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예레미야의 성전설교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렘 7:1∼15)
[활천 2001년 3월]
예레미야 7장 1-15절은 예레미야의 성전설교라고 불리는 유명한 장이다. 이 사건은 예레미야 26장에서도 기록되어 있다. 7장이 예레미야의 설교내용을 보여주고 있다면, 26장은 이 설교에 대한 유다 백성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다. 예레미야 26:1에 의하면 이 설교는 여호야김 왕의 즉위 초(주전 608년)에 행해진 것이다. 예레미야는 주전 627/6년에 소명을 받고 예언자로서 활동을 시작한다(렘 1:2). 흔히 예레미야 1-6장의 내용을 예레미야의 초기 선포 사역(주전 627/6-622년)에 대한 기록이라고 한다. 이 성전설교는 예레미야의 예언활동의 두 번째 기간에 속한다(주전 608-597년). 따라서 이 예언자는 요시야의 종교 개혁이 시작하는 해인 주전 622년부터 침묵기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전 609년 요시야의 죽음은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재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약 14년간의 침묵을 깨고 처음으로 행한 설교가 오늘의 본문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 설교로 인하여 죽음의 위협을 당하고 계속해서 박해를 받게 된다(렘 26장).
1. 성전이 하나님의 전이라고?: 이곳이 야웨의 전이라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렘 7:4)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 성전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이런 식의 성전, 특히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비판 설교는 이전에도 있었다. 약 100년 전에 유다에서 활동한 선배예언자 미가도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예언한 바 있다(미 3:12). 그러나 예레미야의 현상황은 미가 당시와는 다르다. 미가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 이외에도 여러 개의 성소들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주전 621년에 실시된 요시야의 종교개혁(특히 예배성소의 단일화 정책)으로 지방의 모든 성소들은 폐쇄되거나 파괴되었고, 예루살렘 성전만이 유일한 합법적인 성소로 남게 되었다(왕하 23:5-8).
이제 유다 백성이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제의 장소는 오직 한 곳밖에 없었다. 게다가 유다 백성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종교 개혁의 영웅 요시야 왕도 애굽의 바로 느고에 의해서 므깃도에서 전사하고 말았다(왕하 23: 29). 예기치 못했던 국가적 비운을 맞게된 것이다. 예레미야 당시는 실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둡고 불안한 시기였다.
남 유다에서는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온 양대 신앙이 있었다. 첫째는 다윗왕조신앙이다. 다윗 계통의 왕조와 나라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이다(삼하 7:12-16). 두 번째는 시온신앙이다. 이에 따르면 시온은 하나님이 택하시고 거주하시는 장소이기 때문에 이방 나라가 공격해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시 132:13-14; 참조. 시 46편). 즉 시온의 불가침 신앙이다. 요시야의 전사로 신앙의 양대 기둥 가운데 하나인 다윗 신앙은 더 이상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유다 백성들은 마지막 버팀목이요 보루로 생각하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몰려온 것이다.
유다 백성들은 이스라엘의 큰 명절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야웨의 전이라, 야웨의 전이라, 야웨의 전이라(4절) 하며 외친다. 이러한 이른바 야웨 성전 삼창(렘 22:29; 사 6:3)은 열정적으로 맹세하는 호소를 뜻한다. 위에서 본바와 같이 예루살렘 성전은 유다의 유일한 성소로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고백에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계시기 때문에 이 성전은 안전과 평화 그리고 번영을 보장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예레미야는 이를 거짓말이라고 일갈한다. 성전이라고 모두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여부가 성전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참조. 왕상 8:13; 대하 36:15).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는 의무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자유에 속한다. 하나님이 성전에 계셨던 것은 순전히 은혜의 발로였다. 하나님은 성전을 언제든지 떠나실 수 있고 적들에 의해서 파괴되도록 하실 수도 있다(렘 12:7). 따라서 성전 자체에 신비한 마력이라도 있다는 듯이 성전을 짓고 가꾸기에만 혈안이 된 미신적인 성전신앙은 성서적이라고 하긴 어렵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성전의 휘장이 찢긴 것은 일종의 성전 폐기선언이 아닌가? 그 어떤 건물도 하나님의 임재를 강요할 수도 보장할 수도 없다(사 66:1).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성전이시다(계 21:22).
그 동안 한국교회는 자기 집 벽돌 쌓기에만 너무 전력 투구해온 것은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벽돌 쌓기에서 벽돌 나눔으로 방향을 선회해야하지 않을까?
2. 성전이 하나님의 전이 되려면: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렘 7:5)
그렇다면 어떡해야 성전이 건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을까? 야웨께서 계속해서 성전에 거하시고 또 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영원 무궁히 살 수 있게 해주는 일에는 중요한 조건이 따른다: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3절). 그것은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 곳(약속의 땅)에서 계속해서 살 수 있는가의 문제는 그들이 이 곳에서 바르게 사느냐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바른 삶이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않는 것이다(5-6절).
여기에서 성전을 성전으로 만드는 조건이 제시된다. 이는 성전으로 들어오는 사람마다 자신의 일상 생활을 바로잡는 것이다. 성전에 와서 열심히 제사를 드리고 기도 소리를 높이는 것보다 먼저 자신의 길과 행위를 바로 잡아야 한다. 공의와 정의의 문제가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는 사회에, 가정에, 한 개인에게 있어서 허울 좋은 종교 행위란 위선이요, 자기 속임수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의 영역은 종교적인 것은 물론 사회적인 것을 포함한, 그의 백성의 삶 전체이다.
따라서 삶이 바르지 못한 사람의 헌금과 헌물(마 5:24)은 더 이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물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괴롭히고 모독하는 뇌물로 간주될 수 있다(참조. 사 1:11-14). 참 신앙인이란 신앙공동체 내부는 물론 바깥에서도 바르게 사는 자들이며, 예배 때의 고백과 일상적인 삶과의 오차 폭을 줄이기 위해 이 세상에서 기꺼이 손해보면 사는 자들이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벧전 3:17).
3. 성전이 도적의 굴혈이 되다니!: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렘 7:11)
성전으로 몰려드는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가볍게 보고 온갖 죄악들(도적질, 살인, 간음, 거짓 맹세, 우상 숭배)을 저지른다(9절). 그들은 온갖 죄들로 찌들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에 들어와서는 우리는 구원을 얻었다(10절)고 떠들어댄다. 예레미야는 윤리적인 부패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미신적 안전의식에 사로잡힌 동족의 행태를 비판한다. 불행하게도 당시의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부정한 행실에 대한 각성이나 돌이킴도 없이 그저 성전에 가서 재물을 많이 드리고 예배를 드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야웨가 계시는 야웨의 전(헤이칼 야웨)으로 보았지만, 예레미야의 눈에 비친 이 성전이란 이 집(하바이트 하제), 즉 야웨 하나님이 이미 떠나 버린 하나의 건물에 불과하였다. 예언자는 여기에서 의도적으로 야웨의 집이라는 표현을 피하고, 대신 야웨를 생략하고 그 자리에 냉소적이고 거리감을 표시하는 지시대명사 이것(하제)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이 집이 예언자의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인다(11절). 성전 밖에서 바르게 살지 않으면서도 성전에 들어와 안심하는 유다 백성들은 마치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을 가지고 남이 모르는 동굴에 들어와 숨기고 희희낙락하며 다음 도적질을 계획하는 강도와 같다. 야웨 하나님은 강도의 소굴로 변질된 성전에 더 이상 머무실 수가 없다. 예레미야는 야웨의 현존과 성전이 이미 분리되었음을 간파한다. 온갖 부정한 일로 더럽혀지고 회개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겠는가!
사회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교회는 더 이상 도덕적인 양심인들의 모임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적 비리 사건에 기독교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 비극적인 드라마를 심심치않게 경험하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눈에 혹시 우리교회도 도적의 굴혈로 보이지는 않을까?
4. 어찌 역사의 교훈을 이토록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가?: 나의 처소 실로에 가서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렘 7:12)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운명을 이미 파괴되어 버린 실로의 운명과 동일시한다(14절). 구약성서에서 예루살렘 성전과 더불어 오로지 실로의 성소만이 야웨의 전(헤이칼 야웨)이라고 불린다(삼상 1:9; 3:3). 실로는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당신의 이름을 두신 하나님의 처소였다(12절). 실로의 성소는 일찍이 사사시대부터 법궤가 안치되어 있었던 유서 깊은 순례지였다(삿 18:31 등). 이스라엘의 큰 축제일들(가을철 추수 축제일, 장막절, 신년 축제일 등)이 되면 수많은 인파의 순례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았던 장소이기도 하였다(수 18:1; 삿 18:31; 21:19 등). 12절에 따르면 실로 성소의 파괴는 단순히 엘리와 그의 아들들의 범실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모두, 즉 북 이스라엘의 죄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참조. 시 78:56 이하, 특히 60절). 따라서 실로의 성소는 흔히 생각하고 있는 주전 11세기 중엽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주전 722년 앗수르 사람들에 의해서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15절의 심판선포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냄(주전 722년)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주전 587년).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은 결코 침범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라는 미신으로 가득 찬 당시 유다 백성들에게 실로의 파괴사건이 갖는 교훈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 땅에 당신의 이름을 두신 장소가 바로 실로 성소였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심판하셨다. 역사적인 비중으로 본다면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첫사랑이었던 실로에 비하면 차선일 수밖에 없다. 예루살렘은 다윗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정복되었고(삼하 5:6-12), 솔로몬이 이곳에 성전을 짓고 법궤를 이곳에 안치함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가 되었다(왕상 8장). 실로도 심판하신 하나님 앞에 예루살렘이 감히 치외법권이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은 드디어 당신의 첫사랑인 실로를 포기하실 수밖에 없었다.
예레미야는 외친다. 나의 첫사랑 실로에 가보라!(12-14절). 북 이스라엘의 몰락과 패망의 교훈을 아는가?(15절). 우리가 역사를 뒤집어 보아야 할 이유는 그 역사의 오류를 되밟지 않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그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역사이건 조상들의 비극적 실패의 역사이건 기회 있을 때마다 늘 낭송하고 기억하고 추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곱씹어 보아야 한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박물관 야드바셈, 전시실 2층의 동판에 이런 문구가 있다: 망각은 포로상태로 이어진다. 그러나 기억함은 구원의 비밀이다. 그렇다. 역사의 망각은 또다시 동일한 화(禍)를 불러들일 수 있다.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이를 계속해서 후손에게 전수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있는 법이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생존과 미래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적 반추는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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