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데라의 하란행
비행기를 처음 타고 태평양을 건너고 있을 때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날따라 기체(氣體)의 요동이 심했다. 자리에 앉아 있노라니 별생각이 다들었다. 사랑하는 마누라와 토끼같은 새끼들을 따로 두고 유학의 길에 들어서 가보지도 못하고 공중에서 낙하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 아브라함의 긴 여정이 머리를 스쳤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이렇게 불안한 여행을 하는데 옛날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데라의 후예로 태어난 아브라함은 아버지를 따라 바벨론의 우르(Ur)를 떠나 지금의 터어키 지방의 하란으로 이주한다. 이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동행한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직까지 잉태하지 못해 자식이 없었다(창 11:27-30). 데라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 하란에서 죽는다(창 11:31-32). 어떤 사람은 창세기의 태고사가 여기서 끝난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 창세기 12장은 11장의 마지막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이전 이야기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를 따라 단순히 여행길에 접어든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창세기 12:1은 야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직접 명령하신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 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 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 라.
아브라함의 원래 고향은 유프라테스강 하류에 위치한 우르였다.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나긴 여행길에 오른다. 1960년대 까지 맹위를 떨쳤던 성서고고학(聖書考古學)은 기원전 19세기경에 셈족계통인 아모리인의 대이동이 있었다는 예를 들면서 아브라함이 그들과 함께 이주하면서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것으로 추론하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성서와 고고학의 독립적인 역활을 주장하는 팔레스타인-시리아 고고학파들은 아브라함과 셈족의 이동을 분리시킨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역사적 증거물로 입증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과연 실존했던 인물인가? 이에 대한 찬반의 논란은 계속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아브라함의 실존성을 인정하는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족장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아예 왕조시대부터 전개한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아브라함의 실존성에 있지 않고 그의 삶의 여정에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조상이 한 때 떠돌이 생활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신 26:5). 유목생활에서 가나안의 농경생활로 접어든 이스라엘은 왕국을 형성하면서 자기들의 역사를 재건했다. 이 때 그들의 실질적인 조상으로 기억된 사람이 아브라함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랬듯이 우리 역시 아브라함을 통해 삶의 지혜와 가르침을 얻는다.
아브라함이 자기 고향 바벨론을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하게 된 동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성서의 기록대로 그의 결심은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 뿐이었다. 나이 칠십 오세에 그렇게도 먼 여행을 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것이었다. 여행 중에 발생하는 위험요소가 언제 그들을 위협할지 모른다. 건강이 문제될 수도 있다. 그의 곁에는 조카 롯과 석녀된 사라만이 있을 뿐이다. 어떤 희망으로 고향을 떠나 먼 타향으로 이주하게 되었는가? 사실 가나안은 바벨론 지역보다 살기 좋은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척박한 땅과 작은 구릉형태의 산지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으며 관개용수시설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황량한 곳이었다. 농사짓기에 적합한 땅도 발견되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볼 때 가나안 땅은 소위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 아니었다. 이런 악조건에 뛰어든 아브라함의 속셈은 무엇일까? 그는 우리처럼 복잡하지 않다. 그저 단순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것이다. 거기에 어떤 이유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명령에 인생을 거는 것이다.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을 가리켜 믿음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 3. 이집트로 내려간 아브라함
가나안에 이른 아브라함이 첫번째로 한 일은 그곳에 야훼의 제단(祭壇)을 쌓는 일이었다(창 12:7). 야훼께 의지하며 계속 남방으로 이동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에서 우리는 개척자상을 그리게 된다. 영국의 청교도들 역시 신대륙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아브라함의 삶을 연상했으리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가는 그 모습은 위험하다기 보다는 거룩한 것이었다. 먹을 것, 입을 것, 농사지을 땅 한마지기 없는 곳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도 일제가 지배하는 고국을 떠나 간도로 이주한 우리 동포들의 마음도 이와 유사했으리라. 오직 신의 뜻에 따라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정신은 인간이 고난에 처할 때 발휘되는 고귀한 역동성이다.
그러나 이런 신앙도 영원한 것이 못되나 보다. 가나안에 당도한 아브라함의 가족에게 내려진 선물은 비옥한 토지와 보기좋은 실과가 아니라 기근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 이집트로 내려가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어느덧 하나님의 약속을 잊은듯 했다. 인간은 역시 환경의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나보다. 이집트로 내려간 아브라함은 큰 고민거리가 생겼다. 사라가 너무 아름다운 것이 탈이었다. 이집트 사람들이 사라의 아름다움을 탐내어 자기를 죽이고 사라를 빼앗아 가면 큰일이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불러 자기의 처지를 설명한다. 이집트에 머무르는 동안 아내라고 말하지 말고 누이로 행세해 달라는 것이다. 사라는 무언(silence)으로 동의하게 되고, 이집트 왕 파라오의 왕궁으로 불려들어가 일시적이나마 그의 아내가 된다(창 12:19). 그 대가로 아브라함은 많은 선물을 얻게 되고 생명을 보존하게 된다. 하지만 야훼 하나님은 이것을 그냥 넘기지 않으신다. 남의 아내를 취한 파라오는 큰 재앙을 겪게 되고 아브라함의 가족은 다시 재회한다는 이야기가 창세기 12장의 후반부를 차지하고 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모양이 어떤가? 우리가 생각할 때 그는 비겁자요 아무리 나이가 들어서 힘이 없다고 이해한들 자기 아내하나 지키지 못한 겁쟁이임에 분명하다. 그에 반해 석녀 사라는 어떤가. 남편을 탓하기는 커녕 아무 말없이 남편을 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모든 수욕은 혼자 감당해내야 한다. 사라도 이미 할머니의 나이가 되었을 텐데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이집트의 왕이 그녀를 탐했을까? 이야기꾼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를 잠시 잊은듯 하다. 아브라함이 기근으로 이집트에 내려갔다는 사실과 위기에 처했을 때 사라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이 부각된다. 사라가 예쁘다는 것은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필수적이었던 같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와 야곱의 아내 라헬도 예뻣다고 기록된 것을 보면 아브라함의 가족은 예쁜 여인들로 가득찾나 보다.
문제는 이야기를 전하는 성서설화자의 의도가 우리의 관심과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대로 모든 어려움을 물리치고 가나안에 당도한 아브라함도 자연의 재해인 기근을 피하기 힘들었으며, 생명의 위협 앞에서 약해질 수 밖에 없는 평범한 한 인물에 불과하다. 아브라함의 모습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한 때 신앙심이 돈독하여 태산이라도 옮길 것 같더니 그것이 이내 식어서 눈앞에 닥친 재난에 이성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 모두는 약해질 수 있는 실존적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긍정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 의롭기 때문이 아니요 아브라함처럼 변덕이 많고 연약하기 때문에 사랑하신다. 아브라함은 그러기에 하나님께 기댈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을 통해 자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4.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아브라함
아내의 미모때문에 위기를 맞게되는 이야기가 두번 더 반복된다. 창세기 20장에서 아브라함은 그랄지방에서 기거할 때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소개한다. 그랑 왕 아비멜렉은 사라의 미모를 탐하여 그녀를 취했으나 하나님의 현몽으로 사라를 범하지 않고 아브라함에게 다시 돌려준다. 그랄왕이 자기를 속인 이유를 묻자 아브라함은 생명이 위태할까봐 그랬노라고 해명하면서도 사실 사라가 자신의 이복누이라고 말한다(창 20:12). 어떤 사람은 당시 허리안 족의 결혼풍습을 들어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사실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사라는 실제적으로 아브라함의 이복누이였을까? 그렇다면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은 이집트 왕에게 왜 이복누이라고 해명하지 않았는가?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답지 않게 아내를 누이라고 속임으로써 후손들에게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성서기자는 이것을 해명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때와 장소를 달리해서 아브라함을 변호하고 사라의 안전한 모습을 성서독자에게 심어 주고자 했을 것이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고 했던가? 아버지를 따라 이삭도 자기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인 사건이 발생한다. 창세기 26장은 이삭이 흉년이 들자 그랄땅에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아비멜렉은 이삭과 리브가가 껴안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보고난 후에 왜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였느냐고 항의한다. 리브가의 미모에 반한 블레셋 왕은 그녀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고 있던 터였다. 이삭은 리브가를 더 이상 이복 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껴 그러한 거짓을 자행했노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이삭과 리브가의 이야기는 분명히 시대착오적인(anachronic) 기록이다. 기원전 18세기경에 이삭이 살았다면 그 때는 블레셋 족속이 지구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을 때다. 지중해를 거점으로 팔레스타인의 해안지방을 공략한 블레셋 민족은 철기문명을 소유한 강력한 힘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이스라엘의 왕국형성 시기에 그 활동이 절정에 달했다. 기원전 13세기 어간에 활동을 시작한 블레셋에 대한 언급이 이삭이야기에 삽입된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 이야기가 후대의 문필가에 의해 가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이 아내때문에 겪은 이야기는 모두 별개의 사건일까? 그런 일이 한번도 아니고 세번씩이나 일어날 수 있는가? 그 당시의 상황에서 그러한 현상은 흔히 발견되는 보편적인 현상인가? 이것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학자들은 말하기를 이 세 이야기는 원래 하나였단다. 그것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전래되었다가 성서기자에 의해 수집정리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아리랑이 전래된 과정과 유사하다. 최초의 아리랑은 하나였을 것이다. 그것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여러 지방에 퍼지게 되고 그 지방의 정서에 따라 적절한 변형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 등으로 전승되었을 것이다.
창세기의 소위 아내-누이 일화(episode)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간결한 진행구조를 따르고 있는 창세기 12장일 것이다. 그 이야기가 확장되고 변형된 것이 이어지는 두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성서를 읽는 독자에게는 세 이야기가 모두 개별적인 사건으로 인식된다.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시간과 장소를 달리해서 두 사건이 일어나며, 나머지 한 사건도 시간적인 격차를 두고 일어난 사건이기에 독자는 세 사건을 분석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며 각기 새롭게 발생한 사건으로 인식한다. 성서학자들은 그러나 히브리성서가 어떤 한 사람에 의해 독립적인 사건이 질서정연하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여러 이야기들이 오랜 구전과정(口傳過程)을 통해 전래된 복합적인 문헌이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이것은 성서의 권위를 훼손시키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서를 있는 그대로 봄으로써 보다 진실된 면을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연구 방법을 역사비평적 성서연구방법이라고 부른다. 이런 역사비평적 성서연구방법에는 문헌비평, 양식비평, 편집비평 등이 속하는데 이것들은 단지 성서이해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이러한 연구방법론 자체를 위해 성서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시에 어떠한 학문적인 연구도 한시적임을 명심해야한다. 성서는 시대적인 요구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어져야 하며 어떤 사상적인 틀이나 이데올로기도 성서해석의 영원한 표준이 될 수 없다.
- 5. 롯에 대한 아브라함의 자비
아브라함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자 마자 연약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비춰지는 것은 그에 대한 별다른 애정을 갖게한다. 성서기자 역시 아브라함의 또 다른 면을 찾고자 할 것이다. 창세기 13장은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의 소유가 많아지자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일행들이 함께 살기가 어려워졌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의 가족은 단출한 세식구 뿐이었다. 그런데 13장에서 이들의 가족은 어느덧 대가족이 되었고 시간도 꽤나 흘렀다. 아브라함도 그 조카 롯도 이제는 단순한 가장이 아니라 한 부족을 다스리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변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가리켜 족장(族長)이라고 부르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좋은 예는 창세기 14장에 소개된다. 조카 롯이 이방 왕에게 사로잡혔다는 말을 듣고 아브라함은 정예부대 300명을 이끌고 그를 구했다는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한 부족의 장(長)이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불러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하고 롯에게 선택권을 부여한다(창 13:9). 롯이 기름진 땅 요단 들판을 택하고 소돔에 이르기까지 생활권을 확장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반대편 헤브론에 거하며 야훼 하나님을 위해 제단을 쌓는다(창 13:18). 머나먼 이국땅까지 자기를 따라 나선 조카 롯을 위해 좋은 땅을 양보한 아브라함을 보라! 그가 언제 사라를 누이라고 속여 이방 왕에게 넘겨준 적이 있었던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우리 나라도 국력이 신장하여 세계 곳곳에 한국교민이 진출해 있다. 미국에만도 약 200만명정도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쯤되면 미국에 제 2의 한국을 건설해 볼만 하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는 이민생활에서 아브라함과 같은 여유로운 마음을 갖기 힘들다는데 있다. 돈있거나 형제들이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정식으로 입국해서 합법적으로 돈을 벌며 재산을 형성해가고 있다. 그러나 자의로 혹은 타의로 조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불법으로 체류하여 미국에 남아 있다. 미국사람들이 처음 아메리카 대륙을 밟을 때 인디안들로부터 어디 비자받고 들어갔나? 하지만 세상이 각박해지고 자국이기주의가 현실을 지배하다보니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입국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외국인에 의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에게 문제가 더 많다. 영주권이 없다는 이유로 무단 해고되는가 하면, 해고 될 때 돈 한푼 받지 못하고 ?겨나는 일이 다반사다.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일당을 받으며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불평 한 마디 못한다. 한국에 돌아가자니 돈이 없고 가족을 초청하자니 영주권이 없고 그래서 이눈치 저눈치 보면서 한 많은 세월을 보내는 동포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고 한 아브라함의 여유가 부럽다. 아브라함은 어디 모든 것이 풍부해서 그랬나? 우리가 언제부터 잘살았다고 중국에 있는 교포들 앞에서 돈자랑하면서 거들먹거려야 할까? 조국이 그리워 찾아오는 같은 동족을 사기치고 벗겨먹고 울게하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인간애를 배워야 한다. 이스라엘도 이런 아브라함이 몹시도 자랑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가나안에서 살면서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사라는 이집트 출신인 자기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준다(창 16:2). 하갈을 통해 자손을 보존하라는 것이다. 하갈이 아이를 갖게 되자 사라는 이를 시기하게 되고 결국 하갈은 광야로 도망간다. 광야로 도망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먹을 것도 없고 아무도 그녀를 지켜줄 수 없다. 종이된 이방여인 하갈은 사라에게 당하는 수모보다 죽음의 길을 택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억압받은 이방인 하갈을 잊을리 없다. 그녀가 광야에서 한숨을 쉬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그녀를 축복한다. 이 축복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린 축복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은 동방에서 크게 일어날 것이며 그 자손은 크게 번성하여 셀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창 16:10-11). 축복의 말씀과 함께 하나님은 하갈에게 다시 사라에게로 돌아가라고 명하신다(창 16:9).
- 6. 열국의 아바지 아브라함
이제까지 아브라함은 아브람으로, 사라는 사래로 불려지다가 창세기 17장에 이르러 그들은 아브라함과 사라로 명명된다. 고대 사회에서의 이름은 인격자체를 의미했으며 그 사람의 운명과 직결되었다. 그래서 남을 저주하고자 할 때 토기나 나무 등에 상대방의 이름을 쓰고 저주했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도처에서 발견된다. 우리나라도 예전부터 성명학(姓名學)이 유행했으며 이름이 나쁘다고 생각될 때 다 자란 후에도 개명한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개명된 것은 그가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열국의 아버지'가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그의 이름을 개명하게 했으며, '열국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사래도 사라로 바뀌어야 했다.
아브라함은 이제 평범한 부족장이 아닌 열국의 아버지 노릇을 해야한다. 그는 큰 인물이 되어 온 세상을 구원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 첫번째 시도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흥정에서 드러난다. 하나님이 죄악으로 가득찬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려고 하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항의한다(창 18:22-33). "하나님, 하나님이 과연 의로운 분이신가요? 소돔과 고모라를 의인과 함께 멸하시렵니까? 의인이 단 한사람이라도 그 안에 있다면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신다는 것은 부당합니다." 아브라함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한 하나님은 주춤하시고 아브라함은 흥정을 시작한다. "하나님 그 성중에 의인 50인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의인 50인은 하나님의 양보로 계속 내려가서 10인까지 이른다. 의인 10인이 없어 그 성은 멸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비록 의인 10명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지만 여기서 아브라함의 모습은 그야말로 선지자(先知者)의 모습이요 의인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정의를 정면에서 비판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는 자신을 위함이 아니요 타인의 생명을 구하고자 할때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의 마음까지도 바꿀 수 있는 의로운 항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아브라함은 예언자요 중재자(mediator)로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백성의 구원을 위해 당당히 맞서는 의로운 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는 언제 부터인가 복종만을 강요받아 왔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교회에서 조차 '순종'이라는 미명아래 정당한 항의 한번 못해보고 억눌려 지내온 적이 많았다. 성직의 권위와 교회의 권위는 건전한 비판의식을 도외시하고 무조건적인 순종만을 요구하고 있다. 아브라함을 보라. 진정한 권위는 정의를 실현하고 사랑을 실천할 때 지켜진다. 하나님의 의는 순종할 때 보다는 때로는 부조리와 부정의에 항의 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은 태어난다(창 21:1-3). 이 일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경사요, 하갈과 이스마엘에게는 고난의 출발점이었다. 사라가 볼 때 형인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 같아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기로 작정한다. 마음 약한 아브라함은 사라의 간청에 못이겨 하갈을 내보내면서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주어 내보낸다. 광야에서 물과 먹을 것이 떨어져 탄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 이스마엘을 크게 축복하고 그들에게 생수를 주신다(창 21:9-21). 아브라함에 주어졌던 축복은 이스마엘에게도 똑같이 주어지고 그는 이집트 여인과 결혼하게 된다.
- 7.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백세에 아들을 낳고 마지막 시험대에 오른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여 이삭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니 아브라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우리는 모리아산에서 독자 이삭을 결박한 후에 칼을 들고 죽이려 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고 찬사를 보낸다거나 부러워해서는 결코 안된다. 죄악으로 가득찬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 그토록 항의하던 아브라함의 모습은 간데 없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한 아브라함의 처량한 모습만이 우리 눈에 아른거릴 뿐이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을까?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그 방법 밖에 없었을까? 성서기자는 왜 이런 끔직한 시험과정을 독자에게 알리려하고 있을까? 고대 사회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친 흔적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비록 인육제사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환영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통용될 때도 있었다. 이스라엘은 주변국으로부터 이러한 풍습을 전수 받은 것 같다. 사사 입다가 하나님께서 원하지도 않은 인신제사를 서약하여 자기의 무남독녀를 제물로 바친 이야기라든지(삿 11장), 왕국 후반기까지 어린이를 불사르거나 불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종교적 풍습을 볼 때 인신제사는 이스라엘 민중 사이에 널리 퍼져있었다(왕하 17:31; 23:10).
아브라함이 인육제사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가 가나안의 인육제사 풍습에 익숙했다는 가정도 근거가 없다. 그렇다면 성서기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이야기를 어떻게 전수 받았을까?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삼국유사』(5권)에 나오는 손순매아(孫順埋兒) 설화는 손순이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자식을 죽이려고 한 이야기이다. 아이를 땅에 묻으려고 할 때 땅 속에서 석종(石鍾)이 발견되어 그 종때문에 이이도 살고 온 가족이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는 세계 도처에 퍼져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지극한 정성과 믿음은 하늘을 움직여야 하는데 그 방법은 오직 생명을 바치는 일 외에 없다는 사고방식이 고대인에게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보다도 귀한 자식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에 항의 한번 못하고 순종할 수밖에 없는 아브라함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고 순순히 따라 나서는 이삭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 이삭은 자기를 태울 나무를 지고 산을 오를 정도로 성장했지만 백세가 훨씬 넘은 아버지를 거역하지 않고 순순히 결박당한다. 하나님은 이삭대신 수양을 준비하심으로 이삭의 생명을 구하고 아브라함의 믿음은 지켜졌다는 이야기가 창세기 22장에 소개되어 있다.
사라가 죽고 이삭이 장가드는 이야기가 창세기 23-24장에 전개된다. 당시 아브라함의 주변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므로 그들과 혼인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 고향 메소포타미아까지 사람을 보내 신부감을 구하게 한다. 천생연분이라 했던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이삭과 혼인하겠다고 따라 나선 리브가의 결단은 여인의 용기를 보여준다. 부모 형제를 떠나 가나안으로 온 리브가는 사라 대신 안방 마님으로 자리잡고 아브라함도 사라의 뒤를 따라 저세상으로 가게 된다(창 25:7-11).
- 맺음말
이로써 아브라함은 무대위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이삭이 그 대를 잇는다. 아브라함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는 복합적인 성품의 소유자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었으며 의를 위해 하나님과도 흥정할 줄 아는 예언자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한계를 역시 벗어나지 못한 평범한 인물이었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목숨을 부지할 수밖에 없었던 그가 우리에겐 소중한 인물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도 로마의 군병을 사정없이 무찔러서가 아니라 아무 힘없이 십자가에서 묵묵히 죽어가셨기 때문에 더욱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브라함은 한마디로 우리의 모습이다. 신앙인으로서 강한 모습을 보이고 싶으면서도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인 모습이 그것이다. 그런 우리의 모습이 세상을 밝게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룬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끼지나 하나님의 진리가 선행될 때 가능한 일이다. 아브라함의 인간됨은 그래서 우리에게 희망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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