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아 우르의 데라
창세기 1장은 인류의 역사를 설명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온 인류의 조상입니다. 창세기 12장은 신앙의 역사를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인류의 조상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오늘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는 아브라함의 가족이 어떻게 고향을 떠나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데라였습니다. 데라는 70세에 세 아들을 나았습니다.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입니다. 이들은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지금 이라크의 바그다드 남동쪽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이방문화가 번성한 곳입니다.
아마도 데라도 이런 이방문화에 깊숙이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에 보면 여호수아는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데라는 우상을 섬기며, 그 문화에 깊숙이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데라의 가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아브람의 아내 사라가 임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장 30절에 보면 “사라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방문화의 핵심에는 풍요와 다산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임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라는 여기에서 이방문화의 근본문제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비옥한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생산능력도 없는 문화라고 말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매우 비옥한 땅입니다. 그런데 그 비옥한 땅에서 아무런 생산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방문화의 본질입니다. 겉으로는 화려합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 보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런 땅은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데라의 결심
그래서 데라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땅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그가 목적지로 정한 땅은 가나안이었습니다. 11장 31, 3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라함과 하란의 아들 롯과 그 자부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리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서는 거기 거하였더니 데라는 이백 오십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데라가 정한 목적지는 가나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당시 갈대아 우르는 문명의 중심지였습니다. 가나안은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땅입니다. 데라는 그러나 갈대아 우르의 한계를 알았습니다. 그곳은 겉만 번지르 하지 실지로는 불임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가나안으로 가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둘째, 갈대아 우르를 떠난 사람들은 사실은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데라의 가족 중, 아마도 나홀의 가족은 별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가족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래는 아기가 없었습니다. 하란의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란은 일찍이 죽고, 그의 아들 롯만 남았습니다. 그러니 갈대아 우르를 떠난 사람은 임신 못하는 “돌 여인” 사래와 부모 없는 롯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별 문제를 느끼지 않고, 그냥 갈대아 우리에서 살던 나홀에 대해서 그 다음에는 아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갈대아 우르를 눈물을 흘리며 떠난 아브라함과 사래는 믿음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문제를 당합니다. 하지만 그 문제 때문에 우리는 역사에 이름이 남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묘미입니다.
다시 가나안을 향하여
데라는 목적지는 정하고, 출발은 했지만 목적지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데라의 목적지는 가나안인데 데라는 하란 땅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목적을 세웁니다. 하지만 목적지에 이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데라는 가나안 땅에 간다고 출발하고 중간지 하란에서 인생을 마쳐 버렸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서 포기하고 만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데라가 하란에서 죽은 다음에 아브라함은 중대한 결단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가려고 했던 목적을 향하여 계속 가야할 것인지, 아니면 하란에서 그냥 자리 잡고 살아야 할 것인지 결단해야 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아마도 아브라함의 가족은 하란에서 오래 동안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 집도 장만했을지 모릅니다. 재산도 늘었을 것입니다. 하란에서 어느 정도 유지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의 목적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주저 않고 맙니다.
이런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1절의 말씀을 읽어 봅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데라가 시작했던 길을 다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데라의 출발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이 길을 계속 가라고 하는 명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향하여 출발한 것이지 하란을 향하여 출발한 것은 아닙니다. 하란이 중간지점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적지는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간지점을 목적지로 생각합니다. 중간 쯤 와서는 목적지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가정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습니다. 그 가정의 제일 중요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식이 없는 것 아닙니까? 하란에서 재산을 모았는지 모릅니다. 생활이 안정되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가정에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그의 문제는 남아있습니다.
일생동안 자신의 목표를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목표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에 우리교회에 주신 목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우리 교회의 이름은 조은교회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교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여러 가지로 부족합니다. 우리교회가 어려움에 처할 때 마다 우리가 좋은 교회를 만들어 보려고 하는 꿈이 흔들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원래의 목적을 다시금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 꿈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원래의 목적지가 무엇인지 알려 주었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의 아버지에게 주신 비젼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하게는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이것을 분명하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때 우리의 신앙이 한 단계씩 성장합니다.
축복의 약속
하나님의 명령에는 항상 분명한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목표에는 분명히 상급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명령만 보이고, 축복은 보이지 않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목표만 보이고 상급은 보이지 않습니다. 축복이 크게 보이고, 상급이 크게 보이는 사람은 매일 매일 목표를 향하여 나갑니다.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 축복을 주셨습니다. 첫째,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축복입니다. 지금 사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래에게 하나님은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가족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자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식문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업의 성공도, 직장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자식의 성공보다 못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식의 성공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 둘째가 점심을 재대로 먹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점심때 학교에서 다락방 모임을 갖는데, 성경묵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집이 신앙의 집이라는 것이 너무 좋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너무 좋았습니다. 믿음 안에서 자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름을 창대케 한다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을 오늘의 용어로 말한다면 삶의 의미를 갖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보람을 먹고 살아갑니다. 매일 책망을 듣고 살아가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없으면 그 공동체가 흔들리는 사람은 매우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이 약속은 100%로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온 세상이 아브라함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창대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보람을 갖고 살아갑니다. 저는 종종 우리교회 민집사님 가족을 보면서 헌신을 재 다짐합니다. 오직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부부가 함께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그 가정의 이름을 창대케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셋째,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입니다. 축복의 절정은 그 사람을 인해서 다른 사람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진짜 부자는 그 부자를 통해서 다른 사람도 부자가 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진짜 지도자는 그 지도자를 통해서 다른 사람도 지도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온 세상이 복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저의 간절한 소원은 저를 통해서 제 제자들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제 제자들 가운데서 위대한 학자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제 제자들 가운데서 위대한 목회자도 나오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교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복을 받는다면 우리교회는 복받은 교회입니다.
아브라함의 결단
하나님은 축복의 약속과 함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 곧 가나안으로 가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명령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하였을까요? 4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그 나이 칠십 오 세였더라.”
저는 여기에서 “그의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는 말씀이 눈에 뜨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칠십 오세 이상인 분이 계십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간 나이가 칠십 오세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바로 그 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2003년을 마치고, 2004년을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은 이제 내 나이가 이렇게 많으니 이제 별수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들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에 새롭게 시작합니다. 여러분! 2004년 하나님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2004년을 젊음으로 맞이하는 분들에게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소유하게 됩니다. 명령과 축복은 같이 온다는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004년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을 향하여 나가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창세기 1장은 인류의 역사를 설명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온 인류의 조상입니다. 창세기 12장은 신앙의 역사를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인류의 조상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오늘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는 아브라함의 가족이 어떻게 고향을 떠나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데라였습니다. 데라는 70세에 세 아들을 나았습니다.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입니다. 이들은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지금 이라크의 바그다드 남동쪽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이방문화가 번성한 곳입니다.
아마도 데라도 이런 이방문화에 깊숙이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에 보면 여호수아는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데라는 우상을 섬기며, 그 문화에 깊숙이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데라의 가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아브람의 아내 사라가 임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장 30절에 보면 “사라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방문화의 핵심에는 풍요와 다산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임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라는 여기에서 이방문화의 근본문제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비옥한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생산능력도 없는 문화라고 말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매우 비옥한 땅입니다. 그런데 그 비옥한 땅에서 아무런 생산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방문화의 본질입니다. 겉으로는 화려합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 보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런 땅은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데라의 결심
그래서 데라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땅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그가 목적지로 정한 땅은 가나안이었습니다. 11장 31, 3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라함과 하란의 아들 롯과 그 자부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리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서는 거기 거하였더니 데라는 이백 오십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데라가 정한 목적지는 가나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당시 갈대아 우르는 문명의 중심지였습니다. 가나안은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땅입니다. 데라는 그러나 갈대아 우르의 한계를 알았습니다. 그곳은 겉만 번지르 하지 실지로는 불임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가나안으로 가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둘째, 갈대아 우르를 떠난 사람들은 사실은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데라의 가족 중, 아마도 나홀의 가족은 별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가족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래는 아기가 없었습니다. 하란의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란은 일찍이 죽고, 그의 아들 롯만 남았습니다. 그러니 갈대아 우르를 떠난 사람은 임신 못하는 “돌 여인” 사래와 부모 없는 롯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별 문제를 느끼지 않고, 그냥 갈대아 우리에서 살던 나홀에 대해서 그 다음에는 아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갈대아 우르를 눈물을 흘리며 떠난 아브라함과 사래는 믿음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문제를 당합니다. 하지만 그 문제 때문에 우리는 역사에 이름이 남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묘미입니다.
다시 가나안을 향하여
데라는 목적지는 정하고, 출발은 했지만 목적지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데라의 목적지는 가나안인데 데라는 하란 땅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목적을 세웁니다. 하지만 목적지에 이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데라는 가나안 땅에 간다고 출발하고 중간지 하란에서 인생을 마쳐 버렸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서 포기하고 만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데라가 하란에서 죽은 다음에 아브라함은 중대한 결단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가려고 했던 목적을 향하여 계속 가야할 것인지, 아니면 하란에서 그냥 자리 잡고 살아야 할 것인지 결단해야 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아마도 아브라함의 가족은 하란에서 오래 동안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 집도 장만했을지 모릅니다. 재산도 늘었을 것입니다. 하란에서 어느 정도 유지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의 목적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주저 않고 맙니다.
이런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1절의 말씀을 읽어 봅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데라가 시작했던 길을 다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데라의 출발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이 길을 계속 가라고 하는 명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향하여 출발한 것이지 하란을 향하여 출발한 것은 아닙니다. 하란이 중간지점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적지는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간지점을 목적지로 생각합니다. 중간 쯤 와서는 목적지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가정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습니다. 그 가정의 제일 중요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식이 없는 것 아닙니까? 하란에서 재산을 모았는지 모릅니다. 생활이 안정되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가정에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그의 문제는 남아있습니다.
일생동안 자신의 목표를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목표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에 우리교회에 주신 목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우리 교회의 이름은 조은교회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교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여러 가지로 부족합니다. 우리교회가 어려움에 처할 때 마다 우리가 좋은 교회를 만들어 보려고 하는 꿈이 흔들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원래의 목적을 다시금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 꿈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원래의 목적지가 무엇인지 알려 주었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의 아버지에게 주신 비젼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하게는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이것을 분명하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때 우리의 신앙이 한 단계씩 성장합니다.
축복의 약속
하나님의 명령에는 항상 분명한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목표에는 분명히 상급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명령만 보이고, 축복은 보이지 않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목표만 보이고 상급은 보이지 않습니다. 축복이 크게 보이고, 상급이 크게 보이는 사람은 매일 매일 목표를 향하여 나갑니다.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 축복을 주셨습니다. 첫째,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축복입니다. 지금 사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래에게 하나님은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가족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자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식문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업의 성공도, 직장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자식의 성공보다 못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식의 성공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 둘째가 점심을 재대로 먹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점심때 학교에서 다락방 모임을 갖는데, 성경묵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집이 신앙의 집이라는 것이 너무 좋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너무 좋았습니다. 믿음 안에서 자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름을 창대케 한다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을 오늘의 용어로 말한다면 삶의 의미를 갖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보람을 먹고 살아갑니다. 매일 책망을 듣고 살아가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없으면 그 공동체가 흔들리는 사람은 매우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이 약속은 100%로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온 세상이 아브라함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창대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보람을 갖고 살아갑니다. 저는 종종 우리교회 민집사님 가족을 보면서 헌신을 재 다짐합니다. 오직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부부가 함께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그 가정의 이름을 창대케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셋째,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입니다. 축복의 절정은 그 사람을 인해서 다른 사람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진짜 부자는 그 부자를 통해서 다른 사람도 부자가 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진짜 지도자는 그 지도자를 통해서 다른 사람도 지도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온 세상이 복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저의 간절한 소원은 저를 통해서 제 제자들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제 제자들 가운데서 위대한 학자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제 제자들 가운데서 위대한 목회자도 나오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교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복을 받는다면 우리교회는 복받은 교회입니다.
아브라함의 결단
하나님은 축복의 약속과 함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 곧 가나안으로 가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명령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하였을까요? 4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그 나이 칠십 오 세였더라.”
저는 여기에서 “그의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는 말씀이 눈에 뜨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칠십 오세 이상인 분이 계십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간 나이가 칠십 오세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바로 그 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2003년을 마치고, 2004년을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은 이제 내 나이가 이렇게 많으니 이제 별수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들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에 새롭게 시작합니다. 여러분! 2004년 하나님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2004년을 젊음으로 맞이하는 분들에게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소유하게 됩니다. 명령과 축복은 같이 온다는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004년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을 향하여 나가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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