서 가루와 기름이 계속 나오게 하는 기적을 베풀어 이곳 과부의 생활을 해결해 주었다. 그후 엘리야는 병들어 죽은 과부의 아들을 다시 살려주었다(왕상 17:1∼24).

베니게지역 교통요충지 두로

두로(티레·Tyre)는 예루살렘 서북쪽 약 226㎞ 지점,악고 북쪽 약 45㎞ 지점,레바논의 시돈에서는 남쪽으로 약 40㎞ 떨어진 곳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오늘날 이스라엘 국경에서는 불과 20㎞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이지만 이스라엘에서 레바논으로 넘어가는 국경이 없어 레바논의 베이루트를 거치거나 요르단을 통해 들어가야만 한다.

나는 항공편으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도착하여 하루를 묵은 후 지중해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갔다. 40㎞쯤 달리자 시돈이 나타났고 다시 5㎞쯤 달려가자 내륙쪽으로 막두세의 만타라 동굴이 있는 산위에 세워진 성당이 보였다.

현지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곳은 예수께서 수로보니게(두로와 시돈 지역) 지역을 방문하여 한 여인의 귀신 들린 어린 딸을 고쳐 주셨는데(막 7:24∼30) 그때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을 따라왔다가 이 동굴에 머물렀다. 두로로 내려가는 길에 잠시 이곳에 올라와보니 거대한 마리아상이 세워져 있었다. 높은 산꼭대기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니 그 옛날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했던 베니게의 유명한 상인들이 생각났다. 곧바로 사진을 찍고 다시 남쪽에 있는 사르밧을 거쳐 두로로 향했다.

두로에서 불과 6㎞ 떨어진 곳에 카브르 히람이라 부르는 두로 왕 히람의 석관이 길가에 놓여 있었다. 비록 알아주는 이 없이 쓸쓸히 석관만 남아있었으나 그 옛날 다윗 왕과 절친했던 히람은 다윗이 죽은 후에도 성전을 건축하는 솔로몬에게 인력과 백향목을 보내준 두로의 왕이었다. 잠시 히람의 석관을 촬영한 뒤 곧 두로에 도착했다.

아직까지 사자의 도시로 불리는 두로의 로마 유적지에는 오늘날 공설운동장과 같은 히포드럼이 솔로몬 때 건설된 아치형의 수로 유적 옆에 남아있다. 지금은 현대 건물들로 인해 항구에서 내륙으로 들어오는 길이 막혀 있으나 옛날에는 항구로 가는 길이 돌로 포장되어 있었다. 로마 유적지를 둘러보고 옛 항구로 갔다.

두로왕 히람이 건설했다는 해안가의 유적지에 도착하자 유적지 너머로 지중해의 수평선이 펼쳐졌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자 아직도 원주 기둥들이 상당히 남아있고 발굴해놓은 유적들이 그 옛날 두로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베니게 최남단에 자리잡고 있는 성서의 도시 두로는 오늘날 반도에 위치한 수르를 가리킨다. 처음에는 팔레스타인 본토와 맞은편 섬에 두로 성읍이 있었으나 오랜 세월동안 토사가 쌓여 지금은 반도로 바뀌었다. 본래 이 둘을 합해서 두로라고 했으나 두로의 중심 성읍은 섬에 있는 것이다(겔 28:2).

이 섬의 옛 항구는 남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방파제가 수면 밑 15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이 방파제는 히람왕(솔로몬 왕과 동시대)에 의하여 BC 10세기에 축조되었다. 길이가 897m이고 너비가 9.8m이다. 두로는 메소포타미아 아라비아 소아시아 이집트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이자 중심 무역항이었다.

두로인들은 해상무역을 통해 부요해지자 국방을 강화하고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다(겔 27:25 참조). 그리고 두로 왕 히람은 백향목과 함께 목수와 석공들을 보내 다윗이 왕궁을 짓는 데 협조했으며(삼하 5:11) 솔로몬 왕 때에는 레바논산에서 벌채한 백향목을 뗏목으로 만들어 지중해 남쪽에 있는 욥바로 보내 성전 건축을 도왔다(왕상 5:10).

그러나 이런 두로도 “부귀 영화가 한여름 밤의 꿈같이 물속에 잠기고 그물 말리는 한적한 어촌이 되리라”(겔 26:14)는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대로 옛 항구터에는 바닷물만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바벨론이 유다를 멸망시킨 때 비참한 종말을 맞고 무역의 왕자 자리를 시돈에 내주었다. 이후 느헤미야 시대에 다시 회복되었으나(느 13:16) 7개월 동안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함락됐다.

신약과 관련하여 예수님께서 꼭 한번 두로와 시돈 지경에 들렸으며 이때 귀신 들린 이곳 여인의 딸을 고쳐주셨다(마 15:21∼28). 또 두로 지방인들은 교만한 헤롯에게 아첨했다(행 12:20∼25). 그리고 바울이 제자들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곳도 이곳이다(행 21:3∼4).

베니게 지역의 히람 왕이 세운 무역의 도시 두로. 그러나 오늘날 부의 상징이었던 옛 항구터는 사라지고 바닷물만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부로 인한 사치와 환락의 도시 두로는 이렇게 사라지고 아직까지도 레바논의 영화는 오지 않고 있다.

그발(오늘날 비블로스)

현재 비블로스라고 불리는 그발(Gebal·수13:5,왕상5:18)은 성경에 여호수아가 정복하지 못한 땅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곳은 시돈과 두로(티레)와 함께 베니게(페니키아)의 3대 도시국가 중 하나였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북쪽 40㎞ 지점의 지중해변에 있는 도시로 지금은 레바네세 마을과 인접해 있다. 지베일로 불리는 이곳은 바벨론 당시에는 구블라(Gubla)로 알려졌고 그리스인들은 종이 원료인 파피루스를 많이 수출하는 곳이라고 해서 그리스어로 종이 혹은 책을 뜻하는 비블리온이라고 불렀다. 후에 비블리온이란 말은 책 중의 책을 의미하는 바이블이라는 단어로 바뀌게 되었다.

베이루트에서 출발하여 그발로 가다보면 칼브(Kalb) 강을 지나게 되는데 뜻이 개 강(Dog River)이다. 그러나 강이라기보다는 작은 시내에 불과하다. 이 강 상류에는 자이타 종유굴이 있는데 길이가 1.5㎞나 되며 레바논에서 자랑하는 관광자원 중 하나이다. 그래서 가는 길에 들러보기로 했다. 강을 따라 올라가다가 강에서 1㎞ 정도 떨어진 종유굴에 도착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개방하지 않고 있었다. 알고 보니 우기 때는 굴 내부에 있는 호수의 수위가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주위의 레바논 산맥을 바라보며 지중해변으로 내려와 다시 해안을 따라 북진하여 그발에 도착했다.

그발은 BC 4000년초에 애굽과 접촉했으며 BC 2800년께 애굽의 식민지가 되어 레바논의 삼나무를 애굽에 제공했다. 그리고 BC 1200년께 애굽의 라암셋 2세 때에는 애굽의 가나안성을 지키는 국경 요새 역할을 했으나 BC 1194년 애굽을 향해 진격하던 해양인(Sea Peoples·바다 사람들)들에게 파괴되었다.

이 해양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여 성경에 나오는 블레셋이 되었는데 오늘날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은 블레셋을 뜻하는 헬라어 팔라이스티네(Palaistine)를 라틴어로 옮긴 것이다. 아마르나(Amarna) 서판에도 그발로 언급된 이곳은 1921년 피에르 몽테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어 고대 성벽과 화려한 신전 유적이 드러났다.

특히 이곳에서 발견된 아히림(Ahirim) 석관에는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 자음이 새겨져 있다. 그발은 가나안에 입주한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죽기 전까지 정복하지 못한 땅으로 언급되었다(수 13:5). 그발인은 건축가와 선원으로 유명했다(왕상 5:18,겔 27:9). 솔로몬 당시 이곳 사람들은 성전 건축을 위해 돌을 다듬었다(왕상 5:18).

그발에 도착해서 맨 먼저 십자군 때 건축된 성채로 올라갔다. 석재산업이 발달한 도시답게 돌을 많이 사용하여 성채를 쌓았다. 성채 위에 올라서자 그발 유적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지중해가 펼쳐져 있었다. 성채에서 내려와 물저장소를 살펴보니 규모가 생각보다 매우 컸다. 다른 항구처럼 이곳도 물이 부족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물저장소 옆에는 아주 작은 규모의 야외극장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유적은 오벨리스크 신전이라 불리는 바알 신전터이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그발은 바알 신앙의 최고의 신 엘(El)이 처음 세운 도시로 나타나며 남쪽에 있는 성경의 두로는 헤라클레스가 세웠다고 전한다. 이곳에 있는 바알 신전터는 BC 19∼16세기께 베니게인들이 섬겼던 곳이다. 바알은 가나안인의 주신이며 신들의 아비인 엘의 후손이다. 베니게와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을 농업신으로 섬겼다. 바알의 의미는 주인 소유자 남편 등이다. 후에 바알신 숭배는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에까지 널리 확산되어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경고와 징계를 받았다. 특히 아합왕의 왕후인 이세벨은 베니게 출신으로 바알 숭배를 이스라엘에 확산시킨 장본인이다.

유적지에서 내려와 옛 상가 유적지를 복원하여 기념품을 파는 고풍스러운 상점거리를 지나 항구에 도착했다. 옛 그발의 항구는 오늘날 항구 바로 옆에 있다. 옛 항구터에는 아무런 항구 시설 없이 검푸른 파도만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바알 신앙의 최고신인 엘이 처음 세운 도시,파피루스 수출로 유명했던 비블리온,그러나 그 이름에서 바이블이란 이름이 나온 성경 속의 도시 그발. 지명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